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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1년 10월호)

 

  공식 복지를 비추어보는 거울로서의 비공식 복지
  『한국의 비공식 복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대한민국 복지의 실체』, 손병돈, 사회평론아카데미, 2021

본문

 

19세기 후반의 사상가로서 정열적으로 활동하면서,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라는 이름으로 사회변동에도 적용하고자 하였던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는 적자생존이라는 자연의 선택을 왜곡하는 인위적인 국가 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내 유지하였다. 그는 19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시행된 구빈법과 같은 국가복지를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비판하였다. 왜냐하면 구빈법이 사회발전에 적응하지 못한 빈민들이 도태되도록 자연법칙에 맡겨두지 않고 간섭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펜서는 냉혈한은 아니었다. 그는 오늘날의 개념으로 비공식 복지(informal welfare) 혹은 비공식 돌봄(informal care)에 해당하는 ‘건설적인 사적 시혜’(positive private beneficence)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그것을 육성하자고 제안하였다. 복지다원주의를 주창한 스펜서는 사회진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에 간섭하는 국가복지에는 반대하되, 비공식 복지와 자원복지(the voluntary welfare)에는 찬성한 것이다. 가족과 이웃 등이 곤경에 처한 개인을 돌보고 이웃을 보살피는 방식의 비공식 복지는 인류가 집단생활을 영위한 이래 지속된 생존 방식이었으며, 스펜서와 같은 자유주의 사상가들에게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여러 사상가들과 저술가들이 개인의 자조(self help), 가진 자들의 자선(charity)이 지닌 미덕을 칭송하고, 이를 권장하는 계몽서들을 펴냈다.
그런데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전환되는 세기말에 서구의 복지 역사에서 중요한 변화들이 나타났다. 찰스 부스(Charles Booth) 등이 사비를 들여 시행한 빈곤에 관한 사회조사 결과, 가난은 주로 저임금과 실업, 노령 등 사회구조적인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제국주의 열강들의 해외 식민지 쟁탈전이 가열되면서,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아동기부터 체력과 지력을 갖춘 효율적인 국민이 필수적인 요소라는 인식이 생겨났고, 국가는 이를 위한 의무교육, 학교 급식, 보건위생, 주택 개량, 상하수도 정비 등에 막대한 투자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또한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드러난 자유자본주의의 한계로 인해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확대되었다. 전쟁 기간에 유럽 지역에서는 그나마 남아 있던 상호부조 조직이나 민간 자선조직들이 대부분 와해되었다. 전후 복지국가가 출범하여 1970년대 중반 석유위기 때까지 국가 주도의 공식적인 복지는 확장일로를 걷게 되었다.
이 시기에 서구에서 복지의 한 형태로서의 비공식 복지는 그 존재감을 거의 상실하였다. 예컨대 서구의 노인세대는 생활비의 대부분을 공적 연금에 의존하게 되었다. 일찍부터 핵가족화가 진행되어 노인세대가 자녀세대와 동거하는 경우도 거의 사라졌다. 여기에는 일찍이 형성된 개인주의 가치관과 같은 의식의 변화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오늘날 서구 복지국가들에서 비공식 복지에 주목하자는 주장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노인을 케어하는 사회사업가와 같은 돌봄 노동자들에게 노인 개인이 맺고 있는 가족 등의 사적 연결망, 즉 비공식 복지를 조심스럽게 검토(tapping)해보라는 조언이 있는 정도이다. 20세기 후반 이래 복지국가들에서 이루어졌던 공적 연금의 개혁 과정에서, 그리고 공공부조 개혁 과정에서는 노인 가구소득에서 공적 이전소득과 사적 이전소득과의 관계 등이 검토되어 왔다. 한 예로 사적 이전소득의 빈곤율 감소 효과는 서구 복지국가들에서는 0.5% 이하를 보여, 우리나라에서 사적 이전소득이 노인 빈곤율을 2.9% 감소시키는 것과 크게 대조된다.
