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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1년 3월호)

 

  인간 탁사(濯斯) 탐구를 위한 소중한 마중물
  『서양의 하늘이 곧 동양의 하늘이다: 탁사 최병헌 목사 문집』 오세종 외 엮음, 삼필문화사, 2020. 『충청남도 선유문안 역주』 한규준 역, 오세종 감수, 삼필문화사, 2020.

본문

 

우리는 탁사(濯斯) 최병헌 목사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다가도 막상 그의 실체와 민낯을 마주하게 되면 낯설고 어려워한다. 최병헌 목사에 대한 뜨거운 학문적 관심과 반비례해 그에 대한 연구가 애써 회피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탁사의 동양사상과 한학에 대한 해박함과 깊이에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지식수준으로 19세기 말 동양사상과 기독교 양쪽을 섭렵한 그의 식견과 지혜를 쫓기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병헌에 대한 현대의 재해석과 재조명을 촉구하는, 묵묵히 달궈진 뚝배기 같은 밥상이 우리 앞에 차려졌다. 이제 우리는 용기를 내 수저를 들고 탁사와 함께할 식탁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최근에 출간된 『서양의 하늘이 곧 동양의 하늘이다』와 『(탁사 최병헌 목사의) 충청남도 선유문안 역주』라는 뛰어난 쉐프와 요리 덕분에 말이다.

문집 『서양의 하늘이 곧 동양의 하늘이다』의 발간 의미

기존에 알려진 최병헌 목사의 유명한 저술 외에 그가 남긴 다양한 단편들을 모아 문집을 발간하려는 시도는 꽤 오래전에 있었다. ‘故 최병헌 목사 1주기’를 맞아 평소 탁사를 존경하던 후배와 후학들이 최병헌 기념 문집간행회를 조직했던 것이다.

고 탁사 선생 일주기 추도회는 예정과 같이 12일 밤 정동예배당에서 김종우 목사의 사회로 개최되어 순서를 거행하는 중 김진호 목사의 약력 설명과 윤치호, 아펜젤러, 이익모, 조병옥 제씨의 추도사와 채선엽, 이준 숙 양씨의 추도사가 끝난 후 당석에서 선생의 유고를 간행할 목적으로 선생 기념문집간행회를 조직하고 임시사무소는 경성 연동 90번지에 두기로 하고 임원을 선정하였는데 회장은 윤치호, 이사는 홍종숙, 김영섭, 김진호, 유억겸, 조병옥, 박희도, 김종우, 구자옥 제씨라더라. - “고탁사 선생기념문집간행회”, 「기독신보」, 1928년 5월 16일, 2면.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시 조직된 기념문집간행회의 활동은 답보 상태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이 조직에서 간행한 탁사 기념문집의 실체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간행된 『서양의 하늘이 곧 동양의 하늘이다』는 1979년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간행한 『최병헌 목사님 신학논문집: 「신학세계」에서 발췌』 이후 최병헌 목사의 다양한 단편들을 본격적으로 수집·분류하고 처음으로 현대어 번역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100년에 가까운 숙원이 오늘에야 결실을 맺었다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탁사에 대한 그간의 연구는 학자 중심, 특정한 대표 저작 중심으로만 이루어져 왔는데, 최병헌 문집 『서양의 하늘이 곧 동양의 하늘이다』의 번역과 주해 작업을 통해 보다 심층적이고 입체적인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문집은 최병헌 목사가 각종 잡지와 신문에 기고한 연재와 단편들을 거의 대부분 수집해 기고 순서대로 편집했다. 「조선그리스도인회보」에서 45편, 「신학월보」에서 12편, 「기독신보」에서 11편, 「신학세계」에서 50편(“종교변증설” 연재까지 포함해서), 그리고 다른 여러 잡지와 신문, 개인 문서와 사신(私信)을 통해 작성된 다양한 종류의 한시와 축사가 24편, 최병헌 목사 별세 후에 지인들이 작성한 고인에 대한 추억 글과 탁사의 좌우명이 6편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모인 글들은 거의 대부분이 일반인들, 심지어 연구자들에게조차 생소한 것들이다. 필자 또한 이번 서평을 위해 잠시 이 책을 살펴보았지만 단기간에 모두 읽고 소화하기엔 너무도 버거운 방대한 자료이기에 앞으로 탁사에 대한 연구 주제를 설정하고 천천히 음미하며 깊고 충실하게 정독해야 할 책이라는 점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연구자들조차 긴 인내와 집중력을 가지고 한 편 한 편 찾아 나서고 장문의 원서들을 한 줄 한 줄 인내해가며 읽어야 할 최병헌의 고어 글들을, 무불달(無不達) 오세종 목사를 중심으로 한국기독교고전번역원의 번역위원 43인이 수년에 걸쳐 치열하게 현대어로 번역해 놓았다는 점이다. 이는 이 책의 발간으로 향후 최병헌 연구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동안 학자들만 향유하던 탁사의 사상과 신앙의 깊은 맛을 일반인이나 비전공자들도 보다 쉽고 편안하게 접근해 “인간 최병헌”의 체취를 느끼며 탁사의 시대에 동류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할 수 있다.
『서양의 하늘이 곧 동양의 하늘이다』의 출간으로 이제 그동안 제한되었던 최병헌 연구의 대중화가 가능해졌으며, 우리는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탁사의 새로운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만종일련』이나 『성산유람기』 같은 최병헌의 대표 저작 중심으로 그에 대한 도식적이고 관념적인 접근에 머물렀던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인간 최병헌”이 그 시대에 고뇌하고 씨름했던 인생의 과제와 세계 인식, 삶의 태도가 어떠했는지를 보다 정밀하게 접근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시대적 고뇌와 한계가 담긴 『충청남도 선유문안 역주』

