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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문화와 신학] 한글 성서의 번역 보급과 한글 문명의 대전환
문화·신학·목회 (2019년 4월호)

 

  로스가 번역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 그리고 이수정의 마가복음
  

본문

 

| 개신교 최초의 한글 성서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

존 로스는 개신교 최초로 누가복음을 한글로 번역하여 출판하였습니다. 로스 번역 팀의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1882) 출판은 당시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우리 언문을 멸시하고 천하게 여기던 상황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순 한글로 성서를 번역함으로써 이후의 성서 번역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한글 문명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1882년 6월 6일 로스가 라이트 박사에게 쓴 편지에는, 출판된 누가복음이 자신과 매킨타이어의 공동 번역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그해 9월 21일에 아딩턴이 라이트 박사에게 쓴 편지에는 1882년 3월 24일에 로스가 아딩턴에게 쓴 편지를 인용한 부분이 있는데, 그 대목에서도 “누가복음은 실제로 내 동료인 존 매킨타이어 목사의 번역본으로, 그는 내가 [안식년으로] 본국에 있을 때 많은 시간과 주의를 기울여 번역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눈여겨볼 대목은 1982년 10월 9일 로스가 라이트 박사에게 보낸 편지에 담긴 구절입니다.

출판된 누가복음은 매킨타이어 번역본의 수정본이라고 미리 말씀드린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가 원하는 대로 그것은 완전히 서북 방언으로 인쇄되었습니다.1


“그(매킨타이어)가 원하는 대로 그것(누가복음)은”이라는 말은 서북 출신 사람들에게 말을 배웠기 때문에 서북방언으로 출간한 것이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을 배려해서 의도적으로 서북방언으로 성서를 번역 출간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요한복음을 서울말 판과 서북방언 판으로 동시에 출간합니다. 로스는 이후 계속해서 서울말과 서북방언 두 가지로 성서를 출판하겠다고 했으나, 그 뒤로는 모두 서울말로 표기를 바꾸어서 출간합니다. 로스가 밝힌 번역 방법은 (1) 한국 학자들이 고전 한문 번역 중국어 성서와 구어체 중국어 역본을 한글로 번역 → (2) 로스와 한국인 번역자가 그리스어 개역본과 영어 개역본을 비교하면서 단어와 구절 하나하나를 대조하며 수정 → (3) 수정된 원고를 한국인 필사자가 정서 → (4) 그리스어 색인 사전으로 점검하여 한 그리스어 단어가 최대한 비슷한 의미의 한국어 단어로 번역되었는지 확인 → (5) 한국어 번역문 여러 구절을 중국어로 다시 번역하여 번역을 점검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2

오래 전에 말씀드린 것으로 압니다만, 한글 철자는 발음대로 표기하며 영어 철자처럼 지방마다 다릅니다. 제가 접촉한 거의 모든 한국인은 평안도 서북 지방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서울과 매우 다르게 발음하고 따라서 그 철자도 다릅니다. 상당히 오래 전에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서울 철자법에 가깝게 하고 싶다고 편지를 올렸습니다.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애스턴이 주로 지적하고 수정을 요구하는 비평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서울에서 출간된 모든 학교 교과서처럼 서울 철자가 보편적으로 이해된다면, 저는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서울에서조차 그리고 한 책 안에서도 종종 철자가 다릅니다. 예를 들면, 샤 음절은 사, 시, 수 등으로도 표기됩니다. 한국을 위해 이 모든 다양한 형태의 철자를 조화시키겠다는 야심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 판단으로는 과거처럼 미래에도 최선의 형태를 선택하여 일관되게 사용하는 것이 적어도 더 나은 표기가 될 것입니다.3


로스의 글에서 “최선의 형태를 선택하여 일관되게 사용”한다는 말은 표기의 기준이 없던 당시로서는 중요한 표기 원칙이 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천명과는 달리 실제로는 약간의 혼동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1882년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서북방언 판) 눅 10:1-6
1그 후에 쥬○  칠습인을 셔워 둘식 보여 자긔 가고자 하넌  모둔 고을과 모둔 에 닐으게 며 2닐너 갈으되 거둘 거슨 만으되 싹군이 젹으니 맛당이 뇽쥬게 구여 싹군을 보여 그 거두넌데 나아가게 리니 가라 3 너의를 보넌 거시 양의 기 일이 물이에 들어가넌 것 갓트니 4젼과 혹 자루과 혹 신을 가지디 말며 길예셔 사람으게 문안티 말고 5들어가넌  집에 민져 말되 이 집이 평안라 여라 6만약 거긔 평안넌 사람이 이스면 너의 평안이 데게 뉴고 안인즉 너의게 돌아갈디니

