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기독교사상」의 편집위원으로 봉사했던 서광선 선생이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생애 대부분을 신학 교수로 살았다. 서광선은 2018년에 출간한 저서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에서 자신의 생을 ‘정치신학’의 여정이라 불렀다.
서광선은 1931년 자강도 강계에서 태어나 1941년부터 만주 본계(本溪)에서 소년시절을 보냈다. 1945년 가을 강계로 돌아와서 공산 치하에서 중학 공부를 계속했다. 그 후 평양신학교에 다니다 6·25를 만났다. 총살된 ‘목사 아버지’를 평양의 어느 교회 뒷산에 묻고 월남하였다. 이것이 후일 그의 신학 여정에서 남북화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 개인적, 역사적 배경이었을 것이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서광선은 학부와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였다. 그 후 유니온신학교와 밴더빌트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한국에서는 조직신학 교수였다. 조직신학자들은 인간론이나 신론, 구원론 등의 추상적 주제들을 논하지만, 그의 저서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한국기독교 정치신학의 전개』, 『한국기독교의 새 인식』에서 잘 드러나듯이, 그의 관심은 비역사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민주화운동, 인권운동, 평화통일운동과 같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었다. 그가 얼마나 역사의 현장을 중시했는지는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라는 책의 서명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이것을 그의 신학 방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이것을 뉴욕 유니온신학교에서 배웠다고 했다. 당시 유니온신학교는 철학적 질문으로부터 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현실 문제로부터 신학을 논하는 학풍을 가지고 있었다. 유니온신학교에서 만난 박형규 목사로부터는 4·19혁명과 5·16쿠데타, 한국 기독교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서 배웠다.
그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현실 한복판에 서서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쳤지만, 그의 학문적 관심이 한국 사회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아시아신학에도 큰 관심을 가졌던 그는 아시아 전역에서의 신학연구 안내서 Asian Christian Theologies: A Research Guide to Authors, Movements, Sources의 공동 편집자였으며, 홍콩에 사무실을 둔 아시아 기독교고등교육연합재단의 부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최근 존 잉글랜드의 아시아기독교 역사서(Cranes ever Flying: Introduction to Asian Christian History and Theology)가 간행됐을 때는 아시아기독교사학회에 우리말 번역 출판을 부탁하였다.
서광선은 YMCA와의 관계도 깊었다. 그는 YMCA 운동의 기독교 정체성을 확립하고 운동과 사업의 방향을 잡는 일에 협력하였다. 1970년대 중반에는 한국YMCA 목적문을 만드는 데 참여했으며, 1990년대에는 세계YMCA 목적문(‘도전 21’)의 기초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94년에는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YMCA연맹의 회장이 되어 영국에서 시작된 YMCA의 150주년을 기념하였다. 이렇게 그는 1998년까지 세계YMCA연맹 회장으로 전 세계의 YMCA를 이끌었다.
서광선의 정치신학의 여정은 조국 남부에서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모세처럼 미완의 노정이었다. 그 길의 종착지인 남북의 화해와 통일은 우리의 과제로 남겼다. 장례식 없이 포천 어느 묘지에 묻힌 것이 못내 섭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