『충청남도 선유문안』은 국한문 혼용체이기는 하나 거의 대부분이 한자로 쓰인데다가 최병헌이 직접 붓으로 쓴 것이어서 연구자들조차도 읽거나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문헌이다. 이 책을 현대어로 옮기면서 저본으로 삼은 것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리교신학대학교의 송길섭 교수 문서에서 발견한 『충청남도 선유문안』의 복사본이다. 그동안 연구자들 사이에서 일부 내용이 제대로 복사되지 않은 사본이 유통되고 있던 점을 생각하면, 이 문서의 발견과 번역의 의의는 매우 크다. 이 책은 한국기독교고전번역원의 한규준 목사가 번역하고 주석을 달고 오세종 목사가 감수하여 「기독교사상」 2017년 10월호부터 2018년 11월호까지 연재한 글들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다.
최병헌이 선유활동에 나선 1908년은 1905년 을사늑약이 맺어지고 나서 반일감정이 극도로 고조되던 시기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조직되어 치열한 항쟁을 벌이던 때였다. 의병은 평균 40-50명 정도로 편성된 소부대들이 많았다. 일본군은 의병을 토벌한다는 명분 아래, 방화와 살인, 강간을 자행하였는데, 일본군의 만행을 규탄하던 의병들은 마침내 1908년 음력 정월 경기도 양주에 집결하여 서울 공격을 개시하였다. 의병군은 1만 명에 달하였다. 이처럼 을사의병의 봉기 이후 몇 년간은 사실상 전쟁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에 맞서서 일제 통감부는 순종으로 하여금 각 도에 선유사(宣諭使)를 파견하고 의병들을 회유하도록 하였다. 선유활동에는 서상륜, 송기용, 최병헌 같은 교회 지도자들도 가담했다.
최병헌은 총감부 관저에서 순종으로부터 선유사에 임명된 후, 담임을 맡고 있던 정동제일교회 일을 부목사 현순에게 맡기고 1908년 2월 6일부터 3월 9일까지 충청남도 전역의 군과 읍, 시장에서 군수와 면장, 각 동리 대표들을 모아놓고 선유활동에 나섰다. 그는 조치원, 연기를 거쳐 2월 8일부터 공주에서 활동하던 중에 존스(George H. Jones) 선교사로부터 돌아오라는 전보를 받았다. 그 내용은 “어리석은 최병헌이 선유를 하고 있는데 이는 실로 통분할 일”이며, “만일 18일 전에 선유활동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일반 교인들을 모두 도륙할 것”이라는 편지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치원을 출발(2월 14일), 평양에서 존스를 만났다.(2월 15, 16일) 최병헌은 다시 2월 19일 대전에 도착하여 그 후 진잠·흑석, 연산, 두계, 은진, 강경, 석성, 부여, 청양, 대흥·예산, 신창, 온양에서 선유하고 3월 10일 천안에서 기차로 서울로 돌아왔다. 이런 일정은 ‘일록’(日錄)에서 볼 수 있다.(120-163쪽)
군과 읍을 방문한 자리에서 최병헌은 의병활동으로 인한 가정과 마을의 비참한 피해를 “병든 어미와 허약해진 처는 탄식하며 목이 메어 소리 없이 울다가 골짜기로 달아나서 숨어 지내고 있다.”라면서 의병들에게 의병활동을 그만두고 생업으로 돌아올 것을 호소하였다. 최병헌에게 의병활동은 “사리(事理)에 어두운 사람들이 시국의 형세를 파악하지 못하여” 하는 행동으로 “도리어 조국에 해를 끼치며 스스로 멸망을 취하는 일”이었다. 최병헌이 주장한 것은 진정으로 우리나라가 “문명하고 부강한 데 이르려면 그것은 오로지 인민의 교육에 있으니” 의병활동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최병헌의 당시 입장과 활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최병헌의 입장은 동시대의 민족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일부 교회 지도자들로부터도 비판받았다. 최병헌이 선유활동을 시작하기 8개월 전인 1907년 4월에 비밀결사단체 신민회(新民會)가 조직되었는데, 여기에는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참여했다. 안창호, 이승훈, 양기탁, 전덕기, 윤치호, 이동녕, 이회영, 신채호 등이 중심이 된 신민회가 교육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신민회의 항일운동과 최병헌의 입장은 같았다. 그러나 신민회는 1910년 국권을 빼앗기자 항일무장투쟁을 공식 노선으로 채택하고 만주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기로 결의하였다. 1911년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의 설립이 그 결실이었다. 그 후의 일이지만,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감리교 민족대표들도 그의 입장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최병헌의 입장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한국사와 한국교회사 연구자들이, 또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충청남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목회자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책 속에는 선유활동 틈틈이 교우를 방문한 일, 교회에서의 설교 모습도 들어 있다.

