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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2년 8월호)

 

  마가복음의 제자도와 체드 마이어스의 민중신학
  체드 마이어스, 황의무 옮김, 『강한 자 결박하기』(대장간, 2022)

본문

 

1. 지난 5월 4일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다. 마취에서 깨어난 후 한동안 지속되는 온몸의 통증은 견디기 힘들었다. 밤톨만 한 크기의 전립선에 문제가 생기니, 몸 전체가 고통을 겪은 것이다. 새삼 깨달았다. 인간은 몸이고, 몸의 중심은 지체 중에 병들고 ‘약한 곳’이라는 사실을. ‘약한 곳’은 존재이기에 앞서, 온몸이 살기 위한 윤리적 당위(當爲)이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바울은 교회를 몸과 지체의 관계로 설명한다. 바울은 여러 지체가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지체 중 약한 곳이 더욱 요긴하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그 약한 지체를 영예롭게 하시며, 한 지체가 아프면 몸 전체가 덩달아 아프게 된다. 바울의 이러한 사상은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역사적 예수 말씀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막 12:31) 『묵자』는 천하무인(天下無人)을 말했다. “세상에 남이란 없다.”라는 뜻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를 말하는 이러한 휴머니즘 사상은 나와 타자(others)를 불이일체(不二一體)로 본다.
바울은 예수 죽음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는가? 그것은 바로 ‘약함’(astheneia)이다. “사실 그리스도는 약하셔서 십자가에 처형되었습니다.(crucified out of weakness) 하지만 하나님의 강함으로(by the power of God) 살아계십니다.”(고후 13:4) 여기에서는 ‘약함’(아스테네이아)과 ‘강함’(듀나미스), 그리고 ‘죽음’과 ‘생명’이 대조를 이룬다. 그리스도의 약함과 강함에 근거하여 바울은 자기 자신을 이해한다.(고후 13:4) 약함은 사회학적 개념이다. 고린도교회 신도들 대다수가 당시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약하고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이었다.(고전 1:26-28) 하나님은 약자들을 선택하여 강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약함에 나타난 강함에서 바울은 인류 역사의 완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경륜(經綸)을 읽는다.(고전 2:7)

2. 마가복음은 바울서신들보다 20년 늦게 기록되었다. 로마군이 갈릴리로 진입하여 약탈과 방화를 일삼아 마을을 폐허로 만들었을 때이다. 행인이 볼 수 있도록 길거리에 십자가가 즐비하게 세워진 때이다. 갈릴리는 젤롯당의 본거지였다. 로마는 작심하고 갈릴리를 폐허로 만들었을 것이다. 복음서에 기아, 빈곤, 질병, 정신질환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시대의 반영이다.
당시 마가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갈릴리 민중을 대상으로, 40년 전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치다가 십자가에 비명횡사한 예수의 수난 이야기를 회상(回想)하고, 이를 당대의 시점에서 민중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로 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1:1) 마가복음의 제목이다. 마가는 이 복음(유앙겔리온)을 20년 전 바울에게서 전해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십자가에 처형된 분’(the crucifixion)이다. 이 복음의 내용을 마가는 40년 전 갈릴리 예수의 공생애(public life)로 확장시킨다. 마가복음은 예수 전기(biography)가 아니다. 마가 민중의 집단적인 신앙고백(collective confession) 문서이다. 마가는 ‘역사’와 ‘신앙’을 묘합(妙合)하여 ‘복음서’(the gospel)라는 독특한 형태의 문학양식을 창조한 것이다.
마가복음의 주제는 ‘예수의 길’(Der Weg Jesu)이다.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에서 끝맺는 ‘수난의 길’이요, ‘십자가 처형의 길’이다. 그러나 예수의 길에서 끝은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종말에서 새로운 시작을 본다.(막 16:7) 마가의 역사관은 종시관(終始觀)이다. 40년 전 ‘예수의 길’에서 마가는 ‘제자의 길’을 제시한다. 목숨을 구하고자 하면 잃게 되고, 공의(公義)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얻게 될 것이다.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 『강한 자 결박하기』의 저자 체드 마이어스는 마가복음이 제시하는 ‘제자의 길’에서 오늘날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의 원형(archetype)을 보여준다.
전쟁의 참화 속에 있는 난민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가? 굶주림, 질병, 정신질환이다. 하나님 나라 운동의 3대 과제는 이와 연결되어 있다. 무상급식(無償給食), 무상치료(無償治療), 축귀(逐鬼)이다. 일상적인 고통으로부터의 민중 해방이다. 오늘날 현대어로 치환하면, 기본소득제(basic income system)의 공공성(公共性) 확립이 예수의 길이었고, 제자의 길이었다.
갈릴리 선교를 마친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결기에 찬 그의 모습에 제자들은 두려워한다.(막 10:32) 예수는 그곳에서 무슨 일을 했는가? 성전 청소이다. 성전 사제 계층에 의해 장사꾼들이 설치는 시장바닥과 강도의 소굴로 변해버린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원상 복귀시켰다.(막 11:15-19) 이를 계기로 예수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다. 민중을 선동한 정치범으로 사형이 선고된다.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의 모습을 보며 로마군의 한 장교는 이렇게 고백한다. “진정 이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막 15:39) 약함의 상징인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 안에 하나님이 내재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몰트만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고통을 말한다. 바울과 마가는 약함의 상징인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강함과 생명을 본다.
십자가 처형은 패배나 수치의 상징이 아니다. 제국과 기존 권력의 불의를 고발하고, 민중도 사람답게 사는 새 세상의 출현을 상징한다. 목숨을 얻는 것과 목숨을 잃는 것,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은 묵시적 종말의 때에 반전(反轉)된다. 바울과 마가는 약함(수난과 십자가)이 사회적 강함을 이긴다고 생각한다.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막 3:23) 강한 자, 곧 사탄을 결박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나? 하나님의 강함이 드러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동양의 지혜서인 『회남자』는 “강자를 결박하려면 반드시 약함을 지녀야 한다.”(欲强者必以弱保之)라고 말한다. 또한 『도덕경』 78장에서는 “세상에서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지만,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기는 것 또한 물만 한 것이 없다. 약함이 강함을 이긴다.”(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莫之能勝 弱之勝强)라고 말한다. 마가가 말하는, 강한 자를 결박하기 위한 제자의 길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약자와의 연대를 통해 하나님의 강함이 작동하도록 하면 된다. 약함으로 강함을 이긴다는 동양의 지혜가 마가의 사회정치적 전략이요, 그가 제시하는 제자의 길이다. 마이어스는 이 책에서 마가와 동양 지혜의 이러한 역설적 진리를 일깨워준다.

