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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2019년 6월호)

 

  헨리 D. 아펜젤러의 희생적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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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6월이면 6・25전쟁이 일어난 지 69주년이 된다. 그 전쟁은 수많은 사회문제를 유발했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전쟁 (피)난민이 됐다. 1951년 정부의 집계에 따르면, 남한 인구 2,100만 명 중 782만 명이 난민이었다. 당시 정부는 난민의 위기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1951년부터 40여 개에 달하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구호단체들이 내한하여 활동했다. 세계 교회의 구호 책임자들도 내한하였다. 미국 가톨릭구제위원회 대표 에드워드 스완스트롬 신부, 미국기독교세계봉사회의 아르놀드 보트,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난민구호책임자 엘판 리즈가 그런 사람들이다.
기독교세계봉사회는 미국 NCC의 구호단체로 미국 개신교와 정교회의 구호활동을 대행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 교회들의 구호활동도 맡았다. 기독교세계봉사회 한국위원회의 헨리 D. 아펜젤러 목사는 이때 내한한 구호 책임자였다. 그는 한국 감리교회의 첫 번째 선교사 헨리 G. 아펜젤러의 아들로 1940년 일제의 압력으로 한국을 떠날 때까지 이미 25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한 바 있었다. 아펜젤러 목사는 부산을 중심으로 개신교의 구호사업, 사회복지, 교육 및 건강 사업, 지역개발 사업을 책임졌다. 60대 초반의 아펜젤러는 동분서주하며 3년 가까이 “피난민과 고아와 과부들의 어려움을 돌보아주는 일”을 하다가 쓰러졌다. 그는 1953년 11월 위독한 상태로 미국에 돌아가 뉴욕 감리교병원에서 12월 1일 65세의 일기로 순직하였다. 당시 아들 아펜젤러는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세 사람의 외국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아들 아펜젤러의 갑작스러운 사인에 대해서는 기록마다 다르다. 교회사가 김양선은 과로를, 미국 연구자가 쓴 어떤 논문은 악성 빈혈을 들고 있다. 아펜젤러 부자의 활동 자료를 모은 『아펜젤러와 한국』(2013)이라는 책에서는 아들 아펜젤러가 거리에서 개에 물렸는데 그것이 사인이었다고 설명한다. 불과 몇 해 전 그의 누이 앨리스가 이화여대 채플에서 설교하다 순직했다면, 아펜젤러는 구호활동을 하다 사망한 것이었다. 아펜젤러가(家)의 희생적 죽음이었다.
앞서 말한 WCC의 난민구호 책임자 리즈는 한국 방문 보고서에서 한국인 중 절반가량이 구호가 필요하다면서 그중에서도 고아와 신체장애자, 주거 부정의 청소년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들과 그 자녀들을 시급한 구호 대상으로 분류하였다. 이 보고서에서 리즈는 구호활동을 확대하는 것이야말로 세계 교회들의 “도덕적 의무”라고 단정하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북녘 동포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세계 교회가 아니라 한국교회가 그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

 
 
 

2019년 7월호(통권 7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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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209
목사와 성서

목사마다 설교를 준비하는 방법이 제각기 다르겠지만, 설교의 영원한 텍스트는 성서이다. 그러므로 목사에게는 성서에 대한 올바른 지식(언어적, 역사적, 고고학적, 문학적, 해석학적 방법론 등)을 습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신학교육의 가장 큰 비중도 마땅히 성서 연구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서에 대...

채수일 | 2019년 07월
열람중
헨리 D. 아펜젤러의 희생적 죽음

이번 6월이면 6・25전쟁이 일어난 지 69주년이 된다. 그 전쟁은 수많은 사회문제를 유발했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전쟁 (피)난민이 됐다. 1951년 정부의 집계에 따르면, 남한 인구 2,100만 명 중 782만 명이 난민이었다. 당시 정부는 난민의 위기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1951년부터 40여 개...
김흥수 | 2019년 6월
207
기독교의 발전에 매진해야 할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은 1946년 창립 시 “기독교의 발전에 매진할 것”을 강령으로 채택했다. 평양에서 간행된 『조선대백과사전』(2000)은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을 “우리 나라 그리스도교인들의 권리와 리익을 옹호하며 그들의 신앙생활을 지도하는 민주주의적이며 초교파적인 그리스도교 조직”으로 설명하고 있다. ...
김흥수 | 2019년 5월
206
부활절 연합예배 유감

부활절이다. 기독교인으로서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부활신앙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부활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한국교회가 부활절 예배를 함께 드려야 한다는 명제가 우선순위인 경우가 많았다. 1947년 4월 6일 한국교회 최초의 부활절 연합예배가 남산에서 거행되었다. 1946년...
김영주 | 2019년 4월
205
다시 생각해보는 3·1운동 민족대표, 김창준 목사

김창준(1890-1959) 목사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된 것은 1921년 12월 22일이었다. 그날 그는 회색 두루마기 차림에 웃음을 띠고 감옥을 나와서 이런 말을 남겼다. “옥중에 일천칠백 명의 죄수가 있으니까 기회 있는 대로 전도하였노라.”(「동아일보」, 1921년 12...
김흥수 | 2019년 3월
204
자주적 교회, 주체적 신학의 아우성

유럽이나 미국식 기독교에 맞서서 급진적 토착교회 운동을 전개한 아시아의 인물로는 인도네시아의 크야이 사드락, 중국의 홍수전,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독자적인 성서 해석과 선교 방식, 또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활동한 사람들이다. 한국인으로서는 용문산기도원을 ...
김흥수 | 2019년 2월
203
다시 생각해보는 평양의 기독교 문제

2018년은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가 대전환을 이룬 해였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했는가 하면, 남북이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소초(GP)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남북 철도 공동조사도 시작됐다. 새해에는 종교 영역에서도 남과 북의 공동사업이 있기를 기대한다. 가장 중요한 공동사업은 남북 종교인들 간...
김흥수 | 2019년 1월
202
분단체제 해체기의 인권 의식

10월 30일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행위가 병역법 88조 1항에 규정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사법적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1950년대 초반 이후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회 신자들은 양심적 집총거부로, 여호와의 증인 ...
김흥수 | 2018년 12월
201
왜 우리는 못 들은 척할까

인천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48차 총회 보고서가 지난 10월 8일에 “지구온난화 1.5℃”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2015년 파리 기후협약에서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 시대 이전보다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하며, 동시에 1.5도 수준을 넘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이번 보...
양권석 | 2018년 11월
200
통일 대화에 기여한 북한 고기준 목사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 기독자 간의 대화’(1981)는 남북교회 간 사상적 대화의 효시였다. 이 대화에서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중앙위원회 고기준 목사는 자신을 “대대로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환갑이 지나도록 신앙생활을 하여온 기독자”로 소개하면서 “저도 한때 사회주의에 ...
김흥수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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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호(통권 7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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