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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2년 4월호)

 

  일류 전도자 빌리 그래함의 총체적 면모를 보여주는 일대기
  그랜트 왜커, 서동준 옮김, 『빌리 그래함: 한 영혼을 위한 발걸음』(선한청지기, 2021)

본문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하게 알려진 이름 빌리 그래함.(1918-2018) 그는 6대륙 185개국을 다니며 400회 이상의 전도집회를 통해 2억 명 이상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증거하였고, 300만 명을 결신케 한 전무후무한 전도자이다. 그러나 이 책은 부흥전도자 이미지로 각인된 그의 단순한 전기를 넘어 인간 그래함의 총체적인 진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2019년 출간된 이 책의 저자 그랜트 왜커(Grant Wacker)는 미국의 역사학자이며 특히 빌리 그래함 연구가로 명성을 갖고 있다. 그는 이전에도 그래함에 대한 저서와 연구논문들을 출판하였다. 교회사학자다운 고증과 필치로 그래함을 정형화된 인물로 치부하지 않고, 치밀하고 진솔하게 그의 복합적인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서론에서 그래함에 대한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42쪽 이하) 첫째는 그가 미국 역사에 등장한 다른 걸출한 전도자들과 도대체 어떠한 면에서 차이가 있는가? 둘째는 그가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며 그토록 오랜 시간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는가? 저자는 이 두 질문을 염두에 두고 그의 책을 4부로 나누어 구성하고 있다. 제1부는 “젊은 순회전도자”, 제2부는 “일류 복음전도자”, 제3부는 “제사장 같은 선지자”, 제4부는 “영향력 있는 원로”이다. 이러한 구성은 그래함의 삶을 대체로 시간 순서대로 서술하면서도 동시에 각 부의 제목이 보여주는 주제로 그려내고 있다.
제1부 “젊은 순회전도자”에서는 특유한 억양과 보수적 색채가 짙은 미국의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 태생으로 근본주의적 신앙 배경에서 자라난 그래함이 어떻게 전도자로 성장하게 되었는가를 그의 가족과 신앙 배경, 인간적 성향 등을 통해 보여준다. 15세의 천진난만한 소년이 한 부흥집회에서 경험한 순수한 회심, 고등학교 졸업 후 어느 한 제조사의 외판원으로 올린 최고의 판매실적, 근본주의적인 밥존스성경대학에 대한 염증 등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플로리다성경학교에 전학하면서 타오르기 시작한 설교에 대한 열망과 연마는 강둑에 서식하던 악어들에게까지 전해졌다는 해학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더욱이 그가 20대를 넘기기 직전 미네소타의 어느 조그만 대학 총장직을 수락하여 최연소 총장으로 부임(1948-52)한 것은 일찍부터 그의 적잖은 명성과 영향력을 입증해 보여주고 있다.
그가 국제적인 전도자로 성장하도록 기반을 마련해준 YFC(Youth For Christ) 사역과 함께, 그의 동료 사역자들과 공동으로 마련한 모데스토 선언(Modesto Manifesto)은 젊고 유망한 부흥사들에게 돈, 여자, 독선, 통계 숫자에 대한 유혹을 경계하고 진실성, 순결성, 협력성, 정직성을 서약하여 평생 큰 스캔들 없이 그의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한 중요한 “그래함의 원칙들”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오늘날 많은 사역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함은 1949년 LA 전도집회를 통해 31세의 나이에 미국 전역의 부흥사로 일약 자리매김하였다. 여기에는 전적으로 그래함의 재능뿐 아니라 그에게 관심을 둔 영향력 있는 한 거물 언론인 윌리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는데, 이는 마치 18세기에 미국 전역을 대각성운동의 열기로 몰아넣은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와, 그를 당시 가장 유명한 인사로 만든 인쇄업자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신적인 역사는 이러한 인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오묘한 이치가 여기에서 드러난다. 이후에도 그래함이 미국의 아이콘이 된 데는 Time, Life, Fortune과 같은 미국의 시사 잡지를 창간한 헨리 루스(Henry Luce)와의 인연과 우정으로 이어짐을 보게 된다. 이는 그래함이 라디오, 텔레비전, 잡지와 같은 미디어를 잘 활용하고 다양한 네트워크를 활용할 줄 아는 차별화된 협력의 귀재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제2부에서 “일류 복음전도자” 그래함의 핵심 메시지는 회개, 중생, 그리고 구원으로 이루어지는 미국 대각성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선포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그가 외쳤던 복음이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라는 초청이었다. 이는 미국식 복음주의의 한 일면으로 한국에도 그 영향이 미쳤다. 그래함과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은 한국전쟁 중인 1952년의 방문을 비롯하여, 1958년 서울운동장, 1973년 여의도광장(무려 112만 명이라는 초유의 운집), 1984년 한국개신교 100주년 기념대회의 방문으로 이어졌다. 1992년에는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났고, 더군다나 중국 의료선교사의 딸이자 그래함의 부인인 루스 여사가 1997년 북한을 방문한 것은 그녀가 어린 시절 평양외국인학교에 있었기에 더욱 그 의미가 컸다. 이토록 엄청난 행보와 기록을 가진 그래함의 행적은 단지 신비로운 기적에 가까운 신화였을까? 이 책은 이것이 결코 신화로만 치부될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 배후에는 그와 함께 사역한 동료들의 엄청난 준비와 시행착오 속에서 다듬어진 탄탄한 팀워크와 조직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일류 복음전도자였던 그래함 또한 완벽하거나 무결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이 책은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신학적 스펙트럼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는 가톨릭에 빗대어 ‘복음주의 개신교의 교황’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근본주의자들에게는 타 전통, 특히 가톨릭과 타협하는 배신자로 여겨졌으며,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순진하고 어수룩한 반지성주의자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니부어(Reinhold Niebuhr)와 같은 신정통신학자로부터는 복음을 값싸고 천박하게 하는 ‘결신카드 신자’의 생산자로, 전문적 설교학자들에게는 들을 것이 없는 내용의 설교자로 평가절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삶을 지켜본 최고의 지존자 앞에서 그는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 “한 영혼을 위한 발걸음”이라는 이 책의 부제목은 그에 대한 저자 나름의 평가가 담겨 있다.