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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4년 1월호)

 

  사회복지학의 교육과 실천을 행간에서 읽다
  정명기 엮음, 『사랑이 깃든 곳에: 고 부성래 박사·글 모음집』(코람데오, 2023)

본문

 

이 책은 부제에 나타난 것처럼 고 부성래 박사에 관한 글 모음집이다. 이 모음집에는 부성래를 기리는 글 10편을 비롯해 부성래의 글 7편 등 총 17편이 실렸다. 이 글들을 통해 부성래 개인의 삶은 물론 초기 한국에 펼쳐진 사회복지학(당시 사회사업학) 교육의 사정과 아동을 중심에 둔 지역사회복지의 실상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이해를 위한 그리스도의 지혜가 이 책 행간에 숨어 있다. 이를 드러내 살펴보도록 하자.

일본과 미국에서 들어온 사회복지학을 배워 가르치다

2020년에 소천한 고 부성래 박사가 1932년에 태어나 살아온 여정은 정명기 목사의 글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38-61쪽) 유신정권에서 교도소에 들어갔다 나온 이후 주로 빈민 지역에서 목회를 펼친 정명기 목사의 이력이 이 글의 무게감을 더한다.1
부성래는 1953년 중앙신학교(현 강남대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사회복지학을 배웠다. 이때 일본에서 신학과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김덕준 교수가 주임으로 강의를 맡았고, 미국에서 공부한 하상락 교수와 백근칠 교수 등도 강사진으로 함께했다. 한편 부성래가 1960년 강단에 섰을 때에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이화여자대학교 노창섭 교수와 함께 미국의 사회복지학에 대해 이야기했을 터이다. 부성래는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한 교수들과 강사들로부터 사회복지학을 배운 셈이고, 이렇게 배운 것을 넝마주이 어린이 돌보기에 적용했다. 당시 강단에 선 그들은 현직 교수나 목사로서 당시 사회운동을 주도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들어온 사회복지학은 미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일정 부분은 일본화한 것이어서 전적으로 미국 사회복지학이라고 말할 수 없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사회복지학을 배운 1세대 부성래를 통해 사회복지학이 한국에 들어온 경위를 엿볼 수 있겠다.
부성래는 1957년 중앙신학교에서 학부를 마치고 1963년까지 강의를 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1969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의 주제는 가난한 농민공동체에 사회복지사가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 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학위논문이 그의 이후 활동 방향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눅 3:22)라는 말씀처럼 꽉 잡아주었다.
미국 시민권을 얻은 부성래는 7개 대학에서 27년간 교수와 행정가로 근무했으며, 정부 기관과 대학 관련 기관에서 정책 및 교육을 자문했다.(48쪽) 오클라호마주의 필립스대학교가 일본에 분교를 설립하면서 부성래는 이 분교의 학장을 맡아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이때가 1990년 1월이었다. 미국의 사회복지학을 일본에 이식하는 데 앞장선 그는 이 분교를 5년간 운영해 영어와 일본어로 강의를 실시하는 종합대학 규모의 교육기관으로 발전시켰다. 한국인으로는 드문 사례라고 하겠다.

기독교를 기반으로 학문을 형성하다

부성래는 시종 기독교를 기반으로 그의 학문을 세웠는데, 이는 사회복지학이 기독교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하겠다. 당시 영국과 미국의 사회복지학은 기독교 목사를 주축으로 형성됐기 때문이다. 부성래가 중앙신학교에 입학하기 전 교회에 다녔다는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또한 부성래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밝혀도 될 것인데, “모교 강남대학교의 과거, 현재와 미래: 사회사업학과 1회 졸업생의 소고(1990)”(99-164쪽)에서야 그의 학문 기반이 기독교임을 엿볼 수 있다. 예컨대 중앙신학교의 이념과 실천의 기초가 신학과 사회복지학의 학문적 협동으로 이루어졌다고 강조한 점(100쪽), 곳곳에 성서구절을 인용한 점(102, 106쪽 등), 사회를 샬롬(Shalom, 복리)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점(106쪽) 등에서 부성래가 그리스도인임을 짐작할 수 있다.
부성래를 그리스도인으로 이끈 데는 전적으로 김덕준 교수의 수고가 컸던 것 같다. 김덕준 교수는 1938년 일본 도시샤대학에서 신학과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YMCA의 이사로 활동했다. 이러한 경력은 그가 부성래를 그리스도인으로 이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김덕준 교수의 이 같은 영향력은 그의 제자인 송정부(2011년 상지대학교 정년퇴임)의 이야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송정부는 중앙대학교에서 김 교수를 사사하다가 도시샤대학으로 유학했는데 당시 김덕준 교수 부부로부터 찬송가를 선물로 받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부성래에게 유학할 대학을 추천한 이도 김덕준 교수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한층 돈독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부성래가 6·25전쟁 직후에 접한 사회 상황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아니었을까? 아동을 비롯한 피난민과 함께했던 당시 개신교 선교사의 삶이 부성래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기 때문이다.2
역사적으로 사회복지학이 기독교를 기반으로 싹을 틔웠고, 그런 사정이 동일하게 한국 사회복지학에 적용된 것을 배운 부성래는 이런 선이해를 바탕으로 보다 수월하게 미국과 일본에서 연구자로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배경이 교수로서, 대학 운영자로서 활동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반면 유교에 뿌리를 둔 한국 전통문화의 높은 가치를 반영한 것은(241쪽) 미국과 일본에서 경험하지 못한 바라고 생각한다. 마치 청 말기 사상가 량치차오가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신을 충분히 갖추는 것이라고 했듯,3 부성래는 한국인으로서 기독교를 바탕으로 그의 학문 세계를 세웠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아동 중심의 지역사회복지를 실천하다

