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책마당 > [책마당]
책마당 (2021년 10월호)

 

  구약성서를 히브리어에서 한국어로 처음 번역한 피터스 목사의 평전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 목사』, 박준서, 대한기독교서회, 2021. 『시편촬요』, 박준서 엮음·김중은 해설, 대한기독교서회, 2021

본문

 

한국 개신교 교인들의 언어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알렉산더 피터스(한국명 피득) 목사의 평전이 드디어 나왔다.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 박준서 교수가 지난 늦여름에 쓴 책이다.
피터스가 우리 개신교인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피터스는 현재 한국교회 대다수가 사용하는 『개역개정판』 성서의 어머니 판본인 『셩경 개역』(1938)의 구약을 최종적으로 번역한 인물이다. 둘째, 그는 『시편촬요』(1898)라는 한글 구약 단행본을 처음으로 히브리어에서 직접 번역하여 펴냈다.
개신교 전래 초기에 우리말로 번역된 구약성서 단행본으로는 존스(조원시)의 『구약공부』(1893)와 대한성공회의 『구약촬요』(1899)가 있다. 전자는 영어 성서(KJV, RV)를 번역한 것이고, 후자는 한문 성서(대표본, 브리지만-컬벗슨역)를 번역한 책이다. 이와 달리 피터스의 『시편촬요』는 구약 시편의 일부이지만 히브리어에서 처음 번역한 경우이고, 오늘날의 『개역개정판』에 그 번역이 남아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은 여전하다. 더구나 시편은 예배에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교회와 교인들의 언어생활과 신학용어가 정착해가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가 『셩경 개역』의 구약을 혼자 번역한 것은 아니다. 연동교회의 이원모 장로가 한국어 문장을 다듬었고 레이놀즈 선교사가 마지막에 도움을 주었지만, 히브리어 성서를 읽어가면서 이전에 나왔던 베어드(William M. Baird) 팀의 『개역』(1930)을 일일이 고쳐 새로 번역한 인물이 바로 피터스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한글맞춤법이 달라지자 한국교회는 1938년에 나온 피터스의 『셩경 개역』을 『개역한글판』(1952, 1956, 1961, 1964)과 『개역개정판』(1998, 2000, 2003, 2005)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고쳐 펴내며 그가 번역한 구약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필자는 피터스가 러시아인이면서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평소에 한글 성서 번역에 대해 글을 쓰면서 그가 선교사로서 어떤 삶을 살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궁금했다. 또한 그가 일본에서 개종하여 20세기 말 조선에 들어와 권서로 활동했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의 본명은 무엇이었으며 왜 이름을 바꾸었는지, 그리고 그의 말년은 어떠했는지도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연세대 교수로, 또 한국구약학회 회장으로 오래도록 활동한 저자 덕분에 그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그의 본명과 태어난 곳도 정확하게 알 수 있었고, 어떤 경로로 구한말 당시 조선에 들어왔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풀렸다. 또한 선교사로서 어떤 활동을 하였으며 한글성서 번역을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 평전이 더욱 반갑게 다가왔다.
저자는 이 평전과 더불어 피터스가 처음 한국어로 번역한 구약 단행본 『시편촬요』의 영인본을 함께 한 세트로 펴냈다. 이 영인본에는 피터스가 작시한 여러 편의 찬송가 가사도 『찬셩시』(1898)에서 뽑아 함께 수록하였다. 편의상 이 글에서는 각각 『피터스 평전』과 『영인본 시편촬요』 혹은 ‘평전’과 ‘촬요’라고 부르겠다.
『피터스 평전』은 모두 192쪽이고, 『영인본 시편촬요』는 모두 216쪽으로 두 권이 똑같이 감청색의 양장본으로 제본되어 영구히 보존할 수 있도록 잘 꾸며져 있다. 『피터스 평전』은 “초기 생애와 한국에서의 초기 사역”(제1부), “구약성경 번역과 개역 작업 그리고 선교활동”(2부), “은퇴와 서거”(3부), “기타 자료”(4부)로 구성되어 있다. 함께 수록된 피터스의 연대표와 함께 실린 35장의 사진은 그의 생애를 생생하게 보도록 만든다.
