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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0년 10월호)

 

  ‘본래적인 것’의 다함 없는 추구, 인간을 향한 역사와 선교적 삶
  권호경의『역사의 흐름, 사람을 향하여: 권호경 목사 회고록』대한기독교서회, 2019

본문

 

인류 공동체가 코로나19바이러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진력하고 있는 오늘, 대한민국은 정치화된 한국 극우 개신교의 반사회적 신앙 현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우리가 속한 국가 공동체가 생명 공동체임이 더욱 분명한 지금, 종교가 이보다 더 반사회적일 수 있을 것인가. 2020년 한국 개신교 광장 현상을 바라보며 신앙 본래적인 것에 대한 물음과 자성이 우리 안에 더 많아지길 바란다.
최근 들어 20세기 권위주의 국가권력에 저항했던 기독교 사회운동가들의 회고록과 평전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1970-80년대 개신교 에큐메니컬 사회선교 부문은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사 기록이며, 당대 활동가들의 현장 증언은 매우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 더 나아가 개신교 복음을 민중의 삶과 일치시킨 개신교 에큐메니컬 활동가들의 행적과 기록은 오늘날 정치화된 개신교 광장 현상과 비교할 때 역사와 사회에 대한 교회의 책무로서도 기억되고 재평가되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권호경 목사의 회고록 『역사의 흐름, 사람을 향하여』도 그중 하나이다. 권호경 목사는 1969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새밭교회와 서울제일교회, 그리고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 주무간사,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총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아시아기독교협의회 도시농촌선교위원회(CCA-URM) 간사, NCCK 총무, 기독교방송(CBS) 사장 등을 두루 거친 한국 에큐메니컬 사회선교의 산증인이다. 그의 삶은 빈민선교에서 시작하여 반유신운동, 한반도 평화통일운동에 이르기까지 개신교 사회참여운동에 오롯이 헌신되었다. 고통과 수난, 저항의 무게를 짊어지지 않고서는 개인의 삶 안에 한국 현대사의 민족·민주·민중운동이 관통하기란 쉽지 않다.
역사 연구자인 필자가 처음으로 ‘권호경’이라는 인물을 접한 사건은 1973년 4월 ‘남산부활절연합예배사건’이다. 한국 현대사는 이 사건을 유신의 암흑을 깨운 종교계의 기념비적 사건으로 기술한다. 박형규 목사와 함께 서울제일교회가 역사에 등장하는 첫 사건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비중 있는 사건인 만큼 회고록에는 이 내용이 매우 상세히 기술되었는데, 당시 부활절연합예배 대회장 유호준 목사에게 권호경, 김동완 등이 찾아가 행사장에 기도 제목 현수막을 걸 수 있도록 요청한 일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다. ‘서빙고 대공분실’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사전 누설 경위, 보안사에 의해 ‘내란예비음모사건’으로 얽히고 조작되는 과정은 매우 구체적이고 자세하다. 권호경 개인으로서는 유신권력의 실체를 정면으로 마주한 최초의 사건으로, 결과적으로 실패한 이 사건을 통해 ‘남이 조직한 곳에서 우리 요구를 하려면 망할 수밖에 없는’ 조직운동의 교훈을 얻는다.
이외에도 유신체제에서 그가 직접적으로 연루된 공안사건들은 많다. 1974년 1월 긴급조치1호가 내려진 직후에 일어난 종교계 첫 위반 사건(1974. 2.), 1975년 긴급조치9호 직후에 있었던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 선교자금 사건(1975),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 용공 사건(1976)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모두 빈민·도시선교·사회선교운동과 연관된 조작 사건들로, 1970년대 박정희 유신권력이 종교계 사회선교 부문에 얼마만큼의 공세를 집중했는지 알 수 있다.
이 회고록에는 그동안 역사 서술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개신교 에큐메니컬 사회선교 부문의 크고 작은 개인의 경험들로 가득하다. 연구자들에게는 더없이 귀중한 역사 정보이다. 무엇보다 새롭게 다가온 사실은 주민조직운동가로서 권호경 목사의 이력이다. 그는 1970년 1월 연세대학교 도시문제연구소 산하 도시선교위원회 3기 훈련생 과정을 수료한 뒤 본격적으로 도시빈민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이후 그의 사회선교는 1971년 9월 1일에 공식 출범한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를 기반으로 빈민·도시선교운동으로 확장된다.