1883년 『예수셩교셩셔 누가복음 뎨자젹』(서울말 판) 눅 10:1-6
1그 후에 ○쥬 칠습인을 셔워 둘식 보여 저의 가고져 하  모든 고을과 모든 에 가게 하며 2갈오 거둘 거슨 만코 싹군이 젹으니 뇽쥬게 구여 싹군을 보여 힘써 거두게 하리니 가라 3 너의를 보 거시 양의 기가 일이 물이예 들어가 것 갓타니라 4젼과 혹 자로과 혹 신을 가지지 말며 길예셔 사람으로 더부러 인사치 말고 5사의 집에 들어가 갈오 이 집이 편안하라 하여라 6만약 편안하 사람이 이사면 너의 빈 바 편안이 님하고 글어치 안은즉 너의게로 돌아오나니라

1887년 『예수셩교젼셔』 눅 10:1-6
1그 후에 쥬 칠십인 셔워 둘식 보여 저의 가고져 하 바 모단 고을과 모단 에 가게 며 2갈오샤 거둘 거슨 만코 싹군이 젹으니 뇽쥬게 구여 싹군 보여 거두게 리니 가라 3 너희 보 거시 양의 기가 일이 물이에 들어가 것 갓타니라 4젼과 혹 자과 혹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셔 사으로 더부러 인사치 말고 5사의 집에 들어가 갈오 이 집이 편안라 여라 6만약 편안미 맛당 사이 이면 너희 편안이 님고 글어치 안은즉 너희게로 돌아오나니라


위에서 인용한 세 본문 모두 원본에는 띄어쓰기가 없었고, 높임법을 나타내는 곳에서만 한 칸 띄어서 썼습니다. 위 인용의 띄어쓰기는 이 글의 독자를 위해서 필자가 넣은 것이며 ‘○’표는 원본에서 한 칸 띄어서 높인 곳을 나타낸 것입니다. 1882년 판에서는 ‘쥬’ 다음에 한 칸을 띄었고(뒤띄어쓰기높임법), 1883년 판에서는 그 앞에 한 칸을 띄었습니다(앞띄어쓰기높임법). 그리고 ‘갈으되’(1882)에서 ‘갈오ㆍ디’(1883)로 바뀐 것은 철자법의 변화이지만, ‘갈오샤ㆍ디’(1887)는 존비법의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이하 82, 83, 87 등으로 줄여서 표기)
10장 4절 “젼ㆍ디과 혹 자루과 혹 신을 가지디 말며”(82)에서 사용된 연결어미를 보면, 모음으로 끝난 말 다음에 ‘-과’를 사용한 것은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결과가 표현의 오류로 나타난 경우이며, 한국어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만 13절에서는 “투로와 시돈에셔”라 하여 모음으로 끝난 말 다음에 ‘-와’로 올바르게 쓴 경우도 보입니다.
1882년의 서북방언 판과 1883년의 서울말 판에서 보이는 표기법의 차이는 구개음화와 모음 표기의 차이입니다. 구개음화의 경우, 실제 표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서 번역을 돕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다수 서북 지역 출신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의 입말이 일차적으로 표기의 기본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성서 번역을 실제로 담당하던 매킨타이어가 당시에 참고한 『중용언해』와 같은 경전 언해서들도 구개음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표기였습니다. 1882년 판의 ‘가지디’, ‘문안티’ 등의 표기가 서울말로 수정된 1883년 판에서는 ‘가지지’, ‘인사치’와 같이 구개음화가 이루어진 표기로 바뀌어 있습니다.
10장 1절에서 보듯, ‘모둔(82) → 모든(83) → 모단(87)’과 같이 철자법의 수정에 해당하는 모음의 변화가 있습니다. 어떤 표기가 표준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더 정확한 또는 더 나은 표기를 모색한 흔적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절 ‘보ㆍ니넌’(82)과 ‘보ㆍ니’(83, 87)의 차이는, 서북방언판(82)에서
‘–넌’으로 표기했던 것을, 서울말판(83)에서 ‘–’으로 수정한 것인데, 1883년 판에는 ‘공급하난, 베푸난’과 같이 ‘–난’도 가끔 함께 혼용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듯넌 쟈는(82) → 듯난 쟈(83) → 듯 쟈(87)’과 같이 ‘넌 → 난 → ’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1882년 판에서는 ‘하넌, ㆍㅎ며, 평안ㆍㅎ넌’과 같이 주로 ‘ㆍㅎ다’를 쓰면서도 가끔 ‘하다’가 혼용된 양상을 보이는데, 1883년 판에서는 ‘하, 편안하’과 같이 모두 ‘하다’로 표기하였고, 관형형 어미는 ‘–넌’에서 ‘–’으로 바뀝니다. 1882년 판에서 ‘사람’으로 통일성 있게 쓰던 말이
1883년 판에서는 ‘사람’과 ‘사’으로 혼용되더니 1887년 판에서는 ‘사’으로 적고 있습니다.4 모음 표기에서는 특히 아래아 표기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로스는 1882년 9월 21일 서신에서 1882년 판 요한복음은 서북방언으로 발행되었고, 1883년 판 요한복음은 서울말로 발행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1882년 9월 25일 “다이어가 라이트에게”(Dyer to Wright)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로스의 편지문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서울 출신의 한 젊은 한국인 학자를 데리고 있는데, 그는 최근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번역을 서울말로 바꾸고 있습
니다. 나는 앞으로 모든 일에 그를 사용하려고 합니다.5


