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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1년 3월호)

 

  신학의 길에 들어선 이를 위해 갈고 또 갈아 만든 입문서
  『신학이란 무엇인가』(개정판) 알리스터 맥그래스, 김기철 옮김, 복 있는 사람, 2020.

본문

 

“또 나왔어?” 영국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1953-) 의 『신학이란 무엇인가』(Christian Theology: An Introduction) 6판 번역본이 출간되었을 때 적지 않은 사람이 보인 반응이다. 한국의 출판계와 독자들의 멈추지 않는 선호 심리 때문인지, 그의 저술은 잉크가 채 마르기 도 전에 국내 기획자의 레이더망에 걸려들기 일쑤다. 이 서평을 작성하며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보니, 현재 그의 저서 중 50권 이상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유통되고 있다.(절판 제외, ebook 포함) 하지만 책 내용이 비슷비슷한 데다, 맥그래스만의 신학이 무엇인지 불분명하고, 여러 주제를 계속 옮겨 다니며 글을 쓰다 보니, 그의 책이 나오면 종종 ‘해외 유명 신학자’라는 이유로 이 정도 수준의 작품까지 소개하냐는 냉소적 반응이 뒤따르곤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맥그래스가 큰 명성과 인기를 얻게 된 데는 그의 특이한 배경이 한몫한다. 무신론자였던 옥스퍼드대학교의 젊은 과학자가 지적 회심을 거쳐 복음주의자가 되었고, 정규 학위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 자신이 출간한 저서로 옥스퍼드에서 특별한 박사학위를 두 개 (D.D.와 D.Litt.)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게 큰 아우라를 부여했다.(물론 이것은 영국의 특이한 대학교 시스템에서 그가 쭉 활동했기에 가능한 경력이다.) 또한 초기에는 역사신학 분야의 글을 썼던 그가 과학과 종교의 관계로 연구주제를 옮겨갈 때도 과학과 신학 양 분야에서 받은 학위가 큰 뒷받침이 되었다. 그런데 다채로운 지적 배경과 다양한 저술 주제를 가진 맥그래스의 작품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많이 읽히고 필자 또한 상당히 애정을 기울이는 책은 『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입문서이다.
다작 작가인 맥그래스는 새로운 주제로 글을 쓰기도 하지만, 꽤 많은 경우 기존 작품을 다듬거나 살짝 변주함으로써 저술 목록을 늘려간다. 그중 『신학이란 무엇인가』는 1993년에 처음 등장한 이후 개정을 거듭해 2017년에 6판이 나올 만큼 그가 계속해서 손에 잡고 있던 작품이다. 이 책의 2판은 1998년에 『역사 속의 신학』(대한기독교서회)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리고 2014년에 나온 5판은 『신학이란 무엇인가』(복 있는 사람)라는 제목으로 등장했고, 2020년 말에는 같은 출판사에서 6판 번역본까지 출간했다.
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은 맥그래스가 신학을 처음 공부할 때 적절한 입문용 교재가 없어 고생한 경험을 기반으로, “독자들이 기독교 신학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전제하에 순수한 입문서”(8쪽)로 책을 기획했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그 결과 그는 전문성과 독창성을 포기하고, “설득이 아니라 설명”(9쪽)을 주로 하면서 자신이 신학을 공부할 때 느낀 짜릿함과 기쁨을 다른 이들도 맛보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이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보니, 그의 순수한 설명 욕구는 번역본으로 967쪽에 달하는 두꺼운 분량의, 소위 ‘벽돌책’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기독교 역사와 신학을 한 권에

