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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문화와 신학] 나의 박사 논문을 말한다
문화·신학·목회 (2020년 1월호)

 

  다석, ‘없이 계신’ 임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노래하다
  

본문

 

이차희, “多夕 류영모의 한글시에 나타난 신과 자아의 관계적 역동”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8.



필자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다석 유영모의 한글시에 나타난 신과 자아의 역동적 관계를 추적하였다. 이러한 주제를 선정하게 된 것은 우선 다석에 관한 기존의 연구가 다석의 작품 자체가 가진 문헌적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다석이 기록한 글은 그가 성서를 통하여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얼마나 깊게 고민하였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대부분의 다석 연구자들은 신학자들로, 다석의 작품 자체를 번역하는 일에는 비교적 소홀하였다. 그들은 서구 자유주의 신학의 전통을 기반으로 작품을 해석하였으며, 이러한 해석에는 연구자들의 선입견이 반영되었다. 또한 종교다원주의의 한국적 모델로 다석 연구가 제시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제도 있었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다석의 한글시 일부를 번역하고, 그것들이 전달하려는 의미를 있는 그대로 분석하고자 하였다.
서론에서는 연구의 목적을 기록하고 다석에 관한 기존 연구와 그에 대한 이해를 정리하였다. 본론에서는 다석에 대한 선입견을 배제하고자 구조적으로 다석의 작품을 해석하였다. 또한 다석의 작품을 오늘날의 독자가 읽을 수 있도록 새롭게 번역한 후 해석하였다. 결론 부분에서는 분석을 통해서 알게 된 다석의 사상을 정리하였다.
특별히 구조적 분석을 통해 알게 된 다석의 자아 이해가 가진 역동성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다석에게 자아는 신과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다. 둘째, 다석의 한글시에는 서구 신학의 주제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특별히 다석의 사상은 종교다원주의적이라기보다는 기독교 신앙의 유일성을 전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셋째, 다석의 한글시는 신학적 성찰보다는 자아에 대한 종교심리학적 성찰의 기록이다.

연구 방법론과 목적
다석의 글은 시이기 때문에 시적 분석의 틀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서 다양한 분석 방법 중에 본 연구는 이상훈의 ‘탈근대 구조적 다석 시 이해’1를 그 표본으로 삼았다. 이상훈은 다석 시를 의미소 중심으로, 시 안에 반복되는 단어들이 어떠한 정보를 강조하는지 살폈다. 그의 이러한 작업은 지금까지 다석의 작품을 지나치게 종교적인 교리 혹은 근대 이념을 기반으로 이해하려는 선입견을 교정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는 다석의 글의 장르와 그 구조적 특성을 우선적으로 살펴야 함을 강조했다. 다석의 글이 시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상훈은 종교학자로서 시의 분석적 방법론이라는 틀만을 고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주의했다. 특히 그는 유영모의 한글시 분석의 예를 제시하며 다석의 작품을 구조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이상훈의 방법론을 수용하여 다수의 작품에 탈근대적 구조적 시 분석을 적용해보았다. 본 연구의 방법론은 이상훈이 제시한 다석 시 분석의 동기와 목적을 수용하고 발전시킨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다석의 한글시 중 일부를 선택적으로 분석하여, 다석 사상의 종교적 심연을 독자들에게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구조 분석은 시대의 힘의 논리를 밝혀내는 이념적인 논쟁에 몰두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석이라는 이름이 지워진 상태에서 다석의 글을 빈 마음으로, 즉 개념적인 배경을 뒤로하고 접근하는 시도가 된다. 이를 위해, 기존의 통시적으로 구성된 의미론의 영역 대신, 텍스트 자체가 발화하는 공시적인 의미를 중심으로 한다. 이때 다석의 글은 분석이 아니라, 감상의 대상이 된다.2

논문에서 다석의 한글시를 분석할 때 ‘다석의 한글시 원문 → 김홍호의 번역 → 필자의 번역 → 풀이’의 순서를 적용하였다. 김흥호는 다석 아래에서 오랫동안 공부한 다석의 제자이며, 최초로 『다석일지』를 완역했다. 그러므로 김흥호의 해석을 중요 자료로 살피고 참고하되, 기존 해석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현대의 독자와 연구자들에게 보다 가독성 있게 소개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었다.

표본적 본문 소개
논문에서는 다석의 한글시 중 17편을 분석하였다. 그중 하나를 위에서 언급한 순서에 따라 소개한다. 다석은 1956년 4월 26일 『다석일지』에 첫 번째 시 <하루 때문>을 기록하였다.