로스의 번역에는 서북방언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지만, 정작 로스 자신은 서울말로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고서 번역을 완성하였습니다.

나는 항상 모든 번역이 서울말로 인쇄되는 것이 더 좋다고 믿어 왔습니다. 서울말은 한국 전역에서 이해되고 저속성이나 지방성의 낙인이 따라다닐 수 없습니다. 나는 지금 사복음서를 모두 서울말로 번역했으며, 나머지 신약전서도 같은 말로 번역할 것입니다.


로스가 목표로 삼은 한국어 문체는 ‘한국 전역에서 이해되는 서울말’이었으며 소수 식자층이 아니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였습니다. 그런데도 로스와 매킨타이어가 나중에 서울에서 활동하며 새롭게 성서를 번역할 때에도 계속해서 논란이 된 부분은 서북방언으로 번역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로스는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1882)와 『예수셩교요안ㆍ니복음』(1882) 이후에 출판된 성서들은 서울말 수정을 거쳤다고 했습니다. 그는 서울 출신의 교정자를 시켜서 철자법을 수정했습니다. 그렇지만 끝내 바꾸지 않은 말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아버지’를 뜻하는 ‘아반이’가 그러한 말입니다.
1887년판 『예수셩교젼셔』를 살펴보면, 82년판부터 사용되던 ‘아밤, 아바님, 아바니’를 계속해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눅 10:21, 마 5:16, 막 8:38, 눅 2:48-49, 눅 23:46 등) 요한복음 12장 26-27절을 보면 ‘아밤’과 ‘아반이’의 사용이 어떻게 구분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26사이 만약 나 셤기면 아밤이 쟝차 놉피리라… 27이제  마암이 울울여 이 에 닐으러니… 28아반이 일홈 영화케 소셔 니

여기서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께서 그냥 말씀을 하실 때는 ‘아밤’이라 하고, 하나님을 직접 부를 때는 ‘아반이’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함경북도에서는 할아버지를 ‘아반이’로 표현하는데, 『예수셩교젼셔』에서 예수가 하나님을 직접 부를 때에만 ‘아반이’를 쓴 것은 이 단어에 높임의 뜻을 담은 용법으로 이해됩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반 [명사][방언] ‘아버지’의 방언(평안).
아바니 [명사][방언] ‘아버지’의 방언(평안).
아바니 [명사][방언] ‘할아버지’의 방언(함북).

가랴댜(갈라디아서)에서는 ‘아반이’를 특별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너희 아달이 된즉 하나님이 그 아달의 령을 너희 마암에 보ㆍ니여 부르되 압바라 ㆍㅎ니 곳 아반이라.”(갈 4:6) 여기서는 ‘압바’와 ‘아반이’(=아바니)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이곳의 ‘압바’는 그리스어 Ἀββᾶ의 음역입니다.)
아래 인용에서 ‘오맘’(82)은 서북방언을 사용한 것이고, ‘어맘’(83)은 서울말을 사용한 것입니다.

