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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1년 4월호)

 

  아우구스티누스, 난민 영성을 말하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떠나는 여정』, 제임스 K. A. 스미스, 박세혁 옮김, 비아토르, 2020

본문

 

책과 여행이 만나다

나에게는 세상을 보는 두 개의 창이 있다. 책과 여행이다. 책은 문자와 개념을 통해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과 사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여행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는 접촉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직접 경험하게 한다. 책은 사유와 상상을 통해, 여행은 오감을 통해 나의 세계를 확장한다. 책과 여행은 시공간에 제약된 나를 과거부터 미래까지, 집에서 우주까지 확장시키는 도구이다. 읽은 책과 다녀온 여행은 내 안에서 녹아 지속적으로 나를 구성하고 움직이고 이끄는 자양분이며 나침판이다.
그런데 책과 여행, 이 둘이 하나가 되면 어떨까? ‘책이 녹아 있는 여정’ 이나 ‘여정이 녹아 있는 책’이라면, 그것은 행복한 사건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떠나는 여정: 불안한 영혼을 위한 현실 세계 영성』은 바로 그런 즐거운 ‘사건’이다. 책 이름에 담긴 용어들, ‘아우구스티누스’, ‘함께’, ‘떠나는 여정’, ‘현실 세계’, ‘영성’, 심지어 ‘불안한 영혼’마저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다.
이 책의 저자 제임스 스미스는 『습관이 영성이다』(You Are What You Love)로 잘 알려진 복음주의 진영의 글쟁이다. 캐나다 출신으로 미국 캘빈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현대 프랑스 사상을 전공한 기독교 철학자이다. 그의 관심은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장 칼뱅, 조나단 에드워즈, 아브라함 카이퍼 등 기독교 사상과 문화까지 아우르며, 그의 글쓰기는 철학과 신학, 미학, 윤리학, 과학, 정치학 등의 경계를 넘나드는데, 이 책에는 그의 사상 편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스미스는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는가? 저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길 위에서 당혹스러워하는 오늘 우리에게, 특별히 “불안한 영혼”에게 도움을 주는 길벗이라고 전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미 길 위의 삶을 살았으며 그 여정의 본질을 꿰뚫은 사람이어서, 집으로 가는 길에서 방황하는 우리를 위로하는 동행자이며, 현실주의자에게 영성을 선물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책은 13장으로 구성되며 두 부분으로 나뉜다. 1-3장은 1부 ‘방향 설정’이며, 4-13장은 ‘나에게 가는 길의 우회로들’이라는 이름의 2부에 해당한다. 2부의 각 장은 ‘자유’, ‘야심’, ‘섹스’, ‘어머니들’, ‘우정’, ‘깨달음’, ‘이야기’, ‘정의’, ‘아버지들’,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는데, 각 장은 “~하기 원할 때 나는 무엇을 하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들 각 주제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통찰과 조언이 제시되고, 이어서 마무리 글 ‘귀향’으로 책이 끝난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를 우리의 여정에 동행하는 안내인으로 소개하는 스미스의 글쓰기 방식과 구성이 독특하다. 우선 각 장의 주제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순차적 전개가 아니다. 즉 주제의 배열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와 일치하지 않는다. 주제에 따라 시대와 장소가 바뀌고 뒤섞이면서 글이 전개되는데, 마치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한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내용도 다소 혼종적이다. 이 책의 내용은 아우구스티누스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저자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연결된 자크 데리다와 해나 아렌트, 알베르 카뮈, 마르틴 하이데거 등을 조연으로 등장시켜 각 주제를 진행한다. 비록 하이데거나 데리다, 카뮈의 사유를 이해하기 까다롭 고, 다루는 주제가 어렵고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저자는 이것들을 말랑말랑한 글로 풀어낸다. 더 나아가 이 책에는 소설, 영화, 철학책, 음악, 텔레비전 드라마, 시, 사진, 그림 등 온갖 매체가 등장하는데, 이것들은 글의 전개에 향신료 역할을 한다. 각 주제와 관련해서 언급된 영화나 드라마, 그림이나 음악, 시 등을 찾아서 보고 듣고 읽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몇 개의 다른 여정이 변주처럼 어우러져 있다. 멀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여정으로 카르타고에서 시작해서 로마와 밀라노를 거쳐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길이다. 가까이는 저자가 아우구스티누스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한 3주간의 이탈리아 여정이 있다. 또 다른 종류의 여정도 있다. 길 위의 삶에서 곰삭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내면 여정이 있고, 아우구스티누스를 만나고 현대 철학자를 만나서 이들을 용해시킨 저자의 내면 여정도 있다. 이 책은 이런 신체적·정신적 여정들이 함께 녹은 결과물이다.
제임스 스미스는 이렇게 다양한 인물과 매체와 여정을 씨실과 날실 삼아서 각 주제에 자신만의 문양을 짠다. 물론 그 문양의 기본적인 모양과 색조는 아우구스티누스이다. 하지만 그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늘의 맥락에서 저자가 해석하고 구성한 아우구스티누스이다. 즉 스미스는 아우구스티누스에 기대어 그의 생각을 빌리고 전유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래서 이 책은 오늘 우리의 여정에서 아우구스티누스를 안내자로 소개하는 저자와 함께하는 여행이다. 그래서 간혹 이 책이 저자 제임스 스미스의 ‘고백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익숙하면서 새로운 아우구스티누스