1) 다석의 한글시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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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흥호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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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번역에서 알 수 있듯, 김흥호는 다석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려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장 및 연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울러 축약된 형태의 단어인 ‘한’과 ‘은’에 대해서도 작품 자체만 보고는 독자가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필자는 정경적 방법을 시도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정경적 방법이란 이 작품의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새롭게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3) 필자의 다석 한글 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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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목은 <하루>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김흥호는 <하루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다석의 원문에는 제목이 없다. 정경적 해석은 텍스트 안에서 제목을 구성한다. 김홍호가 시 제목에 ‘때문’을 첨가한 것은 시 안에 ‘하루 때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흥호는 자신이 왜 제목을 <하루때문>이라고 규정하였는지 설명하지 않았지만, 정경적인 입장에서 전체적인 내용을 볼 때 이 글은 ‘하루’라는 날을 기독교적으로 성찰한 기도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대한 풀이는 문장 분석의 예시에서 자세히 소개하기로 한다.
다석의 한글시를 재구성하면서 분석을 위해 삽입한 사선(/) 기호는 행의 이분법을 뜻한다. 이는 평행법을 이중 구조로 이해한 쿠겔(James L. Kugel)의 이론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쿠겔에 의하면 모든 복잡한 시의 행들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나누어진 두 부분 중 선행 부분은 후행 부분에서 다양한 형태로 의미가 강조되거나 새롭게 해석되는 특성이 있다. 물론 각 행이 반드시 두 개의 정보 구조로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이중, 혹은 삼중 이상으로 동일한 정보의 정도를 달리하거나 다양한 시적 기법으로 반복되어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다석의 한글시에 자아와 비자아의 연동성을 파악하는 입장에서 모든 문장을 이중 구조 이상으로 구분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3
또한 이중 사선(//)은 한 행의 마침을 뜻한다. 다석의 원문에 나타난 연과 행의 구분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각 행을 구분했다. 그러나 행 안에서 의미 단위의 구분은 다양한 양태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양태는 필자가 선택적으로 채택한 정보에 따른다. 문법과 어휘에 근간을 두기보다는 그 말이 사용된 맥락에 초점을 두는 화용론(話用論)에서 의미의 최소 단위는 문장이다. 그러나 시는 다양한 문장 요소를 생략한다. 그러므로 생략된 문장을 문맥에 따라 개연성 있는 문장으로 복원하고자 하였다.4 문장의 복원은 다석 한글 시가 생략한 일부 정보를 화용론의 측면에서 분석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4) 풀이
김흥호에 따르면, 다석이 최초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 날은 1956년 4월 26일, 즉 김교신이 사망한 지 11년이 되는 날이었다. 김교신은 그가 사망하던 해인 1945년에 함흥의 비료 공장에서 한국인 근로자를 감독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발진성 장티푸스에 걸려 4월 25일에 급사했다. 물론 유영모의 일기에는 자신이 왜 일기를 쓰기 시작하였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개인적인 자리 혹은 공개적인 석상에서 유영모가 자신이 일기를 쓰게 된 동기를 김흥호에게 설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김흥호는 이 한글시에 담긴 함축적인 의도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어제를 사는 것도 아니고 오늘을 사는 것도 아니고 내일을 사는 것도 아니다. 하루를 산다. 하루를 산다는 말은 통째로 산단 말이요, 하늘을 산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산다. 하나님과 같이 산다. 하루를 불사르고 산다. 나를 불사르고 산다. 나 없이 산다. 불이 꺼지고 빛으로 산다. 그것이 하루 때문이다. 하나님 때문에 사는 것이다. 은혜로 사는 것이다.

