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책마당 > [책마당]
책마당 (2023년 10월호)

 

  신상(神像)으로 살아가기
  김학철,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비아, 2022)

본문

 

김학철 교수의 신작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는 말씀 중심의 개신교 현실에 단비와도 같은 반가운 책이다. ‘설교의 홍수’(키에르케고어) 속에서 피로해진 귀를 잠시 쉬고 눈으로 하나님을 명상하며 만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고갱의 그림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0쪽)를 화두처럼 제시하며 책의 내용이 실존적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임을 암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내심 반가웠던 것은 다른 책들처럼 설교 끝에 미술작품을 곁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미술작품을 먼저 전제하고 그 안에 내재하는 하나님의 참됨과 선함을 사유하는 방식이었다. 필자는 마치 홀린 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단숨에 읽었다. 이에는 성서학을 전공한 저자의 해박한 성서 지식이 바탕이 되었지만, 그 성서적 지식이 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만나 뜻을 풍부하게 하여 지루한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책은 성서의 말과 화가의 시각적 ‘증언’(testimony)을 대조하며 미적 경험과 종교적 경험 모두를 향유하게 만드는 흔치 않은 책이다.

이코노클라즘(iconoclasm)

대학에서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면 제일 처음 하는 일이 성서와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는 일이다. 그만큼 서양의 미술은 역사적으로 기독교 문명과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을 두 축으로 삼아 도상(圖像)을 발전시켰다. 특히 신 중심의 중세 천년을 거치며 유럽의 미술은 기독교 신학에 더 큰 비중을 두었고, ‘기독교 도상학’(Christian Iconography)이라는 미술사 내 분과가 생길 만큼 신학과 깊이 연관을 맺으며 발전해 왔다. 화가들은 성서를 시각적으로 읽는 데에 능한 준(準) 성서 해석자들이었고, 그들이 산출한 독창적인 도상들을 통해 우리는 지금도 성서를 더욱 풍부하고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개신교만은 그 소중한 문화적 자산을 활용하지 못하고 애써 외면하거나 심지어는 배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림은 상징이다. 상징 안에는 초월적 힘으로서 존재의 힘이 내재한다. 겉으로 보이는 일차적 형상 뒤에는 보이지 않는 상징적 속뜻이 내재한다. 상징은 개념 언어나 수학 공식처럼 시원한 답을 주지는 않지만, 그 안에 숨겨진 속뜻이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에 이끌려 독자/관람자는 작품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고, 그 안에서 존재의 힘을 만나 바쁜 일상 가운데 의식하지 못하던 실존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작품 속에서 독자/관람자는 존재의 힘과 관계하며 실존 문제를 성찰하고 새로운 자기 이해에 이른다. 화가가 창작의 고뇌를 무릅쓰고 그림을 그리고, 독자/관람자가 시간을 내어 미술관을 찾는 것은 이처럼 나를 좀 더 나은 나로 고양하는 존재의 힘이 그림 안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알 수 없는 힘이 두려웠던 것일까? 혹은 다름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유독 초월성을 특징으로 하는 유대-기독교 종교가 시각예술에 대해서만은 가장 노골적인 두려움을 표출해왔다. 이미지 제작은 곧 우상숭배라는 율법 조항이 생기며 유대교의 역사에서는 성상파괴주의(iconoclasm)가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그 전통은 기독교에까지 이어졌다. 물론 성육신(Incarnation)의 신비에 기초한 기독교에서는 성상 옹호론과 성상 반대론이 첨예하게 대립했고 전자가 승리하며(843년) 이미지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아무 장애가 없는 듯이 보였으나 갈등의 불씨는 종교개혁 때 다시 점화되었고 성전의 성상을 모조리 파괴한 성상파괴운동으로 이어지며 교회와 이미지의 불편한 관계는 더욱 심화된다.

