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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2020년 6월호)

 

  평화주의 불모지 한국교회
  

본문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교회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뉴욕에 있는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에 전보를 친 일이었다. 북의 침략을 알리면서 긴급 도움을 요청하는 전보였다. 그 후 휴전협상이 진행될 때는 전국의 도시에서 휴전협정 반대 기도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외국으로부터는 유엔군의 참전과 무력을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퀘이커나 메노나이트 같은 평화주의 교회들, 캐나다연합교회, 프랑스교회, 미국의 감리교사회행동연맹 등은 유엔군의 한국전 개입에 비판적이었다. 물론 외국 교회에서도 휴전 논의 이전에는 무력 응징을 주장한 라인홀드 니버의 기독교 현실주의가 우세했다.
3년간의 전쟁 중에 한국교회는 평화주의의 불모지였다. 전쟁 지지 일색이었지만, 한국교회가 평화주의 전통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박형룡 박사는 「신학지남」(1929)에 서구 교회의 평화주의 논쟁을 소개하면서 비전론(非戰論)을 지지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전쟁이 터졌을 때는 침묵을 지켰다. 우리 교회에 평화주의 전통이 뿌리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정작 이를 소개한 사람도 입을 다문 것이었다. 전쟁이 터지면 앞장서서 무력 사용을 반대하는 교파가 퀘이커와 재세례파인데, 우리나라에는 그 전통이 들어오지 않은 데다 북한 정권을 사탄으로 여겼으므로 북과 협상하거나 휴전하자는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을 성찰한 이는 함석헌 선생이 처음이었다. 그가 「사상계」(1971)에서 교회를 지목하여 이때껏 남의 나라 침략 속에 사는데 평화운동 하나 일으킨 것이 없다고 한 것은 교회의 6・25 경험이 반영된 말이었다. 그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고민하는데 교회가 강제징병에 대한 양심적 거부 하나 지도해준 것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함석헌이 이렇게 교회 현실을 한탄하던 시기에 교회와 사회에는 평화운동이 등장하지 않았다. 평화주의 전통도 소개되지 않았다. 다만 하나 있다면, 1970년대 중반 무렵 미국의 대표적인 평화운동 단체 ‘화해의 펠로우십’(Fellowship of Reconciliation) 소장 리처드 디츠가 서울에 와서 일부 선교사들에게 비폭력 저항, 평화주의를 가르친 일이다. 화해의 펠로우십은 한국전쟁 때 군사력을 군사력으로 대응하는 유엔의 정책을 비난하면서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한 단체였다. 그 후 남북 간에 휴전체제의 종식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종전선언을 협의한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였다. 당시 다수의 교회는 그것을 우려하였다. 북을 타협이나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굴복시켜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쟁 발발 70년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확실히 옛일이 되었다. 전쟁은 과거지사가 되었는데도 전쟁을 지지하던 멘탈리티는 한국교회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하기야 전쟁은 휴전이지 종결 상태가 아니니 그런 멘탈리티가 지속되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시민사회와 종교계의 평화운동이 필요한 이유다.

 
 
 

2020년 12월호(통권 7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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