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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문화와 신학] 평양 기독교 역사 11
문화·신학·목회 (2019년 12월호)

 

  1920년대 진화적 창조론과 1930년대 박형룡의 반진화론
  

본문

 

한국교회와 평양신학교는 1920년대까지 오래된 지구론과 점진적 창조론을 수용하고 가르쳤다. 1890년대 소책자나 신문 사설을 보면, 변증의 대상이 유교인이었으므로, 무극태극-음양오행설에 의한 진화론적 물질론을 반박하고, 시계-시계공이나 집-목수 비유로 천지만물을 보고 그것을 지으신 창조주를 알 수 있다는 자연신학과 상식철학적 접근으로 창조를 설명했다. 그러나 1920년대에 서구 과학과 진화론의 강력한 도전을 받자, 교계 언론은 과학과 창세기의 조화를 추구했다. 이런 흐름에서 1935년 『아빙돈 단권 성경주석』이 출판되었는데, 성서 비평학을 수용한 이 주석은 창세기 1-2장이 과학적 정보를 담은 글이 아니라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다시 말해 당시 대두되던 문자적 해석과 창조과학을 거부했다.
한편 축자영감설에 기초한 세대주의는 1910년대 한국에서 『스코필드 주석성서』, 계시록 주해서, 재림론 서적들을 통해 세력을 확대했다. 일부 장로교회와 성결교회,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형제교회 등이 세대주의를 수용하고, 지구의 나이를 6,000년으로 보았다. 반면 프린스턴신학교의 신칼뱅주의나 감리교회의 신학은 세대주의와 안식교의 젊은 지구론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1920년대 말부터 박형룡을 중심으로 장로교회와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근본주의가 자리잡기 시작하고, 1935년 가을에 박형룡 박사의 『기독교 현대 신학 난제 선평』이 출판되면서 축자영감설과 반진화론 노선이 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 1920년대 점진적 창조론
1920년대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의 한 배경은 김익두의 부흥운동과 사회주의자들의 반기독교 운동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은 김익두를 미신적 신앙을 퍼트리는 고등 무당으로 비판하고 그의 부흥 집회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1926년 3월 서울의 차재명 목사는 “과거 몇 년 동안 우리 조선에는 강한 바람과 지진 같은 과격 불경건한 교도가 있어서 예배당을 연극장같이 사용하며, 하나님이 없다 하였으며, 또 불 붙는 것 같은 정욕 즉 연애설이 성행하여 금지할 능력이 없었”다고 정리했다.(“신쟈와 셩신(속)”, 「기독신보」, 1926. 3. 17) 차재명은 1920년대 초반을 과격한 부흥운동, 반기독교운동, 연애와 행음이 성행하는 교회 혼란기로 보았다. 2000년 이후 최근 20년 동안의 한국교회와 유사한 상황이었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결 국면에서 먼저 진화론을 부정하는 글이 「기독신보」에 실렸다. 윤치호는 1924년 1월 2일 “기독교와 세계진보”라는 글에서, 과학만으로는 “해석이 없으면 넉넉하지 못하니” 사실과 형편의 내면을 해석해야 바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고, 과학과 진보 사상의 결과가 제1차 세계대전이었으므로 자신은 진보를 믿지 않으며, 종교만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길선주는 설교문 “성경 만능”(1925. 10. 14)에서 과학이나 법률이나 모든 주의가 실패하지만 오직 성경만이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으로 이 세상을 정복하겠습니까. 정치나 법률이나 무슨 학술이겠습니까. 아니올시다. 개인이나 국가에서 항복을 받아 승리를 얻을 것은 다만 이 성경뿐입니다.”라고 하여 성경을 보수하는 신앙의 능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두 글은 진화론 자체에 대한 논의는 아니었다.
그러나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연합으로 발간하던 「기독신보」는 1920년대 중반 사회주의자들이 진화론을 배척하는 기독교를 미신적, 비과학적인 종교라고 비판할 때, 변증적 사설과 논설을 게재하고, 기독교는 진화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 theory)과 오래된 지구론을 지지하는 과학적 종교라고 변호했다. 성서무오설을 믿으면서도, 창세기
1장과 과학(진화론) 사이에 모순은 없다고 보았다. 장감 연합의 공식 신문의 편집진(사장 로버트 하디, 편집인 조상옥)은 물론 한국 교회의 상당 인사가 창세기 1장의 ‘날’은 반드시 24시간이 아니라 ‘날-시대 이론’(day-age theory)에 따라 장구한 세월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 글에서 몇 개의 기사를 요약하되 당대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원문을 철자법만 바꾸어 인용한다.

