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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4년 1월호)

 

  인류의 미래를 위한 대안의 신앙운동: 통합성(聖), 타자성(性)그리고 지속성(誠)
  이은선,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23)

본문

 

이은선 한국신연구소 소장의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는 기존의 신학(神學)이 유교에 의해 보완된 신학(信學)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필자는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 그리고 유교’라는 제목의 조합이 무척 생경하게 느껴졌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을 한국 여성통합학문의 연구자(Korean Feminist Integral Studies for Faith)라고 소개한다. 계속되는 궁금증 탓에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지도 못한 채 저자의 학문 이력과 근황을 살펴보았다. 저자는 신학자이며 페미니스트이고 한국인으로서 유교를 공부한, 전 대학교수이다. 2020년에 한국신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이 시대의 진정한 선구적 지식인으로서 현재 저술과 강연 활동 그리고 신학운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학문적 문제의식이 다시 정리된 결과물로 보이는데, 서문에 따르면 이번 탐색의 주안점은 조선 유교와 기독교의 만남에 있다. 저자는 조선 유교의 역사적 전개를, 문명화 과정에서 나아가 신의 영역과 거룩의 평범성이 확장되는 과정으로 보고자 했다. ‘신의 영역 확장’과 ‘거룩의 평범성 확장’이 저자의 문제의식을 이해하는 두 가지 키워드로 보인다. 거룩의 평범성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저자가 유교에서 거룩의 평범성을 어떻게 도출하고 있는지 매우 궁금했다.
이 책은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한국유교사의 맥과 인류 종교의 미래”이고 2부는 “한국종교문화사 전개와 현대 페미니즘”이다. 1부에서 저자는 유교의 기원으로부터 근대 개혁운동에 이르는 한국유교사의 큰 흐름의 맥을 짚어내고 있다. 저자는 동아시아의 유교 역사를 “문명화 과정”, 다른 말로 “예의 리추얼의 세련화 과정”으로 포착했다. 결국 유교는 동아시아에서 문명화, 예절화, 인간화 과정을 추동해온 근본적인 힘이며(35쪽), 그러한 문명화, 인간화를 지향하는 유교화 과정이 한국인의 삶 속에서 역사적으로 심화 확대되었다는 것(36쪽)이다. 동아시아에서 유교가 어느 한 국가나 민족이나 인종에 의해 전유될 수 없다는 문명론적 관점의 접근은 그의 폭넓은 학문 이력에서 비롯된 적확한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명화 과정에서 동아시아의 유교는 서구의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공동체 삶의 양식을 이루는 바탕이 되었다고 본다.
2부에서 저자는 일찍부터 관심을 기울였던 한국 여성의 종교성에 관한 생명문화사적 지향이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의 인류 삶에서 대안적 종교성과 여성 영성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했다. 저자는 이것을 한국 여성 종교성의 통합성(聖), 타자성(性), 지속성(誠)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제시한다.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예화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저자는 지극히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전통 시대 여성들이 모든 시간과 공간을 예화(禮化)해나가는 것을 보며 그 과정에서 성(聖)과 속(俗)의 통합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러한 통합적 영성은 삶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등장하는 타자에 대한 인정 속에 이루어지며(타자성), 생이 다하도록 멈추지 않고 가꾸어낸(지속성) 영성으로서 과거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모든 사람의 존재 기반이자 삶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이러한 사유는 단지 이론이나 주장에 그치지 않고 저자의 삶에서 신앙운동으로서 그대로 실천되고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실천적 지식인을, 지면을 통해서나마 만난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필자는 저자의 주장에 충분히 동의한다. 그러나 조선 성리학 전공자로서 저자가 주장하는 근거나 전제에 대해서 몇 가지 의문이 있다.

