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세월호라는 치명적 경험을 겪은 한국 사회에서 또다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우리네 삶의 현장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번 이태원 군중 참사는 우리의 숨을 멎게 했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이 희생되고 박탈되는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한 가운데 이번에 발생한 충격적인 참사 앞에서 말을 잃게 된다. 성령의 탄식 소리가 들리는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이다.
우리 사회가 안전한 곳이 아니라 지금도 ‘위험’을 두려워해야 하는 불안한 사회임이 자명해졌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위험과 불안이 증대된다는 ‘위험사회론’을 주장했다. 『위험사회』에서 그는 ‘안전’의 가치가 ‘평등’의 가치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보며, “부(富)에는 차별이 있지만 스모그에는 차별이 없다.”라는 비유로 지역과 계층에 관계없이 위험이 평준화될 것이라고 했다. 위험사회가 도래하기 이전에는 사회변화의 동력이 경제적 불평등이나 빈곤에 의한 ‘나는 배고프다’라는 생각이었다면, 위험사회에서는 ‘나는 불안하다’라는 생각이 자리잡는다고 했다. 그는 21세기의 위험은 ‘danger’가 아니라 ‘risk’가 될 것이라고 하며, 자연재해 같은 불가항력적 재난(danger)보다 정치·경제·사회적인 환경과 결합되어 나타나는 재난(risk)의 위기를 강조했다. 벡은 이것을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생산된 위험’(manufactured risk), ‘생산된 불확실성’ (manufactured uncertainty)이라고 불렀다. 세월호 참사 후 방한한 벡은 “다시 사안이 잠잠해지면 정치인들은 또다시 과거의 관행을 답습하겠지만, 우리가 겪은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예지(豫知)는 적중했다. 이태원 참사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650만 명이 넘는 생명을 앗아갔고 1,500만 명 이상의 초과사망을 불러온 코로나19 역시 생태계 파괴로 발생한 ‘생산된 위험’이다.
울리히 벡은 국가가 모든 권력을 쥐고 주요 사안을 판단하는 국가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며 이를 극복할 이상적 대안으로 ‘성찰적 근대화’를 설파했다. ‘성찰적 근대화’(reflexive modernization)란 위험 대비를 포함한 모든 사안을 국가와 전문가만 독점하지 말고, 시민들이 소통하고 대화하는 공론장을 만들어 해결하려는 협치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벡은 시민들이 이기와 반목, 외면과 혐오가 아니라 믿음을 바탕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흐의 명작 〈소리 죽인 한숨, 고요한 탄식〉은 슬픔에 휩싸여 버림받은 영혼의 고뇌를 고통스럽게 노래하며, 체념과 공포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외롭게 터져 나오는 한숨과 탄식을 그린 작품이다. 그렇지만 이 노래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끝을 맺는다. 이처럼 탄식은 현재의 고난과 미래의 소망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성령의 탄식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강하게 하시며,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가 기도할 수 있도록 간절함을 가진 탄식이다. 우리의 탄식도 미래의 소망을 담은 간절함이 되길 바란다. 인간의 억울한 고통, 그 슬픈 역사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은 분주하게 일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