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 선교의 불가능성에 도전하다!
20세기 중반 영국 교회선교회의 총무를 역임한 막스 워렌(Max Warren)은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동등한 협력은 폭정보다 더 힘겨운 일이다.”라는 문구를 인용하면서 선교 현장에서 ‘동반자 선교’(partnership in mission)를 구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토로했다. 선교동역자나 선교행정가 등 선교 일선에서 활동한 이들에게도 동반자 선교를 제대로 구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동반자 선교의 관점에서 선교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규모가 작더라도 선교 파트너 간 몇 차례 회의를 거치며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또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과 협조하고 선교지 상황도 조사해야 한다. 사업이 끝난 뒤에는 사업 참여자들의 피드백을 통해 꼼꼼하게 평가하고 미흡한 점을 수정하는 후속 작업 역시 이어진다.
사실 특정 선교단체가 자신이 설계한 프로젝트를 현장에 주입하는 일방향식 선교라면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동반자 선교는 선교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우회하고 있는 듯해 비효율적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동반자 선교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파트너 당사자들 간의 의견 충돌과 여기서 비롯하는 감정적 상처는 파트너십의 지속가능성에 도전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왜 동반자 선교를 애써 실행해야 하는가? 왜 그렇게 고생스러운 절차를 거쳐야 할까?
한경균 목사의 『동반자 선교 보고서』는 한 가지 답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20년간 세계 에큐메니컬 현장을 탐험하면서 경험하고 배운 값진 깨달음을 통해 일방향적 선교에 익숙한 한국교회를 ‘동반자 됨’(being partners)의 성숙한 길로 안내한다. 이 책은 현대 자본주의와 성과주의, 그리고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치부하는 선교 현상에 대해 겸손하게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과거 제국주의적 선교 문화가 조장한 반복음적인 선교 실천과 사고로부터 근본적으로 회심할 것을 요청한다.
특별히 저자는 한국교회가 해외 선교에서 보여준 제국주의적 유산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선교 강대국에 걸맞은 성숙한 선교 실천과 선교 문화를 배양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어찌 보면 저자는 막스 워렌이 언급한 동반자 선교의 우려와 불가능성에 도전하여 오늘의 현장에서도 그것이 가능함을 몸소 실천으로 증명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저자의 동반자 선교 전략과 정보 및 노하우가 가득 담겨 있지만, ‘나’와 ‘너’(타자)가 선교 파트너로서 어떻게 서로의 삶에 공감하고 진정한 파트너가 될 수 있는지 본질적인 문제를 짚고 있다.
지난 기독교 선교 100년의 역사는 동반자 선교 투쟁의 역사!
동반자 선교는 단순히 파트너 간 사업 협력이라는 선교 전략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동반자 선교가 등장한 배경을 살펴보면, 동반자 선교는 인적·물적·영적 자원을 공유하는 문제가 아니라 선교 당사자 간 타자 이해와 관계 맺음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성공회 사제로 잠비아에서 사역한 콜린 마쉬(Colin Marsh)는 동반자 선교가 과거 식민주의 시기 서구 교회에 대한 신생 교회의 종속 현상을 극복하고 동등한 관계에서 사역을 시행하려는 시도에서 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서구 교회에서 비서구 교회로 자원이 한 방향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빚어지는 선교지 종속 문제, 선교사와 현지인 사이의 권력 문제, 토착 교회의 자립 문제, 선교사 우월주의와 온정주의(시혜적 선교)가 동반자 선교를 통해서 극복되길 기대했던 것이다.
동반자 선교의 필요성에 대한 초기의 문제 제기는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사대회에서 기원한다. 인도 성직자 아자리아(V. S. Azariah)는 이 대회의 한 연설에서, 주인처럼 군림하며 온정을 베푸는 선교사가 아니라 현지인들을 진정한 친구로 대할 수 있는 선교사를 파송해달라고 요청함으로써 서구 선교사와 현지인 간의 선교 협력과 동반자 의식을 각성시켰다. 아자리아의 이러한 요청은 다수 선교사의 선교 활동을 재고하고 반성하게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동반자 선교를 이루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이후 1947년 휘트비 국제선교대회(IMC)는 “순종 속의 파트너십”(Partnership in Obedience)을 주제로 하여 동반자 선교를 현장에 녹여내기 위한 노력을 전개했다. 그러나 현실은 상호 순종과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19세기 제국주의적 선교 방식인 종속과 지배 관계가 만연했다.
