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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1년 1월호)

 

  '국가와 종교의 결합'을 통해 파헤친 파시즘의 기원
  『국가와 종교: 유럽 정신사 연구』, 난바라 시게루, 윤인로 옮김, 소명출판, 2020.

본문

 

초유의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하여 한국교회는 위기에 직면하였다. 일부 교회들은 극우적인 정치세력과 결탁해 방역 당국과 지속적으로 각을 세우며 혐오와 차별을 내세우는 배타적인 사회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엄청난 비난에도 이들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군사독재 이데올로기라는 왜곡된 세계관 속에서 국가와 종교의 관계를 정립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서구 자유주의 정치철학과 원시 기독교 사상을 두 기둥으로 국가와 종교의 관계를 다루는 난바라 시게루의 저서 『국가와 종교: 유럽 정신사 연구』의 출간은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의 저자인 난바라 시게루(1889-1971)는 태평양 전쟁을 전후로 일본 자유주의 정치철학을 대표하는 사상가였다. 그는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조교수로 있던 중 유학을 결심하고 유럽으로 떠났다. 당시 일본에서는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국가 주권의 주체를 천황으로 규정하는 ‘국가국체론’(國家國體論)이라는 전체주의적 공동체론이 팽배했는데, 귀국 후 저자는 ‘문화공동체론’을 펼치며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나치스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국가와 정치의 결합을 추구했던 ‘유럽 정신사’의 흐름을 통해 분석하고 있다. 또한 자유주의 정치철학과 무교회주의자였던 우치무라 간조의 가르침을 종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평화론을 펼친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먼저 주목하는 것은 근대 실증주의와 자유주의 정치철학이 외면해온 국가와 종교의 관계이다. ‘신’ 혹은 ‘신성’에 대한 이해는 그 시대의 문화나 국민의 운명을 결정하며, 국가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문화 전체와 내적 통일을 갖는 세계관의 문제이기에 궁극적으로 종교적 신성의 문제와 관계되어 있다.(3, 8쪽) 이러한 주장은 칼 슈미트가 1922년에 『정치신학』(Politische Theologie)에서 제시한 “현대 국가론의 중요 개념은 모두 세속화된 신학 개념이다.”라는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43쪽) 슈미트와 시게루 두 사람은 국가와 종교의 관계에 집중했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전자가 독재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면, 후자는 인간·민족·국가의 신성화를 비판하기 위한 것으로 그 목적이 달랐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활발하게 진행된 ‘정치적 종교’에 대한 선구적 연구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기원전 5세기 후반의 그리스와 근대사회 사이의 근본적인 접합점을 ‘계몽’의 시대라고 보았기에, 플라톤의 국가철학과 함께 이 책을 시작한다. 그리스 문화는 플라톤의 『국가론』(Politeia)이 저술될 당시 쇠락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플라톤은 고대국가의 융성을 기대하며 이전의 그리스 본래의 전통적인 국가관과는 달리 국가와 종교가 결합된 독특한 이상국가를 제시하였다. 저자는 플라톤의 철인정치 사상이 결국 신정정치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플라톤과 같이 국가의 융성을 위해 국가와 종교를 결합할 경우, 종교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국가의 절대화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현대 독재정치나 절대적 국가주의가 유사 종교처럼 작동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13, 23, 30쪽)
이에 반해 원시 기독교가 선포한 ‘신의 나라’는 로마제국이라는 국가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었다. 원시 기독교는 신앙공동체를 지향하였기에 종교를 정치적·국가적 종속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다. 그러므로 저자는 원시 기독교가 인류를 구제하는 복음으로서 널리 선포된 것이 정신사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한다. 원시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살아 있는 신적 생명이었는데, 이로 인해 종교는 더 이상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로 전환되었다. 