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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1년 9월호)

 

  자연과 인간이 합일을 이루는 온전함의 생태학
  『울트라휴머니즘: 지구 공동체 의식을 갖는 인간으로』, 일리아 델리오, 맹영선 옮김, 여해와함께, 2021.

본문

 

이 책 『울트라휴머니즘: 지구 공동체 의식을 갖는 인간으로』의 원제는 A Hunger for Wholeness: Soul, Space, and Transcendence로, 직역하면 ‘온전함/전체성을 향한 갈망: 영혼, 공간, 그리고 초월’이다. 이 책의 기저에는 테야르 드 샤르댕의 사상과 과정신학적 사고, 그리고 신비주의 영성이 곳곳에 배어 있다. 그리고 저자의 사상에는 데카르트-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넘어 양자역학에 바탕을 둔 과학적 사고와 생태적 세계관의 특징인 통전적이며 관계적인 사고가 깔려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과학기술 시대 이후 트랜스휴머니즘 시대에 적실한 자연관과 인간관에 대한 새로운 신학을 제시하면서, 그와 합치된 신론과 그리스도론을 재구성하며, 마지막으로 지구 공동체를 살아가는 실천 대안으로 신비주의 영성을 제시하며 논의를 마무리하고 있다.
저자 일리아 델리오는 과학기술 시대 이후에 필요한 총체적 개념으로 ‘wholeness’, 즉 온전함(혹은 전체성, 통전성)을 제시한다. 이는 데카르트적 인간중심 세계관의 출현으로 인간과 자연의 ‘온전’하고도 총체적인 관계에 거대한 균열과 분리가 초래되었고, 그것이 생태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생태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공생을 목표로 하는 생명-생태 공동체의 복원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생태학적 창조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인간과 자연의 공동체적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신학적 대안으로 ‘사회적 삼위일체론’에 입각한 하나님의 공동체성과 함께 창조세계 안에 내주하시며 현존하시는 성령론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델리오는 이와 같은 ‘관계-공동체적 생태론’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저자는 ‘존재-일치적 생태론’의 관점에 서 있다. 다시 말해, 델리오의 생태학적 구상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적’ 연결과 ‘상호성’에 초점을 두는 통전주의(wholism) 관점을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존재의 ‘불연속’의 틀을 철폐하고, 존재론적 합일을 강조하는 방향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존재-일치적 관점은 우주적 진화와 육화하신 그리스도의 일치, 물질적인 것(물질)과 내면적인 것(신비)의 일치, 더 나아가 기계와 인간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인간 존재를 구현하는 ‘혼성 인간론’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자연과 인간, 신과 인간, 기계와 인간, 정신과 물질 등 여하한 존재의 이분법적 간극을 극복하고, 존재의 합일과 일치의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일원론적 생태론의 구상이 뚜렷하게 읽혀진다. 그런데 이러한 존재일치적 일원론의 세계관의 기저에는 전 우주의 ‘그리스도 되어감’과 ‘하나님 오메가’를 실현한다는 샤르댕의 진화 우주론과 진화 그리스도론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원서명인 A Hunger for Wholeness에서 핵심어인 ‘wholeness’란 인간과 자연, 신과 인간, 기계와 인간의 통전주의적 전체성을 넘어 존재의 하나 됨과 일치를 꾀하는, 곧 일원론적 합일을 지향하는 의미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여기서 생태여성주의 신학자 로즈마리 류터(Rosemary Radford Ruether)를 통해, 델리오의 생태신학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류터는 생태신학의 두 전통으로 계약 전통(federal tradition)과 성례전적 전통(sacramental tradition)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가톨릭 전통의 프란치스코 영성에 기반하고 있는 델리오는 후자의 전통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델리오는 존재유비적이며 자연신학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성례전주의와 신비주의 영성을 풍부하게 담아 자신의 생태신학을 풀어내고 있다. 성례전적 사고에 토대를 두는 자연관에 따르면, 신은 자연 속에 깃들어 있으며 자연 속에 현존한다. 그런데 성례전주의는 단순히 자연과 물질 안의 신적 참여와 현존을 넘어 ‘자연의 신성화’를 지향한다. 근대의 데카르트적 인간중심 자연관이 영혼을 육체에서, 정신을 물질에서 분리시킴으로써 ‘자연의 인간화’을 초래했다면, 그것에 대한 생태학적 성찰은 ‘인간의 자연화’를 모토로 하는 세계관적 방향 전환을 모색해왔다. 여기서 델리오의 생태신학은 인간의 자연화를 포함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자연과 우주의 ‘성례전화’ 혹은 ‘신성화’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생태신학적 지점은 창조 중심의 영성을 강조하는 매튜 폭스(Matthew Fox)의 생태학적 영성이나 샤르댕의 우주적 그리스도론과 맥을 같이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은 물질과 의식의 문제, 사이보그라는 혼성적 인간의 탄생을 내다보는 새로운 인간관, 그리고 신비주의 영성 등 다양한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책의 사고의 근간을 구성하는 것은 샤르댕의 진화적-우주적 그리스도론이다. 델리오는 샤르댕의 사상을 빌려 지구 생태계가 처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물질과 정신, 자연과 인간, 신과 우주의 불연속을 깨뜨리고 합일을 꾀하려고 한다. 원래 고생물학자였던 샤르댕은 생물학을 종교와 연결함으로써 물질계를 신성화로 이끌어내고자 했다. 샤르댕에 따르면, 신성은 물질성에 반대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물질 속으로 들어간다. 하나님은 물질의 반대편에서, 그리고 물질 밖에서 발견되지 않고 물질을 통해서 발견된다. 하나님은 “물질의 깊이에서 ‘등장’하거나 ‘창발’하는” 분이다.(109쪽) 또한 샤르댕은 진화생물학자답게 하나님은 단순히 ‘존재’로서 생각되어서는 안 되며, 합일 행위라는 충만함으로 숙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물질을 통과하고, 물질에서 창발하는 방식을 통해 ‘하나님과 물질의 일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109쪽) 샤르댕은 이 점에서 하나님의 물질화 혹은 물성화(物性化)를 말하고 있는 듯 보인다. 반대로 ‘물질의 신성화’나 ‘신화화’를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샤르댕은 성육신론에 근거한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통해 물질과 하나님의 합일을 이렇게 기술한다.

