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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2020년 7월호)

 

  월북에서 방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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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거주자들의 월북은 분단 직후와 전쟁 시기에 가장 많았다. 소련 측 자료에 따르면, 1946년 1월부터 1948년 8월 사이의 월북자 수는 13만 2,336명이었다. 이들 중 최소 1,000여 명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수립 과정에 참여하였다. 전쟁 시기에도 대규모의 월북이 발생하였다. 전쟁이 발발한 후 서울에 남아 있던 정치인들 일부는 자진 월북하였다. 또 최소 10만 이상의 청년들이 의용군에 입대해 인민군이 되었다. 이 시기에 월북한 사람들의 숫자는 정확히 알 수 없는데, 1952년 한국 정부가 공식 조사한 월북자는 1만여 명이었다. 그러나 38선을 넘어 북으로 간 사람은 납북자를 포함해 10만 명에 이른다는 주장부터 60만 명에 이른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확인하기 어렵다. 전쟁 이후에도 그 수는 크게 줄었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월북이 있었다. 반정부 인사, 군인, 사업가, 공무원, 유학생 등이 북으로 갔다. 전쟁 이후 월북자는 약 600명으로 추정되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육군사관학교 교장, 서독 대사, 외무부 장관, 천도교 교령을 등을 지낸 최덕신의 월북이다. 그는 10여 년간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86년 아내 류미영과 함께 평양으로 갔다.
방북은 일시적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것이라서 월북과 구별된다. 방북이 시작된 것은 “쌍방은 끊어졌던 민족적 연계를 회복하며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남북 사이에 다방면적인 제반교류를 실시하기로 합의”한 7・4남북공동성명(1972) 이후였다.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진 개인 방북은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 거주 교포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단체 방북은 조국통일해외기독자회 이화선, 이영빈, 김순환의 평양행이 효시일 것이다. 독일에 거주하던 세 사람은 남북의 통일 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1981년 6월 3주 동안 평양, 원산 등지를 방문하고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의 대표들과 통일대화를 갖기로 합의하였다.
남한 거주자들이 대거 방북하기 시작한 것은 대북지원과 금강산 관광 때문이었다. 대북지원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힘입어 교회와 민간단체는 대북지원에 나섰다. 이 시기에 여러 교단 대표들의 방북이 이루어졌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교류와 협력을 더 빠르게 증진시켰다. 금강산 가는 길도 열렸다. 2006-2008년에 금강산을 방문한 남쪽 주민은 77만 9,418명에 달했다. 2007년에는 개성 관광도 열렸다. 그러나 2008년 여성 관광객의 피격 사망 사건 후로 방북자는 급감하였다.
지금은 정세가 달라져 방북의 길이 끊겼다. 북한 정부는 남북 협력의 공간이었던 개성공단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다. 남북 협력과 대화 의지를 지워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과 북의 주민들이 비무장지대를 자유로이 오가는 새 시대를 꿈꾼다. 월북이나 탈북이 아니라 방북과 방남의 길이 어서 활짝 열리기를 고대한다.

 
 
 

2020년 7월호(통권 7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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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거주자들의 월북은 분단 직후와 전쟁 시기에 가장 많았다. 소련 측 자료에 따르면, 1946년 1월부터 1948년 8월 사이의 월북자 수는 13만 2,336명이었다. 이들 중 최소 1,000여 명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수립 과정에 참여하였다. 전쟁 시기에도 대규모의 월북이 발생하였다. 전쟁이 발발한 후 서울에 남아 있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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