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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1년 8월호)

 

  가장 오래되고 귀한 직무인 성직에 대한 서방교회의 신앙적 명심보감
  『성직자의 의무』, 암브로시우스, 최원오 옮김, 아카넷, 2020.

본문

 

1. 오늘날은 종교, 특히 성직자를 매도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직자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서, 성직 자체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속담처럼 ‘목욕물을 버리려다가 아기까지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신앙 전통에 따라 성직 제도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이름이 어떻든 성직의 영역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종교와 성직자의 위기 때일수록 본질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좋은 처방이 있다면 바로 기독교 2,000년 역사 가운데 나온, 성직에 관한 주옥같은 고전을 읽는 것이다.
성직에 관한 고전 중 빼놓을 수 없는 책은 암브로시우스가 쓴 『성직자의 의무』이다. 이 책이 작년 말에 전문가에 의해 번역된 것은 축복이자 경사이다. 번역자 최원오는 교부학자로, 중요한 교부 문서들을 번역해왔다. 특히 포시디우스(Possidius)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Vita Augustini)를 번역한 바 있는데, 이는 암브로시우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평전이다.1 안타깝게도 가톨릭의 성직 관련 고전 중 하나인 대 그레고리우스(Gregory the Great,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사목규범서』(Regulae Pastoralis Liber)는 아직 번역·출간되지 못했다.2 『사목규범서』도 번역된다면, 독자들은 서방교회의 4대 교부(암브로시우스, 히에로니무스, 아우구스티누스, 대 그레고리우스) 중 3인에 대한 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되어 가톨릭 전통의 성직 관련 고전에 대한 목마름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2. 『성직자의 의무』는 저자 본인과 번역자가 밝히듯이,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의 『의무론』(De officiis)을 토대로 저술되었다.(11쪽, 84쪽) 암브로시우스는 『의무론』의 구조와 내용을 적극 활용하였으며, 두 책은 오늘날의 저작권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키케로의 『의무론』을 간략히 소개할 필요가 있다.
키케로의 『의무론』은 그리스·로마 문화의 대표적인 고전으로 정평이 난 책이다.3 『의무론』은 수사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키케로가 자기 아들의 정치 입문을 염두에 두고 정치와 공직에 대해 조언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핵심은 한마디로 ‘도덕이 기초가 된 정치’라고 할 수 있다. 키케로는 그리스 유학생이었고, 그의 아들도 당시 그리스 유학생이었다. 그래서인지 『의무론』의 내용은 그리스 문화를 토대로 삼아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적인 주제는 “도덕적 선”(honestum, 1부), “유익함”(utilitas, 2부), 그리고 “도덕적 선과 유익함의 상충”(3부)이다.
사실 도덕적 선과 유익함이라는 주제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키케로의 『의무론』은 사실 그보다 먼저 이 주제를 다룬 파나이티우스(Panaetius)의 논제를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4 하지만 파나이티우스는 “도덕적으로 옳은 것과 유익한 것”만을 다루었고, 양자가 “상충될 때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설명하지 않은 채 책을 미완성으로 남겼다. 바로 이것을 키케로가 이어받아 완결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즉 유익함을 단지 세속적인 이익으로 생각할 때, 도덕적 선과 유익함은 상충되어 보인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선한 것이 진정으로 유익한 것이라고 할 때, 도덕적 선과 유익함은 연결된다. 문제는 유익함을 도덕적으로 선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는지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는 점인데, 이를 설명하는 것이 키케로의 『의무론』이 지닌 장점이다.
키케로의 『의무론』이 ‘파나이티우스의 논제’라는 그리스 문화의 주제를 로마 문화의 관점에서 완성시킨 것이라면, 암브로시우스의 『성직자의 의무』는 『의무론』이라는 로마 문화의 주제를 로마 시대 기독교의 관점에서 승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성직자의 의무』는 인문학과 신학이 탁월하게 융합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번역자가 책의 해제에서 밝혔듯이 『성직자의 의무』는 “서양 고전을 통한 그리스도교 사상의 토착화 시도”이고, 또한 “키케로의 철학을 뛰어넘어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윤리를 마련한 셈”이다.(26쪽)
암브로시우스는 당대 문화의 대표작인 『의무론』을 저본으로 사용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기존 작품의 우수한 내용을 활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작품에 익숙한 독자들과 접촉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런 학문적 접근은 암브로시우스가 수사학에 정통한 인문학자였다는 점에서 형식과 내용상 매우 적절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토마스 아퀴나스가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한다.”(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ecit)라고 말한 것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당대 문화를 기독교를 위해 이용하는 이런 입장은 중세 스콜라신학만이 아니라 가톨릭신학 전체 기조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암브로시우스는 일찌감치 인문교육을 받고 자라 행정가로서의 경력을 쌓았는데, “신학 지식도 사목 경험도 없는 공직자로 지내다가 갑자기 교회의 중책을 떠맡게”(16쪽) 되었다. 밀라노의 주교로 선출된 것이다. 오늘날 세례 풍조와는 달리 당시는 세례를 가능한 한 연기하려고 하던 때였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암브로시우스는 세례도 받지 않은, 신학과 사목에 무지한 상태였다. 그래서 암브로시우스는 주교가 되자마자 다른 사제의 지도하에 성서를 깊이 깨우쳐야 했다. 그의 지적 자원이었던 고전 지식을 활용하면서 성서와 신학 연구에 매진한 결과 그는 성서 해석의 대가가 되었다. 독자들은 『성직자의 의무』에서 놀라운 성서 해석의 실례를 수없이 접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암브로시우스는 책 도입부에 “나 자신이 배우지도 않은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63쪽)라고 토로했던 것이다.

