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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문화와 신학] 문익환 목사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을 기록하다 07
문화·신학·목회 (2019년 12월호)

 

  통쾌한 역설의 유희 - <비무장지대>
  

본문

 

합창곡이나 예술가곡의 가사로 시(詩)를 사용할 때는 대개 원시의 구성과 음수율을 그대로 갖다 쓴다. 기껏 몇 개의 낱말이나 문장을 반복, 강조하면서 음악이 운신할 폭을 넓히는 정도의 가공일 뿐이다.
구성이 간결한 ‘노래’의 노랫말로 시를 사용할 때는 어김없이 많은 변형이 가해진다. 음악적 고려 없이 쓰여진 시의 구성과 음수율을 충실하게 따르다 보면 노래의 간결한 맛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 불가피한 이유를 이 연재글 어딘가에서 꼼꼼하게 쓴 적이 있다.1
문익환 목사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에 수록한 늦봄의 시 <비무장지대>는 변형의 정도가 너무 심해서 ‘원시를 음악의 틀에 맞추어 류형선이 편사함’, 이렇게 기록해 놨어야 할 것을 그냥 ‘문익환 작시’로 기록했다. 실은 전곡을 작곡하고, 많은 곡을 편곡하고, 음반 프로듀서 역할까지 도맡은 탓에 내 이름이 음반 재킷에 너무 많이 보이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워 그리했다.
<비무장지대>는 제법 널리 불리는 노래인지라 혹여 이 노래를 아는 이들이 내가 편사한 노랫말로 늦봄의 시를 기억하게 될까 봐, 이 지면에 원시와 비교해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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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는 남북 분쟁의 상흔이 압축되어 있는 공간이지만 완충지대라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어서, 역설적으로 삼라만상이 무한히 평화를 누리는 공간이다. 하늘과 땅과 풀과 나무가 누리는 그 평화를 남과 북 군인들이 신명나게 유희하는 상상, 분쟁의 상징적 공간인 비무장지대를 전쟁의 수행자인 남북의 군인들이 한반도 전역으로 확장시켜버리는, 그야말로 통쾌한 역설로 쓰여진 시이다.
늦봄이 ‘삶으로 이미 다 쓴 시를 토해내듯 써낸 시’2 <비무장지대>의 절창(絕唱)이 그려낸 남북 군인들의 역설적 유희와 동행할 내 음악적 선택은 ‘민요’였다.

| 민요는 그 나라 음악의 젖줄
‘민요는 그 나라 음악의 젖줄’이라는 명제로 민요에 대한 나의 인식은 명쾌한 가닥을 잡고 있다. 그것은 흡사 출산한 어미 개의 젖꼭지를 물고 빠는 한배 강아지 여럿의 모습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어미 개의 젖꼭지는 여럿이 있다. 여러 강아지가 어디를 빨아도 똑같은 젖이 나온다. 서로 다른 젖꼭지가 다른 젖줄이 아니라, 하나의 젖줄이 여러 젖꼭지로 분출될 뿐이다.
가령 기악 독주곡 산조, 1인 음악극 판소리, 실내악 합주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줄풍류(현악 영산회상), 민간 사당패로 전승된 잡가, 궁중제례악 <종묘제례악>, 궁중 연례악 <수제천> 등 예술적 가치의 정점을 이루는 한국 전통음악의 갈래는 여럿 있지만, 그 모든 예술음악이 배를 불리기 위해 입에 물고 빤 각각의 젖꼭지는 민요라는 하나의 젖줄에서 비롯된 자양분이다.
분단 이후 75년을 남한은 ‘국악’이라는 명패로, 북한은 ‘민족음악’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다른 가치를 앞세워 그에 적합한 방식으로 우리의 전통음악을 승계해왔다. 남한은 북한의 민족음악을 러시아와 중국의 형태에 양식적으로 투항한 사상의 보위물이라 비난했고, 북한은 남한의 국악을 기득권에 영합한 복고주의의 배태물로 경멸하면서 이데올로기의 간극에 준하는 대립을 내내 지속했다. 분단을 구성하는 모든 게 그러하듯, 남과 북의 전통음악은 분단의 시간이 높은 밀도로 압축된 상흔이다. 그 결과 음악의 결은 많이 달라졌다. 악기도, 연주법도, 발성도, 미학과 감수성도 현저하게 달라졌다.

