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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2021년 1월호)

 

  새해의 기원-연합하고 협력하는 평화의 공동체를 향하여
  

본문

 

<지난 세계는 죽어가고 있으며 새로운 세계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는 괴물의 시간이다. -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새해를 맞이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코로나19로 인한 두려움과 좌절에 빠져 있다. 잠시 통제할 수 있을 것 같더니 2차, 3차 유행으로 그 기세가 이어지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주목하게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세상은 죽어가고 있는데 아직 새로운 질서는 태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 괴물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전 지구적인 시스템을 생각하는 기준을 만들어 모두 협력하여 실행하고, 빠르게 평가하고 대처하여 괴물을 퇴치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생각하고, 예측하고, 계획하고, 건설해서 안전한 사회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괴물의 공포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려면 뉴노멀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4차 산업혁명 같은 큰 이슈에 직면한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개 교회 중심을 벗어나지 못한 채 대면 예배와 비대면 예배를 반복하는 동안 교인들의 정체성은 흔들리고 교회를 이탈하는 무리도 늘고 있다. 게다가 일부 몰지각한 목사들의 철면피적인 돌출행동으로 한국교회의 이미지가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교회는 현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문제의 핵심을 분석하는 한편 자정과 자생의 능력을 키워야 하겠다. “북이 바뀌면 리듬도 바뀐다. 따라서 스텝도 바뀌어야 한다.”라는 아프리카의 속담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것이 2021년 한국교회 앞에 놓인 상황이다. 한국교회는 낡아빠진 사상으로부터, 뒤틀린 관행으로부터, 고리타분한 사고로부터, 썩어빠진 전통으로부터, 쓸모없는 허세로부터 과감하게 돌아서서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는 결코 쉽지 않다. “늙은 개에게 새로운 기술을 가르치기 어렵다.”라는 서양 속담이 떠오른다. ‘같은 일을 같은 방법으로’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주변의 여건이 획기적으로 바뀐 탓이다. 그러므로 ‘같은 일을 새로운 방법으로’ 대처해나가야 새롭고 신선한 삶의 성취를 맛볼 수 있다.
한국교회의 병증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코로나바이러스만큼 무섭다. 교회를 해치는 분열의 악한 바이러스, 서로를 정죄하는 못된 바이러스, 너보다 잘 믿는다며 우쭐대는 비겁한 바이러스, 대형 교회가 보여주는 자만의 바이러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버린 자폐 바이러스가 무섭게 번지고 있다. 이 바이러스들이 지금 교회를 서서히 몰락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선한 백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백신은 이미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서가, 복음의 내용이 바로 백신인 것이다. 이웃 사랑이, 사회적 영성이, 나눔과 섬김이, 정의와 평화가, 생명과 화해가, 희생과 봉사가 한국교회의 백신이다. 이들 백신의 효험은 사방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사람들은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이런 백신을 비웃고 기피하는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 어째서일까? 백신의 효능에 의심을 품기 때문일까?
맹목적인 신앙태도를 혁파하고 일치운동의 정신을 드높여야 한다. “교리는 갈라졌지만 봉사는 같이한다.”라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참뜻을 실천하여 선례를 남기면 좋겠다. 특별히 당국이 추진하는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서 모두가 납득할 견해를 도출해 일치운동의 정신을 수행하면 좋겠다. 그래야 “하나요,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의 이상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서로 연합하여 협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또한 개 교회나 교단을 뛰어넘어 세계교회와 힘을 모으는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아시아교회는 물론 세계교회와 함께 선교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예를 든다면, 1950년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전도부에서 최찬영 목사와 김순일 목사를 선교사로 태국에 파송한 경우이다. 이들은 현지 교회와 협력하며 많은 선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최찬영 선교사는 태국성서공회를 창설하여 초대 총무로 취임한 후 오랫동안 재임하면서 태국어 성서를 발간하여 널리 보급하였다. 또한 대한성서공회는 세계성서공회의 위탁을 받아 여러 가지 언어로 된 성서를 인쇄해서 세계 도처로 공급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앞으로도 한국교회는 그동안 쌓아온 인적 자원과 물적 토대를 기반으로 아시아교회와의 협력과 교류, 연대를 통해 이웃 아시아교회들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은 종교의 활동 범위를 교묘하게 규제하고 있다. 