1) 양주삼, “금후의 조선예수교회 (4)”, 1925년 12월 30일 자
역사적으로 과학을 배척하는 종교가와 종교를 부인하는 과학자가 상호 갈등해 왔다. 교회가 성경에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과학적 발견을 부정함으로써 과학의 적으로 인식되었고, 그런 교회가 세력을 가지면 사회는 진보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생긴 것은 또한 기독교의 수치이다. 교회는 지구가 둥글다고 한 콜럼버스를 배척했으나, 그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갈릴레오의 지동설도 교회가 강제로 철회하게 만들었으나, 지구의 운행은 사실로 밝혀졌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태양 중심설을 발표하자 루터와 칼뱅까지 반대했다.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고 진화론을 증명하자, 교회는 성경과 위반된다는 이유로 진화론을 배척했다. 그러나 “성경은 신앙을 가르치는 종교서요, 과학에 대한 과학 교과서가 아닌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성경에 없다는 이유로 지구 자전설을 부인한다면 전신, 전화, 기차, 기선, 무선전, 잠수함, 비행기 등이 성경에 없다고 부인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과학이 종교를 돕는 것이 종교가 과학을 돕는 것보다 적지 아니하니, 우리 교회는 과학을 이용하여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사업을 보조케 하자.”
감리교회 양주삼 목사는 다윈의 진화론을 증명된 과학적 발견으로 수용하면서 이를 창세기의 창조론과 조화시키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 목회자나 지식인들은 점진적 창조론을 지지했다.

2) “과학상으로 본 믿음”, 1926년 1월 6일 자
이 글은 개인 기고문이 아닌 신문 편집부의 논설이다. 첫째, 창세기 창조 기사의 모세 저작설은 성립될 수 있으며, 창세기의 창조 설화는 고대 근동의 여러 창조 설화보다 우월하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공부할 때, 혹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낼 때, 메소포타미아와 수리아의 고대 문서에서 창조 설화들을 접하거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모세의 창세기는 그런 “각국의 고대 설화보다 우월한 점이 있는 것과 대체로 말하면 현대 과학상 우주관과도 일치하는 점이 많은 것이니, 그로 인하여 성경이 과학상 일체 모순되는 까닭으로 믿을 수 없다 하던 이론은 온당치 못한 것을 증명하였다.” 둘째, 점진적 진화를 수용하는 오래된 지구 창조론을 지지했다. 창세기 1장의 하루를 한 세대로 해석하면 “세계가 하나님의 지배하에서 현재 모양으로 형성되기까지 장구한 기간을 요하였다.” 곧 “창세기가 하나님의 묵시로 된 줄을 믿는 다수한 기독 신자들은 우주의 창조를 꼭 24시간씩 되는 6일 동안에 마친 것으로 믿지 아니하지만, 그는 6,000년 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다만 과학가의 주장대로 아마 몇 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는 점진적 방식에 의하여 창조된 것을 믿는 것이다.”

3) 신홍식, “반기독교운동에 대한 감상: 대장부가 되자 (3)”, 1926년 4월 7일 자
귀납적 방법론의 과학은 새로운 발명품으로 인류를 유익하게 하지만, 그 발명품이 자연적으로 되었다고 할 수 없듯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자가 없이 자연히 되었다 하는 것은 너무나 편벽된 생각”이다. 기독교인은 현세 행복을 주는 과학을 무시하지 않고 환영하지만, 결국엔 내세 행복이 더 중요하다. 자연 법칙을 따르는 과학자와 하나님의 창조 법칙을 따르는 종교가는 다르다. 신홍식의 이러한 입장은 당대 목회자의 일반적 입장이었을 것이다.

