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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애국가 작사자 안창호와 윤치호]
문화·신학·목회 (2019년 2월호)

 

  안창호와 윤치호의 심리 철학적 비교 (1)
  

본문

 

<애국가> 작사자의 심리와 철학

<애국가>는 인간의 몸과 마음, 얼을 아우르고 민족 전체를 하나 되게 하는 정서와 사상과 정신을 담고 있다. 또한 <애국가>는 한 인간의 주체적 깊이에서 민족 전체의 하나 됨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고 뚫어주는 힘과 정신, 생각과 뜻, 이념과 지향을 품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우리가 <애국가>를 부를 때 몸소 경험할 수 있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움직이는 동인은 욕구와 감정의 심리적 작용과 기제(mechanism)이다. 생각과 행동을 이끌고 주도하는 것은 가치관과 신념이고, 생각과 행동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것은 뜻과 이념이다. 인간의 주체적 깊이에서 민족 전체의 하나 됨으로 나아가는 과정에는 심리, 가치관과 신념, 생각과 사상, 뜻과 이념의 차원이 켜켜이 사다리처럼 놓여 있다. <애국가>는 이 과정 속에서 인간의 이러한 정신과 심리의 차원들을 밟아 나가며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정과 생각과 정신을 감동시키고 고양·향상시킨다.
<애국가>를 지은 사람은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체험하는 심리적·정신적 감동과 고양을 먼저 체험했음이 분명하다. <애국가>가 인간의 주체적 깊이에서 일으키는 이런 감정을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사람이 이 노래를 지었을 수는 없다. 따라서 <애국가> 작사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려면 인간의 주체적 깊이에서 민족 전체의 하나 됨에 이르는 심리, 가치관과 신념, 뜻과 이념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의 심리, 가치관과 신념, 생각과 사상, 뜻과 이념에 대한 연구는 철학적 연구라 할 수 있다. 철학이란 사물과 생명과 정신을 피상적으로만 보지 않고 깊이 보는 것이며, 부분과 단편으로 보지 않고 전체적으로, 통일적으로 보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과 정신에 대한 철학적 연구는 인간 개인의 주체적 깊이를 밝히고 내적・전체적 통일과 함께 외부의 자연 생명, 우주 전체와의 관련성과 일치를 탐구하는 것이다.
<애국가>에 대한 철학적 연구는 이 노래가 밝히는 인간의 주체와 전체를 드러내고, 이를 하나로 만드는 생각과 정신을 밝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애국가>를 지은 사람의 심리, 가치관과 신념, 생각과 사상, 뜻과 이념이 <애국가>의 그것들과 일치하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애국가>는 분명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지어진 노래이다. 따라서 <애국가>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그 주체성과 정체성을 확립시켜 나라를 사랑하도록 이끌고 나라의 독립과 통일을 이루려는 간절한 염원과 의지가 담겨 있다. <애국가>에 담긴 그 염원과 의지는 곧 그 노래를 지은 사람의 간절한 염원과 의지일 것이다. 또한 나라의 독립과 통일을 이렇게 간절하고 사무치게 염원하는 사람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강대국이 자신의 나라와 민족을 침략하고 정복하는 것을 인정하고 정당화하는 이론과 사상을 형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자기 분열과 불안에 빠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정체성과 주체성을 확립하고 나라의 독립과 통일에 이르도록 이끌지 못한다. 또한 개인의 사적 감정과 의식이 나라와 민족에 대한 공적 감정과 의식에서 분리되어 있거나 닫혀 있는 사람은 <애국가> 작사자가 아닐 것이다.
<애국가>에는 작사자가 어떤 심정과 뜻으로 이 노래를 지었는지에 대한 심리와 철학이 담겨 있다. 1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우리나라 만세.”는 나의 삶의 터전보다 우리나라가 더 중요함을 나타낸다. 삶의 터전인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으면 나의 삶과 몸, 나의 존재도 마르고 닳아 없어질 것이다. 삶의 터전과 나의 존재가 사라져도 나라는 영원히 살아남고 보전되어야 한다는 간절하고 사무친 염원, 밖의 나는 사라지고 없어져도 나는 나라 속에서 나라와 함께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염원이 1절에 새겨져 있다. 나라를 떠나서는 ‘나’가 없다. 여기서 나와 나라는 완전히 일치된다.
2절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이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는 밖의 변화와 시련에도 변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확고한 주체성과 정체성을 말해준다. 이는 우리 민족이 어떤 시련과 유혹,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는 푸른 솔의 절개와 기개, 높은 기상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애국가>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기상을 높이 평가하고 신뢰하며 존중한다.
3절 “가을 하늘 공활한데 구름 없이 높고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에서 가을 하늘은 땅의 물질적 조건과 현실을 뛰어넘은 높고 크고 깨끗한 이념과 뜻을 나타낸다. 맑은 가을 하늘에 떠 있는 높고 밝은 달은 이지러지거나 쪼개지지 않는 강하고 뚜렷한 신념과 의지를 나타낸다. <애국가>를 부르는 사람은 작사자와 마찬가지로 가을 하늘과 같은 높고 큰 이념과 뜻을 가져야 하며, 밝은 달처럼 뚜렷하고 환한 신념과 의지를 가져야 한다.
4절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임군을 섬기며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는 푸른 솔 같은 강인한 기상과 밝은 달 같은 떳떳하고 뚜렷한 심정으로 형편이 좋거나 나쁘거나, 이기거나 지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나라의 임군을 섬기며 한결같이 나라를 사랑하자는 것이다.
이렇듯 <애국가>에는 나와 나라를 하나로 여기는 심리와 정신이 담겨 있다. 따라서 <애국가>를 지은 사람은 내적 자아의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고 확고한 주체성과 통일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요, 나와 나라를 일치시킨 사람이다. 내적 자아의 분열과 갈등에 빠져서 나와 나라를 분리하고 나라와 민족에 대해서 열등감과 수치심을 가진 사람은 결코 <애국가>의 작사자가 될 수 없다. 안창호와 윤치호의 심리와 철학을 연구하면 누가 <애국가>의 저자인지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윤치호의 분열적 심리와 철학

