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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217
북한 개별관광, 민간이 나서라

남한 관광객 피살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1998-2008)이 문을 닫으면서 공식적인 집단 관광이 끊겼고,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개성공단(2002-16)도 닫혔다. 최근 들어 이를 풀어볼 전향적 조치의 하나로 남한 정부가 ‘개별관광 허용’을 통한 탈출구 모색에 나섰다. 관광 자체는 유엔의 제재 대상이 아니...

박종화 | 2020년 03월
216
구세군역사박물관을 운영하며

구세군역사박물관은 2003년에 설립되었다. 기독교 교단의 박물관으로는 국내 최초이다. 필자가 구세군사관학교에서 사역하던 1987년, ‘구세군역사자료실’을 교내에 설치하여 자료 수집부터 시작한 일이 모멘텀이 되었고, 25년의 시간과 노력이 축적되어 서울시기념물 제20호 문화재로 지정된 근대 건축물인 구세군중...
황선엽 | 2020년 2월
215
새로운 교회를 모색하는 길목에서

「기독교사상」 애독자 여러분에게 새해 인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복이 새해 모든 날(日)과 시(時)마다 가득하시기를 손 모아 빕니다. 최근 들어 새롭고도 다양한 형태의 교회와 선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생겨나고 있고 생겨나야 하며, 선교에도 다양한 접근이 있어야 ...
서진한 | 2020년 1월
214
통일신학자들을 추모함

최근 통일신학의 선구자들 몇몇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화선 목사와 이영빈 목사는 독일에서 사망하였다. 송기득 교수와 손규태 교수는 지난 9월에 우리 곁을 떠났다. 이화선과 이영빈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해외에서 통일운동을 시작한 인물들이라면, 송기득과 손규태는 신학자로서 평화통일의 민족적, 신학적 과...
김흥수 | 2019년 12월
213
3·1운동 100주년이 저물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의 해가 저물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2・8독립선언,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관한 다수의 논문도 발표되었다. 정부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위원회를 통해 기념사업을 펼쳤다. 우리 시대에는 더 이상 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행사가 교회 안팎에서 개최되었다. ...
김흥수 | 2019년 11월
212
독일 통일 30주년과 한반도

1989년 동서 베를린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무너지는 날, 나는 독일 함부르크에 있었다. 당사자인 독일 사람들은 물론, 어쩌면 지구 위에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독일 통일을 현지에서 같이 경험하였다. 역사의 전환은 기획되거나 계획된 대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처럼 보이는 ‘(카...
채수일 | 2019년 10월
211
'명성 사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재판국의 판결이 여러 TV 방송에서, 그것도 저녁 시간 메인뉴스에서 다뤄졌다. 목사 등 개인의 일탈을 탐사보도나 가십 형식으로 다룬 적은 있지만, 특정 종교, 그것도 특정 교단 재판국의 판결을 주요 소식으로 일제히 보도하는 일은 우리나라 방송 사상 초유의 일일 게다. 놀랍고 민망하...
서진한 | 2019년 9월
210
기독교의 정치 참여: 세상에서 세상을 넘어

빌라도 법정의 마지막 심문과 답변(요 18:33-38)을 보면 이번 특집에서 다루는 기독교와 현실정치의 관계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예수는 바로 이 세상에 ‘내 나라’라고 표현하신 하늘나라를 선포하기 위해 로마제국에 성육하셨다. 유대인과 로마로 대변되는 온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요한복음의 기록대로, ...
박종화 | 2019년 8월
209
목사와 성서

목사마다 설교를 준비하는 방법이 제각기 다르겠지만, 설교의 영원한 텍스트는 성서이다. 그러므로 목사에게는 성서에 대한 올바른 지식(언어적, 역사적, 고고학적, 문학적, 해석학적 방법론 등)을 습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신학교육의 가장 큰 비중도 마땅히 성서 연구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서에 대...
채수일 | 2019년 7월
208
헨리 D. 아펜젤러의 희생적 죽음

이번 6월이면 6・25전쟁이 일어난 지 69주년이 된다. 그 전쟁은 수많은 사회문제를 유발했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전쟁 (피)난민이 됐다. 1951년 정부의 집계에 따르면, 남한 인구 2,100만 명 중 782만 명이 난민이었다. 당시 정부는 난민의 위기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1951년부터 40여 개...
김흥수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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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호(통권 7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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