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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0년 12월호)

 

  역사 이해와 역사학자의 성찰 사이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 최종원, 홍성사, 2020

본문

 

학위 막바지 때의 일이다. 역사를 전공하던 친구들 몇이 모여 수다를 떨다가 입씨름으로 번졌다. 귀국을 결심한 내가, 특정한 시대나 주제, 인물을 가르치기는 쉬울 것 같은데 ‘교회사’ 같은 포괄적 시대는 가르치기에 황당할 것 같다고 했더니, 한 친구가 깔깔 웃으면서 “아, 그거 그냥 누구 책 선정해서 읽으라고 하고 그 목차 순서대로 그냥 설명해주면 되지 뭘 고민해?” 하고 답을 했다. 그 말을 들은 또 다른 친구는 질색을 하면서 자신이 석사학위를 할 당시, 교회사는 그 학교의 대가였던 원로교수만 가르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 시대적인 역사를 가르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는 데 나와 견해를 같이했다. 너덧이 모여 이 문제를 가지고 옥신각신했지만 ‘교회사’란 과목은 가르치기 어렵다는 데 공감하고 있었다.
특정한 교재를 선택해서 그 책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자는 친구들은, 교수 자신의 역사방법론, 역사관, 역사신학이 정립된 후에 교회사를 가르치려 한다면 영원히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론자들이었고, 나처럼 고민하는 친구들은 그래도 여전히 완벽주의적 환상을 갖고 있었다. 철학사가 철학이라는 헤겔(F. Hegel)의 말처럼 교회사를 저술하거나 가르치는 행위 안에는 한 학자의 역사관, 역사방법론, 역사신학이 고스란히 담지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현재도 여전히 매년 돌아오는 교회사 과목 시간이 늘 긴장되고 두렵다.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의 저자 최종원 교수 역시 에필로그에서 중세교회사의 기술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마무리한 이유를 자세하게 명시했다. 교회사를 기술할 때 시대, 사건, 목차의 선택과 순서의 나열 자체는 역사를 읽어내는 연구자의 신학과 역사관을 통전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연유로 나는 저자의 용기에 감탄하며,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역사학적 세계관을 읽어내려고 했다.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는 여타 중세교회사 책들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프롤로그에서 저자의 집필 의도와 기대를 읽어낼 수 있었다. 첫째, 저자는 서양의 중세를 암흑시대로 바라보는 시각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으며 이 책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의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시대는 두부 자르듯이 싹둑 잘라서 규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전후 시대와의 연결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여러 곳에서 강조한다.
당연하고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견해이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초반에 읽었던 다양한 책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중 이웃나라 예수회 토미스트(Thomist) 이나가키 료오스케(稲垣良典)의 ‘암흑이야말로 그렇게 명명된 시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부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을 뿐’이라는 빈정거림이 생각났다.
집필 방향을 엿볼 수 있는 저자의 두 번째 방법론은 중세교회 역사를 콘텍스트와 같이 읽어낸다는 것이다. 저자가 지칭하는 콘텍스트가 해석학적 의미의 콘텍스트인지 혹은 데리다(J. Derrida)의 텍스트성(textuality)이나 푸코(M. Foucault)의 담론을 포괄하는 것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이 역시 너무도 당연하고 마땅한 근대정신이다.
그 외 서양의 중세를 ‘기독교 왕국’이나 ‘교황의 시대’로 이해하는 1960-70년대 검정교과서 같은 시각이나 이슬람 세계와의 교류와 문화적 습합은 무시한 채 기술된 고립화된 중세 역사에 대한 지적 역시 당연할 뿐 아니라 타당하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런 책이 오늘 한국교회와 사회 현실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지 근원적 회의와 싸우며”(10쪽) 이 책의 공간을 채워 넣었다는 역사학자로서의 시대적 책임의식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러한 전 이해를 가지고 읽으며 이 책의 장점과 특징을 발견했다.
첫째, 이 책은 수많은 교회사 책의 복잡하고 지리멸렬한 내용과 여러 이론을 잘 소화하여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한국에서 신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자신이 공부했던 교회사 교과서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가방에 넣기 부담스러운 두께이거나 혹 여러 권으로 된 교회사 책들에서 기술된 내용을 이 책은 그 어떤 책보다 간결하고 명료하게 설명한다. 그러면서도 내용 면에서 빈틈없고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신학 전공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두 번째 장점은 독자를 친절하게 안내하려는 저자의 노력과 열정이 곳곳에서 엿보인다는 점이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유튜브 콘텐츠 방식의 재미있는 역사 상식들을 자주 사용하여 독자의 집중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가령 ‘Gothic’, ‘vandalism’, ‘slave’, ‘minster’ 등 영어 단어의 재미있는 어원 설명들이 책 말미까지 계속된다. 또한 평범한 교회사 책에서 흔히 간과되는 중세 이베리아반도의 안달루시아가 처한 정황 등을 비교적 상세히 다룸으로써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외에도 슬며시 미소 짓게 하는 유머를 사용한다든지(79쪽), 불쑥불쑥 한국교회에 대한 진단과 우려, 걱정과 쓴소리를 삽입함으로써 책 읽는 재미를 더하게 한다. 