‘한국적’이라는 민족적 물음의 유효성에 대하여

저자는 한국신연구소 개소식 연설에서 이 화두가 부친 이신 목사의 기독교 환원운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역사적으로 한국인의 의식 속에 끊임없이 내재해 있던 ‘원형’과 ‘근본’, ‘참’을 추구하고자 하는 정신이 한국신연구소의 지향점이라고 밝혔다. 저자에게 한국적이라는 민족적 물음의 화두는 일종의 유산(legacy)이며, 역사의 증언이자 현재 신앙운동의 토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적’인 원형, 근본, 참에 대한 저자의 추구가 결코 협소한 국수주의나 애국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유교를 보편적인 종교문화로 주장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 사람 중에서 유교 문화를 중국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고 언급하는데, 특히 미국 편향 그리스도인 중에서 유교를 한국 문화의 정신적 토대 중 하나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종종 봤다고 말한다.(41쪽) 그러면서 이러한 인식이 결국은 도식적인 역사와 문명의 이해가 낳은 한계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저자가 여기서 잃어버린 우리의 상고사 복귀를 역설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의 문명화 과정 또는 유교화 과정은 특정 국가, 민족, 인종이 전유할 수 없는 보편적인 것임을 저자는 이미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동이족과 화하족이라는 인종의 문제로 접근하면서 스스로 한계를 다시 만들고 있다. 오늘의 중국과 전통 시대의 중국은 전혀 다르다. 한족 중심의 근대국가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중심적 지위와 역할을 지녔던 것은 한, 송, 명에 불과하다. 만주족 청나라가 막강한 군사, 정치, 경제력으로 광대한 영역을 장악했고, 그 영토가 그대로 계승된 채 근대국가로의 재편이 이뤄지면서 오늘날 중국이 탄생했다. 유교를 중국에 연원을 둔 외래 사조로 간주하는 것은 오늘날 중국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문명론의 관점은 그러한 협소한 지역, 인종, 국가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담론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K’(Korea)를 붙인 다양한 용어를 생산하고 있다. 이른바 한류의 열풍을 재론하지 않아도 많은 분야에서 ‘K’의 가치를 알고 선점하고자 한다. 이러한 현상은 학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K-학술’이라는 이름으로 종교, 철학, 역사, 정치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성과가 국내외에 소개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적이라는 민족적 화두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저자는 ‘인종’ 담론의 문제점을 분명히 지적한다.(45쪽) 그렇게 인종주의적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하나의 인종(화하족)에 또 다른 인종(동이족)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것은 인종 담론의 논의 대상을 확대한 것이지만 여전히 인종 담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저자가 여기서 보다 과감하게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정리하자면, 유교가 어느 한 인종이나 민족이 전유하여 기원하고 전개된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동아시아의 인간 삶에서 공통 작업의 결과로 이루어진 산물(46쪽)이라는 저자의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 주장의 전제에는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다.

18세기 후반 조선의 유교화는 실제로 확대되었는가

저자는 18세기 후반 조선의 유교화가 정치나 남성의 영역을 넘어 생활이나 여성, 아동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고 말하면서 그 사례로 이덕무의 『사소절』(士小節, 선비의 작은 예절)을 들고 있다.(36쪽) 당시 조선 사회에서 이덕무의 『사소절』은 대단히 혁신적인 예절 수신서였다. 그러나 과연 이덕무가 여성이나 아동을 당시 사대부(남성)와 같은 인격적 존재로까지 이해했는지는 의문이며, 조선 사회에서 유교화의 확장성을 입증하기에는 사례가 너무 적다.
성리학은 존재론적으로 모든 인간의 동일성을 인정하지만, 현실적인 인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등급을 나누고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인격을 지닌 인간으로 정의될 수 있는 범위는 대단히 협소하다. 조선 후기에는 이러한 신분제가 유지되고 있었으므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인간을 사고파는 행위가 정당화되는 노비제도가 엄연히 존속하는 사회였다. 그렇다면 『사소절』의 예시와 같은 유교화의 확장성은 결국 특정 계층에 불과한 일부 인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조선 유교와 서구 기독교의 만남

저자는 조선 유교와 서구 기독교의 만남이라는 ‘사건’이 자신에게 보배로 다가왔다고 한다.(10쪽) 특히 성호학파가 서학 또는 천학을 천착한 것은 성호학파는 물론이고 조선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사건이다. 필자도 최근 이 사건에 주목하고 있는데, 조선 후기 유교는 서구 기독교라는 새로운 타자를 만남으로써 그 이전과는 다른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서학 또는 천학을 지지하고 심지어 천주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은 물론이고, 반대하는 경우에도 조선 유교의 자기 혁신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조선 초 국가 이념을 확립하기 위한 정도전과 권근의 사유, 16세기 자생적인 조선 유교를 형성한 퇴계와 율곡, 전란 이후 유교공동체의 붕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서인 노론의 호락논쟁, 18세기 서구 기독교를 만난 성호와 그 문인들에 이르기까지 조선에서 유교는 단 한순간도 정체되어 있지 않았고, 끊임없이 타자와 소통하며 정체성을 형성해나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잘 알려진 것처럼 18-19세기 조선의 문명사적 대전환 시대에 문명의 흐름에 순행한 이는 극소수의 선구적 지식인에 불과하다. 중앙정부부터 향촌의 이름 없는 유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은 여전히 문명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었다. 문명의 흐름에 순행하고자 한 이들은 미약한 소수이고, 그들의 치열한 분투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삶과 행위의 주재자로서의 상제, 리(理)나 성(性)보다 인격적이고 살아 있는 영명한 힘을 발견한 것은 오늘날 인간 너머의 유교를 찾아나서는 관건이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130쪽)

