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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2년 8월호)

 

  나그함마디 문서, 영지주의인가 비영지주의인가
  이규호 옮김, 『나그함마디 문서』(동연, 2022)

본문

 

자타가 공인하는 20세기 고고학적 발굴의 백미인 나그함마디 문서는 1945년 12월 이집트 나일강 유역의 나그함마디에서 발굴되었다. 올해가 2022년이니, 이 문서가 발굴된 지도 어느덧 77년이 되었다. 1947년부터 1956년까지 9년에 걸쳐 이스라엘 사해 북단에서 발굴된 쿰란 공동체의 사해문서와 비교할 때, 히브리어로 기록된 사해문서와는 달리 나그함마디 문서는 고대 이집트어의 일종인 콥트어로 기록되어 있어 해독과 연구가 지체되었다. 이는 1,500년 동안 아랍 세계의 지배를 받아 언어를 잃어버린 이집트의 불행한 역사의 단면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감신대 학장을 지낸 고 김용옥이 시리아 역본인 도마복음서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방정교회의 영지주의적 색채로 가미된 그 문서에 관한 김용옥의 연구는 학문적 가치가 있지만, 나그함마디 문서가 콥트어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하고 연구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도올 김용옥은 『절차탁마 대기만성』이라는 책에서 나그함마디 문서를 언급했으며, 이후 『도올의 도마복음 한글역주』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출간한 바 있지만, 콥트어를 전문적으로 다룬 것이 아니기에 학문적으로 미흡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한국인 학자로 본격적으로 나그함마디 문서를 학문적인 토대 위에 세운 사람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다가 잠시 한국에서 대한성서공회를 중심으로 활동한 고 이수민이다. 그는 콥트어 문법을 후진들에게 가르치고 나그함마디 문서와 관련된 여러 학문적인 글을 남겼다. 이수민 이후에 콥트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나그함마디 문서에 관한 학문적인 연구를 계속 이어가는 학자는 제임스 로빈슨의 제자로 미국 클레어몬트에서 귀국한 필자와, 한스 마틴 쉔커의 제자로 독일 훔볼트에서 귀국한 유병우가 있다.
그동안 나그함마디 문서 중 일부분은 이상근, 송혜경, 마들렌 스코펠로, 일레인 페이절스 등의 번역물을 통해 한국에 소개되었다. 과거 ‘이서하’라는 필명으로 온라인상에 번역물이 떠돌기도 했는데, 그것은 이규호의 번역이었다. 2002년에 마무리된 이규호의 번역은 작년에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출판 작업이 진행되어 올해 2022년에 정식으로 출간되었다. 20년 만이다.

이규호의 『나그함마디 문서』

이 책은 콥트어에서 직접 번역하지 않고 주로 제임스 로빈슨의 영역본(1981년판)을 저본으로 삼아 중역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최초로 나그함마디 문서를 한글로 번역한 책이라는 의의는 끊임없이 회자될 것이다.
이 책은 48개의 나그함마디 문서를 소개하고 있는데, 실제로 1945년에 발굴된 나그함마디 문서는 59개라는 점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무엇을 제외한 것일까? 바로 59개의 문서 중에서 중복되는 문서이다. 복본을 가진 문서는 〈진리의 복음〉, 〈요한 비밀의 서〉, 〈세상의 기원〉, 〈이집트인들의 복음〉, 〈복된 자 유그노스토스〉, 〈구세주의 대화〉 등 6가지이다. 특히 〈요한 비밀의 서〉는 복본이 3개나 되기에 초기 기독교에서 아주 인기 있던 문헌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위에 열거한 복본들은 실제로 비교할 때 완전히 같은 내용은 아니다. 복본이 가장 많은 〈요한 비밀의 서〉는 콥트어 본문 자체가 다르다. 결국 이규호의 『나그함마디 문서』에는 조금씩 다른 복본의 차이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필자의 제자 송윤숙은 장신대 박사과정 재학 중 남편의 안식년을 맞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요한 비밀의 서〉를 〈진리의 복음〉과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영어책 출판을 준비했으나, 지병으로 인해 너무나도 이른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도 하였다.