빼앗긴 고을이 무너진 것은 아니리라. 고을들은 왕의 것도 아니고 나라의 것도 아니어서 뉘 땅이 된들 고을은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고을은 무너지지 않는다. - 김훈, 『현의 노래』

민요는 고을의 노래이다. 국가의 것도, 왕의 것도 아니고, 이데올로기의 것은 더더욱 아니다. 국가와 이념과 권력은 일시적이고, 고을은 항구적이다. 풀처럼 눕기도 하고, 바위처럼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기도 하며, 겨울이 되면 마치 사라진 것처럼 산속 어딘가에 숨어들어 꼼짝도 않고 있다가, 봄이면 다시 살아난 것처럼 어김없이 기어 나오기를 거듭하는 산짐승들의 검불 숲처럼, 고을은 폐기할 수도, 무너질 수도, 사라질 수도 없는 것이어서 고을이다.
그 고을이 감당해야만 했던 희노애락의 허다한 사연들이 밤의 별이나 낮의 구름처럼 저절로 생겨나서 고을과 동행해온 것이 민요이다. 한 곡의 민요 속에는 그 민요 속에 용해되어 있는 허다한 사연과 시간의 무게가 깃들어 있다.
그러니 늦봄의 시에 담긴, 비무장지대에 모인 남북 군인들의 유쾌·상쾌·통쾌한 역설의 놀이는 민요로 응답하는 게 마땅했다. 민요라는 본래 하나의 젖줄로 허약한 둘을 다시 먹여야 했다.

