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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0년 10월호)

 

  코로나는 ‘환경’ 전염병이다
  마크 제롬 월터스 지음, 이한음 옮김의『에코데믹, 끝나지 않는 전염병』책세상, 2020

본문

 

이 책은 요즘처럼 코로나로 집 밖에 나갈 수 없을 때 구약성서의 예레미야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다.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9:9) 하나냐와 같은 예언자가 이스라엘에 아무 일이 없을 거라고 거짓 위로의 메시지를 선포할 때, 예레미야는 칼(전쟁)과 굶주림(기근)과 전염병으로 민족이 멸망할 것을 예언했다.
『에코데믹, 끝나지 않는 전염병』의 원서는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에 쓰인 책이다. 그때는 아무도 지금과 같은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 올 줄 몰랐다. 꼭 어제 쓴 것과 같은 책이다. 동물과 가까이하며 치료하는 수의사인 저자는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외쳤다. “우리 도시에 기이한 새 질병이 돌고 있다.”
책의 원제목(Six Modern Plagues–and How We Are Causing Them)이 말하듯이, 저자는 우리가 사는 여러 도시에 돌고 있는 기이한 새 전염병 여섯 가지를 추적한다. 그것은 광우병, 에이즈, 살모넬라, 라임병, 한타바이러스, 그리고 웨스트나일뇌염이다.
먼저 광우병은 소위 ‘진보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20세기 중반에 고기 생산자들은 동물을 도축할 때 버려지는 부산물인 뼈, 내장, 방광, 젖통, 신장, 비장, 위장, 심장, 간, 폐 등을 모아서 다시 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정제 과정을 거치고 남은 것들을 소나 양 같은 초식동물의 사료로 돌렸다. 본래 식물을 먹도록 창조된 동물에게 인위적으로 농축된 고깃가루와 뼛가루, 즉 ‘MBM’(meat and bone meal)이라 불리는 것을 먹인 것이다. 그 결과로 발생한 것이 광우병이다.
에이즈는 숲을 파괴한 결과이다. 서양의 목재 회사들이 아프리카의 광활한 숲을 베어낼 때 벌목 현장에 고용된 수천 명의 벌목꾼들은 사냥한 야생동물 고기로 연명했다. 그들은 배가 고팠기 때문에 고릴라와 침팬지를 비롯하여 숲에 사는 온갖 동물을 깡그리 잡아먹었다. 인간이 감염된 동물의 고기를 다루다 전파된 병이 에이즈이다.
살모넬라는 항생제 내성의 예견된 결과이다. 세균이 항생제에 자주 노출되는 한 가지 특별한 환경은 대규모 가축 사육 시설이다. 이런 곳은 대개 비위생적이고 몹시 비좁기 때문에 생산자들은 소 같은 동물에게 전염병이 돌지 않도록 자주 약물을 쓴다.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지만, 이런 항생제 살육에서 살아남은 세균들은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 강한 저항력을 지니게 된다.
‘제2의 에이즈’라고도 불리는 라임병은 사슴이나 설치류에 붙어 있는 진드기가 사람을 물 때 신체에 문제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아메리카 대륙에 유럽 이주민이 들어오면서 미국 북동부의 수많은 정착 지역에서 숲이 잘려 나가고 대신 농장들이 세워졌다. 이주민들은 깊은 오지까지 파고들었다. 현재 미국 동부의 숲 전체 면적은 2세기 전과 거의 비슷하게 복원되었지만, 나무들만 돌아왔을 뿐 숲은 회복되지 않았다. 이렇게 자연을 인간들이 살기에 더 적합한 곳으로 만들려는 근시안적 시도가 오히려 질병을 일으키는 수많은 미생물이 살기에 더 적합한 곳으로 만든 것이다.
한타바이러스폐증후군은 희생자가 자신의 체액에 익사당하는 치명적인 감염 질환이다. 그런데 엘니뇨(동태평양 적도 지역의 해수면 온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현상)로 말미암아 많은 비가 내린 곳에 생쥐 수가 급증하였고 생쥐 밀도의 증가에 뒤이어 이 병이 찾아왔음이 밝혀졌다. 인간이 일으킨 기후변화가 이 질병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웨스트나일뇌염은 나일강에서 생겨난 바이러스이다. 그러나 이 아프리카 바이러스는 철새를 따라, 그리고 세계 여행을 하는 인간의 도움을 받아 이내 세계적인 바이러스가 되었다. 인간은 자신의 여행이 온갖 생물이 사는 세계라는 더 큰 지도에 영구히 족적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하지만 미생물들도 우리 몸에 붙어서,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여행한다. 웨스트나일뇌염은 이른바 ‘세계화’라는 인간 문명이 만든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이 여섯 가지 무서운 질병이 모두 인간에 의해서 발생했음을 깨닫고 모골이 송연해진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도 예외가 아니다. 그것 역시 인수공통 감염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 모든 대규모 전염병은 예외 없이 인간이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비롯된 것이다. 인간이 숲을 없애고, 생물 간 균형을 교란하고, 지구온난화를 일으키고, 세계를 마구 돌아다니며 각지의 토착 생물들을 뒤섞고, 항생제를 남용하고, 초식동물에게 고기를 먹이는 등 온갖 ‘기괴한’ 파괴 행위를 저지름으로써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하고 우리 스스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경고한다. 자연 파괴 행위를 중지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위험에 빠져 있을 것이며, 앞으로 더욱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인간은 자연에서 떨어져 나와 자연 ‘위’에 군림하는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지만,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며 인간은 여전히 자연 ‘안’에 있는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저자는 다시 강조한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팬데믹에 관한 책들이 쏟아지지만, 이 질병의 뿌리가 인간의 환경 파괴에 있음을 이렇게 분명하고 선명하게 고발하는 책도 없다. 그래서 저자는 일부러 ‘팬데믹’(pandemic)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에코데믹’(ecodemic)이라는 말을 만들어 쓴다. 생태를 뜻하는 ‘에코’(eco)에 전염병을 뜻하는 ‘에피데믹’(epidemic)을 합성해 만든 용어이다. 즉 지금의 전염병은 인류가 지구 환경을 파괴한 결과로 나타난 전염병, 그러니까 ‘환경 전염병’ 혹은 ‘생태병’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이다.