『예수셩교셩셔 요안복음』(1882, 서북방언판)
1처음에 도가 이스되 도가 ○하느님과 함게 하니 도는 곳 하느님이라 2이 도
가 처음에 ○하느님과 함게  3만물이 말무야 다 지여스니 지은 는
나토 말무디 안코 지으미 업넌이라 4도에 명이 이스니 이 명이 사람에 빗치 되야 5빗치 어두운데 빗치우되 어두운데는 아디 못하더라 (요 1:1-5)

1삼일 만에 가니의 가나에 혼연이 이스 ○예수 오맘이 참예고 2○예
수 데자로 더부러 한 쳥하물 보고 3돗게 나아가니 술이 다엿 ○예
수의 오맘이 닐너 갈으되 데의 술이 업다 니 4예수 갈으되 부인은 나과 무슌 샹관이요  가 닐으디 못엿너이다 니 5그 오맘이 죵더러 갈으되 데 너의게 말 바를 라 더라 6거긔 석항 여으시 이스니 유 사람의 정결한 법인데 각각 한 말 가량 드넌디라 (요 2:1-5)

『예수셩교셩셔 요안복음』(1883)
1처음에 도가 이스되 도가 ○하나님과 함긔 하니 도난 곳 하나님이라 2이 도가 처음에 ○하나님과 함긔 하 3만물이 말여 다 지여스니 지은 바 하나토 말지 안코 지으미 업나니라 4도에 명이 이스니 이 명이 사람의 빗치 되여 5빗치 어두온 빗치우되 어두온난 아지 못하다라 (요 1:1-5)

1삼일 만에 가리의 가나에 혼연이 이스 ○예수 어맘이 참예고
2○예수 데자로 더부러 한 쳥하물 보고 3돗게 나아가니 술이 다엿 ○예수의 어맘이 갈오 뎌의 술이 업다 니 4예수 갈오 부인은 나과 무삼 샹관이요  가 닐으지 못엿나이다 니 5그 어맘이 죵더러 갈오 뎌 너의게 말 바를 라 다라 6거긔 석항 여삿시 이사니 유 사람의 정한 법인데 각각 한 말 가량 드지라 (요 2:1-6, 두 본문 모두 띄어쓰기 필자, ○표는 앞띄어쓰기높임법으로 원 본문에서 한 칸 띄어서 쓴 곳)


구개음화의 변화로 ‘드넌디라’가 ‘드지라’로 바뀐 것이 보이지만, 지시어 ‘데’와 ‘뎌’처럼 모음의 변화만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못ㆍㅎ엿너이다 → 못ㆍㅎ엿나이다’, ‘ㆍㅎ더라 → ㆍㅎ다라’와 같이 모음 형태가 ‘ㅓ’에서 ‘ㅏ’로 일관성 있게 변한 것도 보입니다. 그러나 나중의 표기가 더 개선된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요안(83)에서 사용한 ‘무삼, 반다시, 아달’ 등의 ‘ㅏ’ 모음은 경전 언해문에서 거의 ‘ㆍ’ 모음을 사용하던 표기입니다. 이러한 표기를 보면 요안(83)의 작업자가 유교 경전 언해문의 맞춤법을 따른 것이 아니라 그 작업을 한 서울 학자 개인이 쓰던 서울말을 그대로 철자법에 반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3절 “양의 ㆍ식기 일이 물이에 들어가넌 것 갓트니”(82)가 “양의 ㆍ식기가 일이 물이예 들어가 것 갓타니라”(83)로 변화될 때는 “들어가넌” “들어가”과 같은 철자법의 변화도 보이지만, “ㆍ식기”를 “ㆍ식기가”로 고쳐서 주격조사를 사용하는 변화도 보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입말에 가까운 형태로 번역했던 문장을 조사를 다 갖춘 정식 문장으로 격식을 갖추어 다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번역의 변화나 우리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의 변화도 보입니다. 먼저 언급할 대목은 누가복음 10장 6절인데, “돌아갈디니”(82)가 “돌아오나니라”(83, 87)로 변화되었습니다. 중국어 성서는 “不然,則歸爾矣”로, ‘돌아오다’나 ‘돌아가다’가 모두 가능한 번역입니다. 영어 성서의 표현으로는 “it shall turn to you again.”입니다. 그리고 아래 인용한 누가복음 10장 16절을 살펴보면, 82년 판에서는 중국어 문리역과 달리 나름대로 독자적인 번역을 취하고 있고, 83년 판과 87년 판은 문리역과 같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리역 拒爾者,則拒我,拒我者,則拒遣我者也
82년 판 너의를 슬이여 넌 쟈는 나를 슬이여 리요 나를 슬이여 넌 쟈는 나 보 이를 슬이여 미라 니
83, 87년 판 너의를 막 쟈난 나를 막으미요 나를 막 쟈난 나를 보 이를 막으미라 니
KJV and he that despiseth you despiseth me and he that despiseth me despiseth him that sent me.
ASV and he that rejecteth you rejecteth me; and he that rejecteth me rejecteth him that sent me.
NIV He who listens to you listens to me; he who rejects you rejects me; but he who rejects me rejects him who sent me.

