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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문화와 신학] 나의 박사 논문을 말한다
문화·신학·목회 (2020년 2월호)

 

  신앙으로 시대정신을 주도한 여성 에큐메니컬 선구자들
  

본문

 

세계교회협의회 형성과 여성 에큐메니칼 선구자들의 공헌
: 사라 차코, 캐슬린 블리스, 마들렌 바롯, 그리고 수잔 드 디트리히를 중심으로
장로회신학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8



연구 동기
필자의 박사 논문은 한국교회 여성 목사로서의 실존적인 고민에서 출발한, ‘어떻게 하면 한국교회가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회복하고 시대정신에 부합한 건강한 교회로 거듭날 수 있을까?’에 대한 실천적 연구이다. 2019년 국가미래연구원에서 발표한 ‘소셜 빅데이터로 보는 2019 시대정신’에 의하면, ‘공정한 사회, 각종 차별로부터 자유로운 안전사회, 삶의 질 개선 등을 통한 민생안전’ 등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신자세나 태도이다.1
그러나 급속한 사회・문화적 변화 속에서 과거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을 선도했던 한국교회는 더 이상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다음은 필자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104회기(2019년도) 여성 총대 비율 및 현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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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 의하면 오늘날 예장 통합 교단의 성도는 전체 255만 4,227명이고, 이 중 여성은 146만 4,010명(57.3%), 목사의 경우 전체 2만 506명 중 여성은 2,336명(11.4%), 그리고 장로는 전체 3만 2,278명 중 여성이 1,541명(4.7%)이다. 하지만 이에 반해 총대의 비율을 살펴보면 전체 총대 1,500명 중 여성은 26명(장로 19명, 목사 7명)으로 고작 1.7%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본 논문은 20세기 초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신앙으로 시대정신을 주도한 여성 에큐메니컬 선구자들의 행적을 연구하여, 이 시대에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모색하고자 하였다.

연구 범위, 방법, 대상
논문 제1장에서는 연구의 범위와 방법, 그 대상을 다루었다. 에큐메니컬 운동에 관한 논문 대부분이 세계교회협의회 출범 이후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므로, 연구의 범위는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사대회부터 세계교회협의회 조직이 안정된 1954년 에반스톤 총회까지의 시기로 한정했다. 연구 자료는 1차 사료로 세계교회협의회 문서보관소에 보관된 실행위원회, 임원 회의록, 여성위원회의 공식 혹은 비공식 문서들, 편지 등을 이용했다. 또한 세계YWCA 문서보관소의 자료와 세계기독학생연맹 및 보세이 에큐메니컬 연구소 자료 등을 참고하였다. 이들 자료를 토대로 논문에서는 실증적 문헌연구 방법을 중심으로 역사적인 서술을 전개하였다.
연구 대상으로는 세계교회협의회 출범 당시 공식적으로 지도부에 포함된 여성 지도자들, 곧 사라 차코(Sarah Chakko, India), 캐슬린 블리스(Kathleen Bliss, UK), 마들렌 바롯(Madeleine Barot, France), 수잔 드 디트리히(Suzanne de Dietrich, France)의 공헌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논문에서는 이들을 여성 에큐메니컬 선구자들이라고 칭했는데, 이들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교육자 사라 차코는 세계화를 선언한 세계YWCA가 집중적으로 선교 활동을 펼친 인도의 이사벨라토번대학(Isabella Thoburn College) 총장이자 세계교회협의회 아시아 지역 첫 여성 회장이며, 에큐메니컬 운동을 아시아 지역으로 확장했다. 캐슬린 블리스는 세계교회협의회 형성 초기 핵심 지도자 중 하나인 올드햄(J. H. Oldham)을 대신하여 암스테르담 총회에 발표할 공식 문서를 작성했다. 블리스가 창안한 구호 “우리 함께 있기를 원해요”(We intend to stay together)는 암스테르담 총회의 오프닝 문구로 당시 총회 참가자들이 지속적으로 외치는 구호가 되었다. 마들렌 바롯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교회의 울타리 밖에서 피난민을 돕는 구호기관인 시마데(Comite Inter-Mouvements Aupres Des Evacues, CIMADE)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이 기관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세계교회협의회 사회복음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마지막으로 수잔 드 디트리히는 세계기독학생연맹(WSCF)의 지도자로서 학생들에게 에큐메니컬 의식을 고취했으며, 훗날 보세이 에큐메니컬 연구소의 부학장을 지내며 평신도 양성에도 힘썼다.

