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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문화와 신학] 기독교와 한국 전통문화의 화해를 위하여 04
문화·신학·목회 (2020년 2월호)

 

  꼭두닭이 낳은 달걀
  

본문

 

계림(鷄林): 닭숲의 신세계
태초에 천지는 혼돈으로 있었다. 하늘과 땅이 금이 없어 서로 맞붙고, 암흑과 혼합으로 휩싸여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런 혼돈의 천지에 개벽의 기운이 감돌면서 하늘과 땅 사이에 경계가 생기게 된다. 또한 하늘에서 청(靑)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흑(黑)이슬이 솟아나 서로 합수(合水)되어 음양 상통이 되면서 만물이 형성된다. 별이 형성되었으나 아직 암흑은 계속되면서 오색구름만이 오락가락하게 된다. 이때 천황닭(天皇鷄)이 목을 들고 지황닭(地皇鷄)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人皇鷄)이 꼬리를 쳐 크게 우니, 갑을동방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한다. 하늘의 옥황상제 천지왕(天地王)이 해도 둘, 달도 둘을 내보내어 천지는 활짝 개벽이 되었다. - 현용준, 『제주도 신화』(1976, 서문당)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마치 성서의 창세기를 차용한 듯한 풍경이다. 세 마리의 닭이 등장하여 세상의 시작을 주도한다. 태초의 암흑, 혼돈을 물리쳤으니 개벽(開闢)이다. 개벽은 무엇인가? 세상이 처음으로 생겨 열리는 것, 혹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천지창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여기서의 닭은 무엇일까. 이른바 창세의 신격, 창조의 신격으로 나타난다. 닭이 새벽을 깨우고 아침을 여는 동물이라는 점은 불문가지. 신화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노래에도 닭은 시작과 개벽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닭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어디에 있을까? 『삼국유사』의 기록,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번역을 참고한다.

영평(永平, 후한 명제/明帝의 연호로 58-75년에 사용함) 3년 경신(庚申) 8월 4일 호공(瓠公)이 밤에 월성(月城) 서리(西里)를 가는데 시림(始林)의 가운데 크고 밝은 빛이 있으며, 자색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에 뻗쳐 내려온 것을 보았다. 구름 속에 황금 상자가 있는데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빛은 상자로부터 나오며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그대로 이것을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친히 숲에 나가서 그 상자를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있었는데, 누워있던 아이가 바로 일어났다. 이것은 마치 혁거세의 고사와 같으므로 그 아이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였다. 알지는 우리 말(鄕言)로 아이(小兒)를 일컫는 말이다. 왕이 그 아이를 안고 궁으로 돌아오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르며 기뻐하면서 춤추고 뛰어 놀았다. 왕이 길일을 택하여 태자로 책봉했으나 후에 알지는 그 자리를 파사(婆娑)에게 물려주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저 유명한 김알지의 탄생설화이다. 각주 번역을 더 인용하여 설명을 부가해둔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 따르면 호공(瓠公)은 본래 왜나라 사람으로 신라에 건너와서 혁거세 38년(기원전 20년) 마한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으며, 탈해왕 2년(58년)에는 대보가 되었다. 『삼국유사』에서는 일찍이 석탈해가 꾀로써 호공의 가택을 빼앗았다고 기술되어 있다. 시림(始林)은 곧 계림(鷄林)이다. 계림은 무엇인가? 왕의 탄생을 알려주기 위해 닭이 울었다는 숲이다. 신라 눌지왕 때 사신 박제상이 왜국에 잡혀가 “계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라고 했다던 일화가 유명하다. 계림(鷄林)을 우리말로 풀어 말하면 ‘닭의 숲’ 혹은 ‘닭이 운 숲’ 정도가 되겠다. 『삼국유사』 박혁거세편에 의하면, 왕이 계정(鷄井) 곧 닭우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계림국(鷄林國)이라 했다. 닭의 숲이니 계명성(鷄鳴聲)이요, 닭이 홰치고 울음을 우니 광명한 시간을 여는 아침인데, 거기에 샘이라고 하는 물의 의미까지 더해졌으니 개벽의 새로운(新) 나라(羅) 곧 ‘신라’(新羅)라고 명한 것이다.

