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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1년 12월호)

 

  고영근 목사 연구를 위한 네 번째 주춧돌
  고성휘 엮음, 『민중·민주·민족을 향한 여정: 목민 고영근 사료집 Ⅳ(1980-1987년)』(동연, 2021)

본문

 

고영근 목사 사료집 시리즈 4권이 나왔다. 이제껏 이런저런 책들을 서평한 적이 있지만 사료집은 처음이다. 거기다 이 책, 700쪽이 훌쩍 넘는다. 난감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미지 형태로 수록된 옛 자료의 글씨는 조금 작게 느껴진다.(작은 글씨가 싫을 나이는 아직 아닌 듯한데…. 난감을 넘어 슬프다.)
이 사료집 시리즈는 2012년 『목사 고영근의 시대를 향한 외침: 긴급조치 구속사건 관련 사료집』의 출간으로 시작되었다. 벌써 거의 1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프로젝트다. 그런데 2013년 제2권 『옥중에서 희망을 노래하다: 목사 고영근의 옥중서신』, 2015년 제3권 『민중을 위하여 1, 2』의 발간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따라서 사료집은 3권으로 완간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으나, 6년이 지난 이번에 4권이 나왔다.
이러한 사료집의 발간은 한국교회사를 연구하는 전공자로서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사료의 부족’을 핑계로 연구를 미적거릴 수 없다는 부담감을 주기 마련이다. 때문에 ‘나온 줄 몰랐다’고 말하며 버티고 싶은 마음이 큰 법인데 서평을 쓰게 되었으니 퇴로가 막혔다. 더군다나 올해 4월에는 고영근 목사에 대한 첫 연구서로 고영근목민연구소가 엮은 『다시, 목민(牧民): 고영근의 삶과 신학』이 출간되어 본격적인 연구의 물꼬도 텄다.

고영근은 누구인가

이 책은 제5공화국 시기(1980-87) 고영근 목사의 사료들을 집성한 것이다. 짧은 서평에서 고영근 목사를 자세히 소개하기는 무리이다. 하지만 고영근이 어떤 사람이기에 4권의 사료집이 나오는 것인지 간략하게라도 이야기해보자.
고영근 목사는 1933년 평북 의주에서 태어났다. 1946년에 중단교회의 야학에 관심이 있어 교인으로 등록했고, 1948년에는 ‘불세례 체험’과 ‘중생체험’을 했다. 그는 당시 시대상이 그러했듯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되었고, 1950년 7월 북한군 입대를 정면으로 거부해 고난을 겪다가 이듬해 6월 입대하였다. 그러나 그의 입대는 처음부터 월남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그해 10월 양구와 인제 사이의 고지에서 월남을 감행하여 남한군 3사단 18연대에 귀순했다.
1953년 반공포로 석방으로 자유의 몸이 된 그는 남한군에 자진 입대하여 군종 하사관으로 활동하다가 1956년 제대했다. 전북 임실에 있는 강진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였고 이후 대전 백운성결교회에서 시무하면서 서울신대를 졸업하고 성결교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곧 장로교회로 소속을 옮겼으며 1971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전도부 목사로 활동하다 이듬해에 한국부흥사협회 총무를 맡으면서 전국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이 사람은 보수적인 반공주의 부흥사구나.’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고영근 목사는 한국 부흥사 중에 가장 독특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고영근 목사는 1974년 ‘엑스플로 74’에 참여했고, 1975년 전국 단위 부흥회 45회에 교역자 수련회 29회를 인도하는 등 왕성히 활동하는 부흥사였다. 하지만 그는 정교분리와 기복적 메시지를 내세운 다른 부흥사들과 구별되는 사람이었고, 그의 설교에는 교회와 사회의 개혁은 물론 유신정권을 향한 예언자적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그는 1976년 3월 단양장로교회에서 한 설교가 긴급조치 9호 위반에 걸려 1년 4개월간 구속되었다가 석방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77년 11월 강진읍교회 부흥회에서 한 설교가 다시 문제가 되어 2년 넘게 수감생활을 했다. 가끔 고영근 목사를 ‘아모스’로 칭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1977년 문제가 되었던 설교의 본문이 구약의 아모스서이기 때문이다.
1980년 3월 목민선교회를 창립한 고영근 목사는 교회와 사회개혁을 위한 활동에 매진하였고, 신군부와 사실상 신군부를 지원하고 있는 미국 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이런 그에게 수십 차례의 연행과 구류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1980년대 그의 목회는 양심수·구속자·시국사범 돕기까지 확장되었고 NCCK 인권위원회 후원회장,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인권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도 활동하였다. 1990년대에는 ‘비전향 장기수 돕기운동’까지 그의 목회 영역이 되었는데 그의 끊임없던 수감, 연행, 구류 등의 경험이 양심수와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이후로도 한국의 인권, 민주화, 통일을 위해 꾸준히 활동하던 고영근 목사는 2009년 9월 소천하였다. 1983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도로 워싱턴에서 설립된 한국인권문제연구소는 고영근 목사의 삶을 높이 기려,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미국대사와 함께 1998년 제1회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역사학자 이만열은 고영근 목사를 “유신 정권과 신군부의 권력하에서 당시 박정희·전두환·노태우를 그의 강론대에 올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부하고 채찍질을 가한 거의 유일한 목회자”라고 평가한다. 필자는 그를 평가할 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평소 그에 대한 존경심을 품어왔기에 이 말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고영근 목사의 삶과 사상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

