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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2018년 12월호)

 

  분단체제 해체기의 인권 의식
  

본문

 

10월 30일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행위가 병역법 88조 1항에 규정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사법적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1950년대 초반 이후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회 신자들은 양심적 집총거부로,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로 처벌받아왔다. 1950년 이후 2011년 11월 말까지 양심적 병역거부로 실형을 선고받은 여호와의 증인 청년 신자들은 무려 1만 6,225명이나 된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700명씩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고 수인이 되었다. 전 세계에서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의 90% 이상이 한국인이라는 통계는 충격적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란 헌법 제19조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근거로, 군에 입대하는 것에 대하여, 또는 병역의 의무 전반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하는 행위를 말한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최초로 합법화된 기록으로는 1575년 네덜란드에서 메노나이트 신도들이 세금으로 군복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757년 영국은 퀘이커 신도들의 군복무를 면제하는 법률을 제정하였다. 메노나이트와 퀘이커는 ‘역사적 평화교회’로 불린다. 이들의 병역거부는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적 태도와 관련된 문제였다.
한국 기독교사에서 양심적 집총거부로 또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평화주의적 신념을 실천한 사람들은 재림교회와 여호와의 증인 청년들이었다. 이 교회의 신자들 중에서 6・25 때부터 집총을 거부하거나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주류 교회들은 그들의 옥살이를 당연시하거나 그 문제에 대해 무감각했다. 가장 먼저 우려를 제기한 이는 함석헌 선생이었다. “이때껏 남의 나라 침략 속에 사는데 평화운동 하나 일으킨 것이 없지, 젊은이들이 그렇게 고민하는데 강제징병에 대한 양심적 거부 하나 지도해 준 것이 없지.” 함석헌이 “한국 기독교 무엇을 하려는가”(「사상계」, 1956년)라는 글에서 한국교회의 반성을 촉구하면서 한 말이다. 그 무렵 홍현설 교수는 “집총을 거부한 안식교 청년이나 여호와의 증인 청년이 양심적인 반전론자였다면 자기들의 종교적 양심 때문에 이런 길을 취한 데 대하여 이를 비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안식교도의 집총거부사건에 대하여,” 「기독교사상」, 1959년 3월호)
2018년에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양심의 자유를 처벌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교회도 이제는 분단체제 해체기에 안보보다는 종교의 자유와 인권의 시각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교회가 정치적 차원의 인권운동이나 반독재 민주화운동에서 앞장섰지만 왜 병역거부 문제를 인권으로 생각하지 않았는지 또는 평화운동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었는지 이번 기회에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2019년 5월호(통권 7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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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그리스도교련맹은 1946년 창립 시 “기독교의 발전에 매진할 것”을 강령으로 채택했다. 평양에서 간행된 『조선대백과사전』(2000)은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을 “우리 나라 그리스도교인들의 권리와 리익을 옹호하며 그들의 신앙생활을 지도하는 민주주의적이며 초교파적인 그리스도교 조직”으로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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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연합예배 유감

부활절이다. 기독교인으로서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부활신앙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부활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한국교회가 부활절 예배를 함께 드려야 한다는 명제가 우선순위인 경우가 많았다. 1947년 4월 6일 한국교회 최초의 부활절 연합예배가 남산에서 거행되었다. 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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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보는 3·1운동 민족대표, 김창준 목사

김창준(1890-1959) 목사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된 것은 1921년 12월 22일이었다. 그날 그는 회색 두루마기 차림에 웃음을 띠고 감옥을 나와서 이런 말을 남겼다. “옥중에 일천칠백 명의 죄수가 있으니까 기회 있는 대로 전도하였노라.”(「동아일보」, 1921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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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적 교회, 주체적 신학의 아우성

유럽이나 미국식 기독교에 맞서서 급진적 토착교회 운동을 전개한 아시아의 인물로는 인도네시아의 크야이 사드락, 중국의 홍수전,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독자적인 성서 해석과 선교 방식, 또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활동한 사람들이다. 한국인으로서는 용문산기도원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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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보는 평양의 기독교 문제

2018년은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가 대전환을 이룬 해였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했는가 하면, 남북이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소초(GP)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남북 철도 공동조사도 시작됐다. 새해에는 종교 영역에서도 남과 북의 공동사업이 있기를 기대한다. 가장 중요한 공동사업은 남북 종교인들 간...
김흥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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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48차 총회 보고서가 지난 10월 8일에 “지구온난화 1.5℃”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2015년 파리 기후협약에서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 시대 이전보다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하며, 동시에 1.5도 수준을 넘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이번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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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 기독자 간의 대화’(1981)는 남북교회 간 사상적 대화의 효시였다. 이 대화에서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중앙위원회 고기준 목사는 자신을 “대대로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환갑이 지나도록 신앙생활을 하여온 기독자”로 소개하면서 “저도 한때 사회주의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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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만 해도 곧 전쟁이 날 듯 갈등 국면을 최고조로 높여가던 남북관계가 평창올림픽을 기점으로 화해와 평화 패러다임으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남북은 물론 북미, 그리고 북과 국제사회도 상호 신뢰구축과 평화정착을 새로운 공동의 목표라고 공식 선언하였고, 남북정상회담은 벌써 세 번째를 준비하고 있다.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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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YMCA전국연맹이 6월 29-30일 제44차 전국대회 및 총회를 열고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에 대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 결의문은 난민을 나그네에 비유해 ‘나그네 대접하기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구로는 히브리서 13장 2절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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