3. 이 책의 집필 연대는 분명하지 않은데, 번역자에 의하면 388-390년경으로 짐작된다. 당시 암브로시우스는 자신의 책을 키케로의 책과 같은 제목인 『의무론』으로 불렀다. 그러나 후대 학자들은 이를 다른 여러 ‘의무론’과 구별하기 위하여 『성직자의 의무』로 불렀고, 우리말 번역도 이 전통을 따라 제목을 정했다.(22-23쪽)
앞서 언급했듯, 이 책의 구조는 『의무론』과 같다. 『의무론』의 ‘도덕적 선’과 ‘유익함’이라는 핵심 용어를 이 책에서는 ‘올바름’과 ‘이로움’으로 번역한다. 암브로시우스가 키케로에게 넘겨받은 ‘올바름’과 ‘이로움’은 그에게서 그치지 않고 교부학, 나아가 신학의 주제로 이어진다. 번역자는 한편으로는 이 주제가 아우구스티누스의 향유(frui)와 이용(uti) 개념으로 토착화되었다고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양 유가 철학의 의리(義利) 논쟁과 비교할 수 있는 가능성도 시사한다.(23-25쪽)
암브로시우스도 올바름과 이로움의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설명한다. 키케로와 마찬가지로, 이로움은 사리사욕과 같은 통속적 이로움이 아니라 올바름을 추구하는 공공적인 이로움이 된다. 그렇다면 결국 이로움은 사실상 올바름과 같은 것이다. 암브로시우스는 이 논리를 통해 올바름과 이로움의 외견상 모순을 극복하고, 승화된 조화를 제시한다. 특히 그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로움을 단순히 현세의 관점이 아니라 영원의 관점에서 해석함으로써 이로움과 올바름을 더욱 설득력 있게 연결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올바름과 이로움을 신앙에 연결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세속주의와 이기주의가 유난히 심한 현대인의 삶에 일종의 해독제가 될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이 있다면 키케로의 『의무론』과 마찬가지로 공공적인 이로움을 거듭 강조한다는 것이다. 『의무론』이 ‘도덕이 기초가 된 정치’를 강조한다면, 『성직자의 의무』는 ‘도덕, 나아가 신앙이 기초가 된 교회 및 사회의 정치’를 강조한다고 하겠다. 공공적인 이로움은 오늘날 공공신학(혹은 공적 신학)의 용어로 바꾸면 ‘공동선 추구’라고 말할 수 있다. 암브로시우스를 공공신학자로 해석하는 연구도 나올 법하다.
이 책은 『의무론』과 마찬가지로 후배를 위한 원로의 조언을 담고 있다. 물론 『의무론』은 혈육(자신의 아들)을 위한 것인 반면, 『성직자의 의무』는 영적 아들과 같은 후배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귀한 교훈들이 넘친다. 일일이 소개할 수 없고 주제들만 훑어보자.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다양한 주제가 개인 차원에서 인간관계의 차원으로, 다시 신앙 차원의 순서로 소개된다. 제1권은 핵심 문제인 의무의 의미를 밝히고, 올바름과 이로움의 관계를 다룰 뿐 아니라, 침묵, 자비, 죄인의 번영과 의인의 고통[에 대한 신앙], 부, 염치, 정의, 용기, 순교 등을 다룬다. 제2권에서는 행복, 올바름과 [긍정적] 이로움, 사랑, 지혜, 검소, 관대함, 주교와 다른 성직자들의 관계, 자선, 탐욕, 가난한 자, 평화 등을 다룬다. 제3권에서는 [긍정적] 이로움을 다시 강조하면서 인간다움, 공동선, 도리, 환대, 신의, 맹세 등을 다루고, 올바름의 본보기로 다양한 성서의 사례를 소개한다.

