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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2년 8월호)

 

  퀴어신학의 발랄한 도전
  데린 게스트 외 엮음, 퀴어 성서 주석 번역출판위원회 옮김, 『퀴어 성서 주석 II. 신약성서』(퀴어성서주석 번역출판위원회, 2022)

본문

 

2022년 2월에 『퀴어성서주석』(Queer Bible Commentary, 이하 ‘QBC’로 부름) 신약편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이로써 2021년 4월의 구약편 번역에 이어 성서 66권에 대한 퀴어신학적 입장을 담은 QBC 주석이 완간되었다. QBC 한글 번역에 관하여 교계에서는 일부 논란이 있었지만, 퀴어신학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QBC는 성서해석의 새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17명의 저자가 참여한 QBC 신약편은 구약편과 마찬가지로 성서의 각 구절을 해석하는 전통적 주석 방식을 택하지 않고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각 책을 개론적으로 읽는 소논문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각 저자의 성향에 따라 서술방식은 다양하지만, 해방신학이나 페미니즘 비평, 퀴어이론 등 각종 방법론을 사용하여 ‘이성애 가부장주의’(heteropatriarchy)로 가득한 성서를 해체적으로 읽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퀴어비평(queer criticism)이란

QBC는 성서를 해체적으로 읽는 ‘퀴어링’(queering)의 방법을 사용한다. 저자의 설명을 따르자면, “무언가가 ‘퀴어’일 때, 흔하지 않고, 평범하지 않고, 특이하고, 지배적인 문화를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 성서를 ‘퀴어링’하는 것은 특이하고, 규범에 벗어나게 만드는 것이고, 뒤집어 흔들어서 성서 말씀이 어떻게 뒤바뀔 수 있는지 보는 것이다.”(66-67쪽) QBC의 강점은 퀴어한 성담론으로 은폐되고 왜곡되었던 성서의 이성애주의와 가부장제를 파헤치는 통쾌함에 있지만, 단점은 모든 저항적, 해체적 읽기에 ‘퀴어’라는 용어를 부여하여 개념상 혼란을 준다는 데 있다. 퀴어신학자 패트릭 쳉(Patrick S. Cheng)은 『급진적인 사랑:퀴어신학 개론』에서 ‘퀴어’를 레즈비언(L), 게이(G), 양성애자(B), 트랜스젠더(T), 간성(I), 퀘스처닝(Q)과 그 지지자들(A)이라는 명목상 정의를 넘어, “섹슈얼리티를 사회적 구성물로 보고 그 경계선을 지우거나 해체하는 활동”까지 확대한다.
이 때문에 ‘퀴어’와 ‘동성애’라는 용어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이성애적 문화나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모든 사람이나 행동은 다 ‘퀴어’라 불린다. 그래서 예수도 퀴어이고, 바울도 퀴어이다. 바울과 함께했던 독신자들도 퀴어이고, 빌립과 루디아, 멜기세덱까지 퀴어라 불린다. 니고데모나 사마리아 여인이나 눈뜬 시각장애인이나 부활한 나사로도 퀴어의 시각으로 읽힌다. 마치 모든 저항 세력에게 퀴어의 세례를 주는 퀴어 제국주의를 보는 느낌이다.

동성애 관련 구절에 대한 해석

QBC의 로마서 주석은 소위 ‘테러 본문’이라 불리는 로마서 1장 26-27절 해석에 집중한다. 26절의 여성 동성애 구절은 레즈비언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임신을 피하거나 다른 정욕의 목적으로 여자를 대상으로 항문성교를 하는 경우라 분석한다.(220-221쪽) 27절의 남성 동성애 구절도 현대적으로 정의된 동성애가 아니라, 섹스의 방식이나 욕망의 과도함과 폭력성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성인 사이의 동의에 의한 애정 있는 성행위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고, 강간(소돔), 소아성애, 동의하지 않는 노예에 대한 성적 착취와 같은 권력의 남용을 언급하는 것이다.”(217쪽)
QBC는 동성애적 성착취와 현대의 성적지향 개념의 동성애를 분리하는 방향으로 주석을 시도한다. 고린도전서 6장 9절 해석에서도 바울이 문제삼는 것은 자기절제와 자기통제가 부족한 사례라 한다. “우리 중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병들지 않았고, 성욕 도착이 아니며, 변태적이지 않으며, ‘여자 같지’ 않다. 우리는 그냥 동성의 사람들과 사랑에 빠지는 경향이 있을 뿐이다.”(50쪽)
문제는 바울에게서 이 두 개념이 분리되고 있느냐이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본성’(퓌시스) 개념을 세 번이나 언급한다. 반동성애 진영은 이를 ‘창조질서’로 해석하여 동성애가 창조질서를 문란하게 한다고 본다. 그런데 바울이 생각하는 ‘퓌시스’는 2,000년 전 고대인들이 가진 퓌시스이다. 과학의 발달은 천동설/지동설 논쟁이나 진화론 논쟁에서 보듯 창조질서의 내용을 바꾸거나 심화시켜 왔다. 바울의 창조질서 개념에는 아직 현대의 성적지향(선천성)에 의한 동성애 개념이 들어 있지 않았다. 바울을 동성애 편으로 끌어들이는 전략보다는 바울이 가진 퓌시스의 고대성을 지적하며, 현대 의학이나 과학이 밝힌 동성애에 관한 새로운 퓌시스를 교회가 진지하게 수용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QBC는 바울이 성소수자로서 스데반이나 디모데에게 애정을 느꼈을 것이라면서 바울의 심리상태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분명 동성애적인 요소가 있는 욕망의 충동을 율법에 의지하여 억눌러야 했다.”(199쪽)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정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바울의 비판적인 태도는 바울을 퀴어로 보는 시각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사랑에는 섹스나 퀴어라는 관점 외에 우정, 충성, 열심으로 불리는 사랑이 더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이 주석에서는 유다서(1:7)나 베드로후서(2:6)에서 언급된 소돔과 고모라의 죄를 “두 방문객의 젠더가 아니라 ‘낯선/다른 (천사의) 육체’를 강간하려는 시도가 문제이다.”(236쪽)라고 분석하는데, 이는 타당하다. 문제는 영적 질서의 교란이며 성폭력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불의’로 인해 망했으며, 이는 손님에 대한 성폭력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퀴어 그리스도

