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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문화와 신학] 문익환 목사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을 기록하다 06
문화·신학·목회 (2019년 11월호)

 

  늦봄 테마를 품고 사는 이유- prologue <오늘 내가 디딘 자국은>
  

본문

 

| 프롤로그
1분 38초의 짧은 노래를 오늘 지면에서 소개한다. 노래 길이가 이처럼 짧은 이유는 독립된 노래로 쓴 것이 아니라 ‘늦봄 문익환 목사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의 프롤로그(prologue)로 연출한 노래여서 그렇다.
프롤로그 <오늘 내가 디딘 자국은>에게 맡겨진 연출 지침은 <뜨거운 마음> 음반 전체를 관통하는 두 개의 주제, 즉 ‘늦봄 기억 테마’와 ‘늦봄 추모 테마’를 충실하게 드러내면서 전체 음악의 얼개를 암시하는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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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 기억 테마와 늦봄 추모 테마는 <뜨거운 마음> 음반의 기조(基調)와도 같은 가락이다. 그 기조는 이후로 이어지는 11곡의 전주, 간주, 후주, 코러스나 반주의 대선율(counter line)로 위 테마들이 자주 출현하여 음악적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구현된다.1
<뜨거운 마음> 음반에 수록된 여러 노래들은 제각각 독립성을 갖는 형형색색의 자유로운 양식을 취하고 있다. 그 모든 노래가 결국 하나의 줄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제의식을, 50분이 넘는 분량의 곡을 써내야 하는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감상하는 사람 모두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장치를 꼭 해두고 싶었다. 그래서 위 두 선율은 <뜨거운 마음> 음반의 기조가락이고 음악적 주제의식이며 압축된 프롤로그이다.
이후로 나는 두 개의 늦봄 테마를 늦봄을 향한 나의 기억과 그리움과 연민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오래오래 가슴에 품고 음악 인생을 살았다. 늦봄과 관계된 다양한 음악작업을 할 때마다 이 두 주제를 활용했다. 특히 CBS가 제작하여 지난 10월 17일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는 늦봄과 늦봄의 아우, 늦봄의 죽마고우들이 주인공인 영화인지라, 음악감독과 작곡가로 참여한 나는 밑천 바닥내는 심정으로, 위 두 개의 늦봄 테마를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기조로 사용했다. 이후로 늦봄 칸타타나 늦봄 음악극을 제작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김없이 위 주제가락을 사용할 것이고,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구상을 해오고 있다.