사실 저자는 발로 뛰어다니며 피터스의 일생에 대한 자료를 구하여 이 평전을 썼다. 무엇보다도 피터스의 무덤을 찾아낸 일은 저자의 크나큰 공헌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 부근 패서디나에 있는 풀러신학대학원에 방문연구교수로 지내던 중, 피터스의 무덤이 그 도시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소문하여 직접 그의 무덤을 찾아낸 것이다.(평전, 135-137) 저자는 무덤의 비석이 잡초로 뒤덮여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인 것에 충격을 받아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를 조직하여 2018년 12월 1일에 그를 기념하는 동판을 무덤이 있는 마운틴뷰 묘원의 추모관에 세우기도 했다.(평전, 138-139) 저자는 피터스의 후손들을 만나 자료를 건네받았는데, 특별히 피터스의 며느리 노마 켄필드(Norma Kenfield)가 2004년에 쓴 자료집 The Pieters in Korea와 연대를 알 수 없는 Norma’s Heritage에 더해 다른 후손들에게서 그의 육필 설교문 219편도 함께 넘겨받는다.(평전, 9) 저자는 이 자료들과 더불어 대한성서공회에서 펴낸 『대한성서공회사』(1-2권)와 『대한성서공회자료집』(1-3권)을 꼼꼼히 살펴 피터스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떤 활동을 했는지, 한국 개신교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를 종합적으로 그려 이 평전이 나왔다.
이 평전을 통하여 우리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을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피터스의 본명은 이삭(또는 이차크) 프룸킨(Aisik/Itzaq Frumkin)이고, 1871년 12월 30일 당시 제정 러시아에 속해 있던 에카테리노슬라브(Ecaterinoslav,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드니프로 지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르우벤 프룸킨(Reuben Frumkin)과 어머니 레베카 카이다놉스키(Rebecca Kaidanovsky) 사이에서 난 13남매 중 둘째였다.(평전, 17-18)
그가 태어난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였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러시아의 정치사회적 혼란 속에서 유대인들은 엄청난 박해를 받은 희생양이었기에, 유대인으로 러시아에서 살아가는 것은 무척 고된 일이었다. 정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피터스는 그래서 군 복무 후 무작정 고국을 등지고 외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처음에는 이집트의 항구도시 포트사이드(Port Said)로 갔다가 인도의 콜카타와 싱가포르를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갔다. 호주의 광산에 일하러 가려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자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 가려고 일본에 들른 것이었다.(평전, 20-22)
그런데 그는 거기서 생의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우연한 기회에 일본의 한 교회에 찾아가 복음을 듣고 열흘 만에 개종하기로 결심하고 그곳을 담임하던 미국네덜란드개혁교회 소속 알버터스 피터스(Albertus Pieters)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은 것이다. 이때 그는 당시 전통에 따라 세례를 준 목사의 성을 따라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Alexander Albert Pieters)로 이름을 바꾸었다. 1895년 4월 19일의 일이다.(평전, 22-24)
그리고 당시 조선에서 쪽복음을 파는 권서의 일을 제안받아 지체 없이 조선으로 들어온다. 그는 3년 반 정도 권서로 일하면서 틈틈이 『시편촬요』를 번역하였고 1898년에 자비를 들여 출판한다. 시편 가운데 62편을 조선어로 번역했는데, 『피터스 평전』과 함께 이번에 나온 『영인본 시편촬요』이다.
김중은 교수는 『영인본 시편촬요』의 해설 부분에서 『시편촬요』부터 『개역개정판』까지 이어지는 한국교회의 성서가 어떻게 탄생하였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한국어 구약성서 번역사의 대가 김중은 교수는 『개역개정판』 구약의 시작은 피터스의 『시편촬요』라는 점을 한국어 성서 번역사의 관점에서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그리고 『셩경 개역』을 위시한 한국 개신교회의 예배용 성서의 중요성도 다시 한 번 강조한다.(촬요, 214-216)
이 영인본에는 피터스가 작시한 찬송가 가사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촬요, 143-145) 조선장로교회의 첫 찬송가 『찬셩시』(1898)에 들어 있는 17편의 가사이다. 이들 가운데 지금도 『새찬송가』(2006)에는 3편의 가사가 들어 있다. 75장 〈주여 우리 무리를〉, 363장 〈내가 깊은 곳에서〉, 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이다.(촬요, 144-145)
『찬셩시』에는 시편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61장과 62장은 각각 이사야 53장 5절과 사무엘상 2장 6절을 모티프로 한 피터스의 시이고, 이 둘과는 달리 70장(〈이ᄉᆞㅣ아오십삼쟝〉)은 이사야 53장 본문을 시로 고스란히 담아낸 피터스의 번역이다.(촬요, 150)