그리고 이웃 종교들이 워낙 큰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아시아의 교회는 소수종교로 주눅들어 있다. 이런 현상을 이겨내는 방법은 지구생명평화공동체를 든든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 공동체는 민중의 안보, 핵 위험, 다양한 갈등, 환경위기와 여러 생명체의 멸종위기 등을 총체적으로 보듬어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증진시키는 공동체를 뜻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러한 공동체를 완성하는 일이라 하겠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교회의 ‘마을 만들기’와 같은, 바닥으로부터의 기독교공동체 운동을 선교의 대안적 방안으로 확산해야 한다.
그러기에 평신도를 육성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씨를 뿌리는 농부의 역할, 고기 잡는 어부의 역할, 병든 사람을 고치는 의사의 역할을 하려면 유능한 인재가 필요하다. 외견으로는 번듯해 보이는 교회도 성도의 교제가 부실한 썰렁한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 훌륭한 평신도들이 그들의 삶의 자리를 바꾸어나가도록 해야 한다. 건강한 평신도가 건강한 교회를 만든다.
또한 이웃 종교와 손을 잡고 평화 만들기에 연대하고 힘을 보태야 한다. 노르웨이의 평화학자 갈퉁(Johan Galtung)은 “구조적 폭력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하였다. 그러나 함석헌은 “구조적 폭력을 깨뜨리는 일이 생명운동”이라면서 이를 ‘평화’라고 하였다. 인종, 종교, 신분, 성별 등으로 인한 차별이라는 구조적 폭력이 우리에게 일상처럼 자리잡고 있다. 한국교회는 성서에서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널리 알리고 우리 모두에게 임하도록 힘써야 하겠다. 한국교회는 나름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다. 분야별로 선교단체들도 본래의 선교적 목적을 완수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영세한 선교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하는 교회공동체 문화를 강화해야 하겠다. 새해에는 한국교회가 평화공동체 문화를 확산시켜 구조적 폭력을 원천적으로 제거해야 하겠다.
특히 우리나라의 분단체제는 참 평화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 폭력이다. 한국교회는 우리나라가 이런 상황에서 평화공존과 평화통일로 나아가도록 꾸준하게 노력하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비롯한 많은 에큐메니컬 기구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를 표명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계기로 세계교회와 함께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을 벌였다. 지난해 8월 15일에 화해통일위원회가 발표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평화의 하나님! 이 땅에 뿌리 내린 평화의 나무는 지금도 자라고 있습니다. 때론 외압에 시달려도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평화의 열매를 거둘 것을 기대합니다. 바라기는 안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전쟁연습을 중단하고, 보장이란 미명으로 개발하는 모든 무기생산을 그치게 하소서. 주님,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맺음으로 북과 남/남과 북이 평화공존과 상생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부활하신 예수는 오늘도 우리의 일상을 애처롭게 지켜보고 계신다. 디베랴 바다에서 그물질을 하던 제자들에게 예수는 고기 잡는 일을 이제 그만두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당부했다. 한 번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사람을 낚는 제자가 되라고 부르셨다. 환경을 파괴하고, 천하보다 귀중한 생명을 죽이는 못된 피조물이 바로 사람이기에 그 사람을 낚아 사람 되게 만들고 거듭나게 하라고 예수는 당부했다.
예수는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신다. 자연재해를 비롯한 각종 고난의 현장에서, 일터에서, 전쟁터에서, 난민촌에서, 병실에서, 휴전선에서 예수의 음성을 듣고 예수의 현존을 체험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예수를 갈급히 찾는 사람들이, 진리에 목마른 사람들이, 정의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넉넉한 활력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정의, 평화, 생명,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하겠다. 주님의 평화가 독자들에게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안재웅 |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총무와 세계기독학생연맹(WSCF)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무로 19년간 홍콩에서 근무하고 정년 은퇴했다. 현재 (사)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 한국YMCA전국연맹유지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2월호(통권 7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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