3. 체드 마이어스의 『강한 자 결박하기』의 의의를 월터 윙크는 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에 비교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두 책은 결이 사뭇 다르다. 바르트는 성서와 신문 사이의 균형 잡힌 신앙을 언급하고 있으나,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와 ‘절대 타자(他者)’로서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그의 신학은 오직 “하나님이 말씀하셨다”(Deus dixit)는 계시로 수렴된다. 그는 당시 세계대전의 참상을 겪으며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과 역사비평학을 부정하고, 교회 전통(도그마)으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바르트는 성서비평학의 시대적 흐름에 대한 일종의 반역이다.
마이어스는 성서를 ‘데우스 딕시트’가 아닌 사회역사적 산물로 보았다.(104쪽) 그는 근세 “역사적 예수 탐구”에 동원되고 있는 역사비평학, 사회학적 해석, 유물론적 해석,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의 해석학, 북미의 사회문화적 성서비평의 성과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마가와 오늘의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성서를 해석한다. 그리고 마가의 예수 이야기를 통해 나사렛 예수 이야기에 도달한다.(126쪽) 마가의 예수와 역사의 예수는 불이(不二) 관계에 있다.

4.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복음의 정의(正義)’가 실현되길 기원하면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있다. 1991-92년 LA 흑인폭동에서 저자는 큰 충격을 받았고, 한국교회의 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평생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와 피해자인 한국 민중에게 70년이 지난 전쟁은 현재 진행형의 사건이다. 저자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지금도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한국 민중을 위로하고자 한다.
마이어스는 특히 영어로 번역된 저항 시인 김지하에 관한 글들(Bulletin of Concerned Asian Scholars, 1977)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음을 고백한다.(12쪽) 김지하의 삶은 체포, 투옥, 고문, 사형 선고, 무기징역, 석방, 재투옥으로 점철되었다. 〈오적〉(五賊), 〈비어〉(蜚語)를 비롯한 그의 담시(譚詩)들은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사회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특히 〈금관의 예수〉는 본래 ‘가시관을 쓴 예수’에서 ‘금관을 쓴 예수’로 변해버린 한국 중산층 교회의 신앙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김지하의 삶과 글을 보며 갈릴리 예수의 삶과 말씀을 회상했을 것이다. 김지하 사건이 저자에게는 이천 년 전 예수 사건의 환생(還生)으로 보였던 것 같다.
마이어스는 안병무의 ‘오클로스’ 신학에서 마가복음의 예수 민중을 만난다.(21-24쪽, 762-765쪽) 복음서 곳곳에서 만나는 가난한 자, 병약자, 매춘 여성, 세관원, 죄인 등 사회의 약자들, 바울이 말하는 ‘약한 자들’(아스테네이아, 고후 13:4)이 바로 오클로스이다. 안병무는 오클로스를 오늘날 한국 사회의 ‘민중’과 등치시킨다. 오클로스는 마가복음에 38회 등장하는데, 예수가 있는 곳에는 항상 오클로스가 있다.(막 2:4) 예수는 오클로스와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삶의 동반자(partner)로 살아간다. 민중과 한 자리에서 먹으며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데서 하나님 나라가 임재 했음을 본다.(막 6:10-13, Q 10:8-9, 도마 Log14) 마가교회를 오클로스 공동체로, 그리고 마가복음은 오클로스 복음으로 성격화한다. 예수의 수난 이야기 속에는 마가 민중이 당하는 수난 이야기가 응축되어 있다. 하나님의 강함과 생명이 작동하는 곳은 어디인가? 언제 어디든 수난(약함)이 있는 곳이다.
이 책의 저자는 ‘예수의 길’과 ‘제자의 길’을 제시함으로써 오늘날 한국교회의 길을 제시한다. 민중을 우회(迂回)한 홍익인간의 길은 없다. 이것이 마가가 전하는 제자의 길이요, 체드 마이어스의 민중신학이다.

김명수|성균관대학교와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예수말씀복음 큐(Q)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Dr. theol.) 지은 책으로는 『큐복음서의 민중신학』, 『역사적 예수의 생애』 등이 있다. 경성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충주에 있는 노인요양시설 ‘예함의집’에서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2022년 8월호(통권 7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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