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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박충구의 죽음의 윤리 이야기]
문화·신학·목회 (2019년 2월호)

 

  자살에 대한 인식의 변화
  

본문

 

“정말 죽고 싶었어요?”
“죽고 싶어서 죽는 사람은 없어요.”
“그럼 왜 사람들이 자살을 할까요?”
“고통을 멈추게 하려구요.”
- 티파니 드바톨로, How to Kill a Rock Star


미국 서북부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한 번쯤은 반드시 찾아보게 되는 금문교(Golden Gate Bridge)가 있다. 금문교는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지닌 건축물로도 유명하지만 다리 위에서 태평양과 샌프란시스코의 아름다운 전경을 볼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다리가 가지고 있는 오명(汚名)이 있다. 1937년 준공된 후 지금까지 약 1,600명이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멋진 경치를 즐기려 금문교를 찾지만, 희망을 잃은 소수의 사람은 자신의 삶을 마치는 자리로 금문교를 택하는 것이다.
75m 높이의 금문교에서 사람이 뛰어내리면 바다에 떨어지기까지 약 4초가 걸리고, 추락한 사람의 몸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부스러져 약 98%가 사망한다. 자살 사건은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잠시 있다 사라지지만 부모나 형제자매에게는 지울 수 없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남긴다. 아버지의 자살을 경험한 조이너(Thomas E. Joiner)는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Why People Die by Suicide, 2005)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한 이들은 마음의 병으로 인해 죽게 된 것이라고 했다.
최근 한 정치인과 고급 장교의 자살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위법하게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던 노회찬 의원과 전 기무사령관이었던 이재수 씨가 투신했다. 이들의 죽음에 대한 평가는 정치권마다 다르지만, 죽음에 관한 소식은 언제나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죽음은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의 사건임을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노화의 결과나 사고에 의해 원치 않은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신이 선택하는 죽음도 있다. 인류 사회가 금기시해온 죽음 곧 자살이다.

자살 이해의 역사

자살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그 이유를 불문하고 자신을 적대하는 행위로서의 자살(Selbstmord)이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고통에서 놓여나게 하는 행위로서의 자살(Freitod)이다. 두 가지가 중복되는 경우도 있으나 전통적인 의미에서 이해하는 자살은 대부분 자기 살해의 성격이 짙다. 하지만 근래에 일각에서 시작된 자살 논의는 ‘자유죽음’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인류 사회가 생명존중의 가치를 지켜온 맥락에서 본다면 어떤 유형의 자살이라도 쉽게 받아들이고 허용하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인류는 고대 사회로부터 생명 존중의 원칙을 규범화했다. 가장 단순한 형법의 틀을 가진 고조선의 팔조금법 중 제3조는 살인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는 엄벌 원칙을 명시함으로써 타인의 생명을 해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있다. 성서의 십계명도 제6항에서 살인하지 말라고 선언하고 있고, 고대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에서는 다른 이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한 이를 엄벌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인간의 생명권을 옹호하고 있다. 이렇듯 인류 사회는 생명 존중의 원칙을 엄하게 지켜왔으며, 타인의 생명을 해하는 일을 중한 범죄로 다루듯 자신의 생명을 해하는 행위도 유사한 범죄 행위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예외적인 원칙들이 생겨났다. 특히 그리스–로마 문명권에서는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이가 견딜 수 없는 모욕과 수치를 피하는 방편으로 자살을 택하는 사례들이 있었다. 여기에는 스토아주의자나 에피큐리안들이 생각했던바 죽음의 상대화 전통이 다분히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스토아주의자들은 죽음을 삶의 고통에서 풀려나는 것이라고 여기는 생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사조를 따라 로마제국의 세력가 중 상당히 많은 이들이 자신의 죽음을 타인의 손에 맡기지 않고 자기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하지만 모두에게 자살이 허용되었던 것은 아니다. 노예와 군인, 그리고 중형을 받은 이들의 자살은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노예는 주인의 재산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고, 군인은 국방이라는 사회적 책무를 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중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사람이 형이 선고되기 전에 자살할 경우 그 사람의 재산은 후손에게 상속되지 않고 몰수되었다. 도미티아누스(Domitian) 황제 치하(AD 81-96)에서는 중범죄 판결을 받은 이의 모든 재산을 국가가 몰수했다.
그리스–로마 문명권이 기독교화되면서 자살에 대한 금기는 매우 강한 규범으로 자리를 잡았다. 자살을 하나님의 생명 창조 섭리를 거부하는 일종의 불신앙적인 행위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 24장에서 초기 기독교를 지배했던 타세계 구원론이 현세적 삶의 가치를 저하하고, 정치적 이유나 혹은 순결의 고결함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적 자살을 조장하는 문화의 배경에 스토아주의적인 생명 경시 풍조가 스며들어 있다고 보고 이를 강력히 규탄했다.
하지만 어거스틴이 모든 자살을 죄악시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삼손의 죽음이나 사울의 죽음을 신앙에 위배된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가 예외로 인정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소명을 받은 경우였다. 반면 소명으로 인한 죽음이 아니라 몸의 순결을 지키려는 동기에서 일어난 자살에 대해서는 그 어느 죄보다 나쁜 중죄라고 평가했다.
자연법론적인 관점을 운용했던 아퀴나스 역시 어거스틴의 주장을 이어받아 자살은 성서적 원칙에서 벗어나고 자연적 본성에도 위배되는 죄라고 주장했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에서 자살은 살인하지 말라는 성서의 계명을 위배하는 행위이므로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을 거부하는 죄라고 규정했다. 이렇듯 자살에 대한 기독교적인 평가는 내적 동기나 사회적 요인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생명 주권을 거부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정죄되었다.
기독교 세계에서는 452년 아를르 공의회(the Council of Arles)에서 자살을 정죄한 후 자살을 악마에게 이끌린 사악한 행위라 여겼다. 자살한 사람은 교회에서 장례를 치를 수 없었고 그 사람의 시신을 교회 무덤에 안장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자살자의 장례는 대낮에 치러질 수 없도록 금했고, 시체를 묻는다 하여도 마차가 지나다니는 노상에 묻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통치기에는 자살한 사람의 얼굴이 아래를 향하도록 시신을 뒤집어 마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는 사후 형벌이 주어졌고, 자살자의 재산은 몰수되었다.
1958년 영국에서는 처칠이라는 한 남성이 자살을 하려다가 총상만 입고 미수에 그친 적이 있었는데, 경찰은 그를 체포하여 재판에 넘겼고 법원은 그에게 치료를 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고 징역 6개월을 살게 했다. 이렇게 자살이 불법적인 행위로 간주된 역사는 영국과 웨일즈에서 1961년까지 이어졌다. 자살이란 종교적으로, 그리고 형법적으로 죄악이요 범죄라는 인식이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서구 세계를 지배한 것이다.

