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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2년 10월호)

 

  비주류 종교개혁자를 조명하다
  박종균, 『종교개혁의 빛과 그림자』(북코리아, 2021)

본문

 

1.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지가 벌써 5년이다. 그동안 종교개혁에 앞장선 인물이나 종교개혁이 내세운 사상을 다룬 글은 접하기 쉬웠으나, 종교개혁 운동에 참여했다가 오히려 종교개혁 주류 세력에 의해 핍박을 받은 비주류 종교개혁가에 대한 연구물은 흔치 않았다. 이런 기존의 흐름과는 달리 이 책은 종교개혁 과정에서 주류에 의해 이견자로 낙인찍혀 죽음이나 곤경을 겪은 종교개혁의 비주류 인물들에 대하여 세심한 연대의 관심을 담고 있다.
저자는 종교개혁 운동의 이면을 조명하기 위해서 루터, 칼뱅, 그리고 재세례파 메노 시몬스에 대하여 총 9장의 분량 중 각기 3장을 할애하여 다층적인 연구물을 냈다. 따라서 루터와 짝을 이루는 비주류 토마스 뮌처와 칼슈타트, 칼뱅에게 배척당한 카스텔리옹와 세르베투스를 매우 흥미롭게 다루었다. 이와 더불어 저자는 종교개혁 주류와는 거리가 먼 재세례파 메노와 그의 평화주의 공동체에 대하여 사회사적인 분석과 더불어 날카로운 사회윤리학적 논의를 펼치고 있다.

2. 사실 종교개혁은 일종의 자중지란이었다. 당시 서구 기독교 세계에서 절대 권력을 거머쥐고 있던 로마가톨릭교회는 성서 해석의 독점적 주체를 자인하면서 스스로를 절대적이며 신적인, 그리고 거룩한 존재라 규정하는 성례전 교의(敎義)로 무장하고 있었다. 은총의 거대한 저수지이자 분급자로서 가톨릭교회는 신적인 위엄에 걸맞게 거대하고 화려한 교회당을 도처에 지었고, 성직자의 성의(聖衣)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하지만 그 거대하고 화려한 교회의 이면에는 온갖 추악한 것들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 추악함은 신적인 것에 한없이 미달하는 인간의 죄와 악이었다.
마르틴 루터는 거룩한 교회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의 탐욕과 위선, 오만과 과장, 영적 허세와 속임수의 진면목을 바라보며 깊이 고뇌했다. 그는 교회가 주장하는 성직자의 거룩함에 성서적 근거가 없다는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더는 침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필자는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문 앞에 게시한 95개 조항의 비판 문항은 곧 당시의 교회가 거룩함을 빙자한 교회라는 사실을 드러낸 고발장이라고 본다. 이 고발장을 낸 후, 루터는 1520년에 세 편의 긴 논문을 발표했다. 그중에서 종교개혁의 신학적 정당성을 명료하게 밝힌 논문은 가톨릭교회의 절대성의 기조를 이루는 일곱 가지 성례전 중 다섯 가지가 비성서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논문이다.(“On the Babylonian Captivity of the Church”, 1520) 검사의 날카로운 공소장과 같은 이 글은 당시 교회가 주장하던 제도적 교회의 거룩한 신적 지위가 성서적 근거가 없는, 인위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 글의 내용은 곧장 세례와 성만찬을 제외한 다섯 가지 성례전(견진성사, 고해성사, 종유성사, 혼례성사, 사제서품)의 성서적 유효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불러와 성직자의 성직 수행 자체의 의미를 근본에서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은총의 수납과 사죄와 구원의 절대 보루로 여겨져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라는 명제를 선언했던 콘스탄틴적 교회의 권위는 성서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루터는 바로 그런 교회의 수장과 수족 노릇을 하던 교황과 성직자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신적 대리자라는 지위는 부정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저자는 당시 루터가 가톨릭교회의 성직 제도를 파괴했던 논거, 즉 반성직자주의(anti-clericalism)를 종교개혁의 혁명적 사상이라고 본다. 성직자의 거룩한 권위가 무너지니, 성례전의 유효성이 무너지고, 성례전의 유효성이 무너지니 교회의 권위가 차례로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루터의 반성직자주의는 기존의 권위체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이에 세속 권력자들은 구제도를 계속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질서에 편승할 것인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된 셈이다. 이 문제는 당대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관계와 결부되어 피비린내 나는 30년전쟁을 불러왔다. 성서적이며 신학적인 이견이 정치사회적 현실과 결부되면서 포악의 역사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루터의 의도와 상관없이 종교개혁 운동이 유럽 전체를 30년전쟁으로 몰아가는 촉매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엄중한 평가를 소홀히 하는 논리를 문제 삼는다. 이것이 저자가 종교개혁 자체의 신학적 정당성이 아니라, 종교개혁 운동의 사회윤리학적 책임성과 정당성의 문제를 추적, 논구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바벨론의 포로처럼 가톨릭교회의 인위에 사로잡혀 있던 상태에서 말씀으로 해방되어 신앙의 자유, 기독자의 자유의 당위를 외쳤던 루터, 그리고 루터를 이어갔던 칼뱅의 성공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저자는 가톨릭교회에 의해 박해받던 시절 외쳤던 종교개혁자들의 초기 주장과는 어울리지 않게, 종교개혁 진행 과정에서 관료 세력들과 결탁하고 이견을 가진 동료 종교개혁자들을 죽이고 추방하며 온갖 오욕을 덮어쓰게 했던 역사적 사실에 관심을 갖는다. 그리함으로 종교개혁 시대의 그늘, 30년전쟁의 폐해, 루터 세력에 의해 진압당한 토마스 뮌처, 이견자를 박해하는 일에 집요했던 칼뱅, 그에 의해 희생된 세르베투스, 카스텔리옹의 사상을 추적하면서 종교개혁 주류의 포악을 들추어내고 있다.