1960년대 근대화 이행기에 도시화, 산업화가 파생한 각종 사회문제에 개신교 도시산업선교의 현장 접근과 조직운동은 매우 중요했다. 특히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이후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한국특수지역선교위원회로 확대·변경된다.)는 도시빈민 생존권 투쟁에서 노동자 의식화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시민사회 계층이 형성되는 토대가 되었다. 전태일의 평화시장과 인접한 청계천 ‘형제의 집’과 노동자 조직운동,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에 있었던 와우·낙산·연희·금화 시민아파트 주민조직운동, 청계천 판자촌 생존권 투쟁과 주민조직운동, ‘광주대단지(현 경기도 성남시) 사건’의 주민조직운동 등은 산업화 이면의 사회문제들에 개신교 사회선교가 직간접으로 관계된 증언으로 매우 중요하다. 한국 산업화 과정에서 유신권력과 결탁한 거대자본의 이윤 독점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노동자·빈민 계층의 생존권 투쟁은 곧 1970년대 민주화·인권운동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아시아기독교협의회 도시농촌선교위원회(CCA-URM)의 간사로서의 실무자 경험은 세계교회의 아시아 선교 연대의 명암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1970년대에 이어 1980년대까지 지속·확장된 세계교회 URM운동은 제3세계 저개발 국가들에서 종교 영역을 넘어 노동자, 농민, 빈민, 학생 등 사회 각층의 의식화를 불러일으켜 시민사회 기능의 토대가 되었다. 한국의 경우 1세대 URM 운동가(조승혁, 조화순, 조지송, 이국선 등)와 2세대 운동가(인명진, 정진동, 김동완, 김경락, 안광수, 이규상, 권호경 등)의 특징을 구분하여 설명한 대목은 이 분야 연구자에게는 큰 친절이자 도움이 된다. 반면에 에큐메니컬 세계교회 연대가 아시아 선교현장에서 맞닥뜨리는 개발 독재, 정치 탄압 등 구조적 문제와 세계교회 재정 의존성의 문제의식은 당시의 열악한 제3세계의 현실 조건이란 점에서 향후 이 분야 연구의 주요 과제로 다뤄질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이후 한반도 평화통일운동에서 개신교의 역할은 자못 중요하다. 1984년 10월 일본YMCA 도잔소에서 개최된 ‘동북아시아의 정의와 평화(Peace and Justice in North East Asia) 협의회’가 ‘화해의 복음’ 정신에 기초하여 한반도 평화통일 지향을 선언한 이후, 19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분단 이후 남북교회 대표들의 첫 만남이 성사되었고, 1988년 2월 29일 제37차 NCCK 총회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선언’)으로 분단 극복과 평화 공존의 패러다임을 밝혔다. 1989년 NCCK 총무에 선출된 권호경 목사는 세계교회협의회(WCC)박경서 박사와 함께 조선기독교도련맹(현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서기장 고기준 목사 초청으로 1992년 1월 7-13일 북한을 공식 방문했다. 1992년 한반도 평화통일협의회 논의와 남북교회 교류를 협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분단 47년 만에 한국교회 대표의 첫 공식 방북으로 의미가 컸다.
일정 중 권호경 목사는 1월 12일 주일에 봉수교회에서 에베소서 2장
13-18절을 본문으로 “우리를 하나 되게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복음 안에서 남북교회의 하나 됨에 관해 설교하였다. 마지막 날인 13일에는 김일성 주석과 대담이 성사되어 남북교회 교류 관련 현안들, 특히 분단 50년 남북교회 희년 공동사업 등에 관한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내는 등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다. 이 만남에서 김일성 주석은 1992년 2월 17일로 예정된 제41차 NCCK 총회에 북측 교회 대표 파견과 분단 50년인 1995년 남북교회 공동 희년선포 기도회 개최 등에 긍정적으로 호응하였다. 이외에도 잠정적 통일 방안, 방북인사 석방, 특히 투옥 중인 문익환 목사의 안부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NCCK 총회 북측 참가자 조율 과정에서 한국 정부 당국의 일방적인 처리로 북측 교회 참가는 최종 보류되었다. 분단 이후 해외가 아닌 한반도에서 남북교회 상호 방문의 길이 닫히고 만 셈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NCCK와 권호경 목사는 1992-93년 남북나눔운동, 남북인간띠잇기대회를 연이어 개최하며 남북이 합의한 남북교회 교류와 평화통일 염원의 희년운동을 전개하였다. 한반도 통일운동사에 빠짐없이 기록되어야 할 내용이다.
회고록의 에필로그는 그가 배우고 터득한 역사와 사건, 현장과 사람에 대한 헌사로 채워져 있다. 특히 1970-80년대 사건 현장의 가난한 사람들, 선후배 동료들의 값진 희생은 아직까지 그의 가슴을 흔들어 깨우는 울림이다. 경찰서와 검찰청, 재판정과 계엄령 치하 군사재판을 거치면서 모든 사건 현장 속에 살아남은 것은 부와 권력이 아닌 사람임을, 필시 역사의 본질은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지난하던 역사 현장에서 에큐메니컬 시대정신을 몸으로 써내려간 권호경 목사의 생애 후반은 인간 생명에 덧씌워진 비본래적인 것들을 걷어내는 일이 될 것이다. 바이러스의 위협 앞에 인류가 생명 공동체임이 여실한 지금, 생명 그 이상으로 본래적인 것이 있을까.


고지수 | 성균관대학교에서 개신교 사회운동사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겸임교수이며 이화여대에서 개신교 사회운동으로 박사후연구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 『김재준과 개신교 민주화운동의 기원』이 있으며,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연구”, “갈릴리교회 지식인 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2020년 10월호(통권 7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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