인간 ‘최병헌’을 정면으로 마주하길 기대하며

선생의 행지(行止)는 군자적이었다. 선생이 한번 뜻을 세운 후에는 송죽의 정개와 같이 변치 않으시고 그 군자적 지개(志槪)로서 인생의 향기를 발하시었다. 선생은 한학자이시면서도 동양문화만 고집하지 않으셨고, 개국론자(開國論者)의 거두이시면서도 서양문명에 중독되지 않으셨다. 오로지 대의(大義)를 주창하여 동서문화의 장점을 취하신 것이 선생의 위대한 지개라 할 것이다. - 최상현, “추억탁사최선생”, 「기독신보」, 1928 년 5월 9일, 7면.

최병헌의 제자이자 감리교신학교 교수였던 최상현 목사가 탁사의 1주기를 맞아 기고한 추모글이다. 최병헌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한반도 근대화의 전환기에 동양 문명과 기독교 문명이 교차하고 충돌하는 격동의 시공간을 살아내며 당대의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고뇌하고 새로운 인간상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한 인간이었다. 만일 탁사가 없었다면, 한국교회사를 어떻게 서술할지 순간 허망하고 아득해진다. “한학자이면서도 동양문화만 고집하지 않았고, 개국론자의 거두이면서도 서양문명에 중독되지 않은” 전환기의 주체적 신앙인, 성숙한 기독교 인, 유연한 한국인의 삶을 모색했던 인간 최병헌을 이제 정면으로 마주할 필요가 있다.
이념과 욕망의 노예가 되어 신기루 같은 자본의 거탑과 외형적 교회당이 무력하게 무너져가는 충격을 목도하는 팬데믹 상황에 놓인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탁사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까? 그의 육성이 배어 있는 신앙의 편린들을 하나하나 옷깃을 여미고 차분하지만 치열하게 강독해보기를 권한다.

김흥수 | 목원대학교에서 한국교회사를 가르쳤다.
홍승표 | 감신대와 연세대에서 교회사를 전공(Ph.D.)하였다. 저서로 『3·1운동과 기독교 민족대표 16인』(공저) 등이 있다. 현재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연구이사, 감신대 객원교수로 일하고 있다.

 
 
 

2021년 3월호(통권 7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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