문리역의 번역은 ‘拒’(거, 막다)이고, 킹제임스번역(KJV)은 82년 판과 같이 ‘싫어하다’로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나중 번역인 1902년의 미국표준역(ASV)에서는 ‘rejecteth’(막다)로 번역했습니다. 서로 다른 번역이 가능할 때 어떤 번역을 선택할지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 부분입니다. 82년 판은 한문 성서의 ‘拒’(거)가 반영된 번역이 아니라 영어 번역의 ‘despiseth’가 반영된 번역입니다. 이에 비해서 83년 판과 87년 판은 문리역과 같게 번역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영어 번역들 중에도 직접적으로 ‘rejects’로 번역하고 있는 역본들이 보입니다. 이런 경우 단지 중국어 번역의 영향만으로 보기는 어렵고, 그리스어 ‘ἀθετέω’의 의미를 따라 이렇게 또는 저렇게 달리 번역해본 것으로 보입니다.
12절에서 “그 날에 소도모의 형벌이 이 고을보담 견딤즉ㆍㅎ리라”는, 82년 판과 83년 판에서 모두 “견딤즉하리라”로 번역하였던 것을, 87년 판에서 “그 날에 소돔의 형벌이 이 고을보담 도리여 쉬염즉ㆍㅎ리라”로 개정한 것입니다. 중국어 성경의 번역은 “所多馬之刑,較此邑尤易受也,”로, “더 받기 쉽다”로 번역했습니다. KJV는 이를 “that it shall be more tolerable in that day for Sodom, than for that city.”로 번역했습니다. 이 본문도 82년, 83년 판은 영어 번역과 가깝고, 87년 판은 중국어 성서의 번역을 따라갔습니다. 위의 두 경우 모두 우리말로 볼 때는 87년 판의 나중 본문이 더 자연스럽고 쉽게 느껴집니다.
한편 우리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을 바로잡은 변화도 보입니다. ‘평안하다’나 ‘편안하다’는 동사가 아니라 형용사이며, 우리말에서 형용사는 ‘-하는’과 같이 현재진행형으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평안ㆍㅎ넌’(82)이나 ‘편안하’(83)은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며, 87년 판에서는 이를 우리 문법에 맞게 개정하였습니다.

82년 판 만약 거긔 평안넌 사람이 이스면 너의 평안이 데게 뉴고
83년 판 만약 편안하 사람이 이사면 너의 빈 바 편안이 님하고
87년 판 만약 편안미 맛당 사이 이면 너희 편안이 님고

로스는 자신이 번역하고 있는 누가복음의 번역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번역이 진정한 번역일 뿐만 아니라 한국어다운 번역으로 손색이 없다고 확신하므로, 2세기 동안이나 학자들이 붙잡고 애를 쓴 한문 역본을 중국 학자가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한국의 일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어가 번역어로서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는 정확한 시제와 더불어 무엇보다도 다양한 문장과 단락을 한 가지 뜻으로만 읽도록 해 주는 연결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글 토씨는 그리스어 연결사보다 자연스럽고 아주 독특합니다.6


로스와 매킨타이어의 번역에서 볼 때, 구개음화의 표기 변화는 통시적인 변화가 아니라 방언권의 영향이었습니다. 그다음으로 표기상 혼란스러운 부분이 아래아 표기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더라도 일관성을 가지고 철자법을 사용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이후 국내에서 성서 번역이 진행될 때 로스 팀의 번역이 서북방언으로 번역된 것이 논란이 되고 문제가 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매킨타이어가 서북방언 판을 낸 것이 그 지역의 독자를 배려하는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했다는 점입니다. 초기에는 로스도 계속해서 서울말 판과 서북방언 판을 함께 출판하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서울말이 전국적으로 아무 어려움 없이 이해될 수 있었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독자를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서북방언 판을 낸 로스와 매킨타이어의 번역 정신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 이수정의 현토역 성서와 『신약마가젼복음셔언ㆍ히』