윤치호는 뛰어난 기억력과 시적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명문가의 후손이고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으며 비상한 지적 능력을 가졌다. 그에게는 엘리트적 우월감과 사회 현실의 부강한 세력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따라서 그는 부강을 이루는 지식, 근면, 노동을 중시하였다. 하지만 서얼이라는 신분적 제약과 그로 인해 그가 받은 차별과 소외는 저항감과 분노, 깊은 열등감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그는 가난과 무기력에 이르는 민중의 무지와 게으름, 더러움을 멸시하고 비판하였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 윤치호는 일본에 의한 조선의 식민지화가 필연이라고 예견하였다. 그는 문명국이 된 일본을 “황인종의 일원으로서 사랑하고 존경한” 것뿐만 아니라 일본에 의한 조선의 식민지화를 조선인이 가진 “노예근성, 부정직함, 죽은 자 같은 무기력성”이 초래한 당연한 결과로 보았다. 윤치호는 일본의 식민통치를 조선 민중의 죄에 대한 벌로 해석했으며 조선 민족의 갱생을 위한 훈련기간으로 생각했다.1 그는 권력의 탄압과 강압을 조용히 받아들이면서도 그 모든 책임과 허물을 민중에게 돌리고 민중의 무지와 무기력을 멸시하고 비난하였다.
조선과 조선 민중을 향한 멸시와 혐오는 강대한 문명국의 대세를 따르는 윤치호의 열등감과 맞물려 있었으며, 그의 과도한 우월감과 자부심은 강자에 대한 찬양과 숭배로 이어졌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서구 중심의 문명개화사상과 사회진화론을 수용함으로써 증폭되었다. 조선과 조선 민중에 대한 열등감과 멸시는 그의 내적 열등감과 무력감의 표현이었으며, 문명개화에 앞장선 서구와 일본의 강력한 힘에 대한 찬양과 숭배는 그의 지나친 우월감과 자부심의 표현이었다.
이러한 윤치호의 분열된 자아는 자기 정체성과 주체성의 상실로 이어졌고, 이것은 다시 민족과 조국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데로 나아갔다. “한국사의 내재적 발전을 부인하고 과거 역사를 정체적으로 인식했으며, 한민족의 독립과 개혁에 대한 의지 및 능력을 부인하고 현재를 절망적으로 인식했으며, 가까운 장래에 있어 한국의 독립과 재생을 포기하고 미래를 회의적으로 전망했던 윤치호의 비관적 국사관은 그를 민족패배주의에 빠지게 했다.”2
역사와 사회의 토대와 중심을 이루는 민중을 멸시하고 혐오한 윤치호는 한국 역사와 사회를 개혁하고 새롭게 창조할 가능성과 희망을 스스로 부정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역사와 사회의 변화를 물리적 힘을 가진 강자들에게 맡기고 순응과 굴종의 길을 걸었다. 그는 민중을 역사 변혁의 주체로 인식하지 않았고, 그 자신도 역사 변혁의 주체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과 해방을 위한 민족적 주체성과 정체성을 부정했다. 그에게는 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체적 깊이와 자유에서 민족 전체의 하나 됨에 이르는 길이 막혀 있었다. 이 길은 통일된 주체성과 일관된 정체성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결여되어 있었으므로 민족 전체의 하나 됨에 이르는 길이 차단된 것이다.
윤치호의 내적 자아의 분열은 철학과 사상의 내적 분열로 이어졌다. 그는 문명과 비문명을 이원화함으로써 문명개화하지 못한 조국과 민중을 불신하고 멸시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그의 민주사상은 왜곡되고 위축되었다. 문명화되고 부유한 강대국을 찬미 숭배하고, 미개한 조국과 민중을 불신하고 멸시함으로써 그의 애국심은 뿌리를 잃게 되었다.

