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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2년 12월호)

 

  역사적 그리스도 연구는 가능한가
  데일 C. 앨리슨, 김선용 옮김, 『역사적 그리스도와 신학적 예수: 역사적 예수 탐구에 대한 성찰』(비아, 2022)

본문

 

1. 교회당에서 만난 예수는 매우 무겁고 근엄한 이미지였다. 인간의 삶이나 감정과는 괴리된 신의 공간인 교회당에 대한 부담이 커질수록 과거 예수에 대한 이미지에 반발심이 생겼다. 어느 날 본 영화에서 예수는 제자들과 웃고 떠들며 옷자락으로 한 제자의 뺨을 때리면서 크게 웃고 있었다. 그 이후로 그 모습이 필자의 예수상을 지배했다. 신학교를 다닐 때에도, 신성이 가득한 예수보다 인간 예수에게 마음이 끌렸다. 보통 예수 그리스도를 논할 때, 신성을 강조하는 것을 ‘신앙의 그리스도’라 부르고, 인성을 강조하는 것을 ‘역사적 예수’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 마음이 끌렸고 그에 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예수의 능력과 신성을 강조한 요한복음보다 고난받는 인간을 그린 마가복음의 모습이 원래의 예수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했다.
『역사적 그리스도와 신학적 예수』의 저자 데일 앨리슨은 아마도 필자가 예수에 대한 확증 편향에 젖어 있다고 평가할 것이다. 필자는 이런 평가가 박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예수를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작업은 결국 스스로의 확증 편향을 확인하는 작업, 즉 ‘자기가 보고자 하는 예수’라는 결과를 벗어날 수 없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2. 저자는 현대의 역사적 예수 연구의 성과도 확증 편향을 전제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가 역사적 예수 연구의 공헌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역사적 예수의 공헌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적 예수 연구는 온갖 종교적 믿음으로 덧칠한 예수에 대한 꿈으로부터 교회를 흔들어 깨웠다.(19쪽) 둘째, 최신의 연구 결과조차도 모두가 동의하는 하나의 예수를 구성하기 불가능함을 깨닫게 해주었다.(39쪽) 결국 아득한 미래에도 역사적 연구는 하나의 온전한 예수를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반대로 본다면 우리에겐 다양한 예수의 모습이 공존할 수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셋째, 필자는 이것이 저자의 핵심 주제라 보는데 바로 예수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 즉 예수의 자기 이해에 대한 문제와 종말에 대한 예언에 대한 질문을 다시금 제기한 것이다.(46쪽) 이에 대해서는 뒤에 논할 것이다.
저자가 보는 역사적 예수 연구의 위험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연구자 자신이 스스로의 연구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 생각하기 쉽다. 저자는 존 도미닉 크로산을 비롯한 일군의 학자들이 시작한 예수 세미나를 예로 든다. 그들은 투표를 통해 역사적 예수가 남긴 말들을 찾고자 했다. 저자는 이것이 오히려 대중에게 검증된 하나의 역사적 예수를 그리는 것이 가능하고 이를 보여주는 연구가 가능하다는 착각을 일으켰다고 비판한다.(39쪽) 둘째, 연구자 스스로가 엄연히 존재하는 자신의 선입견을 깨닫지 못하게 되므로(47쪽) 다른 예수 연구의 결과, 특히 신학적 접근 등을 무시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62쪽) 결국 사람들에게 예수에 대한 이해는 편의점에 진열된 각기 다른 삼각김밥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 문제처럼 여겨지게 된다. 셋째, 역사적 예수 연구는 때로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해결하기 어려운 주제들을 아예 증발시켜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저자는 한 예로 로버트 펑크의 연구를 든다. 펑크가 풀기 어려운 신약성서의 질문, 즉 예수가 스스로를 신의 아들이라 믿었는가, 그리고 부활하여 곧 심판자로 재림할 것을 확신했는가에 대한 문제에 성급하게 답하려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역사적 예수 자신이 메시아라는 자각이 없었을뿐더러 ‘종말이 곧 임한다.’는 말을 한 적도 없었다고 결론내린다.(54쪽) 저자는 펑크가 다양한 종교적 믿음으로 덧칠된 예수의 모습에서 예수를 구원하려다가 결국 예수에 대한 핵심 메시지 모두를 역사적 예수의 모습에서 지워버린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불평한다.
저자는 덧칠된 예수에게서 역사적 예수를 완전히 분리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64쪽) 그래서 저자는 역사적 예수 연구의 장점을 더욱 살리고 단점을 제거하는 것으로 예수 탐구를 계속하는 것에 난색을 표한다. 저자는 새로운 방식의 예수 탐구를 추천한다. 바로 이 책의 제목에 나타나 있듯이, “역사적 그리스도와 신학적 예수”이다. 이는 “신앙의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가 아니다.

