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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1년 1월호)

 

  과학자의 진정성과 신학자의 겸손
  『공룡과 기독교 신앙』, 한국교회탐구센터 편저, IVP, 2020.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 리처드 마우 외, 안시열 옮김, IVP, 2020.

본문

 

1

어린아이의 단순한 질문이 때로는 신학자를 난처하게 만들 수 있다. ‘성서에는 왜 공룡이 안 나와요?’ ‘노아의 방주에 공룡은 탔나요, 안 탔나요?’ 복잡하고 길게 설명하면 어떻게라도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설명하려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어른을 대상으로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부탁해도 막상 말문이 막히는 건 비슷하다. 쉬운 질문이 아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희한하고 기발한 대답들이 넘친다. 공룡은 인간과 함께 에덴동산에 있었고, 노아의 방주에서는 하나님께서 공룡을 잠들게 하셔서 다른 동물들이 무사했다는 설명도 있다. 분명 어린아이들은 6,600만 년 전에 운석의 충돌로 공룡이 멸종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교회에서는 아담과 하와를 6,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들었다고 가르치니,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울지 모르겠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어린아이의 질문에는 과학과 신앙의 관계부터 창세기 해석에 대한 현대적 이슈까지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국교회에는 창조과학의 영향력이 워낙 강력해 다른 생각이나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특별히 진화론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은 유난히 심하다. 과학자 대다수가 진화론을 전제로 과학 활동을 해도 여전히 진화론은 검증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다고 우기고, 심지어 오늘날 대다수의 신학자들이 현대과학과의 대화를 시도하면서 신학을 전개해도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매주 교회에 출석하는 미국인들의 69%는 하나님이 만 년이 안 되는 세월 전에 인간을 현재의 형태로 창조했다고 믿는다고 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래로 이토록 과학과 신앙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최근 국내에는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책들이 여러 권 소개되고 있다. 국내 저자로는 신재식, 우종학, 박영식, 김기석, 김정형 등의 책들이 있고, 해외 저자로는 존 폴킹혼, 알리스터 맥그래스, 프랜시스 콜린스의 책들이 꾸준하게 번역되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으로는 한국교회탐구센터에서 비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스펙트럼: 과학과 신학’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이 시리즈는 기독교인들이 궁금해하는 과학과 관련된 주제를 하나씩 골라 과학자와 신학자의 목소리를 균형감 있게 소개한다. 그동안 뇌과학, 외계인, 인공지능, 지질학에 대한 이슈를 다루었다. 이번에 나온 다섯 번째 스펙트럼에서는 ‘공룡과 기독교 신앙’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여기에 실린 세 편의 글을 간단히 소개해보겠다.