QBC는 요한복음의 이름 없는 저자인 ‘사랑받은 제자’와 예수를-제닝스(T. W. Jennings)의 연구를 빌려-동성애적 연인 관계였다고 주장한다.(172-174쪽)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다”(요 13:23)는 구절을 동성애적 코드로 읽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모든 관계를 섹슈얼리티의 관점으로만 보려는 일방적 시각이다. 그 사람이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운 것처럼 보인 이유는 한쪽 팔을 기댄 채 누워서 식사하는 고대 그리스 방식 때문에 생긴 묘사이다. 당시 스승과 제자 사이의 동성애가 용인되었다면, 그리스도교는 섹트화된 집단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QBC는 예수를 ‘퀴어 예수’, ‘퀴어 그리스도’라 부른다. “예수 역시 독특하게 성소수자의 대표 자격을 가졌다. 그는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없고, 법적으로 ‘불법적(사생아)’이고, 혼인한 적이 없고, 생물학적인 후손이 없다.”(394쪽) 예수는 죄인과 세리라 불리는 퀴어들을 품었고, 근본주의자들의 정결법을 위반했으며, 이성애적 패권에 도전했다.(125쪽)
그리스도의 부활 또한 퀴어적으로 설명된다. “부활절에 하나님은 예수를 우리와의 연대 속에서 퀴어가 되게 하셨고, 예수는 ‘벽장에서 밖으로 나오셨고’ ‘퀴어’ 그리스도가 되셨다.”(104쪽)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퀴어’ 정의의 포괄성이다. 이런 정의라면 예수는 퀴어가 맞지만, 게이나 동성애자라 불리기에는 정보 해석이 편향적이다.
그렇지만 ‘퀴어 예수’, ‘퀴어 그리스도’는 그 실제성 여부를 떠나 신앙고백적으로, 또 신학적으로 의미가 있다. 파울 틸리히가 『믿음의 역동성』에서 말한 “신은 신에 대한 상징이다.”라는 명제처럼, 무한한 신은 상징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다. 상징체계는 사회현실의 반영인바, 그동안 이념비평은 ‘백인, 중산층, 남성’이 만든 신 상징체계를 깨뜨려왔다. 민중신학에서 예수를 ‘민중 예수’라 부르고, 여성신학에서 예수를 ‘페미니스트 예수’라 부르듯, 동성애 크리스천들은 예수를 ‘퀴어 그리스도’라 부를 수 있다. 이는 신앙고백적 진술이며, 신에 대한 이성애 편향적 인식을 바꾸라는 선언이다.

탈영토적, 해체적 주석

QBC의 일부 주석은 전통적 방식의 학문적 주석이 아닌, 현대 퀴어들의 경험과 시각을 성서 본문에 적용하여 다르게 읽거나 해체적으로 읽는다. 이는 들뢰즈(Gilles Deleuze)의 ‘영토화’, ‘탈영토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성서해석은 이미 이성애주의자들의 담론체제에 의해서 ‘영토화’되어 있다. 퀴어비평은 퀴어적 시각과 방법으로 다르게 읽기를 시도함으로써 성서를 ‘탈영토화’한다. 이성애자의 놀이판인 전통적 읽기의 문법이나 규칙을 무시하는 해체 전략이다.
그래서 QBC에서 세례는 커밍아웃으로 쉽게 치환된다. “커밍아웃은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로서 세례의 성례전(성사)일 뿐만 아니라 자아실현으로 가는 여정에서 넘어야 할 문턱이다.”(78쪽)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는 “전형적인 벽장 속 그리스도인이다.”(160쪽) 요한복음 9장의 시각장애인은 가족의 반대를 뚫고 커밍아웃에 성공한 케이스이다.
마가복음 주석은 “그들이 한 동성애자를 죽였다.”(105쪽)라며 현대 퀴어의 현실을 직접 성서와 연결하며 퀴어 그리스도론을 전개한다. “고립과 위기, 거의 신경쇠약에 가까운 시기를 보낸 후 예수는 … 새로운 친구, 새로운 가족을 찾는다. 퀴어들이 보통 하듯이 말이다.”(111쪽)
가시관과 왕의 보라색 망토를 걸친 예수는 드랙1 예수(Jesus in Drag)이다.(108쪽)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반동성애자들에 의해 폭력을 당하고 울타리에 허수아비처럼 매달린 채 죽은 게이 매튜 쉐퍼드(Matthew Shepard)의 죽음에서 QBC는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본다.(103쪽) “하나님의 한 퀴어 남자가 제거되었다.”(117쪽)

