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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0년 8월호)

 

  기독교 영성의 외연으로서 병원의 탄생과 발전
  남성현의『병원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기독교 영성의 역할』CLC, 2020

본문

 

『병원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기독교 영성의 역할』을 받아 들었을 때 ‘남성현 교수가 또 하나의 역작을 냈구나!’ 하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저자는 이미 『고대 기독교 예술사: 그리스 로마 문화를 통해 바라본 2-6세기 기독교 예술의 생성과 발전에 관한 연구』(2011)를 통해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바 있다.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사진을 찍어 해설하고 소개한 그 책은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어 학문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번에 발간된 병원의 탄생과 발전에 관한 연구서도 한국 인문학계와 의학계에 기념비적인 도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부제 “4세기에서 19세기까지 기독교 사회 복지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말해주듯 이 책은 공간적으로는 지중해 세계와 서유럽을 중심으로 다루지만, 시간적으로는 1,500년이나 되는 긴 시간을 포괄한다. 저자가 고대사, 특히 고대 후기 역사 전공자이기 때문에 종교개혁 이후부터 19세기까지 서유럽 병원 제도의 역사를 하나의 장(제10장)으로 서술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저자 자신도 “17세기 이후는 제한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아쉬움을 전한다. 그럼에도 프랑스병원(제7장), 영국병원(제9장) 등 중세 서방 기독교 세계뿐만 아니라 비잔틴병원(제6장)과 예루살렘의 순례자들의 병원(제8장)까지를 포함해 동서를 아울러 병원의 탄생과 발전을 개관한 것은 병원의 통사를 제시하려는 저자의 의지와 각고의 노력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지금까지 고대 후기의 문명전환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방법과 자료를 활용하여 독보적인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리하여 시각적 예술은 물론 파피루스 자료와 후기 로마제국 종교법 연구에서도 괄목할 만한 업적을 쌓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다양한 학문적 관심이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은 파코미우스와 카이사레아의 바실레이오스(Basil the Great)의 공주수도운동(共住修道主義, Cenobitic monasticism)을 주제로 삼았다. 학위 논문에서는 주로 문헌자료를 분석했지만, 저자는 파피루스 연구의 세계적 대가인 장 가스쿠(Jean Gascou) 박사를 통해 파피루스라는 새로운 사료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파피루스 자료가 파코미우스 수도원의 일상생활과 실제적인 모습에 접근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 성향은 특정 인물보다는 집단과 사회 전체, 신학과 교리보다는 일상의 삶과 제도, 이상화된 역사보다는 실제적인 현실을 분석하려는 저자의 관심을 잘 보여준다. 이것은 고대사 혹은 로마제국과 고대 기독교에 대한 역사학과 교회사학의 일반적인 접근 방식과 상당히 다르다. 예를 들어 저자는 테오도시우스 법전의 종교법을 연구할 때에도 이단과 이교의 억압, 교회에 대한 특혜뿐만 아니라 간통과 이혼의 주제도 다루었다. 또한 서방 기독교 세계뿐만 아니라 초기 비잔틴제국, 수도 영성뿐만 아니라 국가의 종교사회경제 정책까지 다룬다는 점에서 참으로 연구 영역이 방대하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고대 후기 역사, 특히 초기 비잔틴제국에 대한 사회경제사적인 연구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왔다. 아마도 이 책은 그동안의 연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결정판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여러 학자들과의 학문적인 교류와 공동 작업에 의해 탄생했다. 저자는 필자가 주도한 “고대 후기 로마제국의 가난과 부”라는 공동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당시 일본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호주 학자들이, 성인전(hagiography)과 교부들의 설교가 현란한 수사학에 불과하며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을 두고 연구진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일어났던 것을 기억한다. 저자는 파피루스 연구를 통한 실증사적 접근을 통해 호주 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고 보았고, 소르본대학의 파피루스연구소를 방문하여 새로운 연구를 진척시
켰다.
또한 ‘정교회의 날’이라는 행사에서 거행된 리뚜르기아(정교회의 성찬 예배)와 암브로시오스 대주교의 강연을 통해 저자에게 병원 연구의 돌파구가 마련되었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때 밀러(Timothy S. Miller)의 역작 The Birth of the Hospital in the Byzantine Empire를 소개받으면서 19세기까지의 병원의 통사를 구상했다고 하니, 연구를 수행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여겨진다. 이어서 몬트리올대학교의 초청 연구원으로 초빙을 받아 방대한 자료를 접할 수 있었고, 크리스천 라슐레 교수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초기 비잔틴제국이 종교기관에 대해 추진한 정책을 ‘황실의 증여와 기독교 기관의 사회적 의무’라는 개념으로 제시했다.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경험하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다년간 수행해온 여러 연구 성과를 총괄하여 일반 독자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연구서를 집필한 저자의 각고의 노력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별히 국내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려고 노력한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가독성을 위해 각주 대신 미주를 사용해서 출처를 한눈에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을 주의 깊게 읽는 독자라면 저자가 외국 학자들의 연구뿐만 아니라 국내 학자들의 연구도 참조하여 일일이 출처를 밝혔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최근에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교부학자의 학술대회 발표 논문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학문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연구자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배려를 읽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국내 학자들의 선행 연구를 고려하지 않는 우리나라 학계의 일반적인 관행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19세기까지 병원의 통사를 개관하려고 목표했지만, 종교개혁 이후 근대 유럽 병원의 성립과 발전에 대해서는 많은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밝혔듯이 근대 유럽에서 한국 병원을 포함한 20세기 보건 의료사에 대한 연구는 추후의 작업으로 남아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의료체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저자를 중심으로 이 분야의 연구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은 아스클레피오스 성소(제1장)와 로마제국의 군인병원(제2장)에 대한 개관으로 시작한다. 