4) 사설 “과학과 종교”, 1926년 4월 21일 자
이 사설은 시편 19편 1절, 40편 5절, 139편 14-16절을 근거로 “지금까지 발명된 진화론으로는 기독교의 근본 정신에 위반되는 것이 없다.”라고 좀 더 과격하게 주장했다. 즉 “종교와 과학 간에 충돌될 것이 없나니, 왜 그런고 하면 종교는 하나님의 경륜하시는 신령적 사실을 해석하고, 과학은 그 하나님의 만드신 우주와 자연을 관찰하고 그 법칙을 발견함에 진력하나니, 우주의 질서가 정연함과 이 세계가 부절히 발달됨을 보면 이 우주가 본래 하나님의 경륜으로 생겼”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양주삼의 입장에 가까운 유신론적 진화적 창조론이었다.

5) 사설 “물질계로 본 신의 존재”, 1926년 4월 28일 자
원자, 전자의 복잡한 세계를 설명하면서 과학적 유신론을 증명하려고 시도했다.

6) 채필근, “교회와 과학: 제3편 기독교회와 과학”, 1926년 9월 1일 자
채필근 목사는 중세 과학자 박해 사례를 언급한 후, 진화론과 유물론의 도전에 대해서 “다윈은 생물계에서 신을 축출했고, 스펜서는 사회에서, 더 과격한 니체는 인류계에서 하나님을 방출했는데, 헤겔에 와서 유물론적 일원 철학을 만들었다.”라고 정리했다. 그는 “성경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입장에서 “어떤 이는 성경은 물리학도 되고 천문학도 되고, 지질학도 되고, 역사도 되고, 참말 물질적으로도 만능인 줄 아는 듯도 싶다. 우리가 성경을 너무 막 돌려 쓰려고 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성경은 어디까지든지 사람의 속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로 여길 것이다. …성경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이나 과학을 성경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다 일종의 편견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사설과 논설들은 당시 사회주의자들이 기독교를 시대에 뒤진 미신으로 비판하던 반기독교 운동과 관련이 있다. 이에 대한 대처로 (1) 변증론으로서 종교와 과학(진화론)에 대한 기사, (2) 조선 민중과 민족의 사회 경제 문제(가난, 산업)에 대한 글, (3) 기독교의 조선화, 즉 조선적 기독교론에 대한 글을 많이 실었다. 이는 최근 반기독교론에 대한 한국 신학계와 교단의 대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1920년대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7)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 학우회, 「新學報」, 1927년 3월호
평양신학교에서도 온건한 유신 진화 창조론을 가르쳤다. 학생들은 다윈의 유물 진화론은 완전 부정했지만, 하나님께서 점진적으로 진화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창세기 1장과 근대과학 이론을 조합하여, 기본 물질(원소, 원자, 전자) 창조 → 무생물 창조 → 생물 창조 → 인간 창조로 나아갔다고 정리했다. 곧 신학생 김무생은 “ㅼㅏ윈의 進化論을 評함”이라는 글에서 “상제께서 만물을 조성하실 시에 일종 진전적으로 나타난다. 아마 처음에 원소와 원자와 전자를 먼저 지으신 것 같다. 그로 우주를 만드시고, 다음은 무생물, 다음은 생물, 다음은 인간의 조상을 창조하셨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만 무형한 중에서 유형물을 만드시고, 최하급에서 점진적으로 고급으로 인생까지 창조하셨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 글에는 하루 24시간의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소한 창세기 1장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는 않았다. 소박한 유신 진화적 창조론, 인도된 유신 진화론 입장으로 보인다.

