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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2년 10월호)

 

  믿음과 깨달음의 균형과 조화
  오강남, 『살아 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오강남의 도마복음 풀이』(김영사, 2022)

본문

 

1. 1970년대 유신 독재정권 시절, 나는 신학교를 다닐 때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무기형을 선고받고 1,584일 동안 옥고를 치른 적이 있다. 당시 유신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던 중앙정보부 김기춘은 한국신학대학의 유신철폐 민주화 학생운동을 조총련계 간첩의 조종을 받은 국가전복 획책 사건으로 조작했고, 전병생, 나도현, 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2017년 3월 30일, 42년 만에 나는 재심을 통하여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26살의 꿈 많던 신학생 시절에 간첩 누명을 쓰고 투옥된 후, 평생을 살아오다가 고희(古稀)를 넘겨서야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되었다.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0.78평 독방이 내 세계의 전부였다. 나는 일상적인 생각을 멈추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내 생의 전부로 알고 현재에 집중함으로써,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염려와 걱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해야 할 일은 ‘몸 챙김’이었고, 할 수 있는 일은 ‘책 읽기’였다. 그때 감옥에서 익힌 ‘요가 명상의 일상화’는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 내 삶과 신학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나는 이 기간을 자아 성찰과 의식 확장의 기회로 삼았다. 한편으로는 내 신앙의 뿌리인 성서신학과 이와 연관된 서구 철학의 고전들을 깊이 팠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 존재의 뿌리인 동방 고전들을 탐독했다. 공자, 노자, 불교의 반야경들을 읽으면서, 동방 지혜의 핵심 내용이 예수의 가르침과 그리 멀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양심 성찰에 바탕을 둔 동방 지혜 사상의 지평에서 예수말씀을 읽을 때 그 의미가 보다 더 선명해졌다.
출소 후, 안병무 선생의 한국신학연구소에 재직하는 동안 나는 사회의 소수자들(social minorities)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동반자로 살았던 맨사람 ‘예수의 길’에서 나의 길을 찾았다. 그 연장선상에서 독일 함부르크대학으로 유학길에 올랐고, 8년 동안 예수말씀 복음 큐(Q)를 탐구했다. 1985년 봄학기 나그함마디 문서 세미나를 수강하면서, 나는 큐와 유사한 도마복음을 만났다. 큐가 예수말씀을 어떻게 따를 것인가를 묻는 제자도(followership)에서 복음의 정체성을 찾았다면, 도마복음은 그 말씀의 뜻을 바로 깨달아 내 안의 신성과 하나가 되는 데서 복음의 정체성을 찾았다. 나는 두 복음서가 보여준 ‘영적 스승 예수’(Jesus as spiritual teacher)의 길에서 내가 따라가야 할 신학의 길을 발견했다.