(원서의 제목은 ONE SOUL AT A TIME이다.) 그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구령의 소임을 다한 자일 것이다. 그의 메시지로 변화된 자들은 이 제목의 가치를 동감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3부 “제사장 같은 선지자”는 그 제목에서 다소 아이러니한 긴장을 담고 있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제사장과 선지자는 둘 다 기름부음을 받은 공적 지도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고유하고도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는 상반적인 위치에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두 직책 모두 신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교량의 역할을 담당하지만, 제사장이 주로 인간을 대변하는 위치에 선다면, 선지자는 주로 하나님을 대변하는 위치에 선다. 저자는 공인으로서의 그래함이 지닌 면모를 정치적·사회적 이슈와 여러 일화들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냉전시대 공산주의를 악으로 대한 그의 입장, 미국의 고질적인 인종차별에 맞선 그의 태도와 행동들, 트루먼에서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백악관과 친화적이었던 그가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서 보였던 여러 실언들(특히, 워터게이트사건으로 몰락한 닉슨과 관련)이 소개된다.
이 책은 한 세기에 가까운 그의 삶이 고스란히 미국이라는 한 나라의 역사와도 엮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대전, 냉전시대, 흑백 갈등, 그리고 최근의 9·11사태에 이르기까지 그는 제사장 같은 선지자로 하나님과 미국인들 사이에 서 있었다. 물론 완벽한 제사장도, 완전한 선지자도 아니었다. 그가 타협하지 않으려고 한 점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타협한 부분들은 어쩔 수 없는 딜레마 속에 선, 별수 없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4부에서는 “영향력 있는 원로”로서의 그래함을 다루고 있다. 그는 열정적인 복음전도자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복음화를 위한 연합의 촉매이기도 하였다. 그의 주도로 1974년에 스위스 로잔에서 시작된 로잔운동은 전 세계 복음주의자들을 하나로 묶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 시대 복음주의의 성격과 방향을 제시한 플랫폼이 되었다. 복음전도와 함께 로잔운동이 보여준 사회적 책임과 연합의 정신은 애초에는 개인구령의 전도자였던 그래함의 의도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을지 모르나, 이는 결국 열린 마음으로 협력의 가치를 알았던 그래함이 만든 궁극적인 결실일 것이다. 그의 연합적인 태도를 비꼬아 일부 근본주의와 보수주의자들은 이를 그래함의 변신이요 변절로 몰아 질타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의 자세야말로 예수의 기도와 사역 속에 나타난 정신을 상실한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도전이라 생각한다. 로잔운동이 50주년이 되는 2024년에는 스위스 로잔, 필리핀의 마닐라,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 이어 네 번째 국제모임을 한국에서 개최하기로 하였으니, 한국은 그가 끼친 영향력을 또 한 번 접하게 되는 셈이다.
책의 후반부는 노년에 이른 인간 그래함의 모습이 이전과는 달라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자세와 시각은 더욱 포용적으로 변했다. 이러한 달라짐을 어떤 이들은 변화로, 어떤 이들은 변질로 보지만, 이는 그래함의 이중적인 모습이 아닌 원래적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은 변함없이 확고하고 더 확신에 차 있다고 할까.
그래함의 긴 삶만큼이나 그의 죽음 또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책의 말미에는 그를 위해 2006년에 특별히 제작된 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571쪽) 교도소의 수감자들이 옥중에서 소나무 합판으로 만든 215달러짜리 관이었다. 관에는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이들 중 한 사람은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자였다. 그는 이 관을 만들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뜻깊은 일을 했노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참 많은 여운을 남긴다. 한 사람의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죄수들이 만든 관에 안치된 그래함의 모습. 그가 살아 있을 때 외친 메시지가 있었다면, 그가 죽은 후 그가 살아온 삶과 인간됨이 전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 서평을 적고 있는 시점은 4주기를 맞는 그래함의 기일(2월 21일)이다. 때마침 전달된 한 영상에서 생전의 그래함이 외친 의미심장한 말을 소개하고 싶다. “여러분, 언젠가 빌리 그래함이 죽었다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한 마디도 믿지 마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품에서 지금보다 더 생생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단지 저의 주소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러한 그의 신앙고백처럼, 이 책이 그러한 그의 삶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보여주기를 소망한다.

박형진|프린스턴신학대학원에서 선교 역사와 지구촌기독교(World Christianity)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선교적 관점에서 본 기독교 역사 서술과 지구촌기독교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한국로잔연구교수회 회장으로 활동하였으며,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선교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2022년 4월호(통권 7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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