하느님은 모든 창조물에 하느님-자기를 유기적으로 투자하며 육화하신다. 하느님은 물질에 몰두해서 물질의 중심에 당신을 몰입함으로써 세계를 통합하신다. 이런 물질성 안에 신성을 투자한 것이 그리스도이다. 이 신성한 본성의 영향으로, 우주는 물질의 바로 그 중심에 물리적으로 스며들게 된다. 모든 것은 물리적으로 ‘그리스도화’ 되어가고, 육화하신 말씀에 의해 동화, 변형되어 신성화를 위한 영양소가 된다.(109-110쪽)

모든 창조물, 즉 우주는 그리스도의 육화 위에 구조화되었다. 이는 우주의 진화 과정 안에 그리스도가 육화하심으로써 우주적 진화와 그리스도의 육화가 결합되어 궁극적으로 영의 진화를 향해 나아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신적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빅뱅으로 시작된 우주 진화 안으로 들어갔으며, 진화의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인류와 전 우주는 ‘그리스도화’ 되어감(Christogenesis)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110-111쪽) 이것이 바로 샤르댕이 말한 진화론적 그리스도론의 핵심이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주제는 ‘사이보그로서의 예수’(Jesus as cyborg) 부분이다. ‘사이보그’는 인간과 기계가 융합된 혼성 유기체이며, 생물학적인 것과 기술적인 것이 융합된 혼성 실체이다.(134쪽) 델리오에 따르면, 예수는 새로운 인간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신적 말씀이 육화하심으로 육신이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신성과 창조물 사이의 분리된 경계를 초월한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육화하신 예수는 탈경계인으로서 신성과 인성의 ‘혼성 창조물’(hybrid creature)이라고 할 수 있다.(113쪽)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샤르댕과 마찬가지로 게르트 타이센(Gerd Theissen) 역시 예수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타이센은 예수를 문화와 차별의 경계를 뛰어 넘어 타자에 대한 이타주의와 완전한 자기 헌신을 보여줌으로써 진화 과정에서 파생되는 적자생존의 선택 원리에 반대하는 ‘저항’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의 생물학적 돌연변이’로 규정했다는 점이다.(114-115쪽) 여기서 우리는 저자가 진화론적 예수에 대한 타이센의 통찰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샤르댕의 진화론적 그리스도론은 인간 역사의 무한한 진보 관념을 무차별적으로 투영하는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샤르댕 식의 진화론적-우주적 그리스도론에 따르면, 인류와 우주 전체는 생물권에서 정신권으로 무한히 진보하여 종국에는 하나님-오메가의 지점으로 수렴한다. 그러나 이 낙관론이 말하는 것처럼 과연 인류 역사와 우주가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진화와 진보를 거듭하면서 거침없이 전진할 것인지 의문이다. 더구나 샤르댕이 진화 과정에서 파생될 ‘선택 원리’라는 냉정한 현실 앞에서 부적응하며 도태되어 낙오자로 전락할 생물학적 희생물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아쉽게도 샤르댕의 진화론적 사고를 기반으로 생태신학을 전개하는 델리오 역시 이 점에서 예외는 아닌 듯싶다. 델리오의 신학에는 우주적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매튜 폭스처럼, 창조와 해방의 관점만 있을 뿐(폭스는 죄라는 도식을 배제해야 하며, ‘창조-구원’이라는 도식보다는 ‘창조-해방’의 도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죄의 실체와 현실에 대한 성찰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델리오는 성육신에서 곧장 부활로 넘어가며 부활을 통한 창조의 신성화와 변형을 역설하지만, 성육신과 부활 사이에 위치할 십자가가 사실상 거의 누락되어 있다. 역사와 사회 속에서 직면하게 될 악과 고통, 불의에 대한 현실적 통찰이 결핍된 이런 측면은 과학기술 시대를 지나치게 낙관하면서 이를 환호하고 긍정하는 진화론적 신학의 필연적 약점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존재적 일치와 합일을 긍정하고, 진화 과정을 통한 우주의 신성화에 대한 낙관적인 희망과 신비주의적 생태영성을 특징으로 하는 존재 합일적 생태학은 생명-생태계를 지극히 관계적이며(relational), 상호의존적이며(interdependent), 공동체적(communal) 그물망 안에서 이상적인 모습으로 존립한다고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보여지는 생명-생태계는 힘과 권력의 우열관계 안에서 약육강식의 원리에 따라 처절한 죽임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으며, 폭력에 의해 셀 수 없이 많은 희생물들을 산출하고 있다는 부정적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존재 합일적 생태학은 정의와 해방의 생태학으로 보완되지 않는다면, 델리오가 꿈꾸는 울트라휴머니즘의 왕국은 결코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김동춘|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전공하였다.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전환기의 한국교회』, 『탈교회』(공저) 등이 있다. 현재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2021년 9월호(통권 7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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