닭제산 계봉(鷄峯)의 방주(方舟)에서 재생까지
충남 홍성군 홍북읍 노은리와 예산군 응봉면 계정리 사이의 닭제산 이야기가 널리 회자된다. 예산군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옛날 세상이 온통 물에 잠겼을 때도 닭제산(닭재산과 병용한다) 봉우리는 닭이 한 마리 앉을 만큼의 자리가 남아 있었다. 혹은 닭 한 마리만이 이 산에 올라가 살게 되었다. 또한 금광도 없는데 닭만한 금덩이가 하나 나왔다. 닭제산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들이다. 고려의 명장 최영 장군이 닭제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이 산에서 무술을 연마하였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닭제산의 계봉(鷄峯) 곧 닭봉우리이다. 마치 홍수 설화의 한 버전인 대홍수 때 살아남은 생물들, 혹은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 살아남은 생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문제는 닭봉우리 방주에 닭 한 마리만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 이 이야기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김알지 탄생설화에서 볼 수 있듯이 대홍수 이후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모두 종(種)의 시원이나 시작을 은유했기 때문이다.
『동국세시기』를 보면, “정월 원일(元日), 우리나라에서는 닭 또는 호랑이의 그림을 세화로 사용하여 잡귀를 쫓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정월 보름 풍속으로 “닭 울음소리가 열 번을 넘으면 그해에 풍년이 들고, 그렇지 못하면 흉년이 든다.”라고 했다. 『형초세시기』에서는 중국에서도 정월 초하루를 계일(鷄日)이라 하여 닭의 그림을 문 위에 걸어놓는 풍습이 있었다고 말한다. 정형호는 그의 글 “닭의 민속과 상징”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닭 울음소리는 어둠이 물러가고 새날이 밝았음을 알리는 구실을 한다. 그러면 밤의 존재는 물러나야 한다. 따라서 혼령(魂靈)은 생시의 인간과 이별해야 하며, 인간을 괴롭히는 잡귀는 인간의 곁에서 떠나야 한다. 특히 인간과 이물의 결합을 보이는 야래자(夜來者) 이야기를 보면, 인간으로 변신한 동물이 닭소리와 함께 원래 속했던 지하의 세계로 떠나게 된다.” 야래자는 밤에 오는 도깨비이자 귀신이라는 뜻으로 다양하게 전해져 내려온다. 예컨대 뱀이 남자로 변신하여 밤마다 어떤 처녀를 찾아가 관계를 맺었는데, 그 처녀가 비범한 아이를 낳았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후백제 견훤 탄생담 등이 이에 속한다. 닭 울음소리는 하루의 시작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화, 세계의 시작 등을 상징하는 풍속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속학자 임동권은 “닭의 민속의 비교”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대로부터 닭이 우는 계명(鷄鳴)은 길조(吉兆)다. 시보(時報)이며, 일의 시작이나 끝남을 알려준다. 귀신과 맹수를 쫓는 힘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지금도 전승되고 있다.”1 길상의 징조이자 시간을 보고해주는 일종의 모닝콜인 셈이다. 나아가 닭의 울음은 천신의 하강에 의한 개국(開國), 나라의 시작을 상징한다. 표상되고 함의된 거의 모든 것들의 시작이라고나 할까.