3. 이제 저자가 말하는 예수에 대해 살펴보자. 역사적 예수 연구는 예수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한 줌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한 줌에서부터 조금씩 예수의 자취를 탐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저자는 복음서 전체가 말하는 예수의 전반적인 인상을 그려보자고 주장한다. 즉 비평적 방법으로 성서 본문을 세밀하게 분석하기보다 전체가 지향하는 예수의 큰 그림을 그리자는 것이다. 결국 모두가 예수에 대한 기억의 파편이기 때문이다.(144-149쪽) 분명 일관된 흐름이 존재할 것이고, 그 속에서 예수에 대한 핵심 그림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185쪽)
물론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도 난점은 있다. 그렇다면 예수의 기적이야기 또한 예수에 대한 나름의 기억으로 볼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 저자는 흔들린다. 진짜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182쪽) 보통의 신약학자들은 예수가 기적을 일으키는 장면을 신학적으로 해석한다. 구약성서의 기록들과 대조하여 예수가 메시아임을 나타내는 이야기에서 새로운 의미들을 구성해낸다. 그러나 저자는 이 또한 예수 전승이 오류임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공격한다. 저자는 역사적 예수를 신학적 예수로 발전시키는 것은 어려우며, 오히려 신학적 예수를 역사적 예수로 축소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역설한다.(190쪽) 이것이 ‘역사적 그리스도’가 의미하는 바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학적 예수’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명칭은 근본주의 신앙인들이 예수의 인간적인 면을 제거하는 현상을 꼬집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예수 연구는 이 부분에서 도움을 준다. 역사적 사고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환원시키려는 시도에 영원히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예수를 다시 ‘역사적’ 존재로 안착시키고자 한다. ‘신학적 예수’는 바로 이러한 시도가 필요함을 암시한다.(196쪽) 중도에서 양자를 포괄하려는 저자의 시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종합적이고도 균형된 입장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역사적 예수 연구 진영과 근본주의 진영 모두에게 공격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예수가 자신이 의식한 바를 넘어서는 존재임을 인정한다면(212쪽), 역사적이고도 신학적인 예수 보기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필자가 보기에 이 책의 가치는 저자의 솔직함에 있다. 저자는 예수에 대해 풀리지 않는 두 가지 질문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첫째, 과연 예수는 자신이 죽고 나면 곧 종말이 올 것이라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왜 종말은 아직도 오지 않고 있을까? 둘째,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했을까? 아니면 예수의 그리스도 됨은 이후 시대에 나타난 신자들의 신앙고백일까? 이 두 질문을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특히 종말론에 관한 문제는 예수가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운 질문이다.
뒤집어보면 예수와 복음서를 해석한 학자들의 눈부신 업적은 예수의 종말론에 대한 난제에 답하면서 이루어졌다.(229쪽) 도드는 초대교회의 믿음이 임박한 종말론에서 실현된 종말론으로 변화해가는 것을 복음서가 보여준다고 보았다. 크로산이 제시한, 종말론적 예수가 아니라 사회적 혁명가로서의 예수라는 대안이 대중의 힘을 얻게 된 이유 또한 종말을 새롭게 해석하는 적절한 대안이 되었기 때문이다.(217쪽)
이에 반대하여 저자는 묵시적 예수를 간과하는 순간 예수의 가장 중요한 모습이 사라지게 된다고 안타까워한다.(218쪽) 그래서 종말론의 언어를 창조 이야기(창 1-2장)의 언어처럼 상징적으로 해석할 것을 추천한다. 예수가 상징적으로 말했기 때문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종말에 대한 예수의 말들이 과연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우리는 영원히 알기 어렵다.(244쪽) 다만 저자는 우리가 우리의 시대에 어울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할 것이라 말한다.(236쪽) 그 길은 요한복음이 걸어간 것과 같이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었다고 하는 입장은 아니다. 예수는 세상의 악의 존재와 계속되는 악의 지배를 분명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258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를 이야기했다. 이처럼 예수를 이해해보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259쪽) 이는 마치 죽음에서 부활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용기와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5. 이 책은 저자가 듀크대학에서 행한 강연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최신의 논의를 기대하는 독자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저자는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좀 더 성서 텍스트의 경전적 의미를 살리는 방식으로 예수를 이해할 것을 권한다.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경고는 꼭 귀담아들어야 하지만,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이 이를 모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세기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역사적 연구를 통해 다양한 예수의 모습을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 모습들이 저자가 말하는 복음서에 구현된 예수의 모습과 다를 수 있다. 게다가 역사적 예수 연구의 다양한 결과는 좀 더 성서에 가까운 예수의 모습을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위험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적 예수 연구가 가져다준 장점은 분명히 기억되어야 한다. 신학이 스스로를 비판하지 않을 때,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비현실적일 수 있는지를 알려준 것이다. 이는 21세기에 나타난 대부분의 비평 이론이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역사비평적 연구는 자신이 쌓아온 역사 연구 자체를 의심할 수 있는 자기비판 능력을 길러왔다. 저자가 지적하기도 했지만 “결국 역사는 관찰자의 것”(100쪽)이기에 관찰자에 따라 다른 역사가 쓰인다는 말은 역사적 연구의 외부에서 나타난 비판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난 반성이다.
스스로의 편견을 계속 무너뜨려 온 비평적 연구가 어떤 역사적 예수를 발견할지 지켜보는 것은 이 책의 예수를 바라보는 저자의 신선한 해석만큼이나 필자에게도 기대되는 일이다.

한수현|시카고신학대학원에서 신약성서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청수교회 담임목사이며, 감리교신학대학교와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강의하고 있다.

 
 
 

2023년 1월호(통권 7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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