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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문화와 신학] 나의 박사 논문을 말한다
문화·신학·목회 (2019년 12월호)

 

  틈과 목회상담
  

본문

 

김영란, “틈의 한국적 목회상담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기독교학과 박사학위 논문, 2019



필자의 논문은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할 무렵에 초보 목회상담가로서 만난 한 중년 여성으로부터 비롯하였다. 그 여성은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한 후 생활고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게다가 게임중독에 빠져 대화도 거부하는 아들로 인하여 육체적・정신적 절망감을 안은 채 교회 부설 상담소를 찾아왔다. 매번 만남을 이어갈 때마다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은 반복되었고, 초보 상담가인 필자는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 자신에게 실망하였다. 그녀를 만나는 것이 점점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인은 상담을 하던 중 창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하였고,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상담의 국면을 바꾸어놓았다. 필자는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줄곧 이 상담 상황의 변화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을 순수 한국어인 ‘틈’에서 찾게 되었다. 틈이 논문의 주제어로 떠오른 때부터 모든 영역의 학문에서 말하는 틈의 속성을 찾는 것이 논문을 위한 선행연구의 시작이 되었다.
여기서 틈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바람을 들어오게 한 창문의 ‘틈’이다. 이 틈은 막힌 것을 해체하고, 밖과 안을 이어주며, 바람이 들어오도록 하고, 영이 운행하도록 해준다. 다른 하나는 비움의 영역으로서의 틈이다. 이 때의 틈은 목회상담가라는 역할이 주는 정체성과 잘못된 편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웠을 때 생기는 영역이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로운 관계를 설명해주는 페리코레시스1의 상호 내주와 상호 침투를 가능하게 하는 개방성과 비움의 영역이다.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틈에 대한 상담 분야의 자료가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정글에 숨어 있는 작은 어떤 것을 찾는 듯한 기분으로 자료들을 찾아 헤맸다. 그래도 다행히 자끄 데리다(J. Derrida)의 해체철학에서 해체와 빈 공간(혹은 사이)이 틈의 속성을 말해주었고, 정신분석의 논문들에서 ‘crunch’(심리 치료 중에 발생하는 위기 상황), ‘crimp’(부정적 영향), ‘knot’(심리적으로 얽힘), ‘쥐구멍’(incidental crack)과 같은 단어들이 단초를 제공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선행연구의 과정을 통해 틈이라는 단어가 목회상담적 용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단어가 가진 성격이 이러하기 때문이다.
첫째, 틈은 다의적이며 역동적인 심리적 용어이다. 틈은 해체와 연결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틈이 벌어졌다’와 같이 부정적인 역동의 의미와 함께 ‘틈이 필요하다’와 같은 긍정의 의미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틈은 어떤 틀에 갇혀 있지 않고 역동적이다.
둘째, 틈은 관계적이며 상담적인 용어이다. 정신분석학자인 대니얼 스턴(D. Stern)은 분석의 과정을 ‘충돌-실수-회복-변형’(hit-miss-repair-elaborate)의 연속이라고 하였다. 틈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이러한 과정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부딪힘과 실수에 의한 균열과 해체의 의미, 그리고 회복을 위한 연결과 소통의 의미, 마지막으로 변형이 발생하는 공간과 영역의 의미를 담고 있다.
셋째, 틈은 영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돌담 사이의 틈에서 자라나는 작은 들풀은 우리에게 환대, 소통, 생명, 창조의 신비를 말해준다. 서로가 조금씩 내어준 작은 공간과 그곳에서 자란 들풀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상호침투와 상호내주의 신비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틈은 한국 사상 혹은 동양 사상에서 비움, 여백, 공(空)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생명의 생성과 순환과 팽창의 자리이고, 여백의 무한한 상상, 자기-성찰의 영역이며, 초월의 삼자성의 영역이다.