1971년 동아프리카장로교회의 총무 존 가투(John Gatu)는 동반자 선교가 구현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아프리카 선교지가 탈제국주의라는 해방의 과정 속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 선교사들의 독점적 지배가 심화되는 현상을 목격한 그는 결국 선교사 파송을 일시 중지하자는 ‘선교사 모라토리엄’(Missionary Moratorium)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현지 교회 지도자들 역시 서구 제국주의의 상징이 된 선교사의 존재를 성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1
아이러니하게도 아시아에 위치한 한국교회는 이러한 제국주의 선교가 가져다준 불운한 유산을 답습했다. 1970년 이후 양적으로 급성장한 한국교회는 1989년 정부의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에 따라 국내에서 포화된 전도 열정이 해외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현지인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을지에 대한 성찰은 부재했다. 다양한 선교 단체와 선교사 간 과열된 경쟁의식은 땅따먹기식 성과주의를 부추겼다. 선교 현장에서 현지인에 대한 동역자 의식은 부재했다. 오히려 현지 교회 전통과 신앙 그리고 현지 선교 정책은 무시된 채 한국의 보수적 신앙과 윤리만이 현지에 ‘이식’되었다.
지난 2008년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한국교회를 향한 아시아 교회 지도자들의 목소리”라는 주제로 개최한 월례 발표회는 동반자 정신이 부재한 한국의 선교 상황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 발표회에 참석한 필리핀 복음주의협의회의 에프레임 텐데로(Efraim M. Tendero)는 “필리핀 사람들을 한국화하려 하지 말고 필리핀 문화에 적응하고 이를 존중해달라.”라고 조언하며 한국 선교사들의 현지 문화 수용성 부족과 협력 의식의 부재, 우월주의적 자세를 비판했다.
품격 있는 선교적 역량 키우기
『동반자 선교 보고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간파하고 있다. 이 책의 각 장에서는 아시아 교회 지도자들의 한국 선교에 대한 뼈아픈 경험을 성찰한다. 책 서문에는 “세계교회의 품격 있는 일원 되기”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저자는 “품격 있는 선교적 역량”을 기르기 위해 한국교회가 현지 교회의 전통, 신학, 선교 정책, 구조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강조한다. 그는 20년 이상 국내외 에큐메니컬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현재는 ‘한국교회생태계연구네트워크’(교생연N)를 이끌면서 동반자 선교에 대한 한국교회의 올바른 인식과 이에 따른 선교 체제의 변화를 궁리하고 있다.
제1부에서 저자는 동반자적 선교 순례를 함께해 온 교단을 소개한다. 인도교회, 필리핀그리스도연합교회, 뉴질랜드장로교회, 아시아기독교협의회, 미국장로교회, 스코틀랜드장로교회, 영국개혁교회 등이 바로 그 예이다. 저자는 특별히 에큐메니컬 선교신학의 관점에서 현지 교회와 다양한 사역 부문을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신학교육, 현지 지도력 훈련, 종교 간 대화 문제, 현지 교회 직제 문제 등 한국교회와 동반자 교회가 함께 진행할 수 있는 분야가 생생하게 정리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동반자 교회 혹은 선교사들 간의 상호 영향과 변혁이다. 다분히 한국교회의 일방적인 기여가 아니다. 해외 동반자 교회와 기구가 어떻게 한국교회와 신학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가 담겨 있다.
제2부에서는 동반자 선교를 구현하기 위한 품격 있는 지도력 육성을 다룬다. 저자는 교계 지도력을 양성하는 신학교육의 문제를 조명하면서 동반자를 형성한다는 관점의 교육 방향성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과거 서구 중심의 기독교 세계가 아닌 세계 기독교 시대를 맞은 지금 동남아시아신학대학(ATESEA), 인도 세람포르대학교 네트워크, 아프리카, 태평양, 남미의 신학교 등 지구 남반구의 신학 자원을 공유하는 것은 한국 교계와 신학교육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한국 신학의 개발은 물론 세계 신학과 역사를 이해하고 동반자 됨을 위한 공감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이다.