기독교에 영향을 받은 병원의 태동과 발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후기 사회의 치료 제도에 대한 서술이 필수적일 것이다. 저자는 아스클레피오스 성소와 군인병원의 모형과 평면도를 소개하여 입체적인 이해를 도왔다. 저자에 따르면, 그리스–로마 세계의 이 두 가지 치료 전통은 4세기에 발전된 기독교적 병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적 병원은 빈민보호시설과 영적 치료의 기능이 통합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병원의 탄생과 발전을 연구하면서도 수도 영성에 기초한 기독교 영성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독창적인 공헌이 될 것이다. 수도 영성이 개인이나 수도원에 제한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문명전환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병원 연구를 통해 논증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볼 수도 있겠다. 4세기 이후에 세워진 기독교 병원은 육체적 질병의 치료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를 섬기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제도가 태동하고 발전한 배후에는 정신사적 전환이 있었다. 그리스적 자선(euergesia)과 로마적 선행(beneficium)에는 사회적 약자가 고려되지 않았지만, 히브리 사상과 유대 영성을 이어받은 기독교는 가난한 자와 약자를 돌보는 전통을 사회에 뿌리내리게 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피터 브라운(Peter Brown)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대 고전 사회가 중세 사회로 전환되었다고까지 주장한다. 특히 이 책에서는 병원이 그리스–로마의 기부 전통과 기독교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이 결합된 문명 융합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고대 교회의 자선과 빈민구호 활동의 정신사적 배경과 의료 제도와 기관에 대한 사회경제적인 분석을 읽으면서 저자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저자와 함께 참여한 공동연구 프로젝트가 이 책에서 결실을 맺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번역된 피터 브라운의 『고대 후기 로마제국의 가난과 리더십』(2012)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이 책에서 더욱 발전되고 다채로운 사료를 통해 입증되었다. 특히 “성육신의 역설: ‘거지가 된 만유의 왕’”(제4장 4절) 부분은 브라운의 서술을 기초로 기독교인의 빈민보호 활동에 대한 신학적인 근거를 잘 밝혀주었다. 또한 저자는 ‘가난한 선행가’라는 말을 사용하여 수도자이며 성직자들이 기부를 받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자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공동연구 프로젝트 후반에 연구진은 수도운동의 영향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프로젝트가 종료된 한참 후에도 저자가 후속 연구를 진행하여 연구진의 염원을 실증적으로 논증한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저자는 스스로 가난을 택한 가난한 선행가들과 그들에게 영향을 받은 자들의 기부를 통해 가난한 자들을 위한 기독교적 병원 건물이 세워지고 유지·발전되는 과정을 “돈의 흐름을 바꾸는 영성”이라고 특징지었다. 또 “병원사(史)는 영성사(史)의 주요한 증인이며, 치유받은 내면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확고한 외연”이라고 특징짓고, “외연이 없는 영성, 선한 열매가 없는 영성”은 자기만족과 아집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이 시대에 경건과 영성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이 꼭 귀담아들어야 할 말로 들린다.
출판된 모든 책이 다 그렇듯이, 이 책에서도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이 분야의 한 획을 긋는 성과물이며, 수많은 후속 연구의 발판이 되리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도 희망했듯이, 근대 유럽과 우리나라 병원의 역사를 기독교 영성의 관점에서 제시하는 연구가 속히 나오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이슬람 문명권의 병원 역사, 특히 시리아 기독교가 이슬람 문명권의 병원과 의료체계 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또한 16세기 중반부터 일어난 기독교의 동아시아 선교에서 병원과 의료 분야에서 동서가 어떻게 만나고 교류했는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아울러 병원 제도에 대한 연구는 융복합 연구의 좋은 주제라고 생각한다. 여러 분야의 전공자들이 함께 모여 공동연구를 진행하여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 성과를 내면 좋겠다.
이 책은 의학, 신학, 역사학의 학제적인 연구에 관심을 둔 연구자뿐만 아니라 몸과 영혼의 치유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 또한 이 시대에 참된 영성과 경건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도 큰 영감과 도전을 주는 명저가 될 것을 기대하고 확신한다.


서원모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시리아 기독교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교회사학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고대교회사 교수, 동서그리스도교문헌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숭정역서에 기술된 태양의 운동: 시헌력의 시작』(공저), 역서로는 『이슬람 세계 속 기독교』 등이 있다.

 
 
 

2020년 8월호(통권 7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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