이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틈의 한국적 목회상담 연구”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논문의 논지는, 틈은 한국인의 무의식에 있는 관계적이며 영적이며 치유적인 삼자성(thirdness)의 현상이자 영역이며, 또한 서렌더(surrender)의 영역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틈은 반만 년 치유와 영성의 역사를 통해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형성된 심리적 자원이라는 것이다. 이 논문에 등장하는 다소 생소한 개념인 ‘삼자성’과 ‘서렌더’는 한국 목회상담에 이미 내재되어 있으나, 아직 다루어진 바 없는 관계적 관점의 정신분석적 개념인데, 논문 내용의 두 축을 이루는 개념이므로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삼자성은 최근 정신분석의 한 지류인 관계적 정신분석학자들과 관계적 관점의 목회상담 분야의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정신분석학자 루이스 아론(L. Aron)의 정의를 따르면, 삼자성이란 두 사람의 상호관계에서 발생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초월하는 것이며, 자기-반추, 정신화 과정, 변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2
제시카 벤자민(J. Benjamin)은 삼자성을 심리적 공간의 어떤 것과 상호작용하는 상호주관적 관계성의 경험 혹은 성질(quality)로 보았다.3
여기서 말하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은 정신분석적 용어로서 일반적으로 임상 현장에서 분석가와 환자의 주관적인 경험 사이에 일어나는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말한다. 상호주관적인 관계에서 삼자성이 발현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둘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상호주관적인 관계는 상호보충적(complementarity) 관계와 반대의 의미를 갖는다. 글 첫머리에 언급한 내담자와의 상담 내용으로 상호주관적인 관계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문제를 갖고 있으며, 도움을 받아야 하는 중년 여성의 주도하에 창문을 열게 되었고, 그 창문의 틈을 통해서 들어온 바람으로 두 사람의 머리가 한결 가벼워지게 되었다. 내담자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으며, 그 순간 필자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상담자로서의 권위와 부담감을 내려놓게 되었다. 두 참여자는 평등한 위치에서 서로 상호작용하게 되었다. 그 결과, 상담자는 내담자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었고, 내담자는 자신의 존재감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상호보충적 관계는 상담자와 내담자가 행위자(doer)와 행위-수동자(done to), 혹은 도움을 주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와 같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뜻한다. 매우 이상적인 것 같지만, 일방적인 관계이므로 평등하지 않다. 이런 관계에서 상담자는 자신의 취약성을 감추게 되고, 내담자는 주체성을 잃게 될 수 있다.
그 중년 여인과의 상담 중에 눈으로 볼 수 있는 창문의 틈만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영역의 틈까지 벌어진 것이다. 이 틈은 두 사람의 취약성, 다름, 긴장감에 의해 발생한다. 이 틈으로 두 참여자의 투사물, 무의식적 혼합물들이 오가게 된다. 상호보충적인 관계에서는 이런 투사물에 대한 인식 없이, 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상호주관적인 관계에서는 양방향적 성격으로 인해 틈은 상호 교류와 소통의 통로가 된다. 그리고 상담자가 권위를 내려놓고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할 때, 그 틈의 영역은 삼자성의 영역이 되어, 변형과 상호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상담자의 서렌더는 삼자성의 역량을 촉진한다.
서렌더는 영어 단어 ‘surrender’(포기하다)를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것이며, 엠마누엘 겐트(E. Ghent)에 의해 정신분석의 한 개념으로 본격적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겐트는 서렌더를 ‘방어벽을 내려놓음’, ‘자신을 비움’의 의미로 사용한다. 그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서렌더함으로써 상대가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된다고 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각 주체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서렌더해주기를 갈망한다고 하였다.4 서렌더는 자신의 주관성, 혹은 주체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복종과는 다르다. 서렌더는 케노시스(비움)의 상담적 버전이며, 선불교에서 말하는 ‘방하착(放下著)하라’(내려놓으라, 집착을 쉬라)와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의 연구 방법은 임상 경험에 바탕을 둔 학제 간 문헌연구이다. 