숭배와 해석

종교개혁자들이 성상파괴주의를 재점화한 것은 가톨릭교회의 부패 때문이었다. 중세인들은 성상을 마치 하나님인 양 맹목적으로 숭배하였는데, 가톨릭교회는 그러한 무지의 신앙을 금전을 착취하고 교회를 배불리는 데 악용하였다. 이코노클라즘의 본질은 결국 이미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대하는 방식에 있다. 미술작품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이다. 이미지를 해석의 대상으로 볼 때 이코노클라즘의 갈등적 요소는 사라지고 이미지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문화적 요소가 될 수 있다.
‘해석’은 독일어로 ‘Auslegung’이며, 문자적 의미는 ‘(안에 숨겨진 것을) 밖으로 꺼내다’이다. 즉 해석학은 안과 밖의 ‘경계’를 전제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해석학’(hermeneutics)이라는 말의 어원에는 헤르마(herma), 즉 ‘경계’의 의미가 내재해 있다. 사자(使者)의 신인 헤르메스(Hermes)에도 같은 어원이 들어 있다. 헤르메스가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신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달하듯이, 해석도 서로 이해되지 않는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소통과 지평 융합의 학문이다. 이 책의 부제인 “성서로 그림 읽기, 그림으로 성서 보기”도 미술과 신학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해석학적 방법으로 볼 수 있다.
미술은 화가의 자유로운 상상 속에서 만난 하나님을 시각적으로 ‘증언’하는 하나의 독립된 세계이다. 신학도 성서의 말씀을 논리적으로 연구하는 독립된 학문의 세계이다. 이 독립적 두 세계의 경계를 저자는 마치 헤르메스의 날개를 단 듯 넘나들며 그림 안에 숨겨진 상징의 속뜻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이 소통의 방식을 두고 저자는 특별히 “종교적 시각 문해력”(224쪽)이라고 부른다. 시각적 문해력(visual literacy)이 이미지를 만들고, 이해하고, 내면화하고, 소통하는 능력이라면, “종교적 시각 문해력”은 시각적 문해력을 종교적 전망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저자는 이미지의 근원에 종교가 있다고 보며(225쪽) 미술작품에 근원적으로 내재하는 종교적 전망을 해석해낸다. 그래서 이 책은 종교적 시각 문해력의 장(場)이며, 신학과 미술이라는 두 세계의 경계에 다리를 놓는 공감각적 장이다. 여기서 말씀(Wort)과 이미지(Image)의 경계는 무너지고 독자의 마음에는 미술과 신학의 지평 융합이 일어난다. 그렇게 김학철 교수의 책에서 독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독특한 미적 경험의 장으로 초대된다. 그리고 그 미적 경험이 다시 종교적 경험으로 연결되며 이해를 넘는 감동을 자아낸다.

신상(神像)으로 살아가기

해석이 일어났다는 것은 새로운 자기 이해가 생겼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우선 “성서의 시각적 읽기”(19쪽)에 능한 화가에게 일어날 수 있고, 다음은 그림을 해석하는 독자/관람자에게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해석하며 화가와 독자/관람자 모두는 새로운 자기 이해에 이르고 어제보다 좀 더 나은 나로 변화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너와 나를 가리켜 저자는 “신상”(神像)이라고 부른다.(26쪽)
‘신상’ 개념은 김학철 교수가 이코노클라즘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보인다. 신상을 금지한 율법에 대해 과감하게도 그는 살아 있는 ‘신상’ 개념을 내세워 도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자의 도전은 너무도 맞는 말이어서 반박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Imago Dei)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스스로를 계시하셨다. 그렇게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고 인간을 낳으며 인간과 함께 살아가신다. 이 ‘인간’이 바로 하나님의 살아 있는 신상이다. 상징을 해석하며 진리와 삶의 본질을 묻고 사유하는 가운데 화가와 독자/관람자는 본래 하나님이 부여하신 자신의 모습으로 변화, 회복되어 간다. 이렇게 거듭나며 변화해가는 너와 나를 가리켜 ‘신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해석은 신앙을 생생하게 만들고 그렇게 살아 있는 신앙 속에서 인간은 본래적 나의 모습으로 변화해간다. 이 변화는 곧 회개(Umkehr)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회개 가운데 함께하신다. 그렇게 상징의 해석은 인간을 하나님의 살아 있는 신상으로 살아가게 한다.
그림이나 조각은 우리가 신상으로 살아가기 위한 해석학적 매개이다. 그들을 애써 외면하거나 배척하는 것은 오히려 이미지를 아직 숭배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해석의 대상으로 여길 때 비로소 우리는 “종교적 시각 문해력”을 획득하고 신상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신상과 신전은 그 어디 멀리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해석의 지평에서 늘 새롭게 거듭나는 너와 나인 것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인간은 세상의 한가운데로 던져진(verworfen) 존재이다. 그렇게 던져진 인간은 세상을 지배하는 악의 구조에 휩쓸려 살아간다. 그리하여 자신이 살아 있는 신전이고 신상이라는 존엄성을 망각한 채, 세상이 나에게 부여한 그들(das Man)의 모습으로 일상을 영위한다. 하이데거는 이를 가리켜 ‘존재의 망각’이라고 하는데, 이 망각 상태에서 깨어나 ‘그들’로서의 ‘나’가 존재 가능(Seinkönnen)으로의 ‘나’로 변화하는 계기를 예술작품(Kunstwerk)이라고 본다. 예술작품에 내재하는 존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는 ‘그들’로부터 깨어나 현존재(Dasein)가 된다. 이 현존재가 말하자면 김학철 교수가 말하는 신상(神像)이다. 신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일상에 몸담고 있지만, 예술작품을 매개로 존재 가능으로 거듭나며 하나님이 나에게 부여하신 본래적 나인 자기 자신(sich Selbst)으로 실존하는 것이다.

