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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2년 10월호)

 

  동양 기독교 고전 번역의 길
  최병헌 지음, 이동원 역주, 『만종일련』(삼필문화사, 2022)

본문

 

한국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선교사의 어학 선생으로 출발하여 교계의 지도자로 성장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한국 기독교 신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탁사(濯斯) 최병헌(1858-1927)은 가장 대표적인 예의 하나일 것이다. 과거시험에 번번이 실패하여 불우한 삶을 살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감리교 선교사 존스의 한국어 선생으로 일하게 된 후 기독교에 입문한 인물이다. 물론 처음에는 그도 종교적 관심보다는 호구지책으로 어학 선생이 되었기 때문에 기독교를 받아들이기까지는 적지 않은 고뇌의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당시 대부분의 유교 지식인처럼 탁사도 개종 이전에는 기독교를 서양 오랑캐의 종교로 배척하였다. 천주교와 개신교를 가릴 것 없이 서양의 종교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거부하는 반인륜적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가족이나 문중으로부터 박해나 추방을 각오해야 할 만큼 사회적 차원의 단절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탁사는 선교사의 알선으로 배재학당의 한문 선생으로 일하게 되는 등 기독교인들과의 접촉 기회가 증가하였지만, 기독교 자체와는 분명한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와의 거리두기가 점차 어려워짐을 느낀 탁사는 기독교 세계관과의 정면 대결을 시도하였다. 그는 유학자 출신답게 경학을 공부하듯이 성서 및 기독교 서적과 치열하게 씨름하였고, 5년에 걸친 탐구 끝에 마침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세례를 받은 이후 탁사는 성서 번역을 비롯하여 신앙서적의 편찬이나 보급과 관련된 문서선교에 주로 종사하였다. 초기 기독교인의 대다수는 하층 계급 출신인 데 비해 그는 유교적 소양을 지닌 지식인으로서 이러한 일에 적합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선교사들과 함께한 최초의 기독교 신문 「조선그리스도인회보」 및 기독교 잡지 「신학월보」의 발간 작업은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활동이다.
탁사는 기독교 언론매체의 창간 작업에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편집인으로도 활동하면서 동양의 종교문화를 염두에 둔 기독교 변증 작업에 힘썼다. 그가 「대한그리스도인회보」에 게재한 “삼인문답”(1900)은 매우 짧지만 유교를 대상으로 기독교 변증론을 펼친 최초의 글이다. 이 글을 발전시켜 1907년 「신학월보」에 연재한 ‘성산유람기’는 유교, 불교, 도교를 대상으로 한 기독교 변증론으로서 나중에 『성산명경』(1912)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대화체의 형식을 취한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성산’(聖山)이라는 가상의 무대에서 유교를 대표하는 선비 진도(眞道), 불교를 대표하는 스님 원각(圓覺), 도교를 대표하는 도사 백운(白雲)이 기독교를 대변하는 소년 신천옹(信天翁)과 어떤 것이 참된 종교인가를 둘러싸고 3일간 벌인 논쟁이다. 물론 세 종교의 대변자들은 마침내 기독교를 궁극적 진리로 받아들이면서 논쟁이 종료된다.
성산유람기 연재 이후 탁사는 ‘사교고략’(四敎考略, 1909)이라는 제목으로 또 다른 연재를 시작하였는데, 이번에는 이슬람과 힌두교도 포함하였다. 번역물이라는 한계를 지녔지만 이 연재물은 유불도 3교 이외의 종교전통으로까지 탁사의 관심이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심의 확장 속에서 1916년부터 1920년까지는 「신학세계」에 13회에 걸쳐 ‘종교변증설’을 연재하였는데, 여기에는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수많은 종교가 포함되었다. 이 시리즈를 보완하여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 바로 『만종일련』(萬宗一臠, 1922)이다. 이 책이 나올 무렵 탁사는 목회 일선에서 은퇴하여 협성신학교 교수로 초빙되었으며 1927년 생애를 마칠 때까지 비교종교론과 동양사상을 강의하였다. 따라서 『만종일련』은 그의 신학과 사상이 최종적으로 결집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1
『만종일련』은 서언과 총론을 포함하여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언에서는 책의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는데, 당시 탁사의 눈에 비친 종교계는 각 종교가 난립하여 자기 종교만이 참 진리라고 주장하는 혼란 그 자체였다. 마치 ‘옥돌과 물고기의 눈알이 뒤섞여 있는 것과 같은’ 혼돈의 세상이었다. 탁사는 이러한 세상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참된 종교의 가르침을 제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리고 총론에서는 각 종교의 개요를 소개하는 한편 참 종교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3대 관념, 즉 유신론, 내세론, 신앙론이 그 척도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결핍되면 참 종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탁사의 논리다. 물론 이 기준들이 기독교를 모델로 한 것임은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제1장부터 5장까지는 유교, 불교, 도교, 이슬람, 힌두교를 순서대로 다루고 있다. 이 종교전통들은 탁사가 기존의 글들을 통해 다룬 적이 있으며 세계종교사에서도 중요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각 종교의 경전과 교리, 교조의 생애와 활동, 그리고 분파 등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반면 제6장은 “기타 각교(各敎)”라는 제목하에 국내외의 다양한 종교전통을 다루고 있다. 국외의 종교로는 신교(神敎)를 비롯하여 천리교, 조로아스터교, 라마교,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의 종교, 중국의 백련교 등이 포함되고 있고, 국내의 종교로는 태극교, 대종교(大倧敎), 천도교, 대종교(大宗敎), 태을교, 경천교, 청림교, 제우교, 백백교, 통천교, 삼성무극교, 각세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6장에서 소개된 종교의 종류는 매우 많지만, 실제 서술 내용은 소략하다. 특히 국내의 신종교들에 대한 서술은 더욱 소략하다. 