어쩐 일인지 우리는 전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부분들만 보고 있다. 대중 매체는 대개 새 질병과 맞서 싸우는 전투만을 따로 떼어내 다룰 뿐, 수많은 새로운 질병들을 아우르는 더 큰 이야기인 생태학적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이 더 큰 이야기는 인간과 동물들이 새로운 질병에 희생당하고 있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자연 환경에 급격한 변화를 야기함으로써 많은 질병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렇게 생태적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새로운 전염병들을 ‘에코데믹’(Ecodemic), 즉 ‘생태병’ 혹은 ‘환경 전염병’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저자는 환경 역사가들의 말을 인용하며 ‘환경 변화’와 ‘인간 행동’이 오래전부터 전염병을 키우는 역할을 해온 큰 그림을 보여준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약 1만 년 전부터 대규모 전염병이 인류 전체를 휩쓴 일이 몇 차례 있었다. 첫 번째는 정착 농업이 시작되고 인간이 소를 비롯한 가축들과 긴밀하게 접촉함으로써 미생물들이 인간에게로 넘어올 수 있는 새로운 다리가 마련된 시기이다. 이때 천연두, 홍역, 한센병 같은 질병이 발생했다. 그 뒤 약 2,500년 전, 각각 자기의 자리를 잡은 문명 중심지들 사이에 접촉이 늘어나면서 질병 전파의 새길이 열렸다. 세 번째는 이른바 유럽의 세계 탐험이 늘어나면서 아프리카, 아메리카, 태평양 지역에 살던 토착민들이 외부에서 유입된 전염병으로 희생당한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19세기 말 내내, 그리고 20세기 거의 전 기간에 걸쳐 전염병이 크게 줄어들어 인류는 상대적으로 행복한 시기를 보냈다. 인간의 행복과 환경의 변화 사이에 상대적인 균형이 이루어진 것이 주된 이유였다. 즉 각 사회는 오래된 질병들 가운데 많은 것들에 대해 면역 능력을 획득했고, 그것들을 통제할 수 있도록 생활방식을 조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미생물학적 평화의 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인류가 일으킨 전례 없는 규모의 생태적 파괴는 다시 균형을 깨뜨렸고 전염병을 불러왔다. 그 결과 지금 인류는 전염병 세계적 유행의 네 번째 시기에 막 들어섰다는 것이다.
큰 그림을 볼 수 있으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알프스를 등반하다 조난을 당했다. 실화이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깊은 산속에서 그는 한쪽 방향으로만 똑바로 가기로 결심하고 하루 13시간씩 12일을 걸어 탈출을 시도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내린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가 기적적으로 구조되고 난 후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한쪽 방향으로 계속 걸어 알프스를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구조대가 그를 발견한 곳은 그가 실종당한 지점 근처였다. 눈을 가리고 앞으로 걸어보라. 20미터쯤 가면 4미터의 오차가 생기고, 그렇게 100미터를 가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걸 ‘윤형 방황’이라고 한다. 좌표가 없는 사막 같은 곳에서 종종 발생한다. 지금 인류의 문명도 이와 같다. 계속해서 앞으로, 한 방향으로, 쉬지 않고 발전하고 달려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제자리를 뱅뱅 맴돌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마크 제롬 월터스가 보여주는 큰 그림은 간단하다. 우리 인간이 현대의 전염병을 ‘부양’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심성 없는 인류’는 우매하게도 자신의 집인 자연계를 제 손으로 파괴함으로써 원치 않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빚어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전염병들은 의학의 기적 시대의 아이들인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가정들을 깊이 성찰하도록 만든다.” 현대 의학은 수명을 늘리고 고통을 덜어주긴 했지만, 동시에 우리가 자연 세계, 즉 날씨와 숲과 삶과 죽음의 순환에서 동떨어져 있거나 그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매우 위험한 환상을 심어주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그 환상에서 깨어날 때이다. 인간은 결코 자연과 자연의 한계에서 달아날 수 없다. 이 세계는 유한한 세계이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열역학 제2법칙을 보아도 유한성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인류가 무한히 성장하고 진보한다는 이 근대의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은 결코 절망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건강의 근원인 생태계를 보존한다면 우리 자신과 우리의 다음 세대가 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와 달리 자연을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착취한다면, 우리는 소수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다수가 장기간 누려야 할 신체 건강을 희생시키는 짓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저자의 경고는 오래전 예레미야의 경고를 생각나게 한다. 하나냐가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으면서 “이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 버리리라”라고 거짓 위로의 예언을 말할 때, 예레미야는 “네가 나무 멍에들을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느니라… [여호와께서]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할 것이라 경고했다.(렘 28장)


장윤재 |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세계화 시대의 기독교 신학』, 『포스트휴먼 신학』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0년 10월호(통권 7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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