판을 거듭하며 출간되었지만, 이 책의 서문은 한결같이 한 신학자를 호출하며 시작한다. “스위스의 위대한 신학자인 칼 바르트는 기독교 신학의 지평을 가장 탁월하게 열어 보여준다. 그가 열어 보이는 정경은, 마치 움브리아나 토스카나에서 만나는 장엄한 풍경과도 같이 머리와 가슴에 모두 감동을 주며, 우리를 숨이 멎는 경외심에 젖게 만든다. 가장 멀리 떨어진 정경조차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7쪽) 이 인용문은 맥그래스가 파악하는 신학의 이상적 모습이 어떤 것인지 시각적으로 생생히 표현해준다. 하지만 그가 입문서를 써나가는 방식은 바르트는 물론 다른 신학자와도 다소 차이가 있다.
아무리 초보자용이라고 하더라도 신학 입문서는 교리적 내용을 주로 다루다 보니 대개 조직신학자가 이를 저술하곤 한다. 그런데 자신의 관점과 방법론으로 기독교 신앙을 재해석 혹은 재구성하는 훈련을 받은 조직신학자가 신학을 설명하면, 입문서임에도 내용이나 방법론이 복잡해지는 난감한 경우가 종종 생긴다. 하지만 맥그래스는 역사신학 전문가답게 이 책에서 난해한 교리 논쟁이나 정교한 전문 용어 소개는 피한다. 대신 그는 교리가 형성되고 발전하고 수용되는 과정을 균형 있고 담담하게 서술하고자 한다. 그 결과 『신학이란 무엇인가』는 기획 단계부터 기독교 역사와 신학을 한 권으로 공부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우선 맥그래스는 책의 1부에서 신학의 역사를 교부시대(약 100-700년), 중세와 르네상스(약 700-1500년), 종교개혁 시대(약 1500-1750년), 근현대(약 1750년-현재)로 구분한다. 그리고 각 시대를 설명하는 장을 그 시대의 정의와 개관, 주요 신학적 논쟁과 주제, 대표적 신학자 등으로 구성한다. 약 160쪽 정도의 분량에 2,000년의 기독교 역사를 압축하려다 보니 역사를 다루는 방식이 선별적이거나 설명이 불충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적 관점에서 기독교 역사를 바라보는 저자의 장기가 잘 발휘된 만큼, 신학을 보는 넓은 시야와 요긴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의 2부는 4개 장에 걸쳐 신학의 자료와 방법론을 소개한다. 물론 역사신학 전공자가 쓴 입문서에서 조직신학자가 제시할 법한 체계적이고 엄밀한 프롤레고메나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신학 공부를 위한 기본 지식과 더 깊은 성찰로 이끌어줄 수 있는 정보가 여기에 선별되어 있다. 구체적으로는 신학의 정의와 여러 분야, 신학의 자료(성서, 이성, 전통, 경험), 기독교의 계시, 철학과 신학의 관계 등이 각 장에서 다뤄진다. 특별히 흥미로운 점은 맥그래스가 계시를 다루면서 자연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해 세심한 관심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종교와 과학의 문제가 오늘날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과학과 신학 분야 모두에서 전문적 훈련을 받은 저자가 이 주제를 성찰할 기회를 짧게라도 제공한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책의 3부는 1-2부에 비해 조금 더 긴 호흡을 가지고 기독교 신앙을 구성하는 열 가지 중요 주제(신론, 그리스도론, 구원론, 성령론, 삼위일체론, 인간론/죄론/은총론, 교회론, 성례전론, 기독교와 타종교, 종말론)를 자세히 설명한다. 여기서 각 교리를 설명하는 순서는 일반적인 조직신학 책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예를 들면, 삼위일체론이나 구원론의 위치 등) 이는 맥그래스가 각 교리 사이의 관계를 엄밀하게 따지거나 신학의 체계를 세우려는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5판과 비교할 때 6판의 경우 현대 신학에서 큰 주목을 받는 성령론을 보강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모두 다룬 이후 삼위일체론을 배치하는 등 동시대의 상황에 적절히 반응하고자 하는 저자의 깊어진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신학 공부를 위한 방대하지만 친절한 안내