| 음악으로 주제(theme) 쓰기
크고 긴 작품을 썼다고 해서 괜한 허세를 어깨 근육에 실을 필요는 없다. 크고 길어서 폼은 좀 나겠지만, 규모가 작든 크든 오래오래 이 지상에 머물러 있을 만한 자격을 갖춘 작품을 쓰는 게 작곡가에게는 더 중요하다. 하지만 규모가 크고 긴 작품이기 위해서는 그 규모를 아우를 수 있는 중량감 있는 주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렷하고 인상적이며 ‘잠자리까지 따라오는 흡인력’을 갖춘 주제선율로 기반을 튼튼하게 다져야 이를 지렛대 삼아 긴 호흡의 작품을 설계할 수 있다.
음악이 주제를 강조하는 방식은 ‘반복’이다. 부분적인 선율의 변형을 가미하거나 화성과 조(調, key)를 달리하거나 대위선율을 얹어주거나 악기 구성을 달리하는 방식을 동원하여 부분적인 변화가 수반된 반복을 거듭 또 거듭하는 것이다. 가령 4마디, 혹은 8마디 정도의 길이로 된 짧은 주제로 10분을 훌쩍 넘는 400마디 분량에 이르는 긴 호흡의 작품을 감당하려면, 무수히 반복되어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인상적인 주제여야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선율들이 잡기(雜記)처럼 머릿속을 오가는 일상을 수행하면서 작곡가의 인생이 살아지는 것인데, 그중 하나를 포획해서 주제로 사용하기로 결정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선택되지 않은 나머지를 다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작곡’이라는 단어가 함의하는 결정 범위의 대부분은 곧 주제의 착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제가 안정감 있게 착상되면, 그 뒤는 주제의 탄력을 받아 일필휘지(一筆揮之)의 행복한 작곡노동이 가능하다. 변비에 시달리는 환자처럼 겨우겨우 작품이 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주제의 탄력을 받아 쭉쭉 쓰인 곡이 자연스럽고 결과도 좋다. 그래서 나의 첫 작곡 스승인 장일남 선생은 대학 1학년 1학기 내내 4마디 혹은 8마디 정도의 길이로 싹수가 보이고, 될 성싶고, 매력 있고,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주제 쓰기’ 과제만 내주었다.
영상의 이미지를 주제음악으로 잘 빚는 이가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icone)이다. 이름을 낯설어할 수는 있어도 그의 영화음악 한 곡쯤 들어보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휘파람 소리로 더없이 고즈넉한 <황야의 무법자>, ‘넬라 판타지’라는 별도의 곡목을 가진 가브리엘의 오보에 소리로 음악이 어떻게 영화를 살리는지에 관한 규범을 천명한 <미션>, 엔니오 모리코네의 팬심을 전 세계적으로 작동시킨 <시네마 천국>, 특히 내게 영화음악의 변곡점으로 평가하도록 부추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의 ‘드보라의 테마’를 비롯한 몇 개의 주제선율은 영화음악사에 견고한 흔적을 남겼다.
아! 음악도 이렇게 오묘한 주제를 품을 수 있는 것이구나, 음악의 주제로 포획된 주인공의 이미지가 이렇게 오래 각인될 수 있는 것이구나…. 사람들은 그의 찬란한 음악이 담긴 영화들을 통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주인공은 늦봄이었다. 한 사람을 향한 주제를 음악으로 빚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연민과 연정, 그리움이 한데 뒤엉킨 일상을 질척하게 감당하는 일이다. 늦봄과 더불어 별의별 상상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마치 초상화처럼, 그의 살아 있는 표정을 담고 싶어 주제를 떠올리지만, 어느새 나에 대한 연민을 담는 과정이 되어버린다. 그에 대한 연정을 음악으로 빚는 것이지만 실은 나에 대한 연정의 가락을 빚게 된다. 그에 대한 그리움이 듬뿍 배어 나오게 하려고 작곡을 하지만, 결국 그 그리움 가득한 열망으로 살아가는 나의 순박한 일상에 대한 위안으로 귀결된다.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야 온몸으로 순식간에 번지는 마약 같은 주제가락이 거절이 쉽지 않은 아름다운 유혹으로 빚어지는 결과를 겨우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다 문득, 나는 왜, 굳이, 늦봄을, ‘주제’ 선율로 품고 사는 것일까? 이런 자문으로 속내를 뒤흔들어 보았다.

| <오늘 내가 디딘 자국은>
1989년 3월 24일, 늦봄은 도쿄를 떠나 평양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방북성명서를 공표했다. 곧바로 가는 길이 없어서 베이징을 거쳐 가는 일정이었지만, 곧 평양, 일흔이 넘도록 ‘꿈이 오는 새벽’마다 설렘 가득했던, 곧 평양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더디더디 가야 하는 절박한 이유를 품고 사는 자신이 가엾고 애처롭기도 했을 것이다. 함께 동행한 고마운 곁사람 유원호와 더불어, 둘이서 더 외롭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를 일이다. 이 길의 시작과 끝, 그리고 거절할 방법이 없는 쓴잔을 곧 마주하게 될 당장의 앞날 때문에 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쇄되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앞만 보고 뚜벅뚜벅 가려고, 다 헤아릴 수 없는 헛헛한 다짐을 거듭 또 거듭했을 것이다.
다시 돌아와, 모두가 예측한 그대로 늦봄은 투옥되었다. 아무도 예견하지 않은 이 없었지만, 그래서 더 아팠던 늦봄의 투옥 이후로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그가 평양을 목전에 두고 발표한 성명서의 전문을 받아볼 수 있었다. 그 성명서 안에는 백범이 외롭게 전한 서산대사의 시(詩)2가 늦봄의 것으로 담겨 있었다.