3. 겉으로 보면 루터와 칼뱅은 종교와 정치를 분리해야 한다는 사상을 내세웠지만, 사실 그들은 세속 정권에 위임된 칼과 창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들의 주장에 반하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진압했다. 루터는 ‘신적 질서’라는 이름으로, 칼뱅은 ‘구원으로 강요하는 권징’이라는 이름으로 잔혹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교사했다. 이 과정에서 종교개혁 주류는 가톨릭교회의 비성서적인 영적 권위와 질서를 부정하는 대신, 제 나름의 새로운 사회이론을 제안하고 그 신(新)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셈이다. 그들의 사회이론은 후대에 각기 ‘두 왕국설’(Zweireichelehre), ‘그리스도 주권론’(Herrschaft Christi)이라 명명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새로운 질서 이론이 다른 의견을 가진 자에 의하여 거부되거나 훼손되는 것을 두려워했고, 따라서 외부만이 아니라 내부의 이견자를 적대자로 간주하고 진압했다.
기득권에 대한 비주류 종교개혁자들의 이해는 주류 종교개혁자와 달랐다. 어떤 부류는 합법적 폭력을 이용하는 관헌 종교로 변질하는 교회보다 성서적 평화주의에 더 근친성을 가지는 입장, 그리고 다른 부류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민중과 연대를 나누며 복음을 통한 신앙 공동체의 변화를 도모했던 이들이다. 이런 특징은 소위 기독교 현실주의라는 노선과 달리, 기독교 평화주의의 성서적 전거를 따른 것으로, 어찌 보면 루터나 칼뱅보다도 더욱 성서적 근거가 분명한 것이었다. 저자는 부르주아의 탐욕을 해체하려 했던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사회경제사적인 시선을 빌려 종교개혁 이면의 이 평화주의적인 운동이 보다 정의로운 혁명의 기운을 담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하기에 저자는 루터보다 가난한 이들 편에 섰던 칼슈타트, 지주와 교회의 온갖 착취에 대하여 저항한 농민들 편에 섰던 토마스 뮌처를 찾아 그들을 변호하고 재평가한다. 사실 종교개혁 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루터나 칼뱅은 사회·경제적으로 기득권자, 지배자들의 지지와 후원을 받았고, 따라서 성서를 해석하면서 그들의 지배질서를 옹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가난하고 착취를 당하던 민중 편에 섰던 종교개혁자들은 성서가 노래하는 평화,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을 향한 꿈을 버릴 수 없었던 셈이다.
저자는 종교개혁의 이면을 살피면서 포악의 현실 속에서도 일련의 평화의 흐름이 마르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개혁과 혁명의 흐름 속에서 이견자에 대한 관용의 길을 부단히 권고함으로써 종교개혁 운동이 광신의 폭풍에 휘말리지 않기를 기대했던 양심적 종교개혁자들, 평화의 사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는 관용 없는 종교적 열광성을 지지하지 않았다. 칼뱅과 동시대를 살았던 카스텔리옹 역시 인구 1만 3,000명의 소도시 제네바를 거룩한 도시로 지켜내려는 칼뱅의 포악한 치리나 권징 방식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 엄청난 핍박 속에서도 메노 시몬스는 모든 포악의 길을 버리고 제자도의 길을 따라 자기 부정과 순교적 평화주의 공동체를 이끌어 나갔다. 우리는 과연 이들을 종교개혁 시대에 빛과 대조되는 어두움에 속한 이들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인가?