윤치호 철학의 핵심 내용과 이원론적 구조

윤치호는 서구문명을 전적으로 긍정하고 받아들였다. 그에게 문명은 절대 선이자, 부강하고 깨끗하고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었다. 반대로 비문명은 무기력하고 더럽고 천하고 추한 것이었다.3 윤치호에 따르면 산업문명국은 선한 자이고 영원의 지복을 누릴 자이며, 비산업문명국은 악한 자이며 영원의 멸망에 이를 자였다.4 산업문명의 외적 가치로 자기 자신과 조국을 평가한 그는 불의한 제국주의 국가의 자기 정당화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주체를 상실하고 자기 정체성을 파괴하는 데 이르렀으며 자기 민족의 열등성을 승인하였다.5
처음에 윤치호는 강자의 불의를 약자에 대한 당연한 징벌이자 교육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정당화했다. 여기서는 ‘산업문명국=선=영원의 지복’, ‘비산업문명국=악=영원의 멸망’이라는 도식으로 강자의 불의를 정당화한다. 칼의 호전성을 최고의 가치로 보게 된 윤치호는 칼의 힘이 칼의 행위 자체를 정당화한다고 보았고, 여기에서 강자의 불의는 투쟁에 의해 획득한 강자의 정당한 권리로서 정당화된다. ‘강자=정복=약탈’, ‘약자=복종=피약탈’이라는 도식으로 강함 자체를 최상의 가치로 두게 된 것이다.6
문명과 비문명을 이원적으로 분리하고 대립시킨 윤치호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역시 이원적으로 분리시켰다. 그에게서 종교(하나님)는 역사와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제거되고 인간의 내적이고 사사로운 감정의 영역으로 추방된다.7 하나님은 모욕당하고 상처받은 영혼의 열등감을 위로하는 존재, 사적 감정의 영역을 다스리는 신으로 전락하였다. 반대로 공적 영역은 강자의 칼과 힘에 맡겨짐으로써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이원적으로 분리된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윤치호의 신념은 부국강병과 약육강식의 현실주의 국가관에 의해서 위축되고 변질되었으며 근본적으로 제한되었다. 부국강병의 국가권력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민족의 자주독립과 민중의 자유와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고 실현될 수 없다. 이런 국가주의가 조장하고 강요하는 애국심과 애국주의는 약소국에 대한 불의한 침략과 정복을 정당화하는 거짓된 감정과 의식을 갖게 한다. 이렇듯 문명국과 비문명국의 이원론적 대립은 그의 사상과 철학을 이원론적으로 분열시켰고, 따라서 그의 개혁 이론들과 실천 방법들도 서로 충돌하고 분열되어 있다. “그의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은 주어진 현실상황에서 가능성 있는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실상황론적 타협주의는 내부혁명과 평화적 자주개혁 및 외세 지배하에서의 개혁 같은 서로 모순되는 3개의 변혁방법론을 그의 의식 속에 공존케” 했다.8
문명국과 비문명국,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이원론적으로 분리하고 대립시킴으로써 윤치호의 철학은 분열과 대립의 갈등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철학의 내면에는 실질적인 힘과 진실, 정직과 행동을 강조하는 진지하고 성실한 원칙과 태도가 확립되어 있다. 이러한 내적 측면은 실질적 힘과 진실, 정직과 행동을 내세우며 무실역행을 주장한 안창호의 철학과 일치한다. 안창호와 관련해서 윤치호의 이러한 사상적 측면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