오늘(1989년 3월 24일) 제가 평양을 향하여 도쿄를 떠나면서 생각나는 것은 1948년 4월 김구 선생이 갖은 방해를 뿌리치고 평양으로 떠나실 때 읊은 다음과 같은 시의 한 구절입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오는 벌판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에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함부로 난삽하게 걷지 말지어다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디딘 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니라

민족의 분단을 막고 남북의 동족이 피로 피를 씻는 비극을 막으려고 38도선을 넘으신 김구 선생의 적념은 그러나 이루어지지 못한 채 40년의 세월이 흘러가버렸습니다. 제가 평양에 가려고 서울을 떠나 도쿄에서 베이징 행 비행기를 탑승하여 새삼 통감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40년 동안 비바람이 몰아친 김구 선생의 험한 길을 이제 제 자신이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후략)


성명서에 채워진 글과 군데군데의 여백은 마치 눈발 날리는 벌판처럼 막막했다. 시절은 꽃으로 만개한 봄이었지만, 성명서에는 천지사방이 눈으로 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몇 날 며칠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춥고 외롭고 높고 쓸쓸했다.
나는 지사(志士)의 견고한 출사 의지를 어설프게 칭송하거나 함부로 경외하고픈 생각 따위에 빠져들기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저 유약한 한 인간 늦봄, 거기서 출발해서 거기로 되돌아오고픈 심정으로 성명서가 읽혔다. 그리고 이 곡이 쓰여졌다.

나는 20년의 시간을 더 보내고 이 글을 쓰면서, 백범의 뒷사람을 자임하며 허허롭고 고단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늦봄이 디딘 그 발자국이 지금 어디쯤 찍혀 있는지, 지금 그 누구의 발자국으로 선연(鮮然)한 것인지 무척 궁금하다.