『신학이란 무엇인가』가 실용적 목적으로 기획되고 집필된 만큼, 이 책은 학문성보다는 ‘사용’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맥그래스는 자신의 신학을 제시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고, 저자가 이전에 걸었던 신학 공부의 여정을 지금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독자들을 위해 충실히 재현한다. 이러한 의도에 맞게 그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에 관한 학습법과 교수법을 학생과 교사를 위해 각각 제시한다. 그리고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돌아보는 질문’을 만들어 두고, 여러 시각적 자료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책의 마지막에는 ‘신학 용어 해설’로 개념 정리를 하는 등 신학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최대한 배려한다.
이 책이 다른 입문서와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맥그래스가 자신의 홈페이지와 출판사 홈페이지를 통해 독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여러 동영상과 오디오 자료를 제작하여 올려둔다는 데 있다.(번역본 출판사도 자체적으로 강의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나이나 업적으로 보아 맥그래스는 현재 활동 중인 신학자 중 원로급에 들어갈 단계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문서화된 텍스트나 교실에서의 수업을 벗어난 교육이 시도되는 21세기에 걸맞게 특유의 성실함과 노력으로 다양한 형태의 자료와 플랫폼을 활용하며 시대의 요청에 부합하는 신학 공부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적지 않은 전문가와 일반 독자는 이 책이 그 명성과 판매 부수에 걸맞은 정도의 책인지에 대해 회의를 표하곤 한다. 사실 영어권에서 이 책이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이 책과 함께 읽게 기획된 『신학이란 무엇인가 Reader』(복 있는 사람, 2021년 출간예정)가 있기 때문이다. 맥그래스는 『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소개한 신학을 더 생생하게 접할 수 있도록 250편이 넘는 일차 문헌을 선정하고, 이 중에서 독자에게 꼭 필요한 부분만 발췌·편집하여 350여 꼭지의 읽을거리를 구성했다. 그 결과 『신학이란 무엇인가 Reader』라는 한 권의 책을 통해 초기 교부부터 현대 신학자, 그리고 서방과 동방교회를 아우르는 핵심 자료를 교사와 학생 모두 큰 수고 없이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껏 국내에서 『신학이란 무엇인가 Reader』는 번역되지 않은 채, 『신학이란 무엇인가』만 읽히다 보니 이 책의 가치와 활용도가 떨어져 아쉬움이 몹시 컸다.(필자는 신앙고백서, 종교회의 문서, 신학 저서, 설교, 찬송시 등 여러 장르의 글을 모으고, 각 꼭지에 압축적인 평을 달아둔 『신학이란 무엇인가 Reader』가 역사신학자로서 맥그래스의 전문성과 경험이 더 잘 배어 있다고 생각한다.) 맥그래스가 쓰고 편집한 두 책을 교차로 읽어나가면 신학이 단지 옛 교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 따라 최선의 언어와 지혜를 찾으려 분투했던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요, 고대부터 지금까지 여러 신학자와 ‘성도의 교제’에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신학이란 무엇인가』는 교리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거나 교리들 사이의 정합성을 밝히기보다는, 각 신학적 주제를 역사를 통해 사유함으로써 그 의미를 드러내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비록 맥그래스가 다루는 주제가 폭넓고 제공하는 정보량이 많아 보여도, 이 책만큼 평이하며 친절하게 신학의 넓은 세계를 포괄적으로 그려내는 입문서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물론 신학을 이미 접했거나 조직신학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의 경우 맥그래스가 교리를 단순화하고 치밀한 논증을 생략한다고 불만을 표할 수 있다. 또 특정 교단의 신앙고백 전통에 헌신하는 독자라면 교리적 논쟁이 될 만한 사항에 시원하게 결론을 내지 않고, 역사에서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뻔한 결론이 반복된다고 실망할 수도 있다. 이처럼 하나하나 꼬집어 보면 방대한 분량의 책인 만큼 단점도 수없이 발견되겠지만, 이 책은 전문 신학자가 아니라 ‘교사로서’ 저자의 자기 이해가 짙게 깔려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글을 맺기에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신학이란 무엇인가』는 학자들의 냉정한 비평보다 교육의 현장에 있는 교사와 학생들의 ‘사용’을 기다리는 책이다.

김진혁 | 필연세대학교, 미국 하버드대학교,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저서로 『순전한 그리스도인』, 『질문하는 신학』 등이 있다.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부교수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2021년 3월호(통권 7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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