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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1년 8월호)

 

  기독교 민족주의, 그 논쟁의 불씨를 지피다
  『기독교 민족주의 재해석: 일제강점기 정인과와 장로교단의 기독교 민족주의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 최영근, 대한기독교서회, 2021.

본문

 

1. 오래전 대학원 석사과정 수업 때의 일이다. 필자가 논문 주제발표를 하는데, 목차에 쓰인 “~의 배경”에 대해 지도교수님이 질문하셨다. “배경의 뜻이 뭔가요?” 배경이 배경이지 더 이상 무슨 뜻? 필자는 당황했고 교수님은 국어사전을 가지고 와서 그 뜻을 읽어주셨다. 자신이 뜻을 이해하지 못한 용어는 쓰지 말라는 것이 교수님의 의도였고, 이후 필자는 ‘배경’이라는 단어를 쓸 때마다 트라우마를 겪는다.
필자의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한국기독교 민족운동사’라고 답변한다. 여기에서 문제는 ‘민족운동사’이다. ‘민족운동’의 뜻을 정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건 좀 낫다. 만약 ‘민족주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속수무책일 것이다. 모르니까. 나름 고민도 했으며 관련 논문을 써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포기했다. 도저히 풀어낼 자신이 없어서이다. 그러다 보니 필자는 ‘민족주의’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일종의 알러지인 셈이다.
『기독교 민족주의 재해석』이라는 서명에 ‘민족주의’가 나온다. 더욱이 앞에 ‘기독교’가 붙는다. 민족주의의 뜻도 모르는 필자에게 ‘기독교 민족주의’는 적잖은 부담이다. 게다가 ‘재해석’이라니. ‘일제강점기 정인과와 장로교단의 기독교 민족주의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는 부제 역시 간단치 않다. ‘민족주의운동’이란 무엇이며 민족운동과 어떻게 다를까. 또 ‘비판적 성찰’이란 무엇일까. 기독교 민족주의에 대한 기존의 연구 내용이 무엇이기에 재해석이 필요하며, 그것이 어떠하기에 비판적 성찰이 필요할까.
‘민족주의’는 영어 단어 ‘nationalism’의 번역어이다. 그리고 이 단어는 ‘국민주의’ 혹은 ‘국가주의’로도 번역된다. 여기서 혼란이 시작되며 그 여파는 ‘민족운동’으로도 파급된다. 독자 여러분께 간단한 질문을 던져본다.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민족운동일까?
이에 대한 필자의 의견은 생략한다. 단지 우리가 흔히 쓰는 민족주의와 민족운동의 개념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아가 저자는 기독교 민족주의·민족운동에 대해 고찰한다.
필자의 의견은, 우선 ‘기독교’와 ‘기독교인’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구분이 쉽지 않으며, 때로는 구분하려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기독교와 민족주의가 접합되어 나타난 기독교 민족주의의 형태”(77쪽)라는 대목부터 논쟁의 불씨가 숨겨져 있다.
‘기독교 민족운동’의 사례를 들어보자. 기독교인이 참여한 민족운동이면 일단 그렇게 보곤 하지만, 과연 그것이 기독교 사상에 근거했는지는 확인이 쉽지 않다. 기독교인이 주체라고 해서 그것을 곧 “기독교와 민족운동의 접합”이라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인의 민족주의’와 ‘기독교 민족주의’를 일단은 구분해야 하기에 이 책의 “기독교와 민족주의의 접합”이라는 대목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기독교 농촌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2. 필자가 아는 한, 민족주의에 대해 저자처럼 치열하게 고민한 연구자는 없다.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발전시킨 것이니 숙성도와 전문성도 남다르다. 이 책에는 민족주의에 대한 국내외의 다양한 이론들이 소개·정리되어 있으며, 이것만으로도 학계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저자 나름의 이론적 체계를 바탕으로 일제강점기 기독교 민족주의에 대해 장로교단과 정인과를 사례로 들어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음은 책의 목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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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보듯 제1부의 키워드는 ‘민족주의’, 제2부의 키워드는 ‘정인과’이다. 정인과(1888-1972)는 평안남도 순천 출생으로,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하던 중 안창호와 함께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이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과 정치학을 공부하고 1924년 귀국, 조선주일학교연합회와 장로교 농촌부에서 봉직했다. 1935년 장로교 총회장이 된 그는 1937년 동우회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고, 이후 친일의 행태를 보여 해방 후인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기도 했다.
필자의 의문은, 이 책의 부제인 ‘일제강점기 정인과와 장로교단의 기독교 민족주의운동’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목차만 보면 장로교단의 경우 농촌운동뿐이다. 그리고 장로교 농촌부의 초기(1928-34) 핵심 인물로 정인과의 행적을 다룬다. 이 책은 그를 “장로교 초대 농촌부장으로 장로교 안에서 농촌부의 개시와 발전의 토대를 닦았고, 아직 목사안수를 받지 않은 배민수를 총무로 세우며 농촌부가 상설 기관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303쪽)라고 말한다.
필자는 한국기독교 농촌운동 전체를 민족운동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 중에는 민족과 무관하게 그저 교단이나 교회를 지키고 살리기 위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인과가 주도한 시기의 농촌운동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이 부분에서 저자와 필자는 의견을 달리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반갑고 고맙다. 필자의 견해가 타당한 것인지 ‘재해석’과 ‘비판적 성찰’의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필자는 배민수가 농촌부장을 맡은 1934년 이후의 농촌운동을 부각시키기 위해 정인과가 주도한 시기의 농촌운동을 폄하하는 것은 아닌지, 일제 말 친일 행태를 보인 정인과에 대한 선입관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반추해본다.
저자가 이 주제에 천착한 데는 은사이자 한국기독교사의 대가인 민경배 교수의 영향이 컸다. 민 교수는 『정인과와 그 시대』(한국교회사학연구원, 2002)를 낸 바 있는데, 저자는 정인과에 대한 민 교수의 평가를 이렇게 소개한다.