이수정(1842-86)은 1881년 1차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한 친구인 농학자 안종수로부터 일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수정은 1882년(고종 19) 7월 임오군란 때 왕비를 무사히 충주(忠州)로 피난시키는 공을 세웠습니다. 고종이 그에게 벼슬이든, 명예든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하자, 이수정은 “저는 오직 다른 나라의 문명을 배우고 보기 위해 일본에 가기를 원하오니 윤허해 주시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왕의 허락을 받았고, 1882년 9월 수신사 박영효의 일행으로 일본 도쿄에 도착하였습니다. 관리의 자격이 아니라, 아무런 간섭이나 제약 없이 개인 자격으로 일본에 간 것입니다.
안종수는 이수정에게 일본에 가면 쓰다센을 찾아가 기독교에 대해 더 많이 배우라고 말했습니다. 먼저 일본에 가서 쓰다센을 만난 안종수는 쓰다센의 집에서 족자에 걸린 한문 산상수훈을 읽고, “저는 산상 설교에서 발견한 것과 같은 고상한 사상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매우 놀랍고 그러한 가르침은 아주 좋습니다.”라고 말했으며, 쓰다센이 성경을 주려고 하자 “저는 한국에서 올 때 한 약속 때문에 성경을 가지고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국왕과 저의 친구들에게 제가 배운 것을 말하고 기독교에 대한 그들의 편견을 제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고 사양했다고 합니다.7 안종수는 자기가 받은 느낌과 생각을 이수정에게 전했고, 안종수의 말을 들은 이수정은 일본에 가서 쓰다센을 만났습니다. 쓰다센의 집에서 안종수와 이수정이 보았을 중국어 산상수훈 본문은 당시 일본에 전해져 있던 미국성서공회에서 출간한 ‘브리지만・컬벗슨 역’ 본문이었을 것입니다. 다음은 브리지만・컬벗슨이 번역한 『신약』(1859) 팔복(마 5:3-12) 본문에 이수정이 현토를 붙여서 출간한 본문입니다.(괄호 안의 한글 토는 필자)

三虛心者乁(이) 福矣匕(니) 以天國乁(이) 乃其國也乁五 四哀慟者乁 福矣匕 以
其將受慰也乁五 五溫柔者乁 福矣匕(니) 以其將得土也乁五(이오) 六飢渴慕
義者乁(이) 福矣匕(니) 以其將得飽也乁五(이오) 七矜恤者乁(이) 福矣匕(니) 以其
將見矜恤也乁五(이오) 八淸心者乁(이) 福矣匕(니) 以其將見神也乁五(이오) 九施
和平者乁(이) 福矣匕(니) 以其將稱爲神之子也乁五(이오) 十爲義而遭
迫害者乁(이) 福矣匕(니) 以天國乃其國也乁五(이오) 十一人爲我而詬誶爾丷厼
(며) 迫害爾丷厼 (며) 且妄言諸惡丷乛(야) 以謗以丆(면) 則爾福矣匕(니)
十二爾宜欣喜歡樂乁匕(이니) 以在天仒乁(ㅓ+ㅣ=에) 爾所得之賞乁(이) 大也乁亽
(이라) 蓋人乁(이) 會如是迫害乁(이) 先於爾之預言者矣匕亽(니라) 8


1883년 5월 11일에 루미스가 뉴욕의 길맨 총무에게 쓴 편지에는 일본에 온 한국 사절단 가운데 한 사람이 세례를 받았으며, 그가 우리말로 성서를 번역하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수정의 가장 큰 소망은 자기 민족에게 성경을 주는 것입니다. 그는 미국성서공회가 다른 나라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해왔는지 듣고, 또 한국을 위해서도 성경 반포사업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는 우선 한한 성경 번역을 시작한 다음 한글 성경 번역에 들어가자는 저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9


1883년 5월 30일 일본의 루미스가 미국성서공회 길맨 총무에게 쓴 편지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로스 목사가 번역한 성경을 보여주자 이수정은 대단히 실망하면서 그것은 무가치하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로스 목사는 유능한 조력자를 가지지 못했고 따라서 한국어를 이해하는 교정인의 도움 없이 출판한 관계로 철자에 많은 오류들이 발생했습니다.10


이수정의 비평은 ‘철자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1884년 8월 15일 자 루미스의 편지에는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이 인쇄공의 손에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 편지에는 이수정이 로스의 개정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번역을 받아서 충분히 검토했으며, 그 번역이 출판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강력하게 단언했다고 전합니다.