| 늦봄 테마를 품고 사는 이유
젊은 시절에 내 속내를 긁어놓는 가장 큰 궤변은 ‘왜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개입하느냐?’였다. 그 말을 입에 담은 이들 중에 제법 똘망똘망한 이들은 어김없이 성서의 몇 구절을 전거로 들이대면서 어림 한 푼도 되지 않는 논리로 나를 포박했다. 그때마다 나는 ‘당신들은 결국 무관심의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꼿꼿하게 응수하며 살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감정소비를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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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궤변을 게거품 물어가며 곧추세운 이들이 지금은 가장 정치적이다. 정의·평화·생명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적 탄압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지난하고 간고하게 공박하던 그들이 순식간에 바꾸어 탄 정치는 그들 자신의 탐욕을 실현하기 위한 야합과 음모를 정치적 거래로 구현하는 행태로 창궐했다.
‘개독교’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중립의 경계를 탄탄하게 구획했던 이들이 정치적 야합과 음모를 새로운 선택지로 삼으면서 만인으로부터 부여받은 기발하고 최적화된 닉네임이다. 실로 뻔뻔하고 표독스럽고 포악하며 무개념이다. ‘무관심의 정치’는 곧 ‘개독교의 맹아(萌芽)’였다. 정치적 야합과 음모의 행태는 무관심의 정치로 초보적인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었으며, 그 뿌리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맘모니즘(Mammonism)!
내 생애 안에서 교회가 세상을 향한 리더십을 회복할 것이라는 희망을 접고 산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안타깝게도 나의 절망은 조금 다른 각도로 진전되고 있다. 교회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이 희망이 효력을 다한 것은 아닐까? 지금은 그저 교회가 조금 더딘 속도로 무너져가기를, 지금보다 더디 늙어가는 것을 바라는 정도가 그나마 실효성 있는 희망이 아닐까? 그조차 하나님의 넘치는 은총의 결실이 아닐까? 다 기억할 수는 없어도, 언젠가 한국교회 태내에 하나님 보시기에 기특하고 대견한 일들을 해온 누군가가 여럿 있어서 그 대가로 주어진 ‘남은 시간’들을 우리가 보석처럼 나누어 쓰는 것은 아닐까?
상징적으로, 늦봄의 것이 아닌, 군사정권이 늦봄과 사람들을 분리시키기 위해 덧씌워놓은 이미지가 여전히 효력을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만날 때 나는 잠을 설친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백범의 뒷사람을 자임하며 늦봄이 내디딘 발자국이 흔적조차 희미해지기까지, 엄숙한 생존의 압박 속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늦봄의 뒷사람’이어야 마땅한 이들을 만날 때 나는 더욱 절망한다. 우리는 확실히 맘모니즘에게 패배해가고 있다.
늦봄은 왜 평양에 갔을까? 백범이 간 길을, 서산대사가 남겨 둔 시를 허허롭게 읊조리며 왜 그 길을 갔을까?
이 질문을 내 속내 깊이 던질 때마다 나는 곡을 써야 했다. 맘모니즘과 약육강식에서 비롯되어 곁가지를 뻗은 각양각색의 넝쿨더미들이 내 삶과 내가 살아온 시간들의 가치를 도말시켜 버리게 될 앞날을 기필코 저지하기 위해, 내 삶의 자리에서 도망가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작곡을 하는 일이었다. 내가 늦봄을 기억하는 음악적 아이콘으로, 늦봄을 연민하고 애모하는 창구로, 20년 전에 쓴 늦봄 테마를 아직도 품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 뮤지컬 <못다 한 사랑–백범 김구>
이 곡은 백범 김구의 한 생애를 다룬 뮤지컬 <못다 한 사랑–백범 김
구>(대본 고은, 연출 박인배, 작곡 및 음악감독 류형선)에서 초보적인 형태가 만들어졌다.
1999년 12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나흘간 공연한 작품인데, 이 곡이 불리는 장면은 백범이 방북을 앞두고 자신의 심정을 대변한 서산대사의 시를 읊는 설정이었다. 애국지사의 견고하고 흔들림 없는 의지와 눈 덮인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낙락장송 같은 허허로움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 복합적인 감성이 뒤엉켜 있는 아리아로 처음 이 노래가 세상과 조우했다.
정작 이 노랫말을 만난 나의 머릿속은 늦봄으로 가득했다. 늦봄의 평양방문 성명서로 38선을 넘는 1949년의 백범을 겨우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 시가 백범과 늦봄의 접점이었으니, 자연스럽게 나는 내 생애의 기억 속에 선연해 있는 늦봄을 통해 백범의 아리아를 쓴 셈이다.
당시 늦봄의 앞사람 백범 김구의 배역은 가수 김원중이었다. 잔 기교를 부리지 않는 그의 두터운 성음이, 그 중저음이 가진 매력이 최대한 잘 도드라지도록 곡을 썼다. 김원중이 <뜨거운 마음> 음반에 기꺼운 마음으로 참여하면서 이 곡은 프롤로그 형태로, 뮤지컬 <못다 한 사랑-백범 김구>의 아리아보다 한층 담백한 맛매의 가락으로 개작되었다.
곱씹어볼수록, <오늘 내가 디딘 자국은>의 노랫말은 <뜨거운 마음> 음반의 프롤로그로 더없이 적당한 것이었다.


1 ‘늦봄 추모 테마’는 늦봄 장례식 추모가로 쓴 <늦봄 가시는 길목>의 후렴이다. 정작 이 추모가는 여러 가지 연출상의 이유로 이 음반에 담지 못했다.
2 서산대사(1520-1604)의 문집인 『청허집』(淸虛集)에 실려 있지 않고, 200여 년 후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에 실려 있다 하여 그 저자인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있다. 다만 백범이 전한 서산대사의 선시와 임연당의 시는 두 글자가 다르다.



류형선 | 한양대학교 작곡과 및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전문사과정을 졸업했다.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을 역임하였으며, KBS 국악대상(2008) 및 기독문화대상(1995)을 수상하였다. 작곡가로서 4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고, 음반 프로듀서로서 50종의 음반을 제작하였다. 현재 숨엔터테인먼트 예술감독, 정동극장 이사, 국악TV 준비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북시디 『전래자장가 자미잠이』, 음악에세이 『음악에게 차 한 잔을』 등이 있다.

 
 
 

2019년 11월호(통권 7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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