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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2022년 6월호)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본문

 

역사는 ‘공동의 기억’이라고 했던가. 필자는 전쟁 이후 세대임에도 6월이면 자연스레 한국전쟁의 아픔이 마치 나의 경험처럼 되살아난다. 교육과 문화를 통해 한국전쟁이 내 안에 스며들고 내면화되어 기억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전쟁은 전쟁 세대만의 경험이 아니라 한반도 모든 이들의 역사이다. 어찌 한국만이겠는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세상은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폭력 사회이다. 개인 간의 폭력이든 국가 간의 폭력이든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무섭다.
4세기 로마의 전략가 베게티우스(Flavius Vegetius Renatus)는 『군사학 논고』에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을 남겼다. 이 명제는 그 후 수많은 권력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전쟁을 합리화하는 데 남용되었다.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말처럼 모순적인 논리가 또 있을까! 마치 이건 ‘동그란 네모’가 있다고 우기는 것처럼 들린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스도교는 평화의 종교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실 때, 천사들은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노래했다. 그리스도가 평화의 왕으로 오셨음을 선포한 것이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위해 사시고, 가르치시고, 죽으셨다. 따라서 초대교회와 교회사 면면에는 그리스도교 평화주의 전통이 흐른다.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박해받던 종교에서 국가의 종교로 바뀌자 교회가 국가의 이익을 위한 폭력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고대교회의 아우구스티누스는 국가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도나투스 분파를 진압하기 위해 ‘정당한 전쟁론’을 제시했다. 그리스도교가 국가의 권위와 이익을 합리화하기 위해 전쟁을 용인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중세교회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탈환하겠다는 명분으로 ‘십자군 전쟁’이라는 기묘한 전쟁을 근 200년 동안 지속하였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그 의미와는 정반대로 가장 치열한 분쟁과 폭력과 전쟁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 과연 ‘정당한’과 ‘전쟁’이 한 단어로 묶일 수 있을까? ‘거룩한 전쟁’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리스도는 산상수훈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다.”(마 5:9, 표준새번역)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평화를 위해 기꺼이 죽은 한 알의 밀이 되었다. 한국전쟁의 아픔이 되살아나는 6월이 되면, ‘전쟁은 어쩔 수 없어’라는 체념이나 ‘전쟁은 평화를 위한 선택이야’라는 억지보다,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이 땅에 보냄 받은 밀알이야’라는 새로운 다짐이 필요할 것이다. 시인 신동엽의 외침이 새삼 새롭게 다가오는 6월이다. “껍데기는 가라 / 한라에서 백두까지 /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2022년 7월호(통권 7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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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246
우크라이나 전쟁난민의 고통을 생각하며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도시와 삶의 터전이 파괴되어 많은 난민이 생겨나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크나큰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그 여진으로 갈등과 분열을 경험하는 우리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한국전쟁 당시 WCC를 비롯한 세계교회가 전쟁 종식과 피난민 구호...

김영주 | 2022년 07월
열람중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역사는 ‘공동의 기억’이라고 했던가. 필자는 전쟁 이후 세대임에도 6월이면 자연스레 한국전쟁의 아픔이 마치 나의 경험처럼 되살아난다. 교육과 문화를 통해 한국전쟁이 내 안에 스며들고 내면화되어 기억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전쟁은 전쟁 세대만의 경험이 아니라 한반도 모든 이...
박경수 | 2022년 6월
244
누가 내 어머니이고 형제냐

‘기독교 가정’의 덕목은 무엇일까? 목회자이신 나의 아버지는 ‘가정 사역’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교회 일정을 제외한 시간과 에너지를 가족을 위해 헌신한 모범적인 가장이셨다. 1980년대, 한창 세대별 모임이 주류이던 시절에 교회에서 ‘가족 수련회’라는 여름 행사를 꾸준히 진행하...
백소영 | 2022년 5월
243
서광선의 신학 여정

오랫동안 「기독교사상」의 편집위원으로 봉사했던 서광선 선생이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생애 대부분을 신학 교수로 살았다. 서광선은 2018년에 출간한 저서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에서 자신의 생을 ‘정치신학’의 여정이라 불렀다. 서광선은 1931년 자강도 강계에서 태어나 1941년부터 만주 본계(本溪...
김흥수 | 2022년 4월
242
다양성과 포용성을 갖춘 교회를 꿈꾸며

그동안 한국교회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교회는 지난 2년간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관념과 삶의 양식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는 이 비상한 시기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오히려 ‘우리 사회의 걱정거리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
김영주 | 2022년 3월
241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며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지난 2021년 9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장례식에 야당 대통령 후보가 나타나자,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이 너도나도 안수기도를 해줬다고 해서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다종교 사회인 한국 사회에서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이야 여러 종교행사를 기웃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채수일 | 2022년 2월
240
비대면 시대, 교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SNS(사회관계망 서비스)는 이 시대의 징표가 되었고, 벌써 2년째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비대면 소통’은 이제 확고한 현실이자 일상처럼 우리 삶 한가운데 자리 잡았습니다. 기독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코로나19 방역으로 대면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예배는 온라인, 비대면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작은 교회는 줌(Zoom...
서진한 | 2022년 1월
239
성육신의 은총과 신비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이다. 교회력으로는 대림절이 시작되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축하는 성탄절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예전 같으면 각종 연말 송년모임에 더해 성탄절을 앞두고 다양한 행사와 모임으로 분주하겠지만, 올해에도 그럴 상황은 아닌 듯싶다. 지난해 초부터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간 코로나19 ...
이경호 | 2021년 12월
238
교회사가 이장식 박사를 추모함

한신대학교 명예교수 이장식 박사가 2021년 9월 15일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대학에서 교회사를 가르쳤으며 여러 권의 연구서도 펴냈다. 이것이 그의 교수로서의 생애였으며 저서들은 이제 한국 신학의 값진 유산이 되었다. 이장식 박사의 저작 중에서 그의 평생의 관심사가 들어있는 책은 『기독교와 국가』(1981)와 『...
김흥수 | 2021년 11월
237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30주년을 돌아보며

10월 9일은 한글날입니다. 우리는 한글이 매우 과학적이고, 모든 소리를 다 표현할 수 있으며, 컴퓨터 시대에도 최적이라고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한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흔히 ‘한글’ 하면 세종대왕, 집현전 학자 등만을 떠올리게 됩니다. 한글은 조선 초기인 15세기 중엽에 반포되었...
서진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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