4. 교회사를 보면 초기에는 가톨릭의 수도자와 재속 성직자 간에 차이가 있었지만, 점차 재속 성직자들이 수도자 영성을 공유하게 되었다. 최근 가톨릭에서 발간한 『사제의 직무와 생활 지침』을 보면 사제의 영성으로 독신, 순명, 청빈 등을 꼽는데, 이 세 가지는 수도원이 추구하는 대표적인 영성이다.5 암브로시우스 역시 재속 성직자인 주교였지만 수도자적 삶을 살았기에 이 책에는 수도원 영성이 드러난다. 특히 개신교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칼뱅이 『기독교강요』에서 당시 가톨릭교회의 사치를 비판하면서 예외적인 존재로 암브로시우스를 거듭 소개할 만큼, 암브로시우스는 가난한 자들을 귀히 여기는 성직자였다.6
사실 개신교는 교부들의 가르침을 선별하여 수용하는데, 대표적으로 수용하는 교부가 바로 암브로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이다. 이런 점에서 『성직자의 의무』는 가톨릭 독자만이 아니라 개신교 독자 또한 관심을 보여야 할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은 성직자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서인 동시에 교인의 신앙 인격을 고양하기 위한 신앙 교양서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한 목회자가 언급했듯이, 『성직자의 의무』는 전체를 한 번에 읽는 것도 유익하지만, 작은 단락들로 나뉘어 있어서 단락별로 조금씩 음미하면 훌륭한 묵상 자료가 될 수 있다.

주(註)1 포시디우스, 이연학·최원오 역주,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분도출판사, 2008).
2 『사목규범서』의 번역은 다음 석사학위 논문에 수록되었다. 박노문,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사목규범서’(Regulae Pastoralis Liber)에 드러난 사목직에 대한 고찰”(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00).
3 키케로, 허승일 옮김, 『키케로의 의무론』 개정판(서광사, 1989).
4 『의무론』, 3.2.7.
5 교황청 성직자성, 『사제의 직무와 생활 지침』(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8).
6 존 칼빈, 원광연 옮김, 『기독교강요(하)』(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03), Ⅳ.5.17; Ⅳ.5.18.


안교성 | 교회사를 전공하였다. 『한국교회와 최근의 신학적 도전』 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1년 8월호(통권 7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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