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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2019년 12월호)

 

  통일신학자들을 추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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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통일신학의 선구자들 몇몇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화선 목사와 이영빈 목사는 독일에서 사망하였다. 송기득 교수와 손규태 교수는 지난 9월에 우리 곁을 떠났다. 이화선과 이영빈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해외에서 통일운동을 시작한 인물들이라면, 송기득과 손규태는 신학자로서 평화통일의 민족적, 신학적 과제를 진지하게 모색한 이들이었다.
감리교신학대학에서 공부한 이영빈 목사는 한국신학대학 출신의 이화선 목사와 함께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 기독자간 대화”를 성사시켰다. 이 모임은 해외 교포 기독자들과 조선그리스도련맹 지도자들의 대화 모임으로, 첫 모임은 1981년 11월 비엔나에서 열렸다. 이영빈은 2018년 12월 14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소천했으며, 이화선은 그보다 1년 앞서 소천, 두 사람 다 프랑크푸르트에 묻혔다. 두 사람은 통일운동의 방식에서 갈등을 빚기도 하였으나, 1950년대 후반 체코의 로마드카 교수와 독일의 이반트 교수가 주도하여 창립한 기독교평화회의(Christian Peace Conference)의 한국인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이영빈은 조국통일해외기독자회에서 발행한 정기간행물 「통일과 기독교」에서, 이화선은 개인 잡지 「화해」를 통해 기독교와 맑시즘의 대화를 시도하면서 조선그리스도교련맹과 접촉했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로부터 ‘프로코뮤니스트’(procommunist)로 몰린 적이 있다.
불과 세 달 전에는 송기득 교수와 손규태 교수가 사망했다. 두 신학자는 우리 민족의 통일과 한반도의 평화에 관해서 깊은 성찰이 담긴 다수의 글을 남겼다. 송기득은 북미주기독학자회에서, 손규태는 재일대한기독교회가 주최한 ‘조국의 평화통일과 선교에 관한 기독자 도쿄회의’에서 주제강연을 맡기도 했다. 남과 북은 1972년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통일 원칙을 담은 7・4 남북 공동성명을 채택했는데, 두 사람은 각각의 주제강연에서 무엇보다도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해야 한다는 원칙을 중시하였다. 사상적 차원에서의 민족대단결은 기독교와 주체사상 또는 기독교와 맑시즘의 차이를 초월해야 하는데, 손규태는 주체사상의 인정 문제, 송기득은 주체사상의 수용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이었다.
통일운동, 통일신학의 선구자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경험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과제도 남겼다. 그 경험을 배우고 그들이 남긴 과제를 맡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이것은 통일신학의 선구자들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통일에 관하여 그들이 남긴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도 필요하다. 한국 기독교는 1970년대 후반 이후 우리 사회에서 남북 화해 및 통일운동을 선도해왔으나, 기독교계의 통일 사료(문서, 포스터, 사진, 영상 등)를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대학이나 기관은 한 군데도 없다. 이러고도 그들이 구축해놓은 통일신학의 기반이, 한국교회가 축적해온 통일선교의 전통이 유지될 수 있을까?

 
 
 

2019년 12월호(통권 7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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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학자들을 추모함

최근 통일신학의 선구자들 몇몇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화선 목사와 이영빈 목사는 독일에서 사망하였다. 송기득 교수와 손규태 교수는 지난 9월에 우리 곁을 떠났다. 이화선과 이영빈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해외에서 통일운동을 시작한 인물들이라면, 송기득과 손규태는 신학자로서 평화통일의 민족적, 신학적 과...

김흥수 | 2019년 12월
213
3·1운동 100주년이 저물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의 해가 저물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2・8독립선언,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관한 다수의 논문도 발표되었다. 정부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위원회를 통해 기념사업을 펼쳤다. 우리 시대에는 더 이상 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행사가 교회 안팎에서 개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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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30주년과 한반도

1989년 동서 베를린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무너지는 날, 나는 독일 함부르크에 있었다. 당사자인 독일 사람들은 물론, 어쩌면 지구 위에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독일 통일을 현지에서 같이 경험하였다. 역사의 전환은 기획되거나 계획된 대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처럼 보이는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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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명성 사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재판국의 판결이 여러 TV 방송에서, 그것도 저녁 시간 메인뉴스에서 다뤄졌다. 목사 등 개인의 일탈을 탐사보도나 가십 형식으로 다룬 적은 있지만, 특정 종교, 그것도 특정 교단 재판국의 판결을 주요 소식으로 일제히 보도하는 일은 우리나라 방송 사상 초유의 일일 게다. 놀랍고 민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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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기독교의 정치 참여: 세상에서 세상을 넘어

빌라도 법정의 마지막 심문과 답변(요 18:33-38)을 보면 이번 특집에서 다루는 기독교와 현실정치의 관계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예수는 바로 이 세상에 ‘내 나라’라고 표현하신 하늘나라를 선포하기 위해 로마제국에 성육하셨다. 유대인과 로마로 대변되는 온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요한복음의 기록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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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마다 설교를 준비하는 방법이 제각기 다르겠지만, 설교의 영원한 텍스트는 성서이다. 그러므로 목사에게는 성서에 대한 올바른 지식(언어적, 역사적, 고고학적, 문학적, 해석학적 방법론 등)을 습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신학교육의 가장 큰 비중도 마땅히 성서 연구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서에 대...
채수일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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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D. 아펜젤러의 희생적 죽음

이번 6월이면 6・25전쟁이 일어난 지 69주년이 된다. 그 전쟁은 수많은 사회문제를 유발했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전쟁 (피)난민이 됐다. 1951년 정부의 집계에 따르면, 남한 인구 2,100만 명 중 782만 명이 난민이었다. 당시 정부는 난민의 위기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1951년부터 40여 개...
김흥수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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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그리스도교련맹은 1946년 창립 시 “기독교의 발전에 매진할 것”을 강령으로 채택했다. 평양에서 간행된 『조선대백과사전』(2000)은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을 “우리 나라 그리스도교인들의 권리와 리익을 옹호하며 그들의 신앙생활을 지도하는 민주주의적이며 초교파적인 그리스도교 조직”으로 설명하고 있다. ...
김흥수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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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이다. 기독교인으로서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부활신앙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부활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한국교회가 부활절 예배를 함께 드려야 한다는 명제가 우선순위인 경우가 많았다. 1947년 4월 6일 한국교회 최초의 부활절 연합예배가 남산에서 거행되었다. 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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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보는 3·1운동 민족대표, 김창준 목사

김창준(1890-1959) 목사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된 것은 1921년 12월 22일이었다. 그날 그는 회색 두루마기 차림에 웃음을 띠고 감옥을 나와서 이런 말을 남겼다. “옥중에 일천칠백 명의 죄수가 있으니까 기회 있는 대로 전도하였노라.”(「동아일보」, 1921년 12...
김흥수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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