| 『아빙돈 단권 성경주석』, 1934년
이 책은 1934년 한국 기독교 선교 50주년을 기념하여 신생사(新生社)가 1934년 12월에 인쇄, 발간한 주석서이다. 당시 조선감리회 교육국 총무 유형기 목사가 중심이 되어 기독교계 신학자와 목회자들 52명이 번역에 참여했는데, 대표적으로 감리회의 양주삼, 정경옥, 김창준, 전영택, 변홍규, 배덕영과 장로회의 송창근, 김재준, 채필근, 한경직 등이 작업했다. 책이 나오자 박형룡 등 근본주의자들은 이 주석서가 고등비평을 수용한 자유주의 신신학을 전파하므로 수용할 수 없다고 배척했다. 1935년 9월에 열린 제24회 장로회 총회는 아빙돈 주석이 장로교 교리에 위배되는 점이 많아, 구독을 금지하고, 집필에 참여한 장로교 학자들에게 공개적인 사과를 하도록 결의하였다. 결국 장로회는 이 주석서를 사용하지 않고 고등비평을 배격했다. 이후 1970년대 초까지 보수적인 장로회 교단인 합동과 통합 신학교들은 학문으로서의 신학 곧 성서 고등비평과 유신 진화론을 가르치지 않았다.
『아빙돈 단권 성경주석』은 창세기 서론 마지막 부분(219쪽)에서 성경은 과학서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학자들이 지구의 나이나 지구와 해, 달, 별의 관계 등 천문학이나 동식물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을 얻으려면 최근 과학 서적에 가서 물어야 한다. 창세기 1-2장에서 가치 있는 과학적・역사적인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창세기 저자는 그러한 과학적 지식을 주기 위해서 1-2장을 쓴 것이 아니라, 고상한 종교적 진리를 주기 위해서 쓴 것이다. 그 고상하고 깊이 있는 신학적 운문을 기초로 창조 과학을 만들 수 없다. 1장 주석의 첫 단락은 하나님께서 ‘점진적인 질서’가 있게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진화적 유신 창조론으로, 오래된 지구론을 지지했다.