책에서 본 아우구스티누스는 익숙하면서 낯설고, 낯설면서도 익숙한 양가적 느낌을 갖게 한다. 저자의 아우구스티누스 이해는 새롭고 흥미진진하며, 이 책을 이끌어가는 동인이며, 책의 가치를 높이는 핵심 요인이다. 스미스가 본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그 영향이 데카르트나 하이데거를 거쳐 오늘의 사상가와 작가에까지 이어져 있는, 우리와 함께 활보하는 현실의 사람이다. 심지어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미 포스트모던을 산 사람이다. 어떻게 이런 시선이 가능한가?
실존주의 현상학에 관심을 갖는 철학자인 스미스는 아우구스티누스를 현실주의, 실존주의, 경험주의라는 세 가지 맥락에서 읽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을 받은 하이데거로 인해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를 교리적 관점이 아닌 심리학적 관점으로 읽는 아렌트의 통찰을 빌려, 아우구스티누스를 현상학자, 경험 철학자, 원형적 실존주의자로 보게 되었다. 이렇게 하이데거의 주장과 아렌트의 관점 덕분에 스미스는 『고백록』을 새로운 책으로 보았다. 이렇게 새롭게 본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늘 우리의 삶의 여정에 필요한 영성을 제공하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동행하는 안내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 실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에 따르면 인간은 길 위에 있는 존재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을 유랑하는 존재로, 인간의 삶을 길 위에서 떠도는 여정으로 인식한다. 이런 존재가 길에서 경험할 수 있는 두 가지 불안감이 있다. 하나는 집이 어디인지 알지 못해서 생기는 불만이나 불안이다. 다른 하나는 집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만 아직 그곳에 이르지 못했음을 깨닫기 때문에 느끼는 피로감이다. 전자는 근원적 막연함이지만, 후자는 길 위의 시련과 샛길과 유혹에서 오는 고단함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후자의 불안감이 해결해야 할 진짜 불안감이라고 본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귀향은 없으며, 하나님께 가는 것이 궁극적인 귀향이라고 본다. 인간은 이민과 귀향 사이에서 이민자이며 난민이고, 돌고 돌아가는 길에서 유랑하는 이민자이고 난민이다.
그렇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유랑하는 난민, 망명자의 영성을 어떻게 인식하게 되었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을 길 위에 있는 사람, 더 나아가 두 세계 사이에 끼어 있는 이방인으로 이해한다. ‘주변성’과 ‘변두리성’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체성의 핵심이다. 성공을 위해 유럽으로 떠난 아프리카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아프리카 출신 촌놈으로 이탈리아와 아프리카 사이에 끼어 있었고, 로마 권력을 통해 성공해서 돌아온 아프리카인으로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였다. 이민과 귀환 때문에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두 대륙, 두 문화, 두 전통, 두 세계 사이에 있는 갈라진 틈으로 추락한 존재였다. 후스토 곤잘레스는 이런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체성을 중남미 지역에서 원주민과 유럽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인 메스티소의 삶으로 해석할 것을 제안한다.(The Mestizo Augustine: A Theologian between Two Cultures, 2016) 저자 스미스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실존을 두 세계 사이에 끼인 존재로 해석하고 이를 이 책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아우구스티누스를 메스티소 정체성으로 해석한 곤잘레스에 상당히 빚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곤잘레스의 메스티소 해석 부분을 읽을 때, 이정용 박사의 『마지널리티』(Marginality: The Key to Multicultural Theology, 1995)가 떠올랐는데, 곤잘레스는 『마지널리티』의 추천사를 썼다.
그런데 이런 주변부 경험, 혼종성의 경험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작업에서 핵심적 자원이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민과 귀향 경험, 혼종적 삶, 주변부 인간으로 산 경험이 기독교인의 삶을 이민의 삶으로, 즉 한 번도 보지 못한 집을 찾아 나선 삶으로 바라보게 했다. 우리의 고향은 훨씬 더 나은 도성이며, 그곳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도 도착하는 즉시 집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이렇게 아우구스티누스가 경험한 상황으로 인해, 인간의 조건은 ‘사이에 있음’(betweenness)이며, 인간의 삶은 이민자나 이방인, 거류민이자 나그네의 길이 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우리를 위로하는 길벗이 되는 이유 중 하나가, 그가 어디에 집이 있는지를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길이 어렵다고 솔직히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영적 현실주의, 목회적 현실주의는 길 위에서 계속되는 싸움에서 정직한 태도를 포기하지 않도록 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우리에게 제시한 것은 회심이다. 하지만 이때의 회심은 우리를 길에서 꺼내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여행하는 방식을 바꾸어놓을 뿐이다. 그가 지닌 영적 현실주의에 입각한 난민의 영성, 망명자의 영성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진짜 집을 향하는 유랑의 길에서 곤혹스러워하는 우리에게 현실적 통찰을 제시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난민 영성이 길 위에서 ‘자유’와 ‘야심’, ‘섹스’, ‘어머니들’, ‘우정’, ‘깨달음’, ‘이야기’, ‘정의’, ‘아버지들’, ‘죽음’을 마주하는 우리를 동행으로 초대한다.

신재식 | 호남신학대학교 교수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 『예수와 다윈의 동행』, 『종교전쟁』 등이 있다.

 
 
 

2021년 4월호(통권 7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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