엮은이의 성실함과 참신함이 엿보이는 사료집

책의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 각 장은 연도별로 나뉘어 있다. 전체 구성은 총 8장과 부록으로 되어 있고 1980년이 1장, 1987년이 8장이며 부록으로 형태별 사료 목록이 첨부되어 있다. 각 장의 구성은 모든 장이 동일하게 Ⅰ. 수첩으로 보는 사역, Ⅱ. 세부적 활동 내용으로 보는 한 해 일정, Ⅲ. 고영근이 만난 사람들, Ⅳ. 사진으로 만나는 역사의 현장, Ⅴ. 사건별 사료(성명서, 설교문, 공문, 회고록, 구술 녹취록, 연행 및 투옥 일지와 설교문 및 시국 설교)로 되어 있다. 말하자면 각 장에서 우리는 매 해마다 고영근 목사의 일정과 그해에 주력했던 활동, 인맥 관계, 활동 사진, 각종 문서 사료들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고영근 목사가 살아 있었다면 이 책의 편집인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감옥에 가도 할 말이 없을 수준이다.
확실히 이 사료집 시리즈는 고민의 흔적이 뚜렷하다. 지난 1권에서는 고영근 목사의 활동 경로를 지도로 표시하여 사료집도 참신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였다. 이번에도 사료집의 가치를 높이는 참신하고 유용한 시도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각 장의 앞부분을 형성하는 수첩 메모, 일정과 주요 활동, 인맥 관계를 정리한 부분은 기존의 사료집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Ⅰ. 수첩으로 보는 사역”에서는 고영근 목사의 수첩 내 달력을 스캔해서 수록해놓았는데, 매월 고영근 목사가 살인적인 스케줄을 수행하였다는 사실을 이내 확인할 수 있다.(너무 빽빽한 스케줄에 ‘나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수첩의 달력은 한 쪽에 한 달 전체 일자가 세로로 배치된 매우 간략한 형식이라 많은 메모는 남길 수 없어 하루에 2건 이상의 일정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대개의 동선과 활동 내역, 만남 등을 살펴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Ⅱ. 세부적 활동 내용으로 보는 한 해 일정” 역시 수첩 기록 중 일부를 스캔한 것이다. 앞부분보다 칸이 넓은 달력 형식이지만 고영근 목사가 날짜와 상관없이 그냥 중요한 내용을 메모하기 위해 임의로 사용한 듯하다. 이 메모 중 중요한 사항들은 엮은이가 네모 칸으로 표시한 후 이 내용이 어떤 활동과 연관되는 것인지 그 배경을 언급해 놓았으며,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단체 중 일부에 대한 엮은이의 간략한 설명도 첨가되어 있다.
“Ⅲ. 고영근이 만난 사람들”에서는 관계 인물들을 소속 또는 성격에 따라 분류하여 제시하면서 각 분류 항목의 관계도를 간략하게 그려놓았다. “1장 1980년도 사료”를 보면 분류 항목은 ‘목민선교회 지원자’, ‘부흥회&강좌’, ‘염광회’, ‘학생(부마항쟁, 부산 한일)’, ‘해외’, ‘재야&기독운동’, ‘구속자’, ‘김재규 규명운동’으로 되어 있다.(40-41쪽) ‘부흥회&강좌’와 ‘학생’, ‘해외’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유명인이 아닌 경우가 있어 그런지 지역 또는 소속 학교와 교회 이름을 괄호 안에 병기해 두었다. 이 책의 엮은이는 정말 친절하다.
Ⅳ와 Ⅴ의 사진과 사료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화보집과 사료집의 그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사진은 아무래도 부흥회나 강좌 등에서 강단에 서 있는 사진 위주라 단조로운 느낌이 있고 수량이 많지 않아 아쉽다. 사료는 설교문, 회고록, 서간문, 녹취록, 성명서, 회의록, 진정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인권소식, 저서 발췌문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원자료를 스캔하지 않고 새로 타이핑한 사료는 ‘읍니다’를 ‘습니다’로 고치는 등 오늘날의 철자법에 맞게 수정하였는데, 사소하지만 원자료의 일부분이 임의로 수정된 것이니 미리 ‘일러두기’ 등을 통해 설명을 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고영근 목사 연구의 마중물

애당초 사료집은 모든 사람을 독자로 생각하고 만든 책이 아니다. 연구자, 특히 역사 연구자들을 위한 책이 사료집이다. 역사 또는 신학 연구자들 중 고영근 목사 또는 군사독재기 기독교의 인권·민주화운동을 연구 테마로 삼은 사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인터넷서점에 접속해서 ‘구매하기’를 눌러보자. 혹시 본인의 언변이 불세출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목민연구소로 전화해보는 것도 방법이겠다.(좀 더 저렴하게 구할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물론 역사 연구를 업이나 취미로 삼지 않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기는 애매하다. 재미나 교양을 위해 읽기에는 딱딱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디자인도 상큼 또는 세련과는 거리가 있다. 사실 사료집 치고는 괜찮은 편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료집이라는 전제하의 말이다.
어쨌든 이 책은 참신한 시도가 돋보이는 잘 만들어진 사료집이다. 엮은이인 고성휘 박사의 집념과 친절함은 놀랍다. 고영근 연구의 좋은 마중물이 될 것이 분명하다. 고영근 연구의 활성화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손승호|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교회사를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유신체제와 한국기독교 인권운동』이 있다. 명지대 객원교수, 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2021년 12월호(통권 7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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