제3부에서는 “한국교회, 아시아교회의 친구인가?”라는 다소 성찰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한국교회가 진정한 교제와 우정을 나누길 원한다면 선교적 물량 공세를 펼칠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한다. 한국교회는 지난 2013년 부산에서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를 개최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지만, 과연 주변의 아시아 그리스도인들과 동반자 관계를 구축할 정도로 성숙한가? 오히려 신앙적, 신학적 우월주의를 표방하며 아시아 교회를 주변부로 밀어내는 것은 아닌가? 저자는 제3부에서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집요하게 탐구해간다. 특히 한국교회의 선교단체가 아시아 교회의 자립과 자신학화를 돕고, 이러한 단계로 진입한 지역에서는 선교 자원을 이양해야 할 것도 함께 조언하고 있다.
마지막 제4부에서 저자는 동반자 선교를 구성하는 주요 주제를 탐구한다. 선교의 주체와 객체,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 탈식민주의 신학과 선교사 모라토리엄, 상황신학과 같은 논쟁적인 주제부터 에큐메니컬 차세대 지도력, 디아스포라 및 다인종 목회에 이르기까지 목회적 실천을 위한 핵심 과제가 저자의 경험과 함께 잘 제시되어 있다. 저자가 주목한 주제들은 미래 선교를 전망하는 데 중요한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특히 목회와 선교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연구 주제이자 실천 과제이다. 이미 국제 에큐메니컬 혹은 복음주의 기구에서도 이같은 주제가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각 국가와 지역별로 이 같은 신학적 주제를 고찰하는 대회와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저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동반자 선교를 이해하기 위한 신학 문서를 엄선하여 책 부록에 소개하고 있다.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 “미국장로교 선교국 운영 매뉴얼”, “필리핀그리스도연합교회와의 선교협정서”, “에든버러 2010대회, ‘공동의 소명’” 등이다. 이러한 문서는 선교 동역자와 목회자들에게 동반자 선교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
진정성 있는 동반자 선교를 위하여
21세기에 진입한 지도 벌써 2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선교 방식, 특히 아시아의 여러 교회와 관계 맺는 모습은 제국주의의 흔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다행히 지난 1990년 이후 성찰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관계 맺음의 방식을 재고하면서 ‘에큐메니컬 자원 공유’(Ecumenical Sharing of Resources, 일방향적 물적 나눔이 아닌 상호 신뢰와 책임 관계 속에서 동반자 간 삶을 나누는 방식)를 통해 성숙한 선교적 의식이 싹튼 것은 유의미하다.
하지만 이러한 동반자 선교를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동반자 선교라는 연속적인 과정을 이행하면서 생겨나는 고충들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경험과 지혜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동반자 간 깊은 인내심이 중요하다. 선교적 성과를 종용하는 한국교회의 습성은 동반자 선교를 진행하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된다. 글 첫머리에 언급한 “동등한 협력은 폭정보다 더 힘겨운 일이다.”라는 말처럼 ‘양방향의 선교가 아니라 차라리 일방향적 선교가 더 낫다.’는 일각의 현실적인 목소리에도 대비해야 한다.
동반자 선교는 세계 그리스도인의 만남으로부터 선교가 시작됨을 전제로 한다. 선교는 어떤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를 위해 현장에서 삽을 뜨는 일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는 인간과 인간의 만남과 교제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짐바브웨의 여성 정치가로서 세계교회협의회에 관여해온 시템비소 니오니(Sithembiso Nyoni)는 동반자 선교에 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물질을 나누기 전에, 우리가 누구인가를 먼저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풀어 설명하면, 동반자 선교란 교회 조직이나 물질을 나누는 일 이전에 상대의 신앙, 고통, 문화, 영성을 나누는 근본적인 친교 행위라는 것이다. 동반자 선교는 때로는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일지 모르겠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정을 나누며 그 관계 가운데 ‘나’와 ‘너’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진정한 일치와 화해를 추구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러한 관계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던져준다. 동시에 동반자 선교에 회의적인 이들에게 실현 가능한 증거와 비전을 전해준다.
주(註)
1 동반자 선교의 역사적 흐름에 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고할 것. Kang-Hee Han, “Still We Need Friends!: Partnership in Mission in the History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1948-2018,” The Ecumenical Review 70, no.3 (October 2018): 484-498.
한강희|영국 에든버러대학교 신학부에서 세계기독교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숭동 낙산교회에서 목회하며 한신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서스테이너블 처치: 선교적 교회 이론과 실천 맥 잡기』 외 다수 역서와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