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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2019년 11월호)

 

  3·1운동 100주년이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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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의 해가 저물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2・8독립선언,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관한 다수의 논문도 발표되었다. 정부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위원회를 통해 기념사업을 펼쳤다. 우리 시대에는 더 이상 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행사가 교회 안팎에서 개최되었다. 그 100주년의 해를 두 달 남겨놓고 있다. 사업과 행사는 모두 끝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서재로 돌아와 3・1운동이 어떻게 역사서에 기술되었는지, 3・1운동을 이해할 때 어떤 사항이 논쟁거리였는지 조용히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보자.
3・1운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숭실대학교 김양선 교수의 “3・1운동과 기독교계”가 처음이었다. 35쪽이나 되는 긴 논문이다. 기독교계의 3・1운동에 대한 첫 학문적인 연구였는데, 3・1운동 50주년을 기념하여 동아일보사가 펴낸 『3・1운동 50주년 기념논집』(1969)에 실렸다. 김양선은 이 글을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하고 1970년에 사망했다.
김양선 사후에 등장한 교회사가는 연세대학교의 민경배 교수였다. 그가 1972년 『한국기독교회사: 한국 민족교회 형성 과정사』를 펴냈다.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서에서 3・1운동이 하나의 장으로 다뤄진 것은 이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책은 민족교회 사관을 표방한 책인데, 3・1운동이 그 사관을 구성하는 주요 테마로 등장하였다.
그 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3・1운동 연구를 주도해왔다. 이 연구소는 여러 차례의 학술대회를 통해 3・1운동 연구에 매진했다. 올해 이 연구소에서는 방대한 분량의 자료집 『3・1독립운동과 기독교』(전 3권)를 펴냈고, 『3・1운동과 기독교 민족대표 16인』도 간행하였다. 이 두 간행물은 올해 교회사 학계의 3・1운동 연구에서 최대 성과였다.
3・1운동 연구에는 어떠한 쟁점들이 있었을까? 한국사 연구자들은 누가 3・1운동을 이끌었는가를 놓고서 오래전부터 ‘민족대표 주도론’과 ‘민중 주도론’으로 대립했다. 1980년대에 우리 사회에 맑시즘이나 주체사상이 수용되면서 급속하게 민중 주도론으로 기운 적이 있다. 이 시기에 교회의 역사가들은 기독교 민족대표 16인의 역할을 변호해야 했다. 올해는 ‘3・1운동’이라는 용어보다는 ‘3・1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역사가들로부터 제기되었다.
1919년 3월 1일 발표된 독립선언서는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한다. 남북 분단 속에서 그 선언 100주년의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지난 9월에는 통일과 평화에 관해 여러 편의 글을 남긴 송기득과 손규태 선생도 우리 곁을 떠났다. 독립선언서의 한마디 한마디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 계절이다.

 
 
 

2020년 6월호(통권 7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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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평화주의 불모지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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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수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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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창궐 사태를 겪으니 과거 한국교회의 공중보건위생 사업이 새삼스럽다. 한국교회 출발의 큰 축은 의료사업이었으며, 의료선교의 전통은 한국교회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1,000페이지가 넘는 이만열 교수의 『한국기독교의료사』(2003)가 이것을 잘 입증하는데, 신천지예수교와 일부 교회에서 나타난 코...
김흥수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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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코로나19’가 우리 사회를 덮쳤다. 소강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여겨지던 이 역병이 대구의 신천지예수교 신도들로부터 대규모로 확산된 것이 드러나면서 신천지는, 정부는 물론 사회의 각계각층으로부터 격렬히 비난받고 있다. 사교로까지 몰리고 있다. 이런 비난은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원인 중...
김흥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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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개별관광, 민간이 나서라

남한 관광객 피살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1998-2008)이 문을 닫으면서 공식적인 집단 관광이 끊겼고,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개성공단(2002-16)도 닫혔다. 최근 들어 이를 풀어볼 전향적 조치의 하나로 남한 정부가 ‘개별관광 허용’을 통한 탈출구 모색에 나섰다. 관광 자체는 유엔의 제재 대상이 아니...
박종화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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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역사박물관을 운영하며

구세군역사박물관은 2003년에 설립되었다. 기독교 교단의 박물관으로는 국내 최초이다. 필자가 구세군사관학교에서 사역하던 1987년, ‘구세군역사자료실’을 교내에 설치하여 자료 수집부터 시작한 일이 모멘텀이 되었고, 25년의 시간과 노력이 축적되어 서울시기념물 제20호 문화재로 지정된 근대 건축물인 구세군중...
황선엽 | 2020년 2월
215
새로운 교회를 모색하는 길목에서

「기독교사상」 애독자 여러분에게 새해 인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복이 새해 모든 날(日)과 시(時)마다 가득하시기를 손 모아 빕니다. 최근 들어 새롭고도 다양한 형태의 교회와 선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생겨나고 있고 생겨나야 하며, 선교에도 다양한 접근이 있어야 ...
서진한 | 2020년 1월
214
통일신학자들을 추모함

최근 통일신학의 선구자들 몇몇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화선 목사와 이영빈 목사는 독일에서 사망하였다. 송기득 교수와 손규태 교수는 지난 9월에 우리 곁을 떠났다. 이화선과 이영빈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해외에서 통일운동을 시작한 인물들이라면, 송기득과 손규태는 신학자로서 평화통일의 민족적, 신학적 과...
김흥수 | 2019년 12월
열람중
3·1운동 100주년이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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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수 | 2019년 11월
212
독일 통일 30주년과 한반도

1989년 동서 베를린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무너지는 날, 나는 독일 함부르크에 있었다. 당사자인 독일 사람들은 물론, 어쩌면 지구 위에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독일 통일을 현지에서 같이 경험하였다. 역사의 전환은 기획되거나 계획된 대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처럼 보이는 ‘(카...
채수일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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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 사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재판국의 판결이 여러 TV 방송에서, 그것도 저녁 시간 메인뉴스에서 다뤄졌다. 목사 등 개인의 일탈을 탐사보도나 가십 형식으로 다룬 적은 있지만, 특정 종교, 그것도 특정 교단 재판국의 판결을 주요 소식으로 일제히 보도하는 일은 우리나라 방송 사상 초유의 일일 게다. 놀랍고 민망하...
서진한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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