윤치호는 서구 문명에서 민주주의와 힘의 철학을 배웠다. 그는 낡고 봉건적인 조선의 신분체제와 유교철학을 거짓되고 무기력한 것으로 통렬하게 비판했다.9 그는 상황과 조건이 허락되는 한에서는 조선의 문명개화와 자강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였다. “우리들이 어떠한 학교의 설립을 원한다면, 그것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노동이 수치가 아니라는 것과, 한국의 장래는 노동에 달려 있다는 것, 그리고 기독교가 일하는 종교라는 것을 산 진리로 배울 수 있는 실업학교여야 한다.”10 그는 노동을 천시하는 폐습을 타파하고 스스로 일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능력을 배양시키려 했다. 경제적 자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개인의 독립정신을 국가적인 독립사상으로 승화시켜 국가 독립의 기초를 닦으려 했다.11 그는 실업교육을 통해 노동의 존귀함과 일하는 기쁨을 일깨워 근로정신을 고취하여 일하는 인간, 일하는 국민을 만들려고 했다.12 이를 통해 독립자존 의식과 능력을 길러 남에게 의지하여 살려는 생활 태도를 청산하고 자기 생활을 스스로 개척해가는 자립적 인간, 자립적 국민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13 또한 실업교육을 통해 창의와 근로정신으로 부를 축적하여 빈곤을 추방하고 윤택한 생활을 영위하는 부유한 국민이 되게 하려고 했으며14 실업교육을 통해 개개인의 독립자존 의식과 능력, 그리고 민중생활의 향상을 바탕으로 국가의 독립과 부강의 기초를 닦으려고 했다.15 윤치호는 자주정신을 바탕으로 한 자주개혁이 국가의 참다운 독립과 개화를 이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었으며 내 나라의 일은 결국 내 나라 사람이 가장 충실히 하게 된다고 여겼다.16
윤치호는 인간관계, 군신관계, 국제관계의 유지에서 정직과 신의가 가장 귀중한 요소라고 믿었으며, 문명과 비문명을 구분하는 한 가지 척도를 ‘정직’으로 여길 만큼 그것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그는 “청결과 정직에 있어서 중국인을 믿기보다는 천문학과 지질학에 있어서 돼지를 믿겠다.”17라든가 “조선에 있어서 가장 깊게 자리 잡고 있고 동시에 가장 널리 퍼진 악은 거짓이다.”18라고 하며 중국과 조선 사회에서 정직성의 부재를 통감했다. 윤치호는 “청교도적인 인간형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는 이기적이고, 욕심 많고, 사치스럽고, 노동을 경시하는 인간에게는 상당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19 을사늑약을 계기로 사실상 정치변혁을 포기한 이래로 일제시대 전반에 걸쳐 국민계몽과 국민개조에 전심전력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그는 국가 통치체제의 변혁 곧 정치변혁보다 국민의 의식구조의 변화 곧 국민개조에 더 큰 비중을 두었던 계몽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20
그러나 민주와 자립, 실력양성과 자강, 정직과 진실, 노동과 실업교육을 강조하는 윤치호의 철학은 강대한 문명국의 힘(칼)에 굴복하는 현실상황론, 서구 문명을 숭배하고 찬양하며 한국 민족과 민중의 무지와 무기력을 멸시하고 혐오하는 일관된 자세와 상충된다. 윤치호의 내적 심리와 정체성이 분열되어 있듯이 그의 철학과 사상도 내적으로 분열되어 있는데, 이는 그의 사상과 철학이 자신의 삶과 역사에서 스스로 닦이고 체득된 것이 아니라 외국 유학에서 이론적으로 배운 것이기 때문이다.