자살에 대한 새로운 이해

자살에 대한 이해는 19세기 말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Emile Dur-kheim)의 『자살론』(Suicide, A Study in Sociology)에 의하여 전환기를 맞았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모든 자살은 일종의 사회적 관련성을 가진 현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뒤르켐은 약 2만 6,000건의 자살을 심층 조사한 후 이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공동성과 연대성의 상실로 인한 폐쇄적인 삶의 정황에서 과도한 개인주의에 지배받은 결과로 일어나는 ‘이기적 자살’, 이와는 반대로 개인주의 성향의 약화로 인해 집단이나 타자를 향한 충성과 의무에 따라 자신을 포기하는 ‘이타적 자살’, 급속한 사회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여 생기는 가치의 혼란 속에서 적응하지 못해 일어나는 ‘아노미적 자살’, 그리고 과도한 통제나 규율 속에서 숨 막히는 곤경을 겪다가 이로부터 벗어나는 방편으로 택하는 ‘숙명적 자살’이다.
뒤르켐의 자살론은 기존의 자살 이해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다시 말해 자살이라는 행위의 결과만을 교조적으로 혹은 형법적으로 평가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각각의 자살은 사회적 환경에 대응하는 개인의 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새로운 이해는, 자살의 모든 책임을 자살자 개인에게 돌린 종교나 법의 정죄적 시각이 얼마나 편협하고 부적절한 것인지를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다.
뒤르켐과는 달리 정신의학적인 관점에서 자살을 연구한 메닝거(Karl Menninger)는 『자신을 적대하는 인간』(Man against Himself, 1938)에서 자살이란 한 인간이 자기를 적대하는 과도한 과장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보면서 자살은 세 가지 내면적 속성을 포함하는 매우 특별한 종류의 죽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자살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공격성, 죄책으로 인해 누군가가 자신을 죽여주기를 바라는 피학성, 그리고 삶의 의욕을 잃어 죽기를 원하는 우울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메닝거의 자살 이해는 프로이트가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증오와 죄책, 그리고 비판과 혐오의 감정에 사로잡힐 경우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행위로서 자살이 일어난다고 보았던 관점1을 확장한 것이다.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자살은 우울증과 같은 심리-정신적 질병의 결과이다. 종교는 자살을 교의(敎義)적으로 정죄했으나 뒤르켐은 자살을 사회학적 현상으로 해명했고, 정신의학자들은 자살이 인간의 심리와 정신구조에서 일어나는 병적 현상이라고 본 것이다.