이런 부분을 통해 저자가 이 책에 쏟은 열정, 의욕, 헌신이 쉽게 읽히며 저자가 가진 한국교회에 대한 진한 애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의 문명 간 공존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책 전체의 분량을 감안하면 이 부분의 기술은 상대적으로 상세하다. 특히 저자는 두 세계의 긴장이나 적대 관계보다 문화적 교류, 평화적 공존, 융합문화의 창조 등을 강조한다. 이러한 기술을 통해 저자가 갖고 있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건강한 시각을 보게 된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의 역사기술을 통해 독자를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등 다양한 종교인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상상하도록 이끈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점은 수도원주의와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부터)에 대한 저자의 강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저자는 수도원주의를 “유럽 문명 개척의 선두”, “금욕과 교회의 모범”, “중세의 사상적 배경” 등으로 규정하면서 이에 대한 친화성을 보인다. 저자가 가톨릭교회의 신학, 예전, 교회법 등이 종합된 제4차 라테란 공의회와 수도원주의를 자세히 취급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저자의 신학이 작동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라테란 공의회에 관한 기술을 통해 가톨릭교회와 구별되는 개신교회의 독특성, 진보성, 개방성, 현대성 등을 은근히 드러낸다. 또한 수도원주의를 기술하여 개신교회에서 소거된 수도영성의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단적으로 저자는 이 두 주제를 기술함으로써 개신교회에 대한 긍지, 사랑, 염려, 기대, 염원 등을 행간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책 전체를 통해 느낀바, 저자는 반지성주의를 거부함과 동시에 신학과 교회뿐 아니라 인문학으로서의 중세교회 역사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저자는 400쪽에 가까운 지면에 인문학의 품위, 문화에 대한 애정, 교회에 대한 사랑, 평화에 대한 염원 등을 깊이 스며들게 했다.
그러나 이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쉬움과 한계를 남겼다. 우선 책 안에서 중세유럽의 교회와 종교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나 방법론을 찾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목차는 기존의 역사서들과 동일하게 통시적이고, 기존 중세사의 단골 이슈들을 다루면서 전통적 해석을 따랐다. 방법론 역시 역사신학적 접근(meta-history)을 통해 기술되었다. 미시사적 방법론, 구조적/공시적 방법론, 계보학적 방법론 등 최근에 활용되고 있는 역사기술 방법론들은 고려되지 않았다.
둘째, 기존의 중세교회사와 차별되는 그 어떤 영역의 콘텍스트나 담론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명시한 콘텍스트 안에서의 중세역사 독법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게 한다. 유일하게 이슬람 제국과의 관계를 상대적으로 자세히 기술한 면은 눈에 띈다. 하지만 이 역시 전통적 서구사학과 교회사학의 시각과 해석을 그대로 수용하였을 뿐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이 작은 책에서 중세교회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방법론을 기대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기대는 저자의 향후 추가적인 연구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굳이 지적하는 이유는 책의 제목, 뒤표지의 소개 문구에서 이를 기대하게 한다는 점이다.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라는 제목을 통해 ‘다시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기대하게 하고, ‘우리가 몰랐던 중세교회 이야기’란 뒤표지의 소개를 통해 ‘몰랐던 것을 알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다시 읽어야 할 만큼 기존 중세교회사 책과 차별되는 점이나 기존 역사서에서 다루지 않은 신선한 주제나 사건은 찾을 수 없다. 독서의 용이성이나 재미, 서술의 특징 등을 감안할 때 ‘중세교회 이야기’ 정도였다면 허탈함은 훨씬 감소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이 책의 한계는 이 역사서가 원전이 아닌 2차 자료나 논문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제시된 참고문헌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적인 중세교회의 자료들이 열거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적 판단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는 원전 텍스트 자체에 대한 정보는 없다. 이러한 사실은 저자의 역사적 판단이 수많은 역사가들의 해석 중 취사선택한 결과라고 오해할 수 있거나, 이 저작이 역사서라기보다 신학서로 여겨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완독한 후 저자가 제시한 묵상 주제로 다시 돌아갔다. 저자가 제시한 ‘하나의 역사서를 더할 필요성’에 대한 근원적 성찰은 필자를 포함해서 역사학이라는 영역에 몸담고 있는 모든 이가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묵상 주제이다.

이충범 | 드루대학교 신학부에서 중세 신비주의 연구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저서로 『중세 신비주의와 여성』, 『중세여성 현대영성』, 『노래로 듣는 설교』 등이 있다. 현재 협성대학교 신학과 역사신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비영리시민단체 (사)대한토종담수어 교육이사로 활동하며 하천 생태계 및 토종 민물고기 보호운동을 하고 있다.

 
 
 

2021년 2월호(통권 7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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