나그함마디 문서 발견 77년

나그함마디 문서의 발견은 1947년 사해문서의 발견과 더불어 20세기의 고고학적 발견의 업적들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꼽힌다. 그 이유는 나그함마디 문서가 영지주의와 비영지주의, 초기 기독교와의 관계 등을 밝히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하기 때문이다. 나그함마디 문서에는 몇 가지 세속적인 문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기독교 문헌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비록 정통적인 신앙에 완벽하게 부합되지 않는다 해도 결코 이단적인 문헌들은 아니라고 평가를 받을 만큼 신약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점차 부각되고 있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콥트 박물관을 방문한 프랑스의 콥트학자 장 도레스의 주목을 받아 처음부터 오직 영지주의의 관점에서만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임스 로빈슨은 다른 관점에서 나그함마디 문서를 보았다. 나그함마디 문서가 영지주의와 관련하여 신약학 분야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견지에서 이 문서의 발견이 지닌 위대함에 대해 말해 달라고 요청받을 때마다, 그는 이 문서의 위대함은 단지 영지주의나 신약성서에 관한 특별한 논쟁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문학적 지식의 보고라는 사회학적인 견지에서, 그리고 더 나아가 비영지주의의 관점에서 더욱더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제임스 로빈슨을 중심으로 나그함마디 문서와 비영지주의에 관한 연구가 지속되어 왔다. 제임스 로빈슨은 이런 제안을 한 가장 대표적인 학자로, 두 권으로 이루어진 책 The Nag Hammadi Story(나그함마디 이야기)를 펴내기도 했다.
사실 나그함마디 문서의 번역과 출판은 수많은 학문적, 정치적인 논쟁과 맞물려 있었다. 이집트의 격변기에는 서양 학자들의 추방이 이어졌고, 문서의 발견은 본격적인 연구로 이어지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 하지만 진리의 복음서가 이집트 밖으로 반출되고, 카를 융의 친구이자 영지주의 전문가인 퀴스펠이 한 서점에서 우연히 그 사본을 발견했다. 융의 동료들은 돈을 모아 그 사본을 사들여 여든 번째 생일을 맞은 융에게 선물했다. 크게 감동한 취리히의 영지주의 대가 융은 문서의 나머지 부분의 번역과 출간에 매우 큰 관심을 보였다. 이렇게 나그함마디 문헌 전체가 영지주의적 성격을 띤다고 주장한 학자들이 제일 먼저 이 필사본에 접근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미 위에서 언급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의 장 도레스, 프랑스대학의 앙리 샤를 푸에쉬, 네덜란드 우트레히트대학의 퀴스펠 등이다.
그 후 유네스코위원회의 유일한 미국인 위원이자 클레어몬트대학의 고대 및 그리스도교 연구소의 소장이었던 제임스 로빈슨은 나그함마디 문서의 사본을 복사하고 번역하기 위해 국제적인 연구반을 구성했다. 제임스 로빈슨과 그의 연구원들은 전 세계 학자들에게 이 자료를 보내어 많은 사람들이 연구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그 문서들을 독점하려는 시도를 약화시켰다. 나그함마디 문서 전체를 학문적으로 공유하고자 한 공동체는 197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만들어진 것이다. 제임스 로빈슨은 나그함마디 사진판을 우선 발간하였고, 1977년에 당시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포트리스 출판사를 통해 최초의 영문판 나그함마디 문서를 출간하였다. 계속해서 1977년의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콜로키움, 1978년의 예일 컨퍼런스, 퀘백 컨퍼런스, 그리고 1983년의 스프링필드 세미나 등을 통해서 나그함마디 문서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고, 파리 세미나와 독일 세미나를 거쳐 현재 국제성서학회의 나그함마디와 영지주의 분과로 발전하였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지금도 매년 정기 연례회의로 모여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결론

이런 기념비적인 프로젝트에 힘입어 번역된 나그함마디 문서는 영지주의적인 성격을 보이는 것을 넘어서 다음과 같이 4종류의 문서 그룹으로 나뉜다. 첫째는 기독교 문서라기보다는 유대교적 성격이 강한 문서들이다.(〈셋의 세 기둥〉, 〈노레아의 생각〉, 〈마르사네스〉, 〈알로게네스〉) 둘째는 기독교적인 삽입구가 포함된 문서들이다.(〈아담의 묵시록〉, 〈조스트리아노스〉) 셋째는 제목에만 기독교적 성격이 드러나는 문서들이다.(〈이집트인들의 복음〉, 〈세 개의 신적 첫 명상〉) 넷째는 외경과 유대교의 내용에 기초한 문서들이다. 〈요한 비밀의 서〉는 에녹 1서에 기초하고, 〈아담의 묵시록〉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 〈조스트리아노스〉는 에녹 2서에 의존한다.
이 책을 번역한 이규호는 나그함마디 문서를 영지주의 문서로 간주하여 영지주의 세계관에 대해 몇 가지를 역자 후기에서 언급했다. 마찬가지로 초기 프랑스와 독일의 학자들도 나그함마디 문서를 영지주의 문서로 간주했다. 다시 말해서 처음 나그함마디 문서가 발견되었을 때, 학계에서는 이 문서를 단지 그때까지 알고 있던 영지주의를 재발견하게 해주는 것으로 치부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최근 학계에서는 나그함마디 문서가 비영지주의 문서라는 새로운 제안을 하고 있다. 연구가 구체화하면서 나그함마디 문서는 비영지주의 문서에 관한 연구 및 역사적 예수 연구의 폭을 더욱 넓혀 주고 있다.
학자들은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다양한 문서를 영지주의라는 획일적인 개념으로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그함마디 문서는 아직 교회가 제도화되기 이전에 기록된 것들이다. 따라서 이 문헌을 기록한 공동체는 정통이 될 수도 있고, 이단이 될 수도 있는 기로에 서 있었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그함마디 문서를 그저 영지주의 문서로만 규정한다면, 영지주의에 대한 왜곡이 발생하거나 초기 기독교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될 수 있다.

소기천|장신대와 연세대에서 수학한 후 클레어몬트신학교와 클레어몬트대학교에서 신약성서 배경사와 예수말씀 복음서 Q를 전공하였다. 저서로 『예수말씀의 전승궤도』와 『예수말씀 복음서 Q 개론』 등이 있다. 장신대 교수이며, 한국개혁신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2년 8월호(통권 7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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