합리적 자살

20세기를 지나면서 지난 역사 속에서 잠복되어 있던 자살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는 유형은 소위 ‘합리적 자살’이라고 일컫는다. 여기서 말하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란 처음에는 말기 환자의 신체적 고통을 의미했으나 그 의미가 점점 확대되어 정신의학적 고통, 그리고 ‘예견되는 고통’에 대한 이해가 더해지고 있다.
합리적 자살에 대한 이해의 지평에는 고려해야 할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우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인정하는가의 문제이다. 기존의 종교적 인식에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 고통이 아무리 힘들어도 견딜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거나 견뎌야 하는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이런 시각은 극심한 고통을 겪는 이를 그 고통 속에 버려두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행위를 조장하는 사회제도, 법과 규범이 과거의 기준이었다면 이 기준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몇 나라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새로운 기준을 정하기에 이르렀다.
두 번째 요소는 ‘자신의 삶의 의미를 규정하고, 자신의 죽음을 최종으로 결정하는 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주체적 결정권’이 종교적 교리, 기존의 법 규정, 타인의 기대, 혹은 의사의 처치 등에 의하여 심원하게 침해받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인식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인간의 죽음은 사실 죽어가는 이와는 아무 상관 없는 다양한 요구들에 의하여 그 의미와 과정이 결정되거나 지배받아 왔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자각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타인의 관점에 맡기고 그저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주장하게 된 것이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의 최소한의 범주는 수동적 안락사를 말할 수 있다. 예컨대 ‘사전의료지시서’(Living Will or Advance Directives)를 미리 작성해 둠으로써 죽어가는 과정에서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연명치료를 하지 말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9년 5월 대법원 판례가 나온 이후 일종의 존엄사법이라 할 수 있는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법”이 발효되어 이러한 일이 가능해졌다.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합법화한 나라도 있다. 극심한 고통 중에 있는 환자가 명료한 의식을 가지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죽음을 앞당길 것을 요구하는 경우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기존의 법에 의하여 환자의 자살을 돕는 행위를 일체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나 미국 오리건주 등2에서는 환자의 요구가 합리적이라고 판단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을 경우3 법적으로 타인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죽음을 앞당길 수 있는 ‘(의사)조력사’를 인간의 자유권과 행복권의 범주 안에서 인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냈다.
세 번째 요소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인간의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관여하는 기관(조직)은 국가와 종교였다. 국가는 법으로 생명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고, 종교는 인간의 출생부터 장례를 치르는 일까지 다양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그런데 문제는 전통적인 죽음 이해에는 현대인이 겪는 ‘긴 죽음’의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박탈되는 고통에 대한 충분한 이해나 인도적 대안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박탈된, 견딜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생존을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이를 거부할 자유와 권리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 것이다.
과거에 형성된 법과 종교적 가르침이 견고한 사회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가진 이들은 그 법과 종교로 인하여 생의 연장이 아니라 존엄성이 박탈된 고통의 연장선에 빠지게 된다. 장 아메리(Jean Améry)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생명이 종식될 때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자연사가 있고 자신이 능동적으로 죽음을 마주하는 ‘자유죽음’(Freitod)이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이들이 자연사를 신의 뜻에 따른 죽음, 혹은 자연스러운 죽음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 자연사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닌 죽음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 그는 참된 인간다운 죽음은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여겼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고통으로 인해 비참한 죽음이 점차 다가올 때, 그저 수동적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비참한 자연사에 저항하는 행위로서의 자살은 합리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존재,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 그리고 인간이 존엄성을 지키며 살듯 존엄성을 가지고 죽을 권리를 인정한다면, 과거의 규범에 매인 법을 수정하고 종교적 관점을 바꾸어 합리적이며 동시에 도덕적인 자살을 인정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견해는 과거에 비해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지지하고 있다. 합리적 자살을 인정하는 사회는 비교적 인간의 권리가 폭넓게 인정되는 사회, 안정된 노후가 보장된 사회, 기대수명이 높은 사회, 그리고 국가의 권위가 상대화된 사회, 종교적 지배에서 벗어난 탈종교적인 사회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나오는 말