| 박형룡의 『기독교 현대 신학 난제 선평』(1935)의 반진화론
1935년 가을, 평양신학교 교수 박형룡은 박사논문을 바탕으로 『기독교 현대 신학 난제 선평』을 출간했다. 마포삼열 박사가 서문을 썼다. 자서(自序)에서 박형룡은 사상의 무정부시대에 불과 50년의 역사를 가진 소년과 같은 조선교회에 정통 신학을 고수하기 위해서 술이부작(述而不作)의 태도로 신학 난제들을 연구하여 그 진상을 밝힌다고 썼다. 그에게 ‘술이부작’이란 미국 근본주의자들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한다는 뜻이었으나, 그의 신학이 장기 집권하면서 후학들이 자신의 견해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문구가 되었다.
1930년대의 난제(=문제)들이란 자유주의 신학들로, 그가 비판한 신학은 책 장별 순서대로 보면, “슐라이어막허 신학, 릴츌 신학, 위기신학, 비교 종교신학, 종교심리신학, 사회적 복음신학, 고등비평, 진화론, 마르크스주의 종교론, 반유신제론, 유한신론, 신비주의, 무교회주의” 등이었다. 제10장 진화론에서 박형룡은 1933년까지 미국에서 출판된 글을 참고했는데, 존슨(W. H. Johnson)의 『기독교인은 진화를 믿을 수 있는가』(1926), 젠킨스(F. F. Jenkins)의 “정신적 진화의 문제”(Prin-ceton Theological Review, 1924), 나이트(J. Knight)의 “오늘의 진화론”(Evangelical Quarterly, 1933) 등이었다. 그는 유학 때 쓴 미발표 논문 “Anti-Christian Inferences from Natural Science”도 이용했는데, 진화론에 관한 여러 자료를 읽었음을 알 수 있다. 40년 후에 출판한 1975년 증보재판에서도 추가 자료를 읽고 보충했다. 국내에서 아직까지 박형룡의 진화론을 별다른 토론의 주제로 삼지 않는 현상이 이상하다.
박형룡은 진화론을 무기 진화론, 유기 진화론, 정신 진화론, 기독교 진화론으로 나누어 논의했다. 그는 이 네 가지를 다 부정했으며, 진화론 자체가 확증된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또한 자연과학의 이론인 진화론을 사회진화론이라는 철학으로 발전시킨 것과 신학에서 고등비평을 낳고 무신론까지 진출한 것을 비판했다.
박형룡은 ‘종의 기원’에 대해서, (1) 다윈의 자연 도태설로는 신종이 출현하기 어렵다, (2) 돌연변이설은 진화가 아닌 퇴행이나 변이만 일으킨다, (3) 멘델의 유전 법칙은 진화가 아니라 유전자의 보수적 전달과 유지를 보여준다고 정리했다. 진화의 증거로 제시된 생물분류학, 비교해부학, 태생학, 퇴화기관의 증거, 동물의 지리적 분포, 화석학의 지질연대 측정법은 불충분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노아 홍수 사건은 지각 격변설을 지지한다고 보았다.
‘인류의 기원’ 절에서 박형룡은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유기 진화론을 부정했다. 분명한 해부학적 차이, 공통 선조의 가상 불필요, 단편적 화석의 존재를 이유로 들었다. 에너지 보존 법칙과 엔트로피 증가 법칙에 따르면, 자연과 우주는 그대로 두면 보존되거나 무질서의 방향으로 가지, 진화와 진보의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박형룡은 정신 진화론에 대해, (1) 육체의 기원이 영혼의 기원을 증명하지 못한다, (2) 구조적 진화와 정신적 진화는 병행하지 못한다, (3) 인류와 고등 동물의 차이는 종류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라는 다윈의 주장은 틀렸다고 반박했다. 인간 심리는 언어 발달의 소산이 아니며, 도덕은 공리주의에 기원하지 않고, 정신 능력은 감각에서 인출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박형룡은 무기, 유기, 정신 진화론이 오류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계에서 일어나는 진화론을 강력히 비판했다. 첫째, 존슨 박사의 말처럼, 진화에 하나님이 직접 간섭한다는 유신 진화론도 하나님의 초월성보다는 내재적 신관으로 흘러 범신론으로 빠진다. 둘째, 창세기 기사가 현재 과학적 진화적 방법에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이 없다.(이 점에서 박형룡은 창조과학자는 아니다.) 셋째, 진화론은 타락을 제외시키고, 죄의 문제를 경시하게 만든다. 넷째, 진화론은 종교 진화론과 성장하는 신관을 만든다. 성경은 고대 유일신교가 다신교로 타락한 종교 퇴화론을 지지한다. 다섯째, 이적과 진화론은 일치하지 않는다. 진화론은 이적을 부인한다. 여섯째, 그리스도는 진화의 산물이 아니다. 이러한 박형룡의 반진화론은 해방 이후 총회신학교를 비롯한 예장 합동이나 고신, 대신, 백석, 합신 측 등 보수적인 장로교회에서 견지한 과학관이었다.
현재 한국의 다수 교회에서 창조과학을 가르치는 현상에는 1930년대 한국 장로교회가 박형룡 류의 근본주의를 수용했다는 배경이 있다. 약 90년 전에 정립된 종교와 과학의 관계이기 때문에 당시 과학적 지식에 바탕한 반진화론은 현대 과학과 신학의 발전에 맞게 재정립해야 한다. 더욱이 박형룡이 비판한 창세기 1-2장의 과학적 읽기를 수용하는 창조과학은 1930년대 근본주의적 장로회 신학보다 한 걸음 더 후퇴한 비신학적 이론이므로 그 극복에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최신 과학 지식을 배운다고 해서 신앙이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식이 교만케 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17세기 예수회 선교사들은 중국에 천문학과 수학 등 선진 서양 과학을 소개하면 그와 동반해서 소개하는 서구 기독교도 수용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극소수 지식인을 제외하고 정부나 유교 관리들의 태도는 과학 기술은 수용하고 종교는 배척했다. 중체서용(中體西用)과 동도서기(東道西器)적 태도는 여전히 동아시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과학과 종교는 함께 가지 않는다. 17세기 후반 조선에서도 서양 ‘천문학’에 바탕을 둔 서양 달력인 시헌력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도교적인 ‘점성술’로 해석해놓았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의 1%, 한국(남북한 합하면) 9%, 중국의 6% 정도만 기독교를 수용하고 나머지 절대 다수는 기독교와 현대 과학을 분리한다. 일요일 교회의 예배와 토요일 점집 사주보기와 월요일 직장에서 돈벌기가 따로 노는 현실이므로, 과학적 태도와 신앙적 태도를 어떻게 잘 조화시킬지, IT와 성경을 어떻게 동시에 열린 자세로 수용할지 더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옥성득 | 프린스턴신학교와 보스턴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 역사를 공부하였다. 저서로 『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 The Making of Korean Christianity 등이 있다. 현재 UCLA 인문대 아시아언어문화학과 한국기독교학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9년 12월호(통권 7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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