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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2022년 9월호)

 

  기독교 학교의 가르칠 권리
  

본문

 

역사와 문화의 전승은 사람이라는 존재를 이어가게 하는 바탕이다. 역사와 문화의 중심에는 가치에 관한 인식과 체계가 있으며 개인을 비롯하여 사회의 모든 집단과 국가 및 문화권은 그 핵심 가치를 세대를 이어 전달함으로써 비로소 존속한다. 이를 담당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인류 역사의 모든 집단은 나름의 교육 체계를 갖고 있다. 그중에서 대비되는 두 가지 교육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명확한 목적을 갖고 설계하여 작동하게 만드는 고도의 계획적인 교육이 있다. 전체주의 성향의 이 방식에서는 교육과, 그로 인해 형성되는 인간상을 뚜렷한 목적에 따라 통제하면서 획일적인 인간형을 만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개인적 특징이나 자유는 최대한 억제된다. 반면 한 사회 집단에서 태어나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문화에 적합한 인간상을 형성하게 되는 자유로운 교육 방식이 있다. 여기에는 인간의 다양성에 관한 인식, 인간 형성을 특정한 목적과 계획으로 다 통제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철학이 저변에 깔려 있다. 개인의 자유와 인격을 존중하는 교육 방식이다. 대비되는 이 두 교육 사이에 여러 편차를 가진 길이 있겠다.
이러한 교육은 기독교 신앙에서도 아주 중요하다. 기독교 신앙의 존속이 교육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 사역을 마감하고 승천하기 전에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라고 명령하셨다. 성서의 말씀이 삶이 되게 교육하라는 이 명령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성육신 사건에 직결된다. 그래서 교육은 교회 공동체에 부과된 엄중하고 중차대한 사명이요 과제이며, 교회공동체는 성서의 말씀에 얼마나 순명하여 사느냐에 그 존재 의미가 달려 있다.
인간의 절대적인 자유를 인식하고 실현한 것은 근대의 소중한 유산이다. 신앙, 양심, 사상, 출판 등의 자유 말이다. 인식과 판단과 표현의 자유를 포괄하는 이런 자유 중에서 바탕을 이루는 것은 바로 신앙의 자유이다. 교회가 성경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은 신앙의 자유의 본체이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근거를 예배라고 할 때 예배에는 말씀의 교육이 이미 포함돼 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을 체험하고 이로써 삶의 현장에서 말씀이 작동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와 사회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예배이기 때문이다. 이 자유가 제한되는 것에 순응한다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지난 7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모 기독교 대학에 ‘채플 수업을 대체할 과목을 개설하라’는 취지의 권고문을 발표했다. 기독교 학교에서는 성경을 자유롭게 가르치며 예배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정부는 교육적인 평등과 형평성을 정책적으로 유지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성경 교육과 교육 일반의 형평성은 상충하지 않는다. 성경 교육 및 예배와 관련하여 학생과 부모의 선택권을 합리적으로 보장하는 다양한 방법이 이미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학생 본인의 선택으로 특정 기독교 학교를 지원하여 들어가는 경우, 그 학교의 교육 철학, 방침, 교육과정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미리 알려 지원 여부를 판단하게 할 수도 있다. 서구 사회에 비하여 기독교와 정부의 관계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학교와 정부 관련 부처의 대화가 사회적인 성숙의 과정이 되리라 믿는다.

 
 
 

2022년 11월호(통권 7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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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학교의 가르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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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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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국교회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교회는 지난 2년간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관념과 삶의 양식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는 이 비상한 시기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오히려 ‘우리 사회의 걱정거리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
김영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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