1 양현혜, 『윤치호와 김교신: 근대조선에 있어서 민족적 아이덴티티와 기독교』(서울: 한울, 1994), 71-72. 『윤치호 일기』 1905년 6월 2일, 20일.
2 유영렬, 『開化期의 尹致昊 硏究』(서울: 한길사, 1985), 242-243.
3 『윤치호 일기』 1891년 5월 12일, 1903년 1월 3일.
4 양현혜, 위의 책, 47.
5 『윤치호 일기』 1891년 3월 10일, 1893년 3월 19일, 1896년 5월 26일. 양현혜, 위의 책, 47.
6 양현혜, 위의 책, 79-80.
7 『윤치호 일기』 1891년 3월 22일, 1892년 1월 10일.
8 유영렬, 위의 책, 231.
9 『윤치호 일기』 1890년 5월 18일, 1894년 9월 27일.
10 “T. H. Yun’s Letter to Dr. Warren A. Candler,” October 22, 1895. The Young John Allen Papers(Library Emory University).
11 「大韓自强會月報」 제1호: 35-41.
12 “T. H. Yun’s Letter to Dr. Warren A. Candler,” October 22, 1895. The Young John Allen Papers(Library Emory University).
13 “T. H. Yun’s Letter to Dr. Warren A. Candler,” January 23, 1896. The Young John Allen Papers(Library Emory University).
14 “T. H. Yun’s Letter to Dr. Warren A. Candler,” January 23, 1896. The Young John Allen Papers(Library Emory University).
15 윤치호 “독립 샹책,” 「독립신문」 1898년 7월 15일 자 논설.
16 윤치호 “독립 샹책,” 「독립신문」 1898년 7월 15일 자 논설. 『윤치호 일기』 1904년 8월 22일.
17 『윤치호 일기』 1894년 7월 14일.
18 『윤치호 일기』 1897년 7월 14일.
19 김성태, “근대 한국의 선각자, 좌옹 윤치호,” 윤경남 편저, 『좌옹 윤치호 평전』, 137.
20 유영렬, 위의 책, 239.


박재순 |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신대학교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장,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실장, 씨사상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씨사상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삼일운동의 정신과 철학』, 『씨사상』,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다석 유영모』 등이 있다.

 
 
 

2019년 4월호(통권 7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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