연구 내용
논문 제2장은 20세기 초 여성지도자 배출의 산실이 된 미국교회 해외선교회, 세계YWCA, 그리고 세계기독학생연맹의 역사를 간략히 서술하고, 에큐메니컬 운동의 상황 변화를 설명하였다. 가령, 19세기 말 해외선교는 지역 교회에서 사역의 기회를 얻지 못한 여성이 해외선교에 자원함으로써 더 크게 부흥하였다. 여성들은 남성이 접근하기 어려운 여성들을 대상으로 교육, 의료, 봉사를 실천하였고, 이를 통해 교회를 개척하고 더 나아가 사회개혁을 도모하였다.
이처럼 다수의 여성이 해외선교에 헌신할 수 있었던 동력으로 ‘여성을 위한 여성의 사역’(Women’s Work for Women)이라는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다. 당시 미국교회는 교단을 초월하여 여전도회가 연합하여 해외선교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해외선교사로 자원하는 여성들을 발굴하여 선교에 필요한 기술(교육, 의료 등)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며, 이후 이들을 세계 각국으로 파송하고 현지에서의 사역을 지원하는 일을 추진해나갔다. 또한 사역을 마친 여성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일까지 맡았다. 여성 선교사의 열정과 여전도회의 든든한 지원으로 1910년에는 상당수의 여성 해외선교회가 설립되었으며, 1911년 미국교회 여성 해외선교사 희년대회에는 1,500명 이상이 참가할 정도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학생운동의 부흥을 들 수 있다. 당시 학생운동의 부흥으로 인해 해외선교를 희망하는 여성을 끌어낼 수 있었고, 세계YWCA 역시 이들을 지원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조직을 확장하였다. 이처럼 미국교회 여전도회, 학생운동, 그리고 세계YWCA의 네트워크는 해외선교의 큰 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최된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사대회는 남성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해외선교회 대표 여성이 함께 총대로 참석한 회의였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목회자를 중심으로 한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선교사 중심에서 교회 중심의 선교로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해외선교의 주역으로서 역량을 펼치던 여성 해외선교사들의 입지를 위협하였다. 교단의 대표는 대부분 남성이었기 때문에,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선교사 지위의 약세는 곧 교회에서 여성들의 입지가 축소됨을 의미했다. 독자적으로 운영되던 미국교회 여성 해외선교회는 교단 산하 통합 선교회에 흡수 혹은 합병되었고, 세계교회 모임에서 여성 총대 수가 감소했다. 가령 스톡홀름에서 열린 제1회 삶과 봉사 세계대회(1925)에는 500명이 넘는 교회 대표자들 가운데 약 40명의 여성이 있었으나, 로잔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 로잔세계대회(1927)는 약 400명의 대의원 중 6명만이 여성이었다. 이 여성들은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사역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질 자격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죽음을 깨우는 운동이며 모든 사람의 가슴과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은사를 주셨고,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위대한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충만하게 하셨고 또 이미 여성들은 그 역할을 감당해오고 있습니다.2