2

앤서니 마틴(Anthony J. Martin)은 19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공룡 연구의 역사와 현황을 자세히 소개한다. 방대한 사전에 수록된 공룡 연구사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친절하게 학자들의 이름과 연구 성과를 소개한다. 어느 학문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과학자들의 집요하고 끈질긴 연구를 소개받는 것만으로도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사실 그들의 연구와 가설은 헛발질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룡 연구사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동료 과학자들에게 반박당하고, 후대 연구자들에게 조롱거리가 되는 역사의 반복이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자신의 실수를 통해, 그리고 동료들의 실수를 통해 성장하고 배운다. 그러나 이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고 희열을 느낀다.
그들이 이토록 열정적으로 땅을 파고, 흙을 걷어내면서 오래된 뼛조각을 찾는 까닭은 무엇일까? 호기심과 명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마치 신학자들이 신을 향한 열망과 열정에 이끌려 신학을 연구하듯, 그들은 자연에 대한 사랑에 이끌려 평생을 헌신적으로 연구에 몰입하는 것이다. 진리를 찾으려는 이들의 몰입과 열정은 숭고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국립과천과학관 이정모 관장의 글에서도 과학자의 정직하고 진솔한 모습은 빛난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대범하고 시원하게 자신의 오류를 인정할 줄 아는 호방함이 과학자의 열정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대학에서 ‘과학과 종교의 대화’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박물관에서 공룡에 관해 강연해온 노련한 그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두 영역이 서로 모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과학과 신앙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믿음 좋은 과학자도 가능하고, 진화론을 연구하는 그리스도인도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마지막으로 구약 성서학자인 전성민 교수는 타락 전 죽음과 공룡의 멸종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시도한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교리는 모든 종류의 죽음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전성민 교수는 정말 성서가 그런 교리를 지지하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대다수의 복음주의 성서학자들은 창세기를 주해하면서 타락 이전에 이미 동물의 죽음이 있었으며, 이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죽음은 타락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선한 창조의 일부이며 창조의 질서였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살 수 있다. 죽음은 생명을 이어가는 데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러니 “죽음은 다른 존재의 생명을 위한 자기내어줌(self-giving)”이라고 할 수 있다.(135쪽)
과학자들의 노력과 수고로 우리는 박물관 입구에 설치된 공룡 화석을 볼 수 있게 됐다. 공룡의 뼈와 화석은 하나님께서 오랜 시간에 걸쳐 생명체를 만드시고 인간이 지구에 등장하기까지 셀 수 없이 수많은 종을 출현시키고 멸종시키셨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참을성이 참 좋은 분이다. 생명체의 생성과 소멸을 주관하고, 인류가 출현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리셨다. 공룡이 지구에 출현하고 멸종하기까지, 그리고 포유동물이 출현해 유인원이 등장하기까지 창조는 단번에 끝난 사건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 긴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과학자가 성실하게 자연을 탐구하고 그 인과관계를 밝혀내면, 신학자는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의도와 뜻을 밝힌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신실하심은 공룡의 화석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또한 하나님이 인간이 출현하기 이전에 수많은 동물을 보내셨다는 사실에서 모든 만물의 존재 이유를 다시 숙고해볼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의 유익을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다. 한때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인 줄 알았지만, 갈릴레이로 인해 지구는 태양계의 변방에 위치한 작은 행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다윈으로 인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며, 특별한 존재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자연계의 일부로서 지구에 가장 늦게 도착한 생명체에 불과하다. 인간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이 특별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특별히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인간 역시 다른 동물처럼 창조되었지만, 그런 인간을 하나님께서 선택하고 그분의 형상을 부여하셨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으로 모든 사물을 바라보고 평가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바다에 사는 무시무시한 생명체나 한때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을 통해서도 찬양을 받으신다.

3

과학자나 신학자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연구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큰 귀감이 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비슷하고 동일한 결과에 안정과 평안을 느낀다. 반면 이질적이고 낯선 대상을 접할 때는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보할 수 있고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신학의 발전도 마찬가지이다. 익숙한 전통이나 교리에 도전하고 새로운 모험을 감행할 때, 우리는 새로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우리에게 그 세계를 알아갈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면, 그리스도인은 과학자들이 성실하게 연구한 결과를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과학자들이 밝혀내고 연구한 결과로 인해 성서의 권위와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위축되고 작아진다면, 차라리 안 믿는 게 좋을지 모른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신 분이다.
물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고의 틀을 깨고 바꾸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여전히 진화론이 어떻게 신앙과 양립할 수 있는지 혹은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기독교 신앙이 무너지지는 않을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다른 책을 한 권 추천하고 싶다. 신앙과 과학의 통합을 추구한 기독 지성인들의 여정을 에세이 형식으로 담은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이다. 제목 그대로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기독 지성 25인이 진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를 쉽고 간결한 글로 정리한 책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야기가 어느새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혹시라도 창조과학 때문에 고민하거나 이 문제로 주변 지인과 말다툼한 적이 있다면 힘들게 싸우거나 논쟁할 필요가 없다. 그냥 이 책을 선물해주면 된다.
이 책의 저자들은 대부분 여느 복음주의자들과 다름없이 어린 시절 창조과학의 세례를 받으며 자란 이들이다. 그래서 더욱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이들은 신앙을 포기하거나 해체하는 방식 혹은 과학의 결과를 외면하는 방식이 아니라 겸손하게 두 영역을 끌어안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길을 선택했다. 어느 것 하나를 포기하고 한쪽 방향으로 삶의 길을 정하면 쉽고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끝까지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해보는 쪽을 택했다. 지금은 비록 희미하게 보일지 모르나 하나님의 창조와 그분의 말씀이 진리라면 언젠가는 두 영역이 한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와 신학자의 지적 성실함과 진솔함이 독자를 사로잡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쉽고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최경환 | 공공신학을 공부했고, 『공공신학으로 가는 길』을 집필했다. 현재 ‘과학과 신학의 대화’라는 단체에서 행정과 기획을 맡고 있다.

 
 
 

2021년 2월호(통권 7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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