| 민요는 기억되지 못하는 운명들의 기억
역사는 지독한 근시안(近視眼)이다. 산꼭대기에 올라 산 밑을 내려다보는 방식으로, 크고 우람하고 굵직한 것만 기억한다. 큰 건물은 기억하지만, 그 건물 속에서 9시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헉헉거리며 사는 사람들이 역사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큰 도로가 역사의 눈에 당연히 포착될 테지만, 그 도로를 지나는 버스 속 차창에 기대어 새벽 깜빡 잠을 청하는 막내딸의 곤고함과 늦은 막차의 고단함에 퀭한 눈을 부비는 아버지의 표정을 역사가 알 턱이 없다. 그래서 역사는 지독한 근시안이다. 그렇다면 기억되지 못하는 운명으로 살아가는 그 가여운 이들의 허다한 사연을 누가 기억해줄까?
아무도 없다. 기억되지 못하는 운명으로 그저 살아갈 뿐이다.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 엄중한 실존의 명제를 뛰어넘는 가치와 철학과 신념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할 것처럼, 그들은 이 지상에 머무는 시간을 기어이 살아낼 뿐이다.
기억되지 못하는 운명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스스로 선택한 기록 방식은 민요였다. 민요로 울고, 민요로 웃고, 민요로 한탄하고, 민요로 유희했다. 울고 웃고 한탄하고 유희하는 도구일 뿐이지, 민요를 누가 만들고 누가 불렀는지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민요의 작곡가가 누구인지 단 하나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악보도 없고, 누가 불렀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저 산이 언제부터 저기 놓여 있었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어디서 시작된 노래인지 모르지만 그저 웃고 울고 한탄하고 유희하며 일상의 길동무처럼 구비전승(口碑傳承) 되었을 뿐이다.
그러다 제 몫을 다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민요가 이 고을의 역사 속에 얼마나 많았을까? 놀랍게도 그중에 살아남은 노래가 있으니, 정처 없이 그리 떠돌다가 끝내 살아남아 ‘민요’라는 명패로 오늘까지 살아남은 노래가 있으니, 그 견고한 적층의 생명력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작곡가가 누가 있을까.
나는 늦봄의 시 <비무장지대>가 상상한 남북 군인들의 유희와 통렬한 역설 근저에 분단이라는 한정적 압박과 일시적 올무를 기꺼이 훌훌 벗어던질 능력과 자격을 갖춘, 역사가 기억하지 못하는 운명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역사가 가야 할 미래의 좌표를 제시하는 통쾌한 역설을 또한 감지했다. 그래서 늦봄의 시 <비무장지대>는 민요의 어법으로 가락을 입히는 게 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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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을 함께 만든 이들
이 곡은 싱어송라이터 이지상에게 편곡을 맡겼다. 그는 시의 통찰력을 간결한 구성의 노래로 만드는 능력에 있어서 내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작곡가이다. 특히 정호승의 <수선화에게-외로우니까 사람이다>와 안도현의 <철길> 이 두 곡의 시노래는 이지상의 작곡 능력을 유감없이 들여 다 볼 수 있는 절창이고, 두 시인이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내가 직접 편곡을 맡지 않은 것은 그저 <뜨거운 마음> 음반 작업 과정에서 맡겨진 분량의 일이 많은 탓이었지만, 그 덕분에 내가 예견한 나의 편곡 결과보다 훨씬 풍성한 감성이 군더더기 없이 배어나오는 이지상의 편곡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늦봄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청년 시절을 보냈고, <비무장지대>에 담긴 늦봄의 유쾌한 상상 안으로 깊이 침전해 들어가 최적화된 편곡을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 그 지극한 마음이 더없이 고맙다.
‘민요의 대중화·현대화’라는 용어가 익숙한 것으로 널리 회자되기까지, 가장 도드라진 역할을 감당한 이가 김용우이다. 민요라는 젖줄이 바로 이 시대의 음악의 자양분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민요가 과거의 노래가 아니라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동행하는 ‘진행형’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고민이 그가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민요의 현대화·대중화에 내어 맡긴 이유이다.
그의 진가는 민요가 지금도 사람들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할 정당한 이유를 품고 있는 노래라는 확신을 음악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장돌뱅이처럼 떠돌며 온 나라 구석구석에 감추어져 있는 민요 채집을 수행한, 그 간고한 천착 의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 결실을 바탕으로 ‘민요의 현대화’라는 하나의 콘셉트에 집중한 여섯 장의 음반을 10년에 걸쳐 제작했다. 이 나라 소리꾼 중에서 늦봄과의 교집합이 가장 두터운 인생을 살아온 그이기도 하다. 따라서 <비무장지대>의 가수는 마땅히 그의 몫이었다. 덕분에 <비무장지대>는 국악계에서도 널리 불렸고, 그의 데뷔 10주년 콜렉션 음반에도 어김없이 이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타악 신창렬, 해금 김주리, 피리 진성수 등이 <비무장지대> 녹음에 참여한 것은 기껏 스물 중후반의 나이였다. 그들은 지금 이미 마흔 중반을 넘어선, 각 분야의 중견 명인들로 성장해서 종횡무진하고 있다.


1 류형선, “벼락같은 위무-<우리는 호수랍니다>”, 「기독교사상」 730호(대한기독교서회, 2019. 10): 154 이하.
2 류형선, ”아버지의 철조망-<두 하늘 한 하늘>”, 「기독교사상」 723호(대한기독교서회, 2019. 7): 164.



류형선 | 한양대학교 작곡과 및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전문사과정을 졸업했다.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을 역임하였으며, KBS 국악대상(2008) 및 기독문화대상(1995)을 수상하였다. 작곡가로서 4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고, 음반 프로듀서로서 50종의 음반을 제작하였다. 현재 숨엔터테인먼트 예술감독, 정동극장 이사, 국악TV 준비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북시디 『전래자장가 자미잠이』, 음악에세이 『음악에게 차 한 잔을』 등이 있다.

 
 
 

2020년 8월호(통권 7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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