자살을 애써 구분한다면 비합리적인 자기살해와 합리적인 자유죽음으로 나눌 수 있다. 비합리적 자살은 대부분 사회적 요인을 가지고 있거나 정신의학적인 요인에 의하여 촉발된다. 이러한 자살이 많은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이며 정신의학적인 질병을 유발시키는 사회구조를 안고 있는 사회이다. 허대석 등이 수행한 2010년 연구 결과4에 따르면 자살자 중 최대 72%가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합리적 자살을 예방하는 길은 개인에게 궁극적 책임을 부과하는 교리적이거나 법적인 통제 차원의 과제가 아니라 자살을 불러오는 사회적 요인과 정신의학적인 병인을 제거하는 일이다. 따라서 비합리적 자살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닌 사회적이거나 정신의학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병사라고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자살을 병리화하는 것도 불충분하다. 인간의 존엄성은 삶과 죽음의 상황 모두에서 인간의 권리로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개인의 삶만이 아니라 죽음의 과정에서도 단순히 신체적 생명을 지키는 차원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지켜줄 수 있어야 한다. 전통적인 종교적 가르침과 그 영향을 받아 규정된 법은 지금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장치로 기여해왔으나, 사람의 수명이 거의 배나 길어진 ‘긴 죽음’의 시대에서 말기환자의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대하여 참된 대처 방안을 제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인류 역사상 합리적 자살을 최초로 법제화한 나라는 네덜란드이다. 이에 앞서 미국 오리건주는 2회에 걸친 주민투표에 의하여 인류 최초로 존엄사법을 승인했다. 말기환자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경우에 한하여 합리적 자살을 승인한 것이다. 이 법은 1994년 오리건주 주민투표에 의하여 51:49라는 근소한 차이로 통과되었다. 이 법이 통과되자마자 이 법안을 폐지하라는 발의가 제기되어 1997년 제2차 주민투표를 한 결과 60:40으로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지지를 얻어 원안을 확정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 법이 합법화되기 이전인 1990년 안락사 및 조력 자살에 의한 죽음이 이미 약 1.7%에 이르고 있었다. 이런 현실을 법에 반영하기 위하여 네덜란드에서는 2001년 안락사 및 조력 자살을 허용하는 법5을 제정하고 2002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2018년 12월 현재 의사조력사를 허용하는 나라는 네덜란드를 필두로 8개국이며, 미국으로 한정하자면 오리건 주를 포함하여 7개 주와 워싱턴(DC)이 있다. 세계적으로 본다면 미미한 숫자이다.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이 법이 인명경시 풍조를 불러오거나 전통적인 생명윤리의 근간을 해하는 것이라 여겨 입법을 유보하거나 거절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고통 중에 있는 말기 환자가 자연사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기존 규범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적 규범이 강력하지 않은 탈종교화된 사회에서는 오래된 종교적 권고를 거부하고 존엄성을 지키며 죽기를 원하는 이들 편에 서는 것이 보다 인간다운 면모를 가진다고 여긴다.
환자를 고통 속에 버려두는 것이 윤리적인가, 아니면 고통에서 구제하는 방편으로 본인이 원하는 합리적 자살을 승인하는 것이 보다 윤리적인가의 문제는 획일적으로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도덕 지수가 개인의 자유와 선택권을 중시하는 데 초점이 있는지, 아니면 개인의 자유보다 전통적 가치의 수호에 맞추어져 있는지의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1 Sigmund Freud, “Mourning and Melancholia,” The Standard Edition of the Complete Psychological Works of Sigmund Freud, Vol. XIV(London: The Hogarth Press, 1964), 243-58.
2 2018년을 기준으로 의사조력사만을 허용하는 나라는 스위스, 독일, 그리고 미국의 워싱턴주, 오리건주, 콜로라도주, 하와이주, 버먼트주, 몬테나주, 캘리포니아주와 워싱턴(DC)이다. 이에 더해 적극적 안락사까지 허용한 나라는 네덜란드, 벨기에, 콜롬비아, 룩셈부르크, 캐나다의 5개국이다.
3 네덜란드의 안락사 법은 다음 요건을 모두 갖출 경우 의사가 안락사를 시행해도 기소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1) 환자의 고통이 예후에 희망이 없고 견딜 수 없는 경우, (2) 환자의 상태가 환자에게 고지된 경우, (3) 고통에서 구제할 다른 방안이 없는 경우, (4) 제2의 의사와 협의를 거친 경우, (5) 환자 자신의 의지에 따른 변함없는 요청일 경우, (6) 죽음의 과정이 의사에 의하여 의학적으로 적절히 수행된 경우, (7) 환자가 최소 12살 이상인 경우.
4 허대석 외, 『국내 우울증의 질병부담과 치료현황』(한국보건의료연구원, 2010).
5 Termination of Life on Request and Assisted Suicide Act(2001).


박충구 | 감리교신학대학교 및 동 대학원을 마치고 독일 본대학 및 미국 드루대학에서 공부했다. 감신대 기독교윤리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현재 생명과평화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9년 4월호(통권 7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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