루미스가 길맨 박사에게(1884. 8. 15.)
그러나 로스의 개정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받아서 그 가치를 평가하도록 이수정에게 주었습니다. 충분히 검토한 후에 그는 그 번역이 출판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강력하게 단언했습니다. 한국어 문체에도 크게 벗어났고 오류로 가득한 번역을 어떻게 출판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로스가 한문본을 그대로 따랐고, 불한 자전을 수용함으로써 한국어 문법이나 문체를 무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수정은 위에서 본 것처럼 한문 성서에 현토를 달아서 우리말로 읽을 수 있도록 한 현토 성경을 먼저 번역하였고, 이어서 마가복음을 번역하였습니다. 이 일은 모두 미국성서공회의 결정과 지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885년 2월에 이수정의 『신약마가젼복음셔언ㆍ히』가 간행되었습니다. 이수정의 마가복음 번역 일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一神(신)의 子() 耶蘇(예슈쓰 크리슈도스)의 福音(복음)이니 그 쳐음이라 二預言
者(예언)의 記錄(긔록) 바의 일너스되 보라  나의 使者(사)를 네 압 보여 쎠 네 道(도)를 갓츄게 리라 한 말과 치 三드을에 람의 쇼 잇셔 웨쳐 이르되 主(쥬)의 道(도)를 갓츄어 그 길을 곳게 다 더니 四約翰(요한네쓰)의게 洗禮(밥테슈마)를 베푸러 뉘웃쳐 곳치는 洗禮(밥테슈마)를 傳(젼)야 여금 罪()의 赦(사)믈 엇게 니 五왼 猶大(유아) 과 다못 耶路撒冷(예루샬넴) 람이 다 와셔 約但河(얄덴하)의셔 約翰(요한네쓰)의게 洗禮(밥테슈마)를 밧고 各々(각각) 졔 罪()를 自服(복)더라 六져 約翰(요한네쓰)는 駱駝(약대)의 털을 입고 허리의 가죡 를 고 먹는 거슨 蝗蟲(황츙)과 野蜜(드을)이러라 七頒布(반포)여 로되  예 뒤셔 한 람이오되 나보다 나흔지라 곳 굽펴 그 람의 신들메 푸는 所任(쇼임)도 가 勘當(감당)치 못헐 거시며 八나는 洗禮(밥테슈마)를 물노쎠 너의게 쥬거니와 오직 이 사람은 洗禮(밥테슈마)를 聖靈(셩녕)으로쎠 너의게 쥬리라 더라


루미스는 녹스 목사와 야스카와 목사가 이수정의 성서 번역을 도왔기 때문에 번역의 정확성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문으로 음역된 사람 이름 옆에 모두 원래 음가를 붙여준 것이나, 세례(洗禮) 옆에 ‘밥테슈마’라고 음역을 달아준 것 등을 보면 이 번역이 한문을 번역한 이수정 혼자만의 작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또한 한 줄 한 줄 치밀하고 철저하게 읽으면서 번역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수정은 성서의 의미가 자신에게 철저하게 이해되지 않으면 번역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수정은 로스가 우리말 표현을 살리지 못한 점을 지적하면서 번역을 시작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수정의 마가복음 번역에서도 같은 단어를 다르게 표현하는 철자법의 문제가 보입니다.11

갈오되(2:25), 가로되(2:27, 3:11, 5:31), 가로ᄃᆡ(5:36), 갈오ᄃᆡ(6:14), ᄀᆞ로되(3:21, 33, 4:41), ᄀᆞ로ᄃᆡ(3:32)
ᄀᆞᆺ치(1:2), 갓치(1:10)
ᄉᆞ람(1:3), ᄉᆞᄅᆞᆷ(2:15)
말슴(14:16), 말ᄉᆞᆷ(14:31, 5:36)
마ᄎᆞᆷᄂᆡ(14:31), 맛ᄎᆞᆷᄂᆡ(12:6, 15:4), 맛츰ᄂᆡ(15:5)
ᄒᆞ야금(8:3, 7), ᄒᆞ여금(7:36), 하야금(12:3), ᄒᆞ여곰(15:32)
ᄒᆞᄂᆞᆯ(1:10, 11:25), ᄒᆞ늘(12:25), 하ᄂᆞᆯ(10:21)