현대 한국 여성과 기독교 그리고 페미니즘

현대 한국 여성, 기독교, 페미니즘, 이 세 가지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무거운 주제이다. 저자는 조선 사회에서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유교 예화의 큰 구도 안으로 포괄되었는지를 살폈다. 조선 시대 유교 여성들이 억압받고 탄압받던 실상을 저자는 결코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직시하도록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모든 종교문화는 여성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저자는 히브리 유일신교의 신이 남근적이지 않으며, 남성과 여성을 포괄하는 단일성을 표상한다고 했는데(220쪽), 이것은 기독교 하나님의 유일신적 궁극성을 유교의 리(理)나 태극(太極)의 성적 영역을 넘어서는 초월 개념과 등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타당한 해석이다. 반면 유교는 음양을 성적으로 해석하고, 역사상 여성들의 열악한 위상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우주론적 차별을 허용하지 않아 여성들이 궁극자에게 보다 다가가기 쉬운 것으로 설명한다.(221쪽) 이러한 인격신에 대한 확신은 성차별을 우주론적으로 규정하는 것도 무력화하고 기독교 유입이 한국 사회의 성평등과 해방을 가속화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논지이지만, 리와 태극은 엄밀히 말하면 신유학의 용어이다. 음양을 남녀로 유비하여 성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비단 유교의 문제는 아니다. 신유학에서는 남녀를 우주론적(존재론적)으로 차별 하지 않으며, 남녀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이외의 존재 역시 존재론적으로는 구별하지 않는다. 이른바 선진유가인 공맹의 사유, 한대 동중서의 정치적 유학, 송대 신유학의 다양한 논의와 이론을 ‘유교’라는 하나의 이름에 묶어버리고, 저자의 주장에 유용한 것만 취사선택하기 때문에 논리적 비약과 쉽게 공략당할 수 있는 허점이 노출된다. 물론 이 책에서 정치한 논의를 모두 다룰 수는 없겠지만, 너무 단순하게 일반화하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주희의 『인설』(仁說)과 창조성에 대하여

저자의 『인설』에 대한 해석 관점은 충분히 존중한다. 그러나 또한 가장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인설』의 해석이다. 저자는 『인설』을 인용하며, ‘천지생물’(天地生物),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의 ‘생’(生)을 ‘창조’로 해석한다.(58쪽) 이러한 『인설』의 언어는 세속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이 세상의 보편적인 언어로 만물의 심적(영적) 차원을 밝혀준다고 보았다. 문제는 이러한 인간과 그 마음을 바로 만물과 창조의 근원으로 본다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과 자연, 몸과 마음, 정신과 물질, 신과 인간 등을 역동적으로 연결하여 불이적(不二的)으로 하나 되어 생생한 생명성과 역동성, 끊임없는 창조력의 역(易)이 되는 것을 밝힌다고 했다.(59쪽) 저자가 『인설』을 이같이 독해하는 취지와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창조’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동아시아 사유에서 낳고 낳는 역동성(生生不已)은 결코 창조성(creativity)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단히 변화하는 역동적 과정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므로, 여기에 창조성을 말할 수 있는 어떤 지점은 애당초 설정되지 않는다. 이것은 리와 태극을 모종의 실체로 간주하지 않는 동아시아의 독특한 사유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물은 근원이 되는 리나 태극으로 환원될 수는 있지만,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세계의 존재가 창조된다고 볼 수 없다.
한 권의 책에서 저자는 여러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숙련된 장인의 솜씨로 빚어내어 독자로 하여금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한다. 저자는 자신의 명료하고 일관된 관점으로 한국 유교의 연원부터 유교의 현재성을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여성통합학문으로서 신학(信學)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그는 독자에게 한국적인 것, 유교에 대한 이해, 기독교 신앙 그리고 페미니즘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의 문제의식과 지향을 독자에게 쉽지만 가볍지 않게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처럼 몇 가지 동의할 수 없거나 문제를 제기하고 싶게 만드는 부분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사유할 수 있게끔 공간을 남겨준 배려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은 오늘날 자신의 삶과 앞으로 살아갈 길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사람에게 격려와 위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무엇보다 몇 줄의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저자의 삶과 행보의 진정성에 고개가 끄덕여지며 내 삶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박지현|서울대학교에서 “이황의 사단칠정론에 대한 성호의 재해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K-종교학술확산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순암 안정복의 만물유취』가 있다.

 
 
 

2024년 1월호(통권 7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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