4. 종교개혁의 주류인 루터나 칼뱅의 행적을 추적하다 보면 그들의 언행에서 의로운 증오와 저주, 분노, 살의가 가득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소종파 영성가들의 언행에서는 그런 포악을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기독교 역사에는 예수께서 당부하신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세상의 부귀나 영화, 권력이나 탐욕을 버린 영성가들의 기록이 담겨 있다. 하지만 신앙과 영성의 이름으로 동료 인간을 핍박하고 살육한 역사도 담겨 있다. 그 현격한 차이에 대하여 에른스트 트뢸치는 신앙운동에서 대중, 다수의 지지를 통해 성장주의를 도모하는 교회 유형의 신앙에 담긴 현실주의적 타협의 결과를 일찍이 지적한 바 있다.
콘스탄틴주의적 기독교를 비판하고 개혁한 인물들이 또 다른 억압자로 돌변한 까닭은 밖에 있는 악만 보고 자기 안에 있는 악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안과 밖의 악을 구별하고 제어할 영성적 삶과 공동체는 과연 가능한 것인가. 메노나이트들은 성(聖)과 속(俗)을 구별하는 사회, 경제, 문화적 조건을 지닌 신앙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이 문제를 다소 해결했다. 하지만 정신과 물질세계를 끝없이 자극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노출된 오늘의 한국 그리스도인에겐 메노가 보여준 제자도의 길이 더욱 험난해 보인다.
이 책을 덮으면서 ‘과연 오늘의 한국교회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아처럼 살아가는 신자들을 지켜내고 보호할 신앙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생겨났다. 종교개혁 505주년, 한국 개신교 선교 140년, 우리 한국교회 안에서 권력과 탐욕, 경쟁과 허세에 지배받지 않고, 참된 평화와 관용이 숨 쉬는 성서적 신앙을 따라 제자도의 길을 걷는 신자들이 주류를 이룰 수 있도록 개혁의 새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기를 바라는 저자의 소망을 필자 또한 한마음으로 품어본다.

박충구|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한 후 독일 본대학과 미국 드루대학에서 공부하였다. 감신대 기독교윤리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기독교 윤리사』, 『예수의 윤리』, 『인간의 마지막 권리』 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생명과평화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2년 11월호(통권 7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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