필자는 다석의 한글시를 번역하고 해석할 때 김흥호의 번역과 풀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였다. 사실 김흥호의 풀이가 없었다면, 다석의 난해한 시를 오늘날의 독자에게 낯설지 않게 재구성하는 작업은 거의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필자는 김흥호의 번역을 참조하되,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문학적 구조로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문학적 구조’란 일반적인 문학의 양식을 뜻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일반적인 문학 양식은 저자와 텍스트, 그리고 외적인 역사적 배경과의 관계를 재구성해내는 작업의 산물이다. 반면 이 논문에서의 문학적 구조는 정보를 나르는 텍스트 내적인 단어, 구절, 그리고 문장이 정보의 측면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재구성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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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의 원문에 있는 ‘한’은 하나님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1년 동안 죽음을 두고 기도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은’은 은혜로 번역해볼 수 있다. 이 시를 간단하게 축약하면, ‘한은요한12:27’이 된다. 번역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요한복음 12장 27절’이 된다.
다석의 한글 글쓰기는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석의 글은 독자와 청자에게 고도로 발휘된 축약과 일종의 도형적 시각성을 전달하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강렬한 한두 단어에 전체적인 내용을 함축시켜 시어의 효과를 강조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위의 한글시를 정확하게 축약하여 설명하자면 ‘하나님은 요한12:27이다’가 된다. 말씀과 하나님을 매개하는 ‘은혜’는 한국어 조사 ‘은’으로 치환될 수 있다. 그리고 다석이 하나님을 ‘한,’ 은혜를 ‘은’으로 축약한 것을 볼 때, 다석이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것은 요한복음 12장 27절의 내용임이 분명해진다.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요 12:27, 개역한글)
이 구절은 예수가 자신의 죽음을 두고 한 기도의 일부이다. 여기서 ‘이 때’는 바로 십자가에서 죽는 때를 뜻한다. 이 시를 통해 다석은 죽음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죽음의 때를 사모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은혜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한글시에서 연의 구분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을 구분해본다면 ‘은혜로’를 전후로 나눌 수 있다. 앞 연의 내용을 반복하면서, 동시에 축약한 표현이 ‘은혜’로 이어지는 후행 정보 구조이기 때문이다.
‘일 년’이라는 부분은 ‘긴지도 모르지만’이란 형태로 부연되어 설명된다. 그러나 ‘모르지만’은 1년에 대한 수사학적 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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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성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조되는 배경으로 두 번째 행은 ‘이승’으로 시작한다. 두 번째 행을 정형적인 문장으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이승에서는 꽤 일 년이 길어 보이네!” 주어 ‘일 년’은 ‘이승’이라는 처격과 ‘꽤’라는 수량 부사가 강조되면서 뒤로 밀려나 있다. 그리고 ‘보이네’는 수동태의 의미를 지닌다. 결국 보이는 ‘일 년’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두 번째 행은 그렇게 길게 보이게 한 배경에 대한 정보에 집중하고 있다. 세 번째 행은 또 다시 하나의 단어로 구성된다. ‘하루 때문’은 앞에 선행 정보에 대한 배경적 지식이 된다. ‘일 년’이 길게 느껴진 이유는 ‘하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부사구로 강조된다. 이어지는 문장은 그 ‘하루’에 대한 설명인지 ‘일 년’에 대한 설명인지 명확하지 않다.
이제 의미소 분석을 통해 아래와 같은 교차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여전히 ‘하루 때문’이라는 초점이 드러난다. 이는 기존의 화제에 새로운 정보를 부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일 년’과 ‘하루’는 서로 매개적으로 역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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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루’에 대한 출처는 시의 마지막 구절 ‘요한 12:27’로 드러난다. 이는 수묵화에 찍힌 화가의 낙관과 같은 효과를 불러온다. 결국 이 글은 ‘요한복음 12장 27절’에 대한 시적 번역이다.
원문에서 성서 구절은 지시적으로 시각화되어 표현되었다. 이를 통해 시인은 이 시의 실제 주어가 자신이 아니라, 요한복음에 나오는 기도의 주인 되신 예수임을 인정한 것이다. 시인은 마지막으로 자아를 역동시켜야 하는 시인 자신을 지워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신의 믿음의 대상인 예수를 새로운 자아로 탄생시킨다.