2. 이 책의 저자 오강남 교수를 학술모임에서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비교종교학자이지만 신학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고, 해외에 거주하면서도 한국교회의 민주화와 종교평화 운동에 늘 가까이 서 있었다.
그의 책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은 2009년도에 출판한 도마복음 해설서 『또 다른 예수』를 13년 만에 수정·보완한 것이다. 책의 말미에는 내 안의 참나 각성을 주제로 하는 함석헌의 신비주의 사상에 관한 글을 첨부하여 도마복음을 보다 심층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저자는 도마복음에 나오는 114편의 비밀스러운 예수의 말씀에 숨겨진 진리를 동방의 종교문화, 특히 공자, 노자, 장자, 힌두교, 선불교의 지평에서 폭넓게 해설하고 있다.
성서읽기의 한 방법으로 불트만은 ‘탈신화화’(demythologizing)를 말했다. 성서의 신화에는 동시대인들의 실존적 자기이해가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되고, 현대인의 실존적 상황에 맞게 풀이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나는 불트만의 실존론적 성서해석 방법론에 공감하지만, 더 나아가서 인간의 실존을 사회 생태적 차원으로 확장시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스도교 복음은 시공을 초월하여 진실, 정의, 사회 생태적 약자의 편에서 재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환기적 독법’(evocative reading)을 주창한다. 내 안의 참나 신성을 일깨워 신과 합일되는 방편의 하나로 예수말씀을 읽는 것을 말한다. 고려시대 백운선사는 ‘대의대오 불의불오’(大疑大悟 不疑不悟)”를 말했다.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닫지만, 의심하지 않으면 아예 깨닫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원칙은 성서해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성서는 묻지 않으면 침묵한다. 크게 의심해야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닥쳐왔다.”(마 4:17, 필자 사역) 이는 예수 설교의 총 결산이다. 도마복음에서는 술에서 깨어나면 회개할 것이라고 한다.(도마 Log28) ‘회개’로 번역된 헬라어 ‘메타노이아’(metanoia)는 무엇인가? 큰 의심을 품는 것이다. 밖으로 향해 있던 눈을 안으로 돌리는 것이다. 내 안에서 신적 본성을 찾는 것이다. “추구하는 사람은 찾을 때까지 찾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찾으면, 혼란스럽게 되고, 혼란스러워지면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도마 Log2) 내 안의 신성(I AM)을 찾게 되면, 표층적 자아인 에고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내 안의 신성을 찾아 신과 하나가 될 때,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법도에 벗어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3. 1945년 12월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콥트어 도마복음은 기원후 325년 니케아공의회 이후에 이집트의 영지주의 문화권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신약 정경복음과 도마복음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자가 구원의 방편으로 믿음(pistis)을 강조하고 있다면, 후자는 영적 깨달음(gnosis)을 강조한다.
“누구든지 이 말씀의 뜻을 바르게 깨닫는 자는 결코 죽음을 경험하지 아니할 것입니다.”(도마 Log1) 자아완성(구원)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가? 비밀스러운 예수 말씀의 뜻을 바르게 깨치는 것이다. 깨달음은 내 안에 있는 동질의 것을 일깨우는 것이다. “남이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는 예수의 계율(마 7:12)은 나를 척도로 삼아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
예수는 말한다. “너희는 하늘과 땅의 형세는 분별할 줄 알면서도, ‘너희 눈앞에 있는 사람’(the one who is in your presence)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한다.…”(도마 Log91) 하늘과 땅의 형세는 오감에 의해서 파악되는 대상 세계이다. 내 면전(面前)에 있는 분은 누구인가? 모세가 체험한 “에흐예(I AM) 하나님이다.”(출 3:14) 도마복음은 면전자(面前者)를 “산 사람”(living one, 도마 Log52) 또는 “단일자”(a single one, 도마 Log4)로 표기한다. 이러한 개념들은 나를 나 되게 하는 신적 본성의 총칭이다. 내 안의 신적 현존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러분이 둘을 하나로 만들면, 여러분은 사람(아담)의 자녀가 됩니다. 여러분이 ‘산아, 움직여라.’ 하면 산이 움직일 것입니다.”(도마 Log106) 아담의 자녀, 곧 남녀로 분리되기 이전 ‘원(原)인간’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나? 둘을 하나로 만들면 된다. 내 안의 신적 본성을 알아차리고 신과 하나가 될 때 자아완성(구원)에 이르게 된다. ‘단일자’(a single one, 도마 Log4, Log23)가 되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늘 뜻에 일치하게 된다.

4. 초기 그리스도교 세계에는 사도교부 교회와 그노시스 교회가 양립되어 있었다. 선교 초창기에는 두 교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로마의 종교권력이었던 사도교부 교회의 사제들이 교회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구원교리 체계가 정통(正統)이 되었고, 그노시스 교회의 구원교리는 이단(異端)으로 몰렸다. 사도교부 교회의 구원교리가 주로 로마 사회 하층 문맹자들의 관심을 끌었다면, 그노시스 교회의 비밀스러운 예수말씀의 영적 지식에 근거한 구원체계는 소수의 엘리트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노시스 교회는 비밀스러운 예수말씀에 대한 바른 깨달음(gnosis)이 바른 구원으로 이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유대교의 카발라를 비롯하여 동방의 신비주의 문화권에서는 신을 ‘내재적 초월자’(the immanent transcendent)로 인식했다. 이러한 신비주의적 신 이해 지평에서 도마복음은 내 안의 신적 로고스를 알아차리고 그와 합일되어 단일자로 거듭날 때 죽음을 극복하게 되고 인간완성(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 기원후 367년 아타나시우스에 의해서 성서 27권만이 정경(canon)으로 선포된 후, 정통과 이단 논쟁이 격화되면서 그노시스 교회와 도마복음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885년 언더우드에 의해서 기독교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복음은 가난한 하층민에게 희망의 등불이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단순한 교리는 교세 확장과 성장의 기틀이 되었다.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교회는 정부의 경제성장 정책에 편승하여 구원신앙을 물질의 복과 접목시켜 교회의 외형적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는 위기를 맞고 있다. 오직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고 물질의 축복을 받는다는 이전의 획일화된 구원관은 신학의 빈곤을 자초했고 복음의 정체성 상실을 가져왔다. 시대가 바뀌면 신앙의 양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도마복음의 구원 패러다임에 귀를 기울일 때이다. 믿음과 깨달음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신앙의 질적 성숙을 도모하며 복음의 전일성(全一性)을 회복해가야 할 것이다. 동서 종교철학의 풍부한 영적 자산들을 활용하여 비밀스러운 예수말씀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김명수|성균관대학교와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예수말씀복음 큐(Q)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Dr. theol.) 지은 책으로는 『큐복음서의 민중신학』, 『역사적 예수의 생애』 등이 있다. 경성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충주에 있는 노인요양시설 ‘예함의집’에서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2022년 11월호(통권 7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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