부성래가 사회복지학의 연구자와 실천가로서 가장 큰 성과를 낸 것은 그의 고향인 부산 영도구에서 실시한 프로젝트이다. 2004년에 은퇴한 부성래는 일본 학술진흥원에 프로젝트를 신청하여 문부과학성으로부터 3년간(2004-2006) 지원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는 빈곤 지역에 아동가정지원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사회복지사의 지역사회실천과 그 이후의 과제를 연구하는 것이다.(57쪽) 이는 그의 박사학위논문을 적용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는 부스러기사랑나눔회와 손잡고 2005년 영도구 동삼1동에 ‘동삼동지역아동센터 옹달샘’을 설립했다. 한국을 떠난 지 42년 만의 일이다. 동삼1동은 동삼동(1-3동)의 중앙에 있는 곳으로 저소득층이 가장 많이 살고 동네 길이 급경사라 주민이 일상을 꾸리는 데 어려움이 많은 곳이었다. 부성래가 언급한 ‘지역복지력’이 약한 곳이었다. 그는 이 지역아동센터를 거점으로 지역복지력을 향상시켰는데, 이때 일본 문부과학성의 지원을 받은 프로젝트가 큰 힘이 되었다. 연구와 실천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성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아동센터가 지역복지력을 일궈 빈곤 아동의 가족 문제에도 개입해야 함을 강조했다.(326쪽)
여기에서 그는 사회복지사의 전문성을 제대로 발휘했다. 아동 중심의 지역사회복지를 실천하게 된 것이다. 이는 1950년대 한국 사회복지가 한 단계 도약하는 상황과 비슷했다. 왜냐하면 아동을 주요 클라이언트로 삼으며 ‘가족이 복지’라고 강조한 그의 프로젝트는 ‘사회복지가 곧 아동복지’라는 1950년대의 흐름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아동에 그치지 않고 아동의 가정, 나아가 아동이 속한 지역사회를 아우르며 아동복지를 실천했다. 1950년대 한국의 지역사회복지 실천이 꼭 이랬다. 지역사회복지를 주관하는 현재 479개의 사회복지관이 돌아볼 일이다.
결국 부성래는 지역사회와 아동을 위한 실천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일본에서 받아온 연구 과제를 수행하며 지역복지력 구축과 아동가족지원시스템 모델을 통해 지역사회실천, 아동가족지원서비스, 지역사회 구축과 역량 개발, 인간관계력 개발에 힘썼다.(320쪽) 특히 지역아동센터의 지역복지력 구축을 주요 과제로 잡아 지역사회 협의체들이 경쟁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 상생하는 체계를 구성해야 함을 보여주었다. 아동을 위한 실천이어야지 실천을 위해 아동을 이용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 것이다. 구하지 않고 구했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국의 4,300여 지역아동센터에 큰 통찰을 주는 연구와 실천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서운한 점이 있다. 일본의 용어를 그대로 한국에 적용한 것이 못내 아쉽다. 예컨대 ‘지역’은 ‘지역사회’나 ‘동네’나 ‘마을’쯤으로 바꿔 써야 하고, ‘복지력’은 ‘복지의 힘’ 정도로 하면 될 것이다. 일본에서 자연스러운 것이 한국에 들어와 자연스러워지려면 한국에 합당한 용어라야 한다. 이제 부성래에 관한 토막글을 넘어 평전과 같은 저술이 나오길 기대한다.

주(註)
1 정명기, “변선환 교수와의 만남과 그의 신학이 나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 변선환아키브 엮음, 『그때도, 지금도 그가 옳다』(동연, 2023): 332-338.
2 카이 인 앨리슨 헤이가 지음, 박상명 옮김, 『6․25전쟁과 미국 선교사』(북코리아, 2023).
3 셰시장 지음, 김영문 옮김, 『량치차오 평전』(글항아리, 2015).

최옥채|숭실대학교 사회사업학과(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호주 퀸즐랜드대학교와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 사회사업학과에서 각기 디플로마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근무하며 『한국 사회복지 사회사』(전3권) 집필을 마치고, ‘서인근 선교사 평전’ 저술에 집중하고 있다.

 
 
 

2024년 1월호(통권 7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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