신랄하고 발랄한 성담론

QBC의 번뜩이는 창의성은 노골적인 성담론에서 발휘된다. 이는 교회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교회는 “성에 대한 공포와 심문으로 여성, 성소수자, 성적인 무법자를 표적 삼았고 성적 행동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는”(166쪽) 지독한 ‘성애혐오’(erotophobia)를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퀴어비평은 이에 대한 반발로 더 노골적인 성애 표현으로 저항한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저항의 한 방편으로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프로이트 이후 정신분석학이 인간 정신의 근원에 성담론이 자리잡고 있음을 밝혔기 때문이다.
QBC는 요한복음 13장의 세족식을 다음과 같이 도발적으로 해석한다. “나는 발을 씻기는 이 상징적 행위를 예수가 인간의 성기를 상징적으로 정화하고, 원래의 축복 및 인간 섹슈얼리티의 순수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읽는다. 세족에 대한 베드로의 저항과 놀람은 섹슈얼리티의 순수성을 인식하지 못한 베드로의 제도 교회를 상징한다.”(167쪽) 이런 해석에 대해 전통주의자들은 당혹스러워하지만, 실상 성을 죄악시하고 배후에서는 성에 탐닉했던 교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본문으로 읽을 수 있다.
십자가상의 예수의 죽음을 “가부장적 정복과 지배라는 남근체제에 의해서 관통된다.”(157-158쪽)는 식의 분석은 제국 권력 심층의 남성적 폭력성을 잘 드러낸다. 목회서신의 위계질서의 본질 또한 날카롭게 파헤쳐진다. “단단한 몸은 지배 이데올로기와 남성 지위의 지배적인 표현이다. 관통(삽입)할 수 없는 단단한 몸은 규범적인 이상으로 여겨지고, 부드럽고 여성적이고 물렁한 여성과 낮은 남성의 몸은 더 낮고 괄시받는 지위를 갖는다.”(370쪽)
성담론의 수위는 요한계시록 비판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4-5장의 하늘 보좌의 천상 예배는 노골적인 성적 조롱의 대상이 된다. “보좌의 방에서 모든 이들은 발기한 한 팔루스(남근)에게 절하는데 그는 입속에 자신의 성기(즉, 검)를 가질 수 있는 자이다.”(477쪽) 14만 4,000명은 “노래하는 남근들”(479쪽)로, 여성혐오 성향의 숫총각 전사 사제들이다. 여기서 신랄하게 고발당하고 있는 것은 대량파괴(심판) 신학이 가진 폭력성과 반윤리성이다. “종말에 대한 상상은 폭력적이고, 성적이고, 전율을 일으킨다. 계시록은 난폭운전 같은 카타르시스를 궁극적으로 제공한다. … 보호받는 내부 그룹의 일원으로서 멸망과 욕망이라는 경기장의 맨 앞자리에 앉는다. 이러한 관음증은 흥미진진하다.”(486쪽) 심판의 근엄함은 희화화되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성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같은 도박과 관음증으로 전락하여 그 정당성을 잃는다.
QBC 구약편에서는 고대의 원시성이 풍부하고 생활 이야기가 많아 섹슈얼리티 담론을 펼칠 공간이 많았던 반면, 신약편에서는 교리적인 내용이 많아 QBC가 창의적 해석을 하기에 쉽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QBC의 퀴어적 시각은 전통신학의 편견이나 금기를 깨는 유익이 있다. 유쾌하고 발랄한 퀴어신학의 도전 앞에 전통 교회는 신앙의 이름으로 정죄와 혐오를 지속할지, 아니면 새롭게 열리는 창조질서와 사랑의 세계로 나아갈지 기로에 서 있다.

주(註)
1 드랙(Drag): 공연 무대에서 다른 성(sex)의 복장을 착용하는 행위. 성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성역할 규범을 풍자함.


이종철|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이다. 빛과생명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한신대 겸임교수로 신약학을 가르치고 있다.

 
 
 

2022년 8월호(통권 7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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