세상을 이기는 사랑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는 그렇게 실존하는 삶으로 독자를 초대하는 안내서이다. 저자는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한스 홀바인, 카라바조, 루벤스, 렘브란트, 윌레엄 블레이크, 프레더릭 레이턴 등 시대를 초월해 알려진 화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새뮤얼 박, 에스더 뉴만-코헨, 야체크 말체프스키 그리고 현대 표현주의 화가 막스 베크만을 포함해 무명 화가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그림들을 소개하며 세상의 억압적 구조에 내던져진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 존재로 향하며 하나님이 어떻게 왜곡된 것을 바로 펴고 낮은 것을 높이고 탁한 곳을 맑게 정화하고 아픈 곳을 치유하며 잃어버린 약자들의 권리를 되찾아주는지를 감동적으로 전달한다. 그리하여 책의 서문에서 고갱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마르크 샤갈의 작품 〈아가 IV〉(219쪽)를 끝으로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실존적 물음은 그렇게 사랑으로 수렴된다.
아가서(Song of Songs)는 성서에서 유일하게 에로틱하고 미학적인 글로 성서 전체의 윤리적 흐름에서 보면 매우 낯설고 생경한 표현들로 가득하다. 아마도 김학철 교수는 아가서의 저자가 그리고 있는 죽음보다 강력한 절절한 사랑으로만이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대변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아가서를 시리즈로 제작한 샤갈은 유대인이었지만 누구보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아담과 이브를 마치 즐겁게 소풍 나가는 연인들처럼 그렸고, 세상의 정죄를 받았던 다윗의 밧세바를 향한 사랑마저 애절하게 그려냈다. 그렇게 샤갈은 죄를 사랑으로 녹여낸 연금술사였고 그런 샤갈의 작품에서 저자는 세상을 이기는 길, 죄의 실존이 구원에 이르는 길을 보며 책의 서문에서 고갱을 통해 꺼냈던 실존적 물음에 대해 답하고 있다.

나가는 말

이미지를 금지하는 율법은 변증법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스도가 율법의 폐지가 아니라 완성을 위해 오셨을 때 그 완성은 율법의 준수가 아닌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이미지를 금하신 하나님의 뜻을 곰곰이 사유하고 동시에 이미지를 ‘숭배’가 아닌 ‘해석’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 ‘말씀’과 ‘이미지’는 변증법적으로 작용하고 거기서 “종교적 시각 문해력”은 산출된다. 그리고 미술은 신학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가능성의 영역이 된다. 그러할 때 독자나 관람자로서 우리는 진(眞)과 선(善)을 넘어 아름다움(美)도 내면화하는 성숙한 신앙인, 하나님의 살아 있는 ‘신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 길을 가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꼭 권한다.

신사빈|독일 자유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미술사의 신학』, 역서로 『예술의 힘』이 있다.

 
 
 

2023년 11월호(통권 779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의왕카카오톡 친구찾기   비아탑-시알리스 구입   woao50   노란출장마사지   myilsag   racingbest   24시간대출   대출DB   gmdqnswp   viame2   ViagraSilo   Gmdqnswp   miko114   채팅 사이트 순위   yano77   미프진약국 박스   캔디약국   LevitraKR   gyeongma   천사약국   MifeSilo   reu112   출장 파란출장마사지   koreaviagra   Mifegymiso   skrxodir   24parmacy   ViagraSite   무료만남어플   euromifegyn   시알리스구매   의왕 발 기 부진약   moneyprime   insuradb   우즐성   비아탑   마나토끼   돔클럽 DOMCLUB.top   onnews   24Parmacy   비아센터   미프진 후기   kajino   미프뉴스   drugpharm   vnnd33   비아탑-프릴리지 구입   euromifegyn   파워맨   미프진 약국   시 알 리스 후기   24시간대출 대출후   alvmwls   비아몰   만남 사이트 순위   alvmwls.xyz   비아센터   유머판   밍키넷 MinKy.top   미프블로그   tlrhfdirrnr   financedb   qldkahf   주소야   rudak   링크114   코리아e뉴스   최신 토렌트 사이트 순위   미페프리스톤   HD포럼   vianews   돔클럽 DOMCLUB   viagrastore   24 약국   bakala   poao71   합몸 출장   낙태약   viagrasite   코리아건강   비아마켓   skrxo   신규 노제휴 사이트   allmy   비아랭킹   althdirrnr   miko114   웹토끼   gkskdirrnr   healthdb   비아365   yudo82   링크와   실시간무료채팅   mifegymiso   미소약국미프진   미소약국   qmn320   totoran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