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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2022년 10월호)

 

  종교개혁: 함께, 바르게 걸어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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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떠들썩하게 보낸 기억이 아스라하다. 한국교회에 어떤 새로운 변화와 개혁이 있었는지 곰곰이 되짚어 봐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루터나 칼뱅 같은 개혁자들이 오늘 한국교회를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괜히 궁금하다. ‘아! 바로 이런 모습을 기대했어!’라고 말할까, 아니면 ‘어! 이건 아닌데….’라고 말할까? 후자라면 종교개혁을 공부하고 그 정신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종교개혁을 기억하는 10월을 맞이하면서 다시 그 정신이 무엇인지, 어떻게 그 정신을 실현해야 할지 되새겨 본다.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흔히 ‘개신교’(改新敎)라 부른다. ‘고쳐서 새롭게 한다’는 좋은 뜻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초기에는 이를 ‘갱정교’(更正敎)라 불렀다. ‘다시 바르게 한다’는 의미이다. ‘갱정’이라는 단어의 속뜻이 마음에 와닿는다. 종교개혁은 중세 로마가톨릭교회를 거치면서 굽어지고 왜곡된 신앙과 실천을 다시 바르게 하여 성서와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고자 했던 운동이다. 이런 뜻에서 종교개혁은 근본으로 돌아가려는(ad fontes) 운동이었다. 한마디로 종교개혁은 ‘빠름’이 아닌 ‘바름’을 추구한 운동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교회조차 무한경쟁의 속도전에 내몰렸다. 더 빨리 성장해야 했고, 더 많이 알려져야 했고, 더 오래 살아남아야 했다. 교회마저 복음의 고결함을 팽개쳐버리고 천민자본주의의 천박함을 슬그머니 들여왔다. 효율성이라는 괴물이 올바름이라는 원칙마저도 삼켜버렸다. 세상의 논리가 하나님의 말씀마저도 잠재워 버렸다. 오늘 우리는 크고 빠른 교회를 원하는가, 아니면 작아도 바른 교회를 원하는가? 박해받던 초대교회와 갱정교회의 신자들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라는 말씀을 붙잡고, 넓고 편한 길이 아니라 좁고 바른 길을 기꺼이 걸어갔다. ‘교회’, ‘신앙’, ‘신자’ 앞에 너무나 어울리는 ‘바른’이라는 형용사가 어색한 시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바름을 추구하는 그 적은 무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시는 분이다.
종교개혁은 독주(獨走)가 아니라 동역(同役)으로 이룬 열매다. 우리는 드라마의 주연만 기억하고 조연은 쉽게 잊어버린다. 우리는 흔히 루터의 종교개혁이라 말하지만, 사실상 루터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필립 멜란히톤, 요하네스 부겐하겐, 루카스 크라나흐, 그리고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가 없었다면 루터의 종교개혁은 열매를 맺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칼뱅에게 기욤 파렐, 피에르 비레, 존 녹스, 테오도르 베즈, 아내 이들레트 드 뷔르가 없었다면 제네바 종교개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교회개혁은 결코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교회는 길 위에 있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은 혼자 달려갈 것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야 한다. 장로와 목사가, 여자와 남자가, 어린이와 어른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손에 손을 잡고 느리더라도 함께 걷는 길이다. 하나님 나라의 꿈이 현실이 될 때까지 쉬지 않고 꾸준히 걸어가야 할 길이다. 이 길 위에서는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이 더 소중하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개혁을 위해 함께, 바르게 걸어보자.

 
 
 

2022년 11월호(통권 7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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