gisang2110_07.jpg
gisang2110_08.jpg

위에서 보듯 우리말 4․4조에 딱 들어맞는 수려한 번역이다. 『시편 촬요』나 『셩경 개역』 구약의 본문이 직역 전통이면서도 한국어 운율에 어울리도록 잘 읽히는 것은 피터스가 번역한 『셩경 개역』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위의 『찬셩시』 70장은 노래 부르기에 적절한 4·4조 운율의 시라고 할 수 있다. “라틴어, 그리스어, 고대 슬라브어, 히브리어, 프랑스어를 공부했고 영어, 러시아어, 이디쉬어(Yiddish), 독일어 그리고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어서”(평전, 200) 선교사들 사이에 “언어학자”(linguist)로 통했던 피터스의 언어적 재능을 이 가사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직역뿐만 아니라 풀이역에도 능했던 것이다.
언어적 재능이 뛰어났던 피터스는 1899년 미국 시카고에 있는 맥코믹신학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 3년간 공부한 뒤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신학교 동기 캠벨(Elizabeth Campbell)과 결혼한 후 필리핀에서 2년간 선교사로 활동하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으나, 그의 아내는 조선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시신은 지금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묻혀 있다.(평전, 45-52) 이런 아픔 중에서도 피터스는 여러 교회에서 선교사로 일했고 한국어 성서 『구역』(1911)의 전도서를 번역했다.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도 피터스는 서울과 경기도 성남에서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황해도 재령과 평안도 선천에서도 선교 사업에 매진했다.(평전, 70-77) 그리고 그가 개척한 서울의 세곡교회와 내곡교회, 성남의 둔전교회와 심곡교회는 건실한 교회로 성장했다.(평전, 56) 그 와중에 제중원(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의 의료 선교사 에바 필드(Eva H. Field)와 결혼하여 두 아들 르우벤과 리처드를 얻고 이 두 아들이 청소년이 되어서는 미국 프린스턴대학으로 유학을 보냈다.(평전, 65-67, 78-80)
이 평전은 피터스가 또한 유대인 목사와 설교자라는 항목을 따로 두고 설명한다.(평전, 118-125) 피터스는 미국 북장로교 소속 선교사였지만 자신이 정통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은 적이 없으며 이 전통에 따라 평생 박봉을 받으면서도 아내와 함께 물질적으로도 헌신하였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한센병자 마을을 건립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고 평한다.(평전, 113-117)
하지만 무엇보다도 『피터스 평전』은 그의 성서 번역에 대하여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며 자세히 설명한다. 또한 한국어 최초의 성경전서 『구역』(1911)의 번역 과정(평전, 81-87)과 피터스가 최종적으로 참가하여 나온 『셩경 개역』(1938)의 번역 과정(평전, 101-108)을 잘 설명하고 있다. 특별히 『셩경 개역』에 서울 판(1937)과 런던 판(1938)이 있었다는 사실도 넌지시 알려준다.(평전, 102-108) 평전의 저자는 구약학자로서 이러한 세밀한 사항까지 잘 알려준다.
저자는 『셩경 개역』의 커다란 공헌으로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확립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평전, 104-105) 역사적으로 신명은 ‘하느님’(예수셩교누가복음) → ‘하나님’(예수셩교젼셔) → ‘하ㄴᆞ님’(구역) → ‘하나님’(셩경 개역)으로 변천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다가 한국 가톨릭과 개신교가 함께 번역한 『공동번역』(1977)은 ‘하느님’으로 표기하였고, 오늘날 개신교가 사용하는 『개역개정판』(4판, 2005)은 ‘하나님’으로 표기되었다. 우리는 이 용어를 당연하게 사용하지만, 한국어 성서 번역사를 살펴보면 쉽사리 정착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렇게 『셩경 개역』에서 신명이 정착한 사실을 두고 저자는 “(한국) 개신교회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다.”라고 평가한다.(평전, 105)
저자는 피터스가 『한영대자전』(韓英大字典)을 편집한 사실을 주의 깊게 설명한다.(평전, 109-112) 필자가 이 사전에 관심을 갖는 것은 피터스가 틈틈이 용어를 수집하고 1928-1931년에 집중적으로 작업하여 이 책을 펴냈다고 했는데, 이 시기는 『셩경 개역』의 번역 시기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곧 이 사전이 『셩경 개역』을 번역하는 데 크나큰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피터스가 편집한 이 사전과 『셩경 개역』을 함께 연구한 글은 아직껏 본 적이 없다.

하느님은 지난 19세기에 중국과 한국에 두 사람의 유대인 선교사를 보내시어 성서 번역을 하게 하셨다. 유대인 선교사 쉐레쉐브스키(Samu-el Schereschewsky) 성공회 주교를 중국으로 보내셔서 중국의 성서 『화합본』(1919)의 근간이 되는 『북경관화역 구약』(1874)을 번역하게 하셨다. 또 우리나라에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정통 유대인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를 보내셔서 『시편촬요』와 『셩경 개역』을 번역하도록 하셨다. 이로 인해 중국과 한국의 개신교회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번역한 구약성서를 일찍이 갖게 되었다. 동아시아에 내려진 크나큰 복이 아닐 수 없다.

이환진|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한 후 유니온신학대학원과 뉴욕대학교에서 공부했다.(Ph.D.) 『히브리 가락 히브리 노래 히브리 성서』, 『우리말과 히브리어로 엮어 읽는 이사야』 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1년 11월호(통권 755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