혼인식과 장례식의 닭
닭 혹은 달걀은 지역적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전 문화권을 아우르는, 또 시대적으로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망라하는 이른바 거듭남의 키워드이다. 지면상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그중 몇 가지만 거론한다. 우리나라 전통 혼인식에서는 반드시 닭을 사용하는 풍속이 있다. 초례상 위에 신랑과 신부를 상징하는 청색과 홍색의 보자기로 닭을 싸서 놓아둔다. 때에 따라 어린아이가 닭을 안고 옆에 서 있는 경우도 있다. 현재도 전승되고 있는 축소된 형식의 결혼 곧 폐백(幣帛)식에서도 상차림에 닭을 사용하도록 한다. 신부가 시부모에게 행하는 의례 중 하나로 폐백닭이라 부른다. 이는 본래 임금에게 바치거나 제사 때 신에게 바치는 물건 등을 말하던 것이었는데, 혼인 전에 신랑이 신부집에 보내는 예물이나 신부가 처음으로 시부모에게 갖추는 예절이라는 개념으로 차용되었다. 이런 전통이 오랫동안 민간의 풍속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사위가 처가댁에 방문하면 닭을 잡아 먹인다는 관념이 있다. 기본적으로 닭은 알을 낳는다는 의미에서 다산을 상징한다. 닭 울음으로 아침을 맞듯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혼과 새로운 시작, 갱생과 거듭남의 상징물인 것이다.
닭 울음이 아침을 여는 개명(開明)의 소리라는 점은 불문가지이다. 닭이 울어야 아침이 오고 비로소 해가 뜬다는 관념은 인류에게 보편적이다. 닭에게는 벼슬이 있다. ‘닭 벼슬’(鷄冠)은 벼슬한 사람이 쓰는 관(冠)과 유사하다. 아마도 고대에는 닭 벼슬을 보고 관을 디자인했을 것이다. 아침과 해와 닭 벼슬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삼족오(다리가 셋 달린 까마귀)와 두꺼비가 나온다. 삼족오는 상상의 동물이다. 어떤 동물을 모티브로 삼았을까? 바로 닭이다. 아침을 여는 닭이 급기야 해를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로 변해 태양 속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오행상 남쪽과 붉은 색을 상징하는 주작(朱雀)이나 봉황(鳳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구려 고분 무용총의 벽화에 그려진 봉황은 닭과 분간이 되지 않는다. 포인트는 닭 벼슬이다. 벼슬을 얹고 있는 새들은 모두 닭을 모델로 삼아 진화한 형상들이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봉황도 닭 벼슬을 얹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설화에서 속담까지,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러한 형상들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아침, 시작, 재생, 환생, 부활 등으로 확장 인식되는 키워드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 관념은 죽음 의례로도 이어진다. “경주의 천마총을 발굴했을 때, 단지 안에 수십 개의 계란이 들어 었었고, 또 신라의 고분을 발굴해보면 흔히 접시 안에 닭 뼈(鷄骨)가 있다. 왕릉 속의 단지에 계란이 들어 있었던 것은 저 세상에 가서 먹으라는 부장(副葬) 식량의 하나이다. 알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 때문에 종교적인 의미에서 부장 식량으로 넣었던 것이라 해석된다. 고분의 닭 뼈는 죽은 자가 저 세상에 가서 먹도록 닭을 잡아 요리해서 넣은, 산 자들의 정성스런 공물(供物)이었을 것이다. 신라인들은 닭을 좋아했고 닭고기나 알을 종교적 뜻에서 장의예용(葬儀禮用)으로 죽은 자에게 올린 것으로 믿어진다.”2