시 분석을 통해서 본 다석
다석의 한글시 중 17편을 선택하여 화용론적인 기술로 관찰한 이 논문의 내용을 토대로 다석의 전체 사상을 논하거나 규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 논문에서 다룬 다석의 한글시에서 종교다원주의나 종교 간 회통사상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다석의 시들은 다석이 자기 신앙의 정체성에 대해 얼마나 철저히 고민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뿐이었다.
다석은 서구의 개념적이고 도그마적인 삼위일체 신학이 말하는 신에 대한 설명과 개념 대신, 애정과 연모의 대상이자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을 ‘님’으로 받아들인다. 그 존재는 단순히 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석이라는 존재의 내면과 외면의 모든 세계도 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 의미를 새롭게 하도록 만든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다석에게 자아는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석의 글에서 자아는 시공 안에 제한되지만, 동시에 시공은 자아 안에서만 의미를 지닌다.
또한 기독교 진리의 상징인 말씀도 다석에게는 일종의 매개적 개념일 뿐이다. 말씀을 통해서 다석의 자아는 초월적 신과 연결된다. 이 연결은 인격적인 특성이 있다. 다석은 자아를 강화하기 위하여 님으로 인격화된 신을 왜곡하지 않는다. 다석에게 신은 서구적인 개념이기보다는 인격적이며 관계적이고 초월적인 대상으로 의인화된 ‘님’이다.
전체적으로 다석은 자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비우고 부재시키며 새롭게 표현한다. 다석은 철저히 ‘님’의 대상성을 목표로 하는 기점인 ‘자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였다고 볼 수 없다.
이런 차원에서 향후 다석의 작품 연구는 서구 신학의 틀이자 불변하는 상수로서의 신(神) 개념에 대한 한국적인 해석을 요청한다고 볼 수 있다. 다석은 근대 이후 한국에서 토착화된 기독교와는 다른 길을 걸었던 인물이다. 당시 공동체적 집단 정체성이 강요된 문명으로서의 기독교는 다석에게 고려의 대상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어떠한 작품에도 서구 신학적인 절대성과 궁극성에 대한 고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석의 종교적 성찰은 개별적인 자신의 삶의 자리였다.
이러한 차원에서 다석의 종교성찰은, 장석만이 지적한 대로 다석이 살았던 개항기에 서구 종교의 소개가 강요적이고 집단적인 문명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과는 대조된다.6 더 나아가서 다석은 신과 인간에 관한 절대적 이해와 해석을 추구하지 않았다. 다석에게 신과 인간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는 궁극적 의미가 없었다. 올슨(Carl Olson)에 의하면, 궁극적인 것을 전제한 종교학적 질문은 신학적인 유산에 불과하며, 그 대표적인 예가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의 종교학의 방법론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엘리아데는 서구 신학이 몰입한 신, 믿음, 그리고 낙원에 대한 이해의 역사적 보편성을 추구한 학자였다.7 이와 유사하게 피트제럴드(Timothy Pitzerald)는 종교학적 담론이 절대적 신과 그 신에 연관된 구원의 가능성을 논하는 것은 결국 서구 자유주의 신학의 모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8 이러한 측면에서 다석은 서구 신학이나 종교학적 범주에서 벗어난 인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다석의 종교신학적 통찰은 종교의 정체성 및 종교 간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청한다. 다석의 논지에 따르면, 종교다원주의와 종교 간의 대화는 결국 근대의 신학 담론이 품고 있는 절대적 가치와 신에 대한 ‘인간의 향수’에 불과하다. 다석은 이러한 절대적 가치를 이해하고자 하지도 않았고, 믿고자 하는 태도도 없었다. 다석에게 자아의 유한성과 구별되어 존재하는 서구 신학의 ‘절대’ 개념인 신은 없었다. 절대라는 종교적 상징이 인간에게 믿음을 요구한다면, 다석은 불완전한 자아에 기초한 신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을 노래하였다. 여기서 다석은 이해의 대상으로 자아의 유한성을 품는 절대적인 신의 무한한 사랑을 갈망했다. 그에게 있어 믿음의 시발점은 자아가 아니라, 신의 은총이다. 다석에게 신은 이러한 자아가 파생시킨 또 다른 자아에 불과하다. 다석에게 신은 궁극적 대상이 아니었다. 그에게 신은 자아가 추구해야 하는 수도자적 삶의 이정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다석은 신에 대한 선입견을 배제하는 사고를 한 침착한 수도자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1 이상훈, 『포스트모던에서 신학하기: 해석학적 시론』(한국학중앙연구원, 2017), 208-228.
2 이상훈, 위의 책, 212. 이상훈의 분석은 일종의 화용론적 양태를 지닌다. 이상훈은 실제로 자신의 연구 방법이 구체적으로 화용론임을 독자에게 상기시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상훈의 분석은 하나의 선택적 시험으로 대중적 읽기와 소개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훈의 이해는 선행된 어떠한 것보다 객관적이고 진지하였다. 다석의 글 자체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다석의 일차 자료에 대한 번역과 소개에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3 James L. Kugel, The Idea of Biblical Poetry: Parallelism and Its History(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1), 1-58.
4 시적 정서상 생략된 문장의 요소를 행간에서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겔러(Stephan Geller)의 입장을 적용하여 복원하였다. Stephan Geller, Parallelism in Early Biblical Poetry(Chicago: Scholars, 1981), 5-29. 겔러가 말한 재구성(reconstruction)은 생략된 문장의 주요 형태소를 평행법의 순차적인 흐름 가운데 복원하는 것을 말한다.
5 이후로 이 글에서 (-A)는 B안에 포함된 개념으로 간주하여 ‘B(-A)’는 ‘B’로만 표기한다. 좁은 의미의 행과 의미소는 단어가 될 수 있고, 보다 넓은 의미는 구와 문장이며, 심지어 단락과 텍스트도 하나의 화제와 초점을 명시하는 의미소로 구분될 수 있다.
6 장석만, “개항기 한국사회의 ‘종교’ 개념 형성에 관한 연구”(서울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92), 85-86.
7 Carl Olson, “Theology of Nostalgia: Reflection on the Theological Aspects of Eliade’s Work”, Numen 36(1989): 98-112.
8 Pitzerald, The Ideology of Religious Studies(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3-118.



이차희 | 캐롤신학대학원(Carroll Theological Institute)에서 구약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공부하였다. 연구 논문으로 “미군정 정치 역동에 대한 이해”, “[부르신 지 38年 만에] 믿음에 들어간 이의 노래” 등이 있다. 현재 (사)사회문화정책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2019년 1월호(통권 7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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