필자는 철학 중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정신분석 중에서는 관계적 정신분석, 신학에서는 삼위일체, 그리고 동양 철학을 통해 틈의 속성을 이해하였으며, 각 분야에서 말하는 틈의 공통적 속성으로 삼자성과 서렌더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이 논문은 “1장-서론”을 시작으로, “2장-틈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이해”, “3장-틈의 정신분석적 이해”, “4장-틈의 삼위일체론적 이해”라는 소제목으로 논의를 전개하였으며, 이러한 틈의 다양한 이해를 바탕으로 5장에서는 한국적 틈의 목회상담의 구성에 관하여 논술하였다.
2장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권에 있었던 자끄 데리다의 차연(différance)과, 들뢰즈(G. Deleuze)와 가타리(F. Guattari)의 리좀(rhizom), 그리고 호미 바바(Homi K. Bhabha)의 틈새(in-between)와 같은 개념들인 상담적 틈의 개념과 제3의 영역이라는 속성을 공유한다고 보았다. 데리다의 ‘차연’이라는 개념은 절대성과 동일성을 부정하고 모든 판단과 평가를 무효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리좀’의 특성은 연결성, 이질성, 다양성이다. 리좀 안에 있는 어떤 지점이라도 다른 어떤 지점과 연결될 수 있으며, 끝없이 상호 연관된 차이의 세상을 제시한다. 차연과 리좀은 다의적이고, 어떤 것에 귀속하기를 그치고, 절대성과 중심주의를 거부한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상담의 상황에서 틈은 차연과 리좀의 영역이다. 내담자는 말을 하고 상담자는 듣는다. 그러는 동안 두 주체의 차이는 긴장을 야기하고 틈을 만든다. 그러나 차연의 세계에서는 그 틈에서 차이를 대립으로 보지 않고, 상대방에 의한 영향을 인정하고, 그 영향으로 인한 변화를 기다리고 결정을 연기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해석은 지연된다. 상대방의 영향으로 인하여, 차연 혹은 틈의 자리는 역동적이고 동태적이 된다. 이처럼 차연과 틈의 영역에는 리좀과 같이 서로 이질적인 것들이 얽혀있으며, 하나의 정태적이며 중심적인 개념은 없다. 긴장과 해체의 공간은 중재, 연결, 변화의 역동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 또한 상담의 공간은 호미 바바의 제3의 공간과 같이 상담자와 내담자의 이질성이 동거하는 잡종성의 공간이 된다. 중심이 없으며 대립도 없다. 상담자와 내담자는 그 공간에서 동등한 주체성을 갖고 상호작용을 한다. 이러한 상호주관적인 관계에서 상담의 영역은 삼자성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3장의 정신분석적 틈의 이해는 앞서 설명한 관계적 정신분석에 속하는 상호주관성과 삼자성과 서렌더에 관한 고찰로 이루어졌다. 초기 고전적 정신분석에서는 분석가와 피분석가 사이에 발생하는 전이(과거 타인과의 관계가 분석 치료 중에 분석가를 향한 정서적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를 신경증적 전이로 이해했던 만큼 병적인 것으로 해석했으나, 차츰 현재로 오면서 분석가와의 관계에서 그 전이를 다루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에 더 힘이 실리게 되었다. 관계적 정신분석에서는 그 전이가 치료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분석가와의 새로운 관계 경험도 피할 수 없다고 여기게 하였다. 분석가가 새로운 경험의 대상이 되므로, 분석가와 피분석가가 매 회기에서 서로 주고받는 의식적・무의식적 상호작용이 중요하고, 분석가의 무의식적 전이 내지는 역전이도 분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었다. 분석 중에 발생하는 긴장과 분석가의 취약성으로 인하여 틈이 발생하지만, 부정적이고 해체적 틈의 영역이 분석가의 서렌더로 인하여 연결과 소통의 삼자적 영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상담적 틈이란 다른 주체성을 가진 상담자와 내담자가 상호관계를 하면서 불가피하게 느끼게 되는 긴장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무의식적인 벌어짐의 현상이나 심리적 영역이라고 정의하였다. 그 틈은 불편한 느낌, 실수, 전이 등으로 의식될 수 있다. 그 틈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은 불편하지만, 갈등을 해소하고, 핵심감정에 직면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 된다. 상호주관적 관계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의 관점과 개인성을 잃지 않고 상호관계를 한다. 그렇게 되면, 틈의 영역은 두 개인성이 그냥 부딪치는 그 이상의 뭔가를 창조하게 된다. 그리고 틈이 삼자적 영역이 되는 순간, 상담은 변형과 창조의 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4장에서는 삼위일체의 신비에서 틈과 상호주관성과 삼자성과 서렌더의 개념을 이해하였다. 삼위일체의 하나이면서 셋인 신비를 삼위 하나님이 상호주관적으로 관계하면서 동시에 하나됨으로 존재한다는 것과 페리코레시스로 설명하였다.