계림의 나라인 신라에서만 부장품으로 달걀을 사용했을까? 물론 아니다. 이는 백제는 물론 고구려까지 공유했던 보편적 의례 중 하나이다. 『고려사지』를 보면, 연말에 집안에 있는 잡귀를 몰아내고 정결하게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축귀행사로 ‘나례’(儺禮)라는 의례를 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로 궁중에서 열었던 행사인데, 닭 다섯 마리를 잡아서 제물로 썼다. 여기서 닭을 사용한 이유도 불문가지, 모두 재생의 염원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하효길이 보고한 전북 위도의 풍속에서도 같은 맥락을 찾을 수 있다. 초분(草墳, 사람이 죽었을 때 바로 매장하지 않고 3-5년 정도 짚을 덮어 탈골시키는 제도)을 지낸 후에 죽은 이의 자손(아들, 며느리)이 이유 없이 병 들거나 정신 이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중복(重復)에 걸렸다고 하며, 이를 치료하는 굿을 ‘중복풀이’라 한다. 제물을 차리고 닭을 초분 위에 묶어 놓은 후에 법사(法師, 불교식 무의례를 집행하는 사람)나 당골(전라도 지역의 무당)이 닭이 울 때까지 계속 경을 읽는다. 만약 닭이 울지 않으면 밤새도록 계속한다. 심지어는 닭을 바꾸거나 장소를 집 마당으로 옮기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닭은 새벽이 되면 울게 되므로 이를 신호로 중복풀이를 마치게 된다.3
여기서의 닭의 울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심청전>의 심청이 마지막 밤을 닭 소리에 은유했듯이, 죽은 자의 원한이 풀리고 온전히 저승으로 가는 기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마치 밤과도 같은 원혼의 시간이 지나고 새벽, 해원풀이 된 광명의 시간으로 이행하는 시작이라는 뜻이다. 특히 ‘중복풀이’라는 이름에서 ‘복’이라는 글자가 다시 돌아온다는 뜻이라는 점, 이승과 저승을 교직한다는 뜻이 의미심장하다. 어둠과 광명, 이승과 저승, 안과 밖 등 이전과 이후의 기점을 구분하는 닭 울음소리에 대한 비유는 각종 의례, 민요, 속담, 설화 등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저승으로 가는 배, 상여의 꼭두닭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기점에 상례와 상여가 있다. 한국의 전통문화에서는 소위 요단강을 건너가는 저승의 길에 상여와 닭은 어떤 관념으로 자리잡고 있을까? 지난 연재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베와 넋당삭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죽음의 강을 건너가는 배라는 의미였다. 여기에서는 ‘꼭두닭’을 주목한다. 꼭두닭은 상여를 장식하는 꼭두 중에 닭을 새긴 목각품이다. ‘꼭두’는 무엇인가? ‘허깨비’를 말하기도 하고 정수리나 꼭대기를 말하기도 하며 혹은 남사당패(유랑연희패)의 우두머리를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일생생활에서 아주 이른 새벽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는 ‘꼭두새벽’이라는 단어의 용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뾰족하게 세워서 만든 어떤 형용일 텐데, 이것이 꼭두머리 등의 용례처럼 어떤 일의 맨 처음이라는 뜻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상여의 꼭두 중에서 닭이 지니는 의미를 보다 심도 있게 추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망자가 피안으로 향해 가는 길을 안내하는 중국의 인로계(引路鷄)가 우리의 꼭두닭과 같다. 김성순의 논의를 빌린다. “왜 상장례에 닭을 사용한 것일까? 닭이 가지고 있는 벽사(辟邪,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침)와 피악(避惡, 악한 것을 피함)의 기능 때문일 것이다. 춘추시대 이후로 악한 기운을 피하는 제사에서 일반적으로 닭을 사용하였다. 한시대(漢代)의 묘지 안에 부장된 목계(木鷄, 나무로 만든 닭)나 계명침(鷄鳴枕, 닭 모양의 베개)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장례에 닭을 사용하는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4 김성순은 이를 ‘닭=새벽을 알리는 닭의 소리’이미지와 연결하여 망자의 영혼이 피안으로 가는 길을 헤매지 않도록 하는 인로의 기능은 물론 닭 피가 지니고 있는 벽사의 기능을 강조하였다.