일종의 정신적 귀족주의였던 플라톤의 이상국가가 정치적 공동체를 지향했다면, 원시 기독교가 선포한 ‘신의 나라’는 평등에 기반한 “사랑의 공동체”였기에 국가 단위를 뛰어넘는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공동체, 인류의 본질적 하나됨과 신 앞에서의 만인평등 사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56-58, 62, 69-71쪽)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통해 형성된 중세 기독교는 이러한 세계관으로부터 이탈했다. 특히 교황 제도가 정립되면서 중세 교회는 스스로 “도덕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공동체”로 바뀌었고, 로마적이고 보편적인 교회를 통해 신의 나라를 실현하려는 중세적인 신정정치 사상을 형성하였다. 종교개혁은 이러한 중세 기독교에 대한 내부의 반대였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종교개혁의 동력이 된 자유의 정신이 르네상스를 통해 등장한 근대적 국가의 원리와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근세 기독교의 세계관은 칸트, 피히테를 거쳐 헤겔에 이르는 관념론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헤겔은 근세 국가의 근거를 종교 자체에서 찾았고, 정치와 종교를 완전히 종합함으로써 근세적 신정국가의 이념을 정립하였다. ‘신의 나라’가 본래의 특질을 상실하고 국민국가적인 하나의 정치적 왕국으로 전락한 것이다.(80-83, 85-86, 100쪽)
물론 이 책은 제3장 전체에서 “칸트의 세계질서 이념”을 의미 있게 다룬다. 칸트 철학에서 내적인 본질로서 ‘신의 나라’와 그 외적인 형식으로서 세계의 보편적 정치질서는 분리 불가능한 관계에 있다. 그런데 칸트의 위대한 업적은 정치 문제를 다루면서 종래의 국민국가 중심의 정치이론에서 탈피하여 세계의 보편적 정치질서와 영구평화의 이념을 제시한 것이다. 칸트의 ‘영구평화’ 이념은 정치의 원리로서 ‘정의’와 그것에 어울리는 인류의 ‘지복’을 종합한 것이다. 따라서 이 ‘영구평화’는 미래의 인류에게도 국민국가의 국민들이 협력을 통해 달성해야 할 정치에서의 ‘최고선’이다.(133, 167, 172-173쪽)
하지만 저자는 헤겔의 영향을 받은 근세적 신정국가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지적한다. 헤겔의 종교철학은 이후 헤겔 좌파에 속하는 포이어바흐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신랄하게 비판받았고, ‘신의 나라’라는 관념은 자유와 평등의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한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담론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종교를 경제적 생산관계에서 파생된 ‘이데올로기’의 한 요소로 치부한 유물론은 20세기 들어 독일 나치스 발흥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에 저자는 나치스가 근세 자유주의 혹은 민주주의 문화 및 마르크스적 세계관의 타도와 변혁을 추구하였다고 분석한다. 나치스는 민족공동체라는 이념을 중심으로 세계관을 구성하였고, 게르만 민족 속에 있는 신성을 ‘아리안 인종’으로 상정하여 모든 가치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았다. 나치스는 종교를 무시하거나 부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민족성 그 자체 위에 선 기독교, 즉 ‘게르만적 기독교’를 추구하였다. 이처럼 고대 신정국가 사상의 핵심인 종교와 국가의 결합을 되살려내려는 정신사적 흐름이야말로 20세기 유럽 문화의 위기를 초래한 본질적 원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나치스 세계관과 종교의 문제가 현대 유럽이나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은 군국주의적인 일본의 문제라고 강조한다.(88, 184, 186-187, 196, 204, 243쪽)
우리는 20세기 서구 사회의 경험을 통해 파시즘이 기독교와 결탁하여 정치적 종교로 작동함으로써 시민사회뿐 아니라 교회의 몰락마저 가져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럽 정신사 연구를 통해 얻은 저자의 통찰은 현대 사회의 문제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근본주의자들이 극우 정치세력과 결탁하여 공적 영역에서 심각한 문제를 양산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바라볼 때, 저자의 통찰은 1942년의 일본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여전히 필요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박성철 | 독일 본대학교에서 정치신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칭의와 정의』, 『성폭력, 성경, 한국교회』(이상 공저) 등이 있으며, 『종교중독과 기독교 파시즘』을 출간할 예정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목사이며, 경희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21년 2월호(통권 7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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