본 논문의 틈의 목회상담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삼위일체 삶에 참여할 수 있다. 첫째, 페리코레시스의 상호내주와 상호침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간을 서로에게 내어주는 케노시스에 의해서 가능한 것인데, 이 케노시스를 상담에서는 서렌더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하나이면서 셋인 삼위일체의 신비를 상담자와 내담자가 서로의 다름과 독특성을 상호인식하면서, 또한 공감의 통한 하나됨을 상호인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즉, 자유와 연대감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이다. 셋째, 페리코레시스의 역동적인 상호침투를 삼자성의 영역에서의 놀이와 댄스로 이해한다.
5장에서는 앞서 고찰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차연과 리좀의 틈, 정신분석의 삼자성과 서렌더의 틈, 페리코레시스의 틈, 그리고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틈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적인 틈의 목회상담의 이론적 구성을 시도하였다. 한국적인 틈의 삼자성에 대한 이해를 김지하를 비롯한 국문학자들의 생명과 생성, 그리고 숨통과 연결의 틈에서 찾아보았으며, 그 외에도 여백과 공, 비움에서도 찾아낼 수가 있었다. 공의 틈은 비움과 부정성의 영역이며, 집착을 버리는 영역이며, 여백의 틈은 실(實)과 양(陽)의 발산을 수용하는 음(陰)과 허(虛)의 영역이며, 가능성의 영역이며 다(多)의 영역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틈은 투사와 해결되지 않은 심리적 혼합물인 애응지물(碍膺之物)로 채워질 수도 있지만, 상호주관적인 관계에서는 삼자성의 생성과 성찰의 영역이 되며, 탈집착과 비움의 서렌더의 영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틈의 목회상담을 초기-틈의 발생, 중기-해체와 연결과 소통의 틈, 후기-놀이 공간으로써의 틈,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누었다.
본 논문의 내용은 여기까지이다. 필자는 논문심사를 받으며, 논문을 쓰는 과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유사하다고 심사위원 교수님들께 말한 바 있다. 논문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조증 환자처럼 밤을 새워 글을 쓸 때도 있었다. 지금 제본이 되어 나온 논문을 보면, 롤러코스터에서는 내려왔으나,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 논문이 틈이라는 상담적 자원을 한국인의 무의식에서 발굴했다는 점, 그리고 상담 중의 균열과 해체의 틈의 순간을 창조와 변형의 삼자성의 순간으로 본 점이 목회상담 분야에 기여한 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본 논문이 제시한 ‘틈의 목회상담’이라는 모델은 아직 이론적, 실천적인 면에서 부족한 점들이 많으며, 상담적 틈이라는 용어의 정의도 듣는 모든 이가 고개를 끄덕일 만큼 명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논문이 의미가 있는 것은 필자가 좋아하는 학자들이 있고, 필자의 신학과 상담관이 들어 있으며, 필자의 경험이 녹아 있는 삶의 일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1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는 고대 카파도기아 교부인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Gregory of Nazianzus)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며, 삼위일체론의 상호내주 및 상호침투를 의미한다. 위르겐 몰트만은 페리코레시스를 쉼과 포용의 의미로 상호내주를 설명하였고, 역동과 변형이라는 의미로 상호침투를 설명한다. 그리고 한 본질에 세 위격을 가능하게 하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페리코레시스로 설명하였다.
2 L. Aron, “Analytic impass and the third: Clinical implication of intersubjectivity theory”, Int. J. Psychoanal 87(2005): 349, 355.
3 Jessica Benjamin, “Beyond doer and Done to: An intersubjective view of Thirdness”, Psychoanalytic Quarterly 73(2004): 7.
4 Emmanuel Ghent, “Masochism, submission, surrender.” Contem. Psycoanal Vol. 26(1990): 122.



김영란 |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에서 목회상담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목회상담센터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논문으로 “목회상담자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모색: 상호주관성을 중심으로”(「목회와 상담」 26호)가 있다.

 
 
 

2019년 12월호(통권 7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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