중국 곡부(曲阜) 지역의 사례가 있다. 망자의 머리에 역삼각형의 계침침(鷄枕枕)이라 부르는 베개를 받쳐 두는데 통상 4구의 가사가 적혀 있다. “망자의 머리에 닭 한 마리 있네 / 울 줄만 알지 날 줄 모른다네 / 망자가 길을 잃으려 하면 / 꼬끼오 울어서 헤매지 않게 하네.” 김성순은 『중국민속통지: 喪葬志』(산동교육출판사, 2005)를 인용 비교하며 꼭두닭은 주작이나 봉황과 함께 상여를 장식하며 망자를 보호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결론짓는다.5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닭의 울음과 달걀이라는 명료한 모티브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예컨대 불교의 가릉빈가(迦陵頻伽, Kalavinka)나 힌두교의 가루다(Garuda)처럼 저승이나 이상세계의 이동과 보호의 의미로 안착된 개념들보다 재생과 거듭남의 욕망이 더 원초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차후 지면을 만들어 부가하겠다.
여전히 주목할 것은 고대로부터 생겨난 닭에 대한 관념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속학자 정형호의 <심청전> 해석을 인용한다. 심청이가 눈먼 아버지를 위해 남경장사 상인들에게 팔려가기 전날 밤 뜬눈으로 날을 새다가 새벽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노래하는 장면이다. 다음 연재에 인용할 부분이지만 간략하게 언급해둔다. “이윽고 닭이 우니 심청이가 기가 막혀, 닭아 닭아 우지마라 반야진관에 몽상군이 아니로다.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내가 죽는다. 죽기야 슬프지 아니하나 의지 없는 우리 부친 어이 잊고 가잔 말고.” 여기서 아침 닭의 울음은 무엇인가? 심청이가 떠나는 날의 새벽닭 울음소리는 죽음과 재생이 엇갈리는 교차점에 위치한다는 것. 현실의 고통을 벗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며 보다 긴 생명력을 지속시키는 전환의 울림이라고 해석한다.6 아침 닭이 우는 것은 심청의 죽음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눈뜸과 이후 진행되는 심황후로 재생하는 연꽃 부활을 역설적으로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필자 또한 지속적으로 <심청전>을 피카레스크식 구성 방식을 취한 재생 모티브의 재현으로 읽어낸 바 있다. 이 액자 방식에는 눈먼 봉사가 눈을 뜨는 스토리와 심청이가 죽었다 재생하는 스토리가 매우 교묘하게 편집되어 있다.
닭은 아침을 선물하는 영물이다. 닭이 울지 않으면 아침이 오지 않는다. 아침 해가 뜨지 않으면 시작도 없다. 어제저녁 죽은 해가 오늘 다시 뜨니 재생이다. 갱생이고 거듭남이다. 개인의 삶과 죽음, 심지어 나라의 시작과 종말, 세계의 시작과 종말에 연루되어 있다. 고대의 무덤 부장품으로부터 현대의 혼인 및 상례 등 갖가지 의례와 문학적 수사(修辭)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관념 중 하나이다. 기독교가 부활절에 달걀을 사용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통적인 기제사나 차례 제사 등에 반드시 달걀을 놓아야 한다는 풍속도 이와 관련하여 해석할 수 있다.
의미가 확장되고 재구성되어 종교적・문화적으로 여러 개념을 포괄하게 되었지만, 알을 낳는 닭이 지닌 생산의 의미, 울음을 통해 아침을 여는 시작의 의미는 인류 보편의 원초적 관념이다. 기독교적으로 풀어 말하면 이는 거듭남과 부활의 은유, 아니 직유이다. 닭과 달걀의 비유가 모든 문명권 및 문화권에 존재했고 지금도 관념되는 중이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주검과 혼령을 운반하는 상여에 꼭두닭을 장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달걀을 낳고 아침을 여는, 그래서 망자가 새로운 세상에서 거듭나고 재생하고 부활하라는 뜻이다.


1 임동권, “닭의 민속의 비교”, 「중앙민속학」 2권(1990): 78.
2 임동권, 위의 글, 79.
3 하효길 외, 『위도의 민속』: 葬制 篇(국립민속박물관, 1985), 31-32.
4 김성순, “한중 민간장례습속에서 ‘닭’의 역할과 의미-인로계와 꼭두닭을 중심으로”, 『중국인문학회 학술대회발표논문집』(2016), 252.
5 김성순, “한중 민간장례습속에 나타나는 망혼의 안내자들-인로계와 꼭두닭을 중심으로”, 「중국인문과학」 65호(2017): 459-469.
6 정형호, “닭띠의 민속과 상징”, 「중앙민속학」 6권(1994): 285.



이윤선 | 민속예술을 전공하였다. 『남도민속음악의 세계』 등의 저서가 있다. 남도민속학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3월호(통권 7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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