이는 이 종교들에 관한 문헌자료의 부족과 접근의 어려움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제7장은 기독교에 관한 것으로서 기독교의 분열사, 다른 종교와 비교되는 기독교의 독특성과 우월성, 그리고 ‘수도요결’ 혹은 ‘신제덕행’(信梯德行)이라는 이름하에 기독교인의 신앙성숙을 위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만종일련』은 인류의 역사에서 등장한 수많은 종교전통을 비교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일종의 세계종교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비교가 기독교를 종교의 모델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호교론적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당시 한국인들에게 매우 낯선 종교전통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 신학을 넘어 한국종교사 연구에서도 매우 가치 있는 문헌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학계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성산명경』의 경우 탁사의 초기 작품이지만 학계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고 그에 관한 연구도 많이 축적되었다. 이러한 차이를 초래한 주요 이유의 하나는 접근의 용이성에 있다고 본다. 『성산명경』은 순한글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신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쉽게 읽힌다. 반면 『만종일련』은 당시에 통용되던 국한문 혼용체로 되어 있어 오늘날의 일반 독자는 물론 연구자들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만종일련』에 대한 접근을 더욱 어렵게 한 것은 각 종교전통을 서술하면서 사용하고 있는 낯선 용어와 개념들이다. 탁사는 유교 전통에서 내려오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정신에 따라 글을 썼기 때문에 자신의 견해와 의견을 앞세우기보다는 과거의 문헌을 원문 그대로 인용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더구나 당시의 관행에 따라 그 출처를 밝히지도 않았다. 따라서 그동안 『만종일련』은 그것이 지닌 가치에 비해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역주본이 나왔다. 이 역주본은 국한문체로 쓰인 원문을 평이한 우리말로 번역하여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한자와 한문의 벽에 가로막혀 있던 벽을 허무는 작업을 한 것이다. 이번 역주본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탁사가 책을 쓰면서 인용한 원자료의 출처를 역주 작업을 통해 밝혔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역자는 동양고전은 물론이고 1920년대에 간행된 서적을 두루 살폈다고 한다. 1,500개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각주가 역자의 고투를 고스란히 증명한다. 특히 전거를 찾는 과정에서 탁사가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1918)와 『백교회통』(1912)을 많이 원용하고 있음을 밝혀낸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근대 불교학의 대가인 이능화의 『백교회통』은 불교의 관점에서 세계종교와 불교를 비교하는 책으로서 기독교의 관점에서 세계종교와 기독교를 비교하는 『만종일련』과 대비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전거를 밝혀내지 못한 부분도 적지 않지만, 이는 앞으로 전문적인 연구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특히 탁사가 서언에서 밝힌 바 있듯이 유교의 성리설과 관련하여 많이 의존한 독일 출신의 재중국 선교사 에른스트 파베르(Ernst Faber)의 『성해연원』(性海淵源)과 대조하는 작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 작업 역시 전문 연구자의 몫으로 남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만종일련』의 원문을 일일이 타이핑하여 부록으로 실은 것도 이 역주본의 커다란 미덕이다.
사실 이처럼 방대한 작업을 한 사람이 하기에는 상당히 힘들다. 더구나 전문적인 학자가 아니라 교회 현장에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가 이러한 작업을 했다는 것은 매우 놀랍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러한 성과가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 2000년대부터 동양고전을 함께 공부하면서 동양 기독교 고전을 번역하는 팀이 가동되고 있었고, 이들이 주도하여 만든 ‘기독교고전번역원’이 이 작업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탁사 자신이 책의 서두에서 풀이한 것처럼 ‘만종일련’(萬宗一臠)은 ‘저민 고기 한 덩어리로 온 솥 안의 맛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때 ‘저민 고기 한 덩어리’는 기독교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안에 모든 종교의 진리가 들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를 알면 모든 종교를 알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태도는 타 종교들을 배척하기보다는 수용하는 포용주의로서 20세기 초 선교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성취신학(fulfillment theology)의 흐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은 성취신학의 한계마저 뛰어넘어야 한다는 논의가 등장하고 있는 시대다. 그렇지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한 세기 전 ‘서양의 하늘이 곧 동양의 하늘’(西洋之天卽東洋天)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동아시아의 한 기독교 지식인이 생애 마지막에 남긴 저서임을 인식하고 읽을 때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주(註)
1 1927년에 재판이 발간되었으며, 이번에 나온 역주본은 재판에 근거한 것이다. 최병헌, 『(增訂)萬宗一臠』(京城: 朝鮮耶蘇敎書會, 1927).

이진구|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이며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 개신교의 타자인식』, 『한국 근현대사와 종교자유』 등이 있다.

 
 
 

2022년 11월호(통권 7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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