한편으로는 제국주의 전쟁에 광분하고 있던 천황제 군국주의체제 아래서 일본적 기독교로 장로교회가 해체되는 위기에서 장로교 정체를 지켜낸 “한국 장로교회의 마지막 기수”와 “파숫군”이라는 평가가 있다.(391쪽)

정인과가 과연 “장로교 정체를 지켜낸” 인물인지 여부는 별개로 치더라도, 저자의 평가는 민 교수의 그것과 얼마나 다를까. 이 책에 나오는 다음 대목들을 살펴보면 판단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 일제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제도권 교회의 생존을 도모하고, 일제가 전쟁에 총력을 집중하던 비정상적 시대상황에서 복음전파와 신앙장려를 이어가려고 했던 의도가 읽힌다.(395쪽)
• 엄혹한 시대 속에 오욕과 형극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향해 그들의 번민과 고통의 크기를 이해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후세(後世)로서 과연 누가 비난과 저주의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414쪽)


정인과는 기독교계의 대표적 친일파이다. 이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분량만 세 쪽이다. 인간적 연민과 역사적 평가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리고 ‘비난과 저주’라는 표현은 ‘비난’이나 ‘비판’ 정도에 그쳤으면 좋았을 것 같다. 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저주’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이 연구에서는 이분법적 평가를 지양”(416쪽)한다고 밝혔다. 이분법적 평가란 대상을 흑 아니면 백, 선 아니면 악으로 규정짓는 것이다. 당연히 누군가의 생애가 100% 선악 또는 흑백으로 채워질 수는 없다.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따지면 된다. “과연 누가 비난과 저주의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면 본의 아니게 ‘이분법적 평가’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여기서 규명해야 할 문제는 그가 민족주의자였는가, 친일파였는가에 있지 않다. 역사적으로 보건대, 그는 둘 다였고, 둘 사이에 있었고, 둘 사이를 오갔다.”(391쪽)라는 저자의 주장도 이해가 쉽지 않다. 정인과가 ‘민족주의자’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것이고 친일파는 친일파다. 저자는 정인과가 “결코 공존할 수 없는 양극단의 모순적 간극을 오가며”(392쪽)라고 했는데, 친일파가 된 ‘민족주의자’는 기독교계에서도 민족대표 33인의 일원이었던 정춘수와 박희도처럼 드물지 않다.
아마도 다음 대목이 이 책의 결론 중 핵심이 아닐까 싶다. 필자의 생각에, 이 같은 주장은 기독교 민족주의와 정인과에 대한 그동안의 논의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는 것 같다.

기독교가 주창하는 민족주의와 민족은 기독교의 보편주의 안에서만 안전하고 건강하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일제강점기 정인과와 기독교 민족주의에 대한 고찰은 하나님나라를 민족과 민족공동체에 실현하는 건강한 기독교 민족주의를 벗어나서, 하나님나라가 아닌 민족의 영광과 편협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 헌신하는 기독교는 결국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리로 깊이 인식하게 한다.(431쪽)

“기독교 민족주의의 이념적 한계는 정인과와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이 전향하게 된 결정적 문제”(428쪽)인데, 그 이념적 한계가 “하나님나라가 아닌 민족의 영광과 편협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 헌신”이란 것이다. 의문이다. “민족의 영광과 편협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 헌신”했는데 왜 친일파가 되는가.
정인과도 “민족의 영광과 편협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 헌신”한 인물일까. 저자는 그의 기독교 민족주의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의 정신으로 하나님나라를 불의한 사회 속에 실현하려는 기독교공동체의 사회적 실천”(258쪽)이라 하지 않았나. 여기에 무슨 ‘이념적 한계’가 있을까.

3. 민족주의에 대한 알러지가 있는 필자는 애당초 이 서평의 적임자가 아니었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일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극복에 실패했다. 이 책 자체의 문제나 저자의 역량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가 워낙 난해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역사신학 전공자인 저자와 일반사학 전공자인 필자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두 가지는 분명하다. 첫째는 이 책이 앞으로 한국기독교사 학계에서 민족주의 논쟁을 촉발시킬 것이라는 점, 둘째는 정인과에 대한 다양한 조명이 활기를 띨 것이라는 점이다. 기독교와 민족주의 연구의 새 지평을 연 이 책은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자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서평을 쓰면서 필자는 적잖은 자극을 받았다. 이 분야 연구의 ‘재충전’ 기회로 삼겠다. 그리고 이 책은 앞으로 기독교 민족주의에 대한 새로운 논쟁을 촉발시킬 불씨가 될 것이다. 그래야 학문도 발전하고 학자도 성장한다고 믿는다.
누군가의 땀과 눈물이 가득 배인, 그것도 400쪽이 넘는 책을 원고지 20여 장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위험하고도 민망한 작업이다. 부디 이 어설픈 서평이 저자의 노력과 이 책의 가치에 흠결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한규무 | 서강대학교 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문학박사)하였다. (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상임연구원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일제하 한국기독교 농촌운동』, 『기독교민족운동의 영원한 지도자 이승훈』, 『광주학생운동』 등이 있다. 현재 광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1년 8월호(통권 7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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