한국에서 비공식 복지는 21세기 초까지도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홍경준이 ‘연(緣)복지’라고 표현하였듯, 혈연과 학연, 지연, 그리고 직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줄망에 입각한 비공식 복지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크게 변하였지만, 직장 동료가 상을 당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상갓집에 찾아가서 문상하는 것은 우리의 보편적 예절이자 관습이었다. 당연히 친소관계 등에 따라 조위금이라는 사적 이전소득, 즉 비공식 복지를 제공하였다. 시대를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서 우리 선대들이 노인세대를 어떻게 부양하였고, 주변 사람들의 애경사와 같은 ‘예기치 않은 과도한 지출사건’들에 어떻게 도움을 제공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침 이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서가 출판되었다.
평택대학교 손병돈 교수의 연구서 『한국의 비공식 복지』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대한민국 복지의 실체’라는 부제에 더 눈길이 가는 저작이다. 이 저작을 받아들고 제목을 살펴보았을 때 처음으로 머릿속에 스친 생각은 ‘왜 아무도 비공식 복지를 눈여겨보지 않았을까?’였다. 우선 ‘비공식 복지’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진다. 저작의 참고문헌을 살펴보아도, 한글로 쓰인 논저 가운데 ‘비공식 복지’라는 단어가 들어간 저작이 단 한 편도 없다. 소개된 영문 논문 중에는 있다. 1984년에 발표된 오페르(Offer)의 논문 제목에 ‘비공식 복지’(Informal Welfare)라는 단어가 보이고, 1991년도에 발표된 그레이엄(Graham)의 논문 제목에 ‘복지의 비공식 섹터’(The Informal Sector of Welfare)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등이다.
저자는 스펜서와 오페르를 참고하여 비공식 복지를 사회복지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여러 학자들의 설명을 종합하여 저자는 비공식 복지를 ‘가족, 친척, 이웃, 친구 및 직장 등 연줄을 기초로 하여 비공식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 복지활동’이라고 정의하고, ‘비공식 복지는 민간복지의 한 영역이라는 점에서 국가복지와 구별되며, 주로 연줄에 기초하여 아는 사람 간에 이루어지는 복지활동이라는 점에서 자선기관 등의 자원복지와 구분되고, 복지활동의 방식이 비공식적인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국가복지, 자원복지, 기업복지 등 공식적인 복지활동과 구별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보통 ‘복지’라고 하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혹은 민간의 복지조직들이 제공하는 복지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실제 이들이 제공하는 공공복지와 자원복지는 국민 개개인의 삶에 중요하다. 이들 공식 복지는 법령이나 규약 등 공식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제도화되어 이루어지는 복지들이다. 헌법에 기반을 두고 각종 법률에 입각하여 시행되고, 특히 복지를 위한 재원을 재정(財政)으로 마련하는 공공복지는 공식 복지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민간의 자발적인 결사에 의한 것이지만, 자체 규약(정관이나 회칙 등)에 근거를 두고, 그 재원은 정부 보조를 받아 마련하거나 대중을 상대로 모금하는 등의 방법으로 충당하는 민간의 복지조직들이 제공하는 자원복지 역시, 제도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공식 복지의 형태에 속한다.
그런데 이상에서 언급한 공식 복지와 대비되는 비공식 복지는 연줄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기에 가족, 친척, 이웃, 친구 및 직장 동료 등 그가 ‘아는 사람’이 제공하는 복지를 말한다. 복지를 제공하는 자를 중심에 두고 살펴보았을 때, 연줄관계 상에서 거리가 가까울수록 복지 제공에 적극적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복지의 동심원’ 상에서 가장 가까운 것은 가족이다. 보통 가족 다음으로 가까운 제공 주체는 친족이며, 친구나 이웃, 직장 동료가 그다음에 위치한다. 자신이 비공식 복지를 제공받는 입장에 있다고 할 때, 이 ‘복지의 동심원’은 도움의 범위에 따른 복지 수혜 기대확률의 크기를 의미한다. 나와의 거리가 멀수록 그 사람으로부터 복지를 받을 기대확률은 낮아진다.