또한 1937년 옥스퍼드의 제2회 삶과 봉사 세계대회에서는 300명이 넘는 참가자 중 23명이 여성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에든버러에서 열린 제2차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에서는 약 450명의 참가자 중 여성이 10명이었다.
논문 제3장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세계사적 위기 속에서 교회와 사회에서 활약한 여성 지도자들의 공헌을 다루었다. 당시 여성들은 전쟁으로 징집된 남성들의 빈자리를 메우며 일시적으로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 역할을 감당하였다. 이들은 교회, 국가, 이념으로 분열된 정형화된 조직의 틀 안에서 수동적으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인류애를 바탕으로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역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예를 들어 수잔 드 디트리히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학생운동을 통해 청년들의 의식을 일깨웠고, 독일교회의 혼란기에는 칼 바르트의 ‘바르멘 신학 선언’의 준비와 발표에 협력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난민 구호기관인 시마데의 창설을 통해 인류애를 실천하였다. 디트리히는 독일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시민 발언대에서 발언하였고, 교회를 향하여는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상의 ‘지금 여기’라는 땅 위에 각자 책임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교회의 사회참여를 촉구하였다. 비록 장애로 인해 현장에서 직접 활동할 수는 없었지만, 디트리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일한 세계기독학생연맹 제네바 직원으로서 현장 활동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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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마들렌 바롯은 포로수용소 내 구호단체인 시마데의 사무총장으로서 병사들의 빈 막사에서 생활하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유대인 구출 작전을 주도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증인 된 삶을 살았다. 특히 마들렌 바롯은 탁월한 지도력으로 유럽의 지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를 비롯한 에큐메니컬 기관 지도자들의 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유대인을 구출하였으며, 이는 훗날 세계교회협의회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주요 신학으로 채택하는 데 일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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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급변하는 사회적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위기 상황에 대처하며 사회참여를 실천한 사람들은 바로 이들 여성이었음에도, 종전 후 여성들은 다시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소외되었다.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46년,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준비위원회가 출범했을 때에도 여성 지도자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올드햄을 대신한 캐슬린 블리스만이 유일한 여성 지도자였다.
이어 제4장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 설립이라는 새로운 교회 운동에서 여성의 참여와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여정을 다루었다. 세계교회협의회 초기 지도자인 사무엘 캐버트의 아내이자 세계YWCA의 이사 트윌라 캐버트는 남편과 함께 제네바 회의에 참여했을 때 여성이 배제된 현실을 직시하였다. 이에 캐버트는 세계 각국의 여성 기관대표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였으며, 이들은 개인 간의 상호 신뢰와 공동의 비전에 토대를 두고 협력 관계를 형성하였다. 전 세계 58개국의 여성들은 ‘교회에서 여성의 삶과 봉사’에 대한 설문조사에 응답하며 1948년 암스테르담 총회 직전에 자발적으로 여성 사전대회를 개최하여 여성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서 세계교회협의회 내에 여성위원회를 설치할 것과 여성 역할의 확대를 제안하였고, 마침내 여성위원회의 창설을 이끌어냈다.
이때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사람은 아시아 여성 사라 차코였다. 그녀는 세계교회협의회 산하 조직인 ‘교회에서 여성의 삶과 봉사위원회’의 수장이 되었다. 또한 58개국 여성들의 응답을 캐슬린 블리스가 엮어서 1952년에 출간한 책은 세계교회협의회의 첫 출판물이 되었다.
제5장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 출범 이후 여성 지도자들의 초기 활약상을 다루었다. 비록 소수였지만, 이들은 에큐메니컬 운동과 여성운동을 함께 전개하였다. 가령, 1954년에 발전된 평신도 신학의 발전은 여성 지도자들의 공헌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이를 위해 마들렌 바롯은 ‘교회에서 여성의 삶과 봉사위원회’로 설립된 여성위원회를 에반스톤 총회에서 ‘교회와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협력 분과’로 이름을 변경하도록 주도하며, 교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여성뿐 아니라 청년, 장애인, 평신도를 포함하는 통합 분과로 그 영역을 확대하며 평신도 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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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캐슬린 블리스는 에반스톤 총회의 평신도 분과 위원장으로서 에큐메니컬 운동의 정신과 평신도 신학에 대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한편 수잔 드 디트리히는 보세이 에큐메니컬 연구소에 상주하며 평신도 훈련을 통해 에큐메니컬 지도자를 양성하였다. 그리고 사라 차코는 1952년에 세계교회협의회 아시아 지역 회장이 되어 아시아와 유럽 교회 청년들의 연합을 통해 에큐메니컬 운동을 아시아로 확대했다.
이처럼 여성들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정신을 바탕으로, 여성운동과 에큐메니컬 운동을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세계교회협의회를 여성, 청년, 장애인에 관심을 기울이는 포용적인 공동체로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더 나아가 평신도 신학을 발전시킴으로써 교회와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협력을 통한 교회 개혁의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교회가 시대 요구에 응답하고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더욱 세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글을 마치며
나의 박사 논문은 아직도 불모지인 여성에 관한 연구 분야를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데에 집중하였다. 여성 지도자들의 산실이 된 세계YWCA, 여성 해외선교사의 든든한 기반인 미국교회의 ‘Women’s Work for Women’, 학생운동의 주체인 WSCF 등 각각에 대한 연구만으로도 한 편의 논문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분야가 방대하기 때문이다. 각 주체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후속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여성들은 교회에서의 역할 확대를 위해 평신도 신학을 발전시켰는데, 이 부분 역시 교회사적으로 정리되어야 할 매우 중요한 역사이다.
20세기 초 교회론의 변화로 여성 해외선교사들의 입지가 좁아졌을 때, 선교 저널들에는 ‘교회가 충분히 지도력 있고 의식과 역량이 있는 여성들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논지의 소논문이 다수 발표되었다. 이러한 선조들의 외침은 지금 한국교회에도 유효하다. 최근 한국교회는 제도 교회 내에서 적절한 사역의 기회를 얻지 못한 여성 목사들이 파트 사역자로 머물거나, 교회 밖에서 새로운 사역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여성 지도자를 양성하여 세계 선교의 부흥 주체가 되었던 여전도회는 교회 내에서 친교 모임 혹은 교회 행사를 위한 봉사 등 보조적인 사역에만 머무는 실정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여성들은 위기의 순간마다 창의적인 사역을 통해 새로운 개혁의 주체로서 변혁을 끌어내는 도화선의 역할을 해왔다. ‘Women’s Work for Women’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 선교의 부흥을 이끌었던 여전도회의 저력을 다시 회복하기를 소망한다. 필자 또한 한국교회의 새로운 개혁의 주체로서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평신도 신학을 정립하는 연구를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 나의 박사학위 논문이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에 교회가 변혁의 주체로서 역량 있는 여성 리더십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남성과 여성이 함께 동역하는 건강한 교회로 거듭나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하기를 기대한다.


1 국가미래연구원(IFS) 게시물, “2019 시대정신은 ‘공정’, ‘안전’, ‘민생안정’-소셜 빅데이터 분석”, 2019년 4월 17일.(https://bit.ly/2QBMJOF)
2 Marlin Van Elderen and Martin Conway, Introducing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Geneva: World Council of Churches Publications, 1990), 26.



김은하 |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역사신학(근현대 교회사)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거룩한빛광성교회 교육목사로 일하고 있다.

 
 
 

2020년 3월호(통권 7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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