이것은 아무런 참고서 없이 이미 학습된 언문을 기억나는 대로 적은 결과로 생각됩니다. 그렇더라도 전체적으로 이수정 역의 우리말 문장은 매우 수려합니다. 앞서 인용한 이수정의 번역본을 현대의 철자법으로 바꾸면 지금 우리가 읽기에도 불편함이 없는 좋은 문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이수정이 먼저 한문 본문을 바탕으로 현토 번역을 하고, 이어서 우리말로 번역을 한 까닭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이수정의 번역에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한문의 번역문으로부터 내려온 한글 문장의 모범이 반영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수정의 번역은 『신약마가젼복음셔언ㆍ히』라고 하여, ‘언해서’임을 책 제목에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는 이 책의 번역이 논어언해, 맹자언해, 중용언해 등과 같은 경전 언해서임을 나타내는 것인데, 사실상 그 문장이나 문체도 이전의 유교 경전 언해서들의 문체를 잇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랜 역사를 두고 형성된 우리말 문장의 모범이 성서 번역에서 문장의 모범으로 전승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번역이나 철자법은 계속해서 다듬어졌지만, 이수정이 사용한 좋은 문장의 모범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 초기 선교사들의 한국어 학습 교과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어진 성서 번역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수정의 한국어 문장은 단지 한 지식인의 입말이 그대로 글말이 된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축적되고 전승된 한국어 문장이 번역문의 토대를 이루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 옥성득・이만열 편역, 『대한성서공회사 자료집 제1권–로스 서신과 루미스 서신』(대한성서공회, 2004), 58.
2 “로스가 라이트 박사에게”(1883. 1. 24.), 옥성득・이만열 편역, 위의 책, 62-66.
3 “로스가 라이트 박사에게”(1883. 9. 29.), 옥성득・이만열 편역, 위의 책, 84-86.
4 조선시대의 아래아 모음 표기도 서북방언에 뿌리가 있는 왕가의 언어를 표기하는 형식이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최초의 완역 성서인 『셩경젼셔』(1911)에서는 아래아 음가가 사용되었고, 1938년 『성경개역』을 출간할 때 아래아 표기를 없앤다. 이 시기에 서북 사람들은 아래아 모음을 성서에서 없애는 것을 반대하였다. 자신들의 입말에 아래아 음가와 상응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한성서공회사 2』, 59-65, 참고.
5 옥성득・이만열 편역, 위의 책, 50-51. 다이어(S. Dyer)는 당시 대영성서공회 상해 총무였고, 라이트(W. Wright)는 대영성서공회 번역 편집부 위원장이었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의 역사 I』(기독교문사, 1989), 149에서는 “또 한 사람의 서울 출신 학자가 1882년 가을에 봉천의 로스에게 세계 요청자로 왔다가 1년 가까이 복음서에서 고린도후서까지 번역하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6 “로스가 라이트 박사에게”(1881. 10. 11.), 옥성득・이만열 편역, 위의 책, 30.
7 옥성득・이만열 편역, 위의 책, 302. 루미스는 이러한 이야기를 이수정에게서 직접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안종수는 쓰다센의 집에서 본 산상수훈 이야기를 이수정에게 했고, 이수정은 일본에 가기 전부터 기독교에 대해서 매우 깊은 관심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8 위원회역 본문은 다음과 같다. “三虛心者福矣. 以天國乃其國也. 四哀慟者福矣. 以其將受慰也. 五溫柔者福矣. 以其將得土也. 六飢渴慕義者福矣. 以其將得飽也. …” 브리지만・컬벗슨역과 번역이 매우 비슷함을 볼 수 있다.
9 옥성득・이만열 편역, 위의 책, 300.
10 옥성득・이만열 편역, 위의 책, 306.
11 정길남, “이수정역 「마가복음」의 국어학적 고찰”, 「동아시아문화연구」 Vol. 6(한양대학교한국학연구소, 1984): 55-187 참고.

전무용 | 한남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집으로 『희망과 다른 하루』가 있다. 현재 대한성서공회 번역실에서 일하고 있다.

 
 
 

2019년 6월호(통권 7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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