오늘날 공식 복지가 빠르게 확장·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떠한 사유로 인해 곤경에 처한 개인은 공식 복지와 비공식 복지 가운데 어느 쪽으로부터의 복지를 기대할까? 드물기는 하겠지만, 양쪽 모두로부터 다양한 복지를 제공받을 수 있는 행복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공식 복지로부터 복지를 제공받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좋은 일이겠지만, 한정된 자원으로 구성원에게 복지를 배분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한다면, 사회적으로는 자원의 낭비가 발생하는 셈이 된다. 또한 공식 복지로부터 복지를 받게 됨으로써 비공식 복지를 제공해왔던 주체들로부터의 복지가 줄어드는 소위 ‘구축 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편 양쪽 모두로부터 복지를 받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극단적인 곤경 때문에 큰 고통을 겪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이나 친척, 이웃 등으로부터의 사적 이전소득, 즉 비공식 복지는 한국에서 공식 복지와의 비교를 위해 그 규모가 추정되고, 분석에 이용되고 있다. 국제 비교에도 이용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에서는 여전히 사적 이전소득(비공식 복지)이 빈곤율 감소에 기여하는 바가 시계열적 비교작업 결과로는 점차 줄어들고 있으나, 서구 복지국가들에 비해서는 감소율이 월등히 크다는 점을 논증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한국에서 비공식 복지는 공식 복지의 저발전 혹은 발전 양상을 살펴보기 위한 거울로서의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제외한다면 한국에서 비공식 복지라는 주제는 학계에서나 사회복지 실천 현장에서나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이유로는 비공식 복지라는 용어 자체가 개념상의 모호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우리가 복지 혹은 사회복지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개인이 아닌 사회가 제도적으로 제공하는 복지, 즉 공식 복지의 의미를 공유하게 된다. 그런데 복지 앞에 ‘비공식’이라는 말을 더함으로써 ‘사회복지가 아닌 복지’처럼 부자연스럽고 모호한 무엇이 된다. 저자 역시 ‘비공식 복지활동’ 혹은 ‘현금 형태 비공식 복지’, ‘서비스 형태 비공식 복지’, ‘동거 형태 비공식 복지’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특히 ‘동거 형태 비공식 복지’는 동거 자체를 복지와 등치한다는 점에서 개념 정의의 엄밀성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둘째 이유로는 저자의 설명대로 비공식 복지는 과거 시대에 성행하던 혹은 지배적이던 복지 형태로서, 오늘날에는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비공식 복지의 감소에 대해서 이를 문제시하거나 안타까워하면서 이를 되돌릴 방도를 모색하자는 등의 논의가 거의 없다는 점도 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하나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전통주의자들이 효도를 법으로 강제하자는 주장을 하기는 하나, 사회에서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셋째는 저자 자신이 밝힌 대로 비공식 복지가 지닌 일부 장점(미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점에 비해 단점들이 더욱 심대하기에, 비공식 복지를 유지하자거나 확대하자는 주장을 하기 어렵다. 저자 역시 마지막 결론의 소절을 ‘국가의 역할을 기대하며’로 맺고 있다.
사회과학자의 연구 작업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엉킨 사회현상에 내재한 규칙이나 정형을 찾아내어 사회현상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는 것, 또는 엄밀한 과학적 절차를 통해 기존의 설명이나 속설을 검증하는 것 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저작을 통해 저자는 사적 이전소득을 중심으로 비공식 복지라는 복잡한 사회현상을 둘러싼 쟁점들을 성공적으로 요약하는 데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부계 지향성의 감소와 양계제 혹은 신모계제로 이행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기존 설명을 실증적으로 검증하여, 우리 사회가 여전히 부계 지향성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 자신이 고백한 대로 이 분석에서는 빈도분석 이외의 보다 정치한 분석기법이 필요해 보인다.

최원규|서울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로 『사회복지역사』 등이 있으며, ‘외원사회사업사’를